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이 역사스페셜 시리즈는
KBS에서 방송했던 역사스페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역사스페셜이 종영을 하고,
그 기반으로 하던 책도 이번 7권이 마지막으로 출간되었었다.
시청자의 성원이었던지..
원래 공영방송의 계획의도인지...
역사스페셜은 다시 시작하여 시청자들에게
역사상식과 교양을 듬뿍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역사스페셜을 기반으로 한 책도
서점에서 눈에 잘 진열되어 있는 걸 보았다.
이 책은 그런 최근 방송분이 아닌
예전 방송분을 기반으로 한
역사스페셜 시리즈의 완결편에 해당한다.
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역사스페셜...
비록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1. 온나라가 박물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참여정부 문화재청장을 맡고 있는 유홍준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우리나라는 전국이 박물관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아니 만년의 역사를 가진 유구한 나라다보니
많은 유적유물들이 우리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유홍준의 말처럼 전국이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 말이 절절히 느껴지는 바이다.
하지만 산업발전의 명목으로 문화재보호가 뒷전이고,
훼손되거나 아무렇게나 방치된 문화재의 소식을 접하면
씁쓸하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깍는 그런 행위가
자본주의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쓸쓸하다.
2. 종이로 만든 보물창고
이 책의 부제이다.
고서적이나 고문서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이나 백성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쫓아가는 것이
이번의 중심 주제이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란 것이 있어
종이에 글쓰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일기도 컴퓨터에 쓰고,
책을 읽고난 느낌도 컴퓨터에 쓴다.
이젠 개발괴발의 글씨체도 흠이 아니다.
종이에 쓱쓱 미끄러지는 연필의 느낌을 잊은지 오래다.
오늘은 흰 종이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쓰고 싶다.
3. 순장
상상해도 숨이 막힌다.
자신이 모시고 있던 이가 죽었다고
나도 그의 묘옆에 같이 죽어야 하는가?
옛날 사람들은 저세상을 믿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얼마나 심했을려나.
사후 세계도 지금 세계와 동일하다는 생각으로
생겨난 순장이라는 풍습.
묘지의 유물을 찾아서 순장에 대해 알아본다.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을 같이 묻은 경우도 있고,
일부로 죽인 후 묻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왕이나 족장 등 높은 지위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죽은 경우에도
그 아이를 돌보던 유모도 같이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신라시대에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이런 순장풍습은 사라지게 된다.
그 대신 그 모습을 흙으로 대신 만든 토우를 같이 묻곤 하였다고 한다.
4. 6가야가 아니고 7가야?
옥전이라는 마을에서 고분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 황금칼 용봉문 환두대도도 같이 발견되었다.
이것 하나로 확신할 수 없지만,
옥전에 그 옛날 또다른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옛문헌들을 쫓아가 추측해보면 그것은
또다른 가야 다라국이라 할 수 있었다.
문헌에만 있던 나라가 옥적고분과 환두대도라는 칼로 고증되는 순간이다.
아직 정확한 것이 아니라 추측뿐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가야는 6개국이 아니고 7개국이었나보다 싶다.
우리나라 역사는 정말 미스테리 그 자체이다.
5. 사비성 목간의 31자
1995년 부여에서 대대적인 백제유물 발굴작업이 있었는데,
여기서 백제의 사비성 시대의 모습을 풀어줄 만한 것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목간이었다.
넓직한 나무위에 새겨진 글자 31자였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글씨를 알아볼 수 없지만,
백제의 호적제도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책에서는 이와 함께 당시 대륙까지 영향을 미쳤던 백제의 세력에 대한
설명을 더불어 하고 있다.
6. 무령왕릉의 어금니하나
삼국시대 동틀어서 확인된 유일한 왕릉
바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 당시 너무나 우연히 발견되었기 때문에,
유물에 대한 훼손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무령왕릉에 숱한 이야기 중에
이 책에서는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단 하나의 어금니를 가지고 당시를 고증해보고 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어금니의 주인공은 무령왕의 둘째부인이자 성왕의 어머니의 것으로 추측하였다.
고구려, 백제는 삼국시대의 패배의 역사로,
그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 미비한 것에 또한번 안타까움을 느끼는 바이지만,
그 안타까움 만번하면 무엇하리...
7. 0.3밀리미터의 예술
탑은 원래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처님의 사리 대신 경전을 보관하기도 한다.
그래서 절간에 탑에는 으레 사리나 경전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감은사 동탑에도 마찬가지로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함이 있었다.
그것이 왜 특별하냐면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은 0.3 밀리미터의 크기의 둥근 공모양의 금으로
가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세공업자에게 부탁을 해도
그것보다 정교하지 못했다.
...
이젠 이런 우리 조상들의 능력에 대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예술품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흉내내지 못할 정도임은
이미 석굴암이나 성덕여왕 신종으로 증명이 된 것이 아닌가.
그저 우리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만 있으면 된다.
8. 월정교
이 또한 천 3백전전의 다리치고는 너무 우수하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마찬가지로 놀랄 일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들이 이런 다리쯤이야..
