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기행 / 창록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 오랫동안 뇌에 저장해두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면 역마살이라든가 방랑벽이 있나 자문하게도 하지만, 여행을 자주 못가서 그것을 검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몇 번 안 되는 여행이라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에게 여행이란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남편이 갑자기 한가해지면 즉흥적으로 보따리를 싸서 목적지도 없이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12월 31일,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 경험을 위해 외지로 떠날 때 퇴근한 남편과 우리들도 그 흐름에 휩쓸리게 되었다 내일이란 하루를 공짜로 얻은 것이다 미리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동해안 바닷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자동차 안에서 남편은 어디를 갈까라고 재차 물었지만 들뜬 우리들은 무조건 아무데나라고만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여행을 가 봐야 가고 싶은 데가 있지 않겠는가 자동차가 도로 위를 제법 누볐을 무렵 아이들이 밥은 어떻게 먹느냐고 했다 퇴근과 수십 킬로를 달리게 한 자동차의 시간은 저녁을 훌쩍 뛰어넘게 한 것이다 어디든지 식당 간판이라도 보이면 들어갈 텐데 밤이라 어딘지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네비게이션과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위치정보쯤이야 식운 죽 먹기보다 쉽지만 남편만 그때의 최신식 기계인 폴더폰이 있었을 뿐이었다
샛길 따라 찾아간 작은 항구, 식당 두어 집만 있고 그 주위와 뒤편으로 낮은 기와집들이 터줏대감으로 앉아 있다 시간은 열시를 가고 있었으니 일단 한 곳의 식당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밥을 먹고 나니 2차 문제인 잠자리가 걱정이 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직접 찾는 건 무리다 싶어 식당주인에게 물었더니 할머니 혼자 살고 있는 한옥민박집을 소개해 주었다 안방을 내준 할머니는 건넌방으로 가면서 며느리가 해 온 혼수이불을 주었다 조금 있으려니 아들이 사다줬다면서 옥매트까지 주었다 물론 방은 보일러가 우리들의 엉덩이를 노릇하게 지질정도였지만 할머니는 노심초사였다
황송한데도 낯선 곳에서의 밤은 쉬이 잠을 주지 않았다 설핏 잠이 들었다 싶었을 때 마을 확성기가 해맞이를 하자고 했다 막 잠이 들었던 터라 확성기가 알리지 않았더라면 해가 중천에 떠도 모를 뻔했다 비몽사몽으로 나왔더니 사람들이 김이 풀풀 나는 음식을 들고 왔다 갔다 했다 우리도 추워서 한 그릇 사먹으려고 그곳으로 갔더니 커다란 가마솥에 홍합을 넘치게 끓여서 떡과 함께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도 몰려드는 장사꾼들을 수없이 보아온 나는 새벽부터 낯선 사람들에게 인심을 베푸는 이 고장 사람들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시간을 위해 전날부터 얼마나 분주했을까 후 불어 한입을 먹자 뜨거운 홍합 국물에 녹아든 인심은 내 가슴을 뜨듯하게 뎁혀주었다 대문을 나설 때는 어둠과 추위로 가슴이 오그라들었는데 날이 밝아짐에 따라 얼굴도 알아볼 수 있고 가슴까지도 널따랗게 펴졌다 그때 남편이 저쪽에서 배에 사람을 태우는 것 같다고 하면서 가자고 했다 가까이 가니 한 척은 이미 사람들을 태워서 바다로 향하고 남은 배도 거의 사람들을 다 태워서 바다로 가려고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탔다 어부들이 해돋이 관광객을 위해 배려를 한 것이다 마을이 눈에서 멀어 그림처럼 풍경이 될 즈음 바다가 용을 쓰는 듯 붉어지더니 해의 정수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잡으면 안 될 것 같은 위엄으로, 가끔씩 갈매기들이 바다의 힘을 부추기느라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하였다
