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장마철 맨홀엔 '괴물'이 꿈틀거린다
맨홀 인부 체험 르포
무더위에 산소 줄어들고 유독가스 덩어리 떠다녀
독한 악취에 눈앞이 아찔 10년새 194명 질식사
인부가 묵직한 맨홀 뚜껑을 들어 올렸다. 직경 1m. 칠흑같이 어두운 둥근 구멍이 나타났다.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지난 25일 오전 8시, 서울 방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맨홀. 50~60대 인부 5명이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검정 고무 작업복에 헬멧을 착용한 채 사다리를 타고 맨홀 속으로 내려갔다. 장마철에 앞서 낡은 하수관을 보수하기 위해서다. 맨홀 안은 화생방(化生放) 교육장 같았다. 시큼한 하수구 냄새, 분뇨 냄새, 계란 썩는 듯한 냄새가 뒤섞여 숨이 막히고 눈이 따끔거렸다. 맨홀을 중심으로 높이 1.1m, 폭 1.1m의 정사각형 모양 콘크리트 하수관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하수관 안에 드문드문 백열등이 켜져 있었지만, 몇 걸음만 떨어져도 상대방의 얼굴이 어둠 속으로 숨었다.
시커먼 생활하수가 발목을 스치며 세차게 흘렀다. 해머 드릴과 삽 등을 든 인부들이 90도로 허리를 꺾은 채 하수관 안쪽으로 50m쯤 걸어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걸어가다 악취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주저앉고 말았다. 앞서 가던 인부들이 젊은 기자를 돌아보고 고함을 질렀다. "빨리 나가. 큰일 나!"
맨홀 인부들은 장마 직전 석 달(4~6월) 동안 한 해 벌이를 거의 다 한다. 지자체들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하수관 보수 공사를 벌이는 까닭이다. 그만큼 위험도 크다. 소나기가 오면 순식간에 물이 불어난다. 좁은 하수관을 흐르는 하수는 놀랄 만큼 물살이 세다. 자칫 중심을 잃으면 급류에 떠내려갈 수 있다. 질식사 위험도 크다. 날씨가 더워지면 미생물이 번식해 하수구 안의 산소가 희박해지고 유해가스가 증가한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 6월 전국의 맨홀 공사 업체는 2만여개다. 대부분이 인부 2~5명을 필요할 때만 고용하는 영세업체다.
맨홀 인부는 4만~10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경력에 따라 8만~12만원의 일당을 받는다. 힘이 좋은 20~30대보다 50~60대가 많다. 일반 공사판에서 받아주지 않는 나이 많고 기술 없는 사내들이 다른 막일보다 1만~2만원씩 더 받는 걸 위안 삼아 땅밑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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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5일 분진 마스크와 안전모, 작업복을 갖춘 조백건 기자가 서울 방화동 하수관 보수공사장에서 다른 인부들과 함께 바닥공사를 하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이날 오전 작업을 마친 인부들은 인근 식당에서 쇠고기 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수저를 들기도 전에 국밥에 소금부터 뿌렸다. 맨홀 공사 10년 경력의 이모(61)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소금) 뿌려둬. 탈진해."
이씨는 "배운 거 없고 기술도 없는 '노가다'가 늙어서 마지막에 오는 곳이 여기"라고 했다.
환갑을 넘긴 '신참' 이모(62)씨는 국밥을 앞에 놓고도 연방 두 손으로 뻐근한 허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는 좀처럼 국물을 넘기지 못했다. "국밥에서 맨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년 전 상경한 이씨는 공사판 막일로 1남1녀를 결혼시켰다. "집사람이 아파. 어렵게 사는 자식들한테 손 벌릴 수도 없고…. 늙고 힘없는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
오후 1시쯤 작업이 재개됐다. 인부 2명이 해머 드릴로 낡은 하수관 바닥을 깨면 다른 인부들이 파편을 포대에 담아 반대편 하수관 귀퉁이에 쌓았다. 모든 작업이 허리를 직각으로 수그린 채 이뤄졌다. 오후 2시를 지나면서 지상의 열기가 맨홀 안까지 스며들었다. 땅 밑 하수관은 찜통처럼 덥고 습했다. 안경에 하얀 김이 서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고함쳤다. "냄새 올라온다!"
하수관 속에서는 하수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유독가스 덩어리가 갑작스레 악취를 뿜을 때가 있다. 몇 시간 동안 상당히 적응했는데도, 독한 악취에 눈앞이 아찔했다. 인부들은 맨홀 밖으로 나와 잠깐 숨을 돌리고는 다시 맨홀 안으로 내려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1999~2008년) 근로자 258명이 맨홀 등 밀폐 공간에서 일하다 질식해서 쓰러졌다. 이 중 194명이 사망했다. 매년 20명꼴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망사고의 42%가 6~8월에 집중됐다.
법대로 하면, 밀폐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수시로 측정해야 한다. 현장에서 이 같은 안전 기준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이날 방화동에서 만난 인부들도 일반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분진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산소와 유해가스 측정도 작업 시작 전인 오전 7시20분에 딱 한 번 하고 끝이었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로 정부의 '최저가낙찰제'와 건설사들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꼽았다.
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손기상(57) 교수는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는 대부분 입찰에서 최저가를 제시하는 업체에 배당되고, 그 업체는 더 작은 업체에 하도급을 준다"며 "이 두 단계를 거치면서 실제 공사비가 정부가 기획단계에서 예상한 비용의 35%까지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100원이 들 거라고 내다본 공사가 60원을 적어낸 업체에 떨어지고, 이 업체는 다시 35원에 하도급을 준다는 얘기다.
손 교수는 "안전규정을 지키려면 수백만원짜리 장비를 사고, 하수관 안에서 장비를 운반할 인부도 고용해야 한다"며 "최종 하도급업체에 돌아가는 돈이 기형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하다"고 했다.
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이영섭(58) 교수는 "선진국은 맨홀 공사를 발주할 때 안전규정 준수에 드는 비용까지 공사비에 책정한다"며 "매년 되풀이되는 질식사를 줄이려면 실제로 공사를 수행하는 업체에 적정비용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30/2009063001785.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topheadline&Dep3=top
첫댓글 유독가스는 언젠가 폭발할 위험한 물건입니다. 희생자를 없애기위해서이기도 하나 독소제거에 온 힘을 쏟아야합니다.
옅여지는 애국주의와 지나친 개인이나 집단이기주의 ,경제난, 고물가, 실업난, 좌파 ,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신문사포함 언론매체, 부분 합법화나 강제, 착취 ,신고다발지등등 고려도 없이 지나친 성 매매춘 단속, 여성우월페미즘등등도 이명박 정권엔 유독가스 같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