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이 지금 어떻게 나라를 패망과 적화통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보라. 그저께 북한이 남침용으로 사용할 중유를 실은 선박이 북한을 향해 출항하고, 어제(7월 13일) 유엔 핵 사찰단이 마지막 경유지 북경을 출발하여 북한을 향해 날아오는 바로 그 시각에 북한은 갑작스럽게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이름으로 미북 양자 직접 군사회담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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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교의 복음과 우리의 문화 원문보기 글쓴이: 역사학도
North Korea's military calls for direct talks with the US, as UN nuclear inspectors head to Py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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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이 지금 어떻게 나라를 패망과 적화통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보라. 그저께 북한이 남침용으로 사용할 중유를 실은 선박이 북한을 향해 출항하고, 어제(7월 13일) 유엔 핵 사찰단이 마지막 경유지 북경을 출발하여 북한을 향해 날아오는 바로 그 시각에 북한은 갑작스럽게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이름으로 미북 양자 직접 군사회담을 요구하였다.
북한이 북핵 6자회담을 닷새 앞둔 13일, 미국에 대해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북한 판문점대표부 대표(이찬복 상장)는 이날 담화를 발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임의의 장소에서 아무 때나 유엔 대표도 같이 참가하는 조·미 군부 사이의 회담을 진행할 것을 제의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14/2007071400031.html 참조)
본래 실현이 불가능하였던 미북 양자 회담이 성사되게 한 범인은 노무현이다. 지난해 연말 노무현이 꼼수를 써서 미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송민순 특사를, 그리고 김정일에게 밀사를 보내 미북 양자 회담의 다리를 놓았다. 이미 사실상 북미 양자 회담을 한 미국이 또 하나의 양자 회담을 딱 부러지게 거절하기 좀 난처한 입장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을 또 요구할 것이나 북한이 노리는 것은 북미 양자 회담 성사 그 자체이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해 미국과 양자 군사회담을 하자면서 한국을 제외시킬 때 그 외교적 상징적 의미는 미국이 한반도 주인을 사실상 김정일로 인정하였다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남한은 주권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북한의 적화통일 논리이다. 만약 이번에도 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의 농간으로 미국이 군사적 양자 회담 제의마저 받아들일 경우 이것은 한반도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에 있어서 김정일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미북 양자 군사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한성렬 북한 군축평화연구소 대리소장이 지난 7월 4일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오직 미군철수 등을 통한 미국의 적대적 조처 중지와 북·미의 핵폐기를 위한 동시적 조처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駐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로 미국에서 북한의 ‘입’ 역할을 했던 한성렬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북한이 앞으로 주한미군 철수론을 핵 협상에서 본격 거론하겠다는 신호였다.
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의 연방제 음모는 사실 1970년대에 김대중이 그려놓은 밑그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김일성과 일본 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던 김대중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연방제 통일을 하자고 했었다. 그리고 그 연방제 통일 순서가 종전선언,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한에서도 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 정권이 8.15를 앞두고 그런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의 연방제 통일론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5.18광주폭동이다. 1980년 5월 초에 중국 정부는 5월 20일 김재규 사형일에 때맞추어 군부 내 김재규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킴과 동시에 북한군이 남침할 것이라는 정보를 일본 정부에 알려 주었었다. 중국 정부는 남침 허락을 받기 위해 온 김일성이 보고한 내용 그대로 전해 주었던 것이니, 과연 김재규 부하 반란 예정설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단서를 김대중 일당이 구호로 삼았던 계엄령 해제에서 읽을 수 있다. 본래 계엄령은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을 틈타 북한이 남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포되었으며, 계엄령은 군인들에게 비상 근무의 문제였지 민간 생활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 실례로 1980년 봄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개판으로 데모할 수 있는 나라였다. 김대중 홍위병들은 김대중의 연방제 통일론을 지지하지 않던 교수들을 어용교수로 몰아 퇴진시키는 시위를 하였다. 그 어느 국가도 홍위병들이 대학교수들을 강제로 퇴진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1980년 봄의 한국에서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계엄령이 민간인 생활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그럼에도 왜 김대중 일당은 왜 그토록 줄기차게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였던가? 그들의 첫번째 시위 구호는 최규하 대통령 하야였다 (시위 구호는 최돼지 물러가라였음). 대통령 유고 상황이기에 계엄이 선포되었던 것인데 과도기 정부 대통령마저 하야하라고 했다. 두번째, 시위 구호는 신현확 총리 내각 총퇴진이었다. 여당이 없었던 정부 장관들이 총사퇴하면 국가는 전복된다. 세번째 구호는 직선제 개헌 반대였다. 선거를 못하게 하면 민주적 방법으로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은 영영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네번째 구호가 계엄령 해제였다.