그것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 중국이나 로마에서도 그 시절에 그것만큼 훌륭한 다리들을 만들었어니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면 된다.
통일신라 시대 경주시대의 중심에 월정교라는 다리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9. 견훤의 꿈
전주에 17미터나 되는 거대한 거북바위가 있다.
이것은 의도적인 배치가 엿보이는 것으로,
이정도의 바위를 움직일려면 당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추적해본 결과 후백제의 견훤이 그 주인공이었다.
동서남북의 북을 지키는 현무 거북을 표상한 것으로
백제의 명성을 부흥하려고 했지만,
그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영원한 역사의 제국으로 남고 만다.
10. 강화도의 간척
10년넘게 논란을 불러왔던 새만금 간척사업이 정부의 승리를 끝난 것이
못내 아쉬어 울분을 감추지 못한 것이 얼마전....
10년도 넘게 물태우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지금 우리나라 서해의 환경을 그렇게 파괴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며..
과연 이 사업이 장차 우리나라에 득이 될려나...
...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강화도에 있는 강화평화가 그 옛날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는데, 문득 새만금이 생각나서 그런 것이다.
질적으로 틀린 것이지만 말이다.
당시 강화도 간척사업은 식량보급이라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으니가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문득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넓은 강화평화를 내려다보고 싶다.
11. 우리나라의 미라.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접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미라는 이집트의 미라와 달리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묘지 주변의 땅의 상태가 가장 많이 영향을 주는데,
이 미라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 예로 두창에 걸려 죽은 어느 한 소년 미라를
추적해보고 있다.
12. 조선시대에도 온실이 있었다.
스펀지에도 보내볼만한 내용인가?
조선시대에도 온실이 있었다고 하면 놀랄려나?
하지만, 실제로 왕궁에서 사용하기 위한
온실이 있었다.
한지에 기름을 먹여 햇빛을 받아들이고,
구들을 이용하여 지온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헌에 나와있는 방식으로 KBS에서 온실을 만들어보았다.
현재 농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보다 훨씬 우수함이 입증되었다.
이젠 이런 우수함에 놀라지 않으리...^^
13. 조선시대 책은 어떻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고서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집중해부해 보았다.
책만드는 것의 핵심은 종이못에 있다고 한다.
종이못은 책이 쉽게 날라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을 만든 이후에도 세세한 교정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활자 뿐만아니라 첨가된 그림에 대한 수정까지
아주 자세한 교정작업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14. 승정원일기
승정원이란 말도 들어봤지...
뭐하던 곳이었더라... 생각해보는 순간,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준다.
왕의 비서관역할을 하면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기록된 것이 바로 <승정원일기>라고 한다.
그 양이 조선왕조실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고 한다.
지금 학계에서는 <승정원일기>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일이 무려 10년이나 넘게 걸린다고 하는데...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하고, 일부는 인터넷에서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http://sjw.history.go.kr/
에 가면 조선시대 왕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이 승정원 일기는 조선시대 정치가 그만큼 투명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 승정원일기는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기록유산이다.
15. 시대의 아픔이 만들어낸 자산어보
정약용의 둘째형 정약전.
정약용과 정약전은 정조 사후 순조가 즉위한 이후,
당파싸움의 희생량으로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간다.
흑산도가 유배간 정약전이 그곳에서 쓴 책이 <자산어보>이다.
자(玆)는 까만색을 뜻할때는 '현'으로 읽는 것이 맞는다 하여
<현산어보>라고도 부른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어류 백과사전의 기초가 될만큼
자세한 물고기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어쩔수 없이 희생량이 된 그는
그런 지저분한 시대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과 흑산도 주민들과 동화하여
이런 걸작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호연지기는 본받을 만하다.
16. 거래장부를 통한 조선시대상
3백년동안 이어온 용하기란 계모임의
계장부를 통해 조선시대는 신용사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극히 이런 계장부 하나를 가지고,
조선사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지방관리들의 매관매직 등 온갖 비리를 알고 있는데
그 습관이 지금까지 전해져 공천비리가 생기고...
쩝... 신용사회라니..
17. 청계천논쟁, 6백전에도...
이 책에서는 당시 청계천에 다리를 세우는 등
작업내용을 옛문헌등을 통해 알려준다.
....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될 때는
아직 청계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던 시절이었다.
현 서울시장의 가장 큰 이벤트 중에 하나인 청계천 복구 사업.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사업을 칭찬하지만,
난 아직도 그 사업이 정말 옳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종로바닥으로 가끔 가더라도..
물이 흐르고, 깨끗해진 청계천을 아직 한번도 가보질 않았다.
그곳에 가면, 이전 청계천 상가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던 그 사람들의
한맺힌 시위가 생각날 것 같아서 말이다.
그 사람들..
지금 어디서 어떤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을려나..
서울 시내 한복판,
많은 서울시민들을 즐겹게 해주는 휴식처인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물이 아니라..
그들의 눈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