잡소리 많던 사람들도 뿌듯이 가슴에 힘을 넣으면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숨을 죽였다 바다의 해는 눈도 시리지 않고 커다랗다 손만 내밀면 그 커다란 둥근 힘으로 나를 덮칠 듯 가깝다 나는 미동이 없는데 점점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해는 분명 내가 감당하지 못할 힘이 내재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눈의 정면에서 바라보던 해가 눈의 위치가 위로 될 때쯤 호기심과 이기심으로 굳은 가슴이 최면 걸리듯 부드러워지며 경건해졌다 그리고 절로 기도가 되었다 요즘 같으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어선에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구속까지 될 일 아닌가 싶지만 여하튼 작은 항구의 인심과 바다에서 해 뜨는 모습을 경험하게 된 나는 새해만 되면 고질병처럼 항구 이름도 모르면서 그곳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예전과 마찬가지로 즉흥적인 시간을 빌려 해돋이를 가게 되었다 어디를 갈까 묻는 남편에게 옛 기억을 잘 되살려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울진 어디쯤이니까 네비게이션에는 울진항구라고 찍었다 샛길로 들어서는데 낯설지가 않다 다리위로는 직진 도로가 나 있고 그 아래에서 우회전을 돌면 우리들이 갔던 곳이 나올 것 같았다 감을 따라 자동차를 몰고 가니 남편도 이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리던 곳을 다시 찾게 된다는 기쁨에 환호성이 나올 것 같았다 항구 입구에 들어서자 낯설고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 식당도 맞는 것 같고 뒤로 보이는 집이 할머니 집 같아도 보였다 예전의 그 식당에서 박달게를 일십오만원 주고 시켰다 그런데 쪄내어 온 게를 보더니 본인이 산 그 게가 아니라는 것이다 투덜대며 먹는데 맛인들 있겠는가 게의 살도 덜 차서 두 사람으로는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식당에서 나온 남편은 울진읍으로 차를 몰았다 화난 남편에게 할머니집 이야기를 꺼냈다가 불똥이 내게까지 튈 것 같아 이젠 할머닌 없겠지 있어도 민박은 안 하겠지라고 마음을 앉히며 어둑살로 지웠다
이튼 날 해맞이를 하기 위해 다시 거기를 찾았다 새벽이지만 마을에 설치된 가로등이 우리 뿐 아니라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훤하게 비춘다 바다가 맞닿아 있는 마을 끝 평평한 뭍에는 행사를 위한 만국기가 펄럭이고 설치된 무대의 확성기에서는 최신 유행가가 흘러 빠른 문명에 동참했음을 자랑하듯 나의 보폭을 재게했다 그날의 뜨거운 홍합국은 떡국으로 대체되고 소원성취를 적어 날리는 풍선까지 나눠주니 인심은 선조들의 대가 혈류를 타고 유전되기에 기계화의 문명에는 완전 잠식은 당하지 않은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말이 없어져버렸다 뭔가 놓고 온 듯한, 아니면 주고 와야 하는데 뭔가를 가지고 와 버린 느낌이 드는 까닭은 뭘까 크게 변하지 않은 마을풍경에 떡국 인심까지 먹었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세상의 삭막함에 깊숙이 물들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바랜 풍경을 오염이라 치부하지는 않는지 여하튼 해돋이 이야기만 나오면 항구 이름은 모르지만으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던 이야기는 이제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추억이란 빠르게 변화되는 삶에서 존재의 가치와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몇 개 안되는 추억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함부로 다뤄 노화된 몸 어딘가 고장 나는 것처럼 아쉽고 아프다 또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혹시라도 가게 된다면 그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으면 좋겠다 안방 아니라 건넌방이라도 좋아 그곳을 내 친정이라 여기고 뜨끈한 온돌방 등에 지고, 두 손 깍지 끼워 목 베개 하고, 지붕 위 불순물 걸러진 수정하늘의 별을 추적해 본다면 따뜻했던 추억이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더 편안하려면 왼다리를 오른다리에 걸쳐 고향노래라도 흥얼거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