1980년 봄에 장성들 찾아다니면서 자기와 거래하자고 보채던 김대중이 왜 계엄령 해제를 요구했으며, 김일성이 말한 김재규 부하 반란 예정설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똑같이 5월 20일 김재규 사형 예정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김재규 부한 반란설과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 계획은 한묶음이었음을 시사한다. 또 김일성이 말한 김재규 부하들은 김대중의 거래 제의를 받아들였거나 본래 김대중을 지지한 장성들을 암시할 것이다. 그리고, 계엄령이 김재규 부하들의 반란을 억제하였기에 김대중은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였을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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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을 클릭하시면 2007년 7월 14일 아침 6시 현재 댓글 67개까지 진행된 광주사태 당시 광주 31사 한동석 중위의 생생한 증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과연 시민군과 계엄군 중 어느 편이 먼저 발포하였는가와 폭도들이 MBC방송국에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질렀는지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건물에 갇혀 있던 직원들을 군인들은 어떻게 필사적으로 보호하였으며, 폭도들은 직원들이 불에 타 죽든 말든 개의치 않고 불을 저지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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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북 양자 군사회담을 제의했다는 BBC뉴스 대본
>> In the name of peace and security on the Korean peninsula, the North Korean military have called for direct talks with the American army. The calls comes as international team of inspectors traveled to the region. They're due to arrive in Pyongyang on Saturday to start the task of verifying the closure of its nuclear reactor. Here's our correspondent Jonah Fisher.
>> Next stop Pyongyang. The United Nations nuclear experts arrive in the Chinese capital Beijing. It's nearly fiver years since North Korea or the D.P.R.K. allowed inspectors in.
>> Today we are a group of professionals going to perform and ismment that with the type of help we've had from D.P.R.K. In the ats few weeks, we think we'll do our job. Excess baggage was not a concern. Over 1,000 kilos of equipment was checked. In it's expected on the used during the planned shutdown of North Korea's nuclear reactor. This is the final destination, Yongbyon. Its reactor has formed a crucial part of Pyongyang's atomic programme which culminated in a nuclear test in October last year. After four months. Yongbyon is expected to begin decommissioning next week and economic assistance if the form of oil is already on its way. 50,000 tons have been promised once the reactor closes with 20 times more if North Korea shut down all its nuclear facilities.
>> I think what is clear is we won't have a peace instrument until there is denuclearization. Now, we don't want to wait for complete denuclearization in order to start that process, so we'll probably start it, siewmg we're making progress, we'd like to state by the end of this year.
>> Inspector visit comes as the The North Korean army called for trawx with their American counterparts, a statement through an official news -- news agency, in order for implementation, Pyongyang's security concerns have to be addressed. Jonah Fisher, BBC News.
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이 지금 어떻게 나라를 패망과 적화통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보라. 그저께 북한이 남침용으로 사용할 중유를 실은 선박이 북한을 향해 출항하고, 어제(7월 13일) 유엔 핵 사찰단이 마지막 경유지 북경을 출발하여 북한을 향해 날아오는 바로 그 시각에 북한은 갑작스럽게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이름으로 미북 양자 직접 군사회담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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