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초라한 곳에서 일거리를 필요로 했던 화가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리고 신비로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은 모나리자였지요.
교만한 화가에게서 보다는 겸손한 화가로부터 유명한 명작이 나왔다는 사실 즉,
겸손한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쓰시며,
우리 역시 이렇게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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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요한 1,19-28)
예수님과 요한은 만나지 않았지만 영적인 친교와 우정을 나누었다고 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신앙 안에서 체험했기에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대사제들과 레위지파 사람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질문에 두 가지로 답합니다.
하나는, 자신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예언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이에 대해 요한은 두번째 답을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합니다.
자신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것이다. 멋진 말입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에서 요한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고 하였는데,
소리도 이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소리는 말씀을 전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세례자 요한의 신앙고백과 같은 예언의 말씀,
“나는 이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는 묵상할 때마다 저를 겸손하게 합니다.
나는 주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혹시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벗님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