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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5,3.1) 말씀 /요한 20:31
돈 보다 소중한 것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 20:31)
지난 토요일 신문 일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돈벼락 가족의 잇단 비극’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에서 일가족 총기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서 똑 같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족 3명과 경찰 1명이 숨졌습니다. 27일 화성시의 비극은 세종시 사건과 빼 닮은 사건으로 두 사건 모두 피의자가 돈 문제로 갈등하던 가족을 엽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세종시’와 ‘남양뉴타운’이란 대규모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보상금이 지급됐는데 돈 벼락을 맞은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동생(74)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고령의 전모(86)씨인데 남양동 일대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 주민의 이야기로는 전씨 가족이 뉴타운 개발로 90억원을 벌었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70억원대 토지 보상금을 받았고 다른 재산까지 합쳐 100억원대 자산가였다”고 했습니다.
형은 부모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살았고 동생은 일찍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지키며 살아온 토지가 개발 보상금으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동생은 이 시기를 전후해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형 때문에 죽었고, 형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자신에겐 하나도 안 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형에게 지속적으로 재산 분할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동생 전씨는 이날 에쿠스를 몰고 와 범행했습니다. 차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재산 문제가 얽힌 가정불화가 언급돼 있었고 평소 술을 먹고 형을 찾아와 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파출소에서 엽총을 찾아와서 형과 형수를 눈앞에서 조준사격으로 살해했습니다. 세종시 강씨 사건도 똑같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돈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강한 욕심, 그리고 소외감과 박탈감, 그로부터 형성된 깊은 상처와 분노가 뒤섞여 결국 ‘너 죽고 나 죽자’는 극단적 분풀이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전씨 형제는 5남2녀 중 장남과 여섯째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7남매 중 5명은 세상을 떠나고 2명만 남아 있었는데 그 2명이 이번에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재산은 또 누구한데 갈까요?
돈이 무엇이길래? 여러분 돈이 무엇입니까? 돈이 사용을 잘 하면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은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다 사먹을 수 있지요, 사고 싶은 집, 사고 싶은 차 다 살 수 있지요, 얼마던지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정말 돈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이란 칼과 같이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쓰면 사람을 살릴 수 도 있고, 정말 유익하게 쓰일 수 있지만, 잘 못 쓰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자기를 파멸로 이끌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잘 못 돈벼락 맞으면 죽습니다. 성경 디모데[ 전서 6:7-10 절에 보면 돈에 대해서 교훈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가 본래 세상에 나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있으면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먹고 입고만 사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구상 전체 식량 문제를 실상 제데로 먹지도 하며 사는 사라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현재 세계 70억 인구 중에 매년 3,000만명이 먹지 못해서 아사하며, 8억의 인구가 하루 한끼 식사로 연명하고 있고, 무려 10억의 인구가 1일 1달러 미만으로 생계유지하고 있다고 UN 미래보고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구 절 반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루 세끼만 먹고 살아도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다 해결 되고, 에쿠스를 타고 엽총으로 사쟝하던 사람이 남을 죽이고 자기도 비관하여 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탐욕과 욕심 때문입니다. 결과 성경 말씀처럼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고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되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 합니다. 여러분,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필요의 대상입니다. 불편 할 때 필요의 대상이지 사랑이나 목적이 아닙니다. 돈이 사랑의 대상이 되면 거기서부터 온갖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전에 돈이 없을 때는 도둑 이래봐야 빵을 흠치거나 남의 집 라디오 tv 등 이런 물건을 흠쳤는데 지금은 돈이 많아지다 보니 이 사람 저사람 순식간에 도둑이 되고, 사기꾼이 됩니다. 그리고 보험금이 많다보니 근친 살해 사건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욕심에 빠지면 이렇게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서 저자는 30:7-9 절에서 이렇게 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하나님을 잘 알고 믿고 있었지만 이런 돈이나 재물의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알고 기도한 것입니다. 믿는다고 허탄과 거짓말을 안 하겠습니까? 믿는다고 욕심이 없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배고프면 도적질 하고 싶고, 좋은 것이 눈에 보이면 탐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도 얼마던지 그렇게 될 수 있으니 그것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만 있어도 족하니 정직한 영을 주사 진실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극적인 자세로는 우리가 세상이 주는 유혹, 돈이 주는 유혹을 이기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돈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또 정말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해야 할 것을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악을 소극적으로 피하지 말고 적극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적극적인 자세로 돈 보다 소중한 것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 아닙니까! 아무리 돈 벼락 맞으면 무엇합니까? 생명을 잃으면 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자 형 동생에게 좀 나눠주면 안 됩니까? 80 ,100억이나 갖고 다 어디 씁니까? 결국 욕심 때문에 생명을 잃었으니 돈이 무슨 소용 이겠습니까? 그리고 동생도 마찬가지로 생명을 죽이고 자기 생명마저 잃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싸울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결론을 맺습니까? 돈이 좋다는 일면만 알았지만 그 해악을 알지 못하고, 그보다 더 생명이 소중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눅 12:17-20)에 보면 하나님을 안 믿는 욕심 많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무나 사업이 잘 되자 그는 창고를 늘려 재물을 가득 채우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나님은 이런 영혼에게 이렇게 말 합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떤 사업가가 금괴를 숨겨두고 아무 말 안하고 죽었습니다. 한 인테리 업자가 벽장 수리하다가 금괴 발견했는데 욕심이 나서 흠친 것입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대도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열대 지방에 가면 원숭이 들이 있습니다. 원숭이 잡는 재미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아구가 좁은 병 안에 맛있는 바나나를 넣어 놓고 나무에 붙들어 매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살금살금 다가 와서 병에 손을 넣고 바나라를 움켜 잡습니다. 그 때 쫗아가서 몽둥이로 때려 잡으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원숭이가 바나나를 손에 놓으면 살지만 미련해서 바나나를 끝까지 움켜 잡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인생을 일만달란트 빚 진자라고 하시면서 그 빚을 탕감해주신 것을 비유로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일만 달란트가 얼마인가 하면 우리나라 돈을 환산해 6조원입니다. 6조원이면 계산이 잘 안됩니다. 지난 번 tv에 숨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최소 부피 안전을 위해서 금을 사서 숨기거나 또 5만원 지폐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5만원 권을 007 가방에 담으면 한 개에 1억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6조원이면 007가방 1만개입니다. 그에 비하면 100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돈을 줘도 실제로 죽은 생명 살리지 못합니다. 이런 생명의 가치를 안다면 어떻게 살인 사건이 일어났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무엇에 관심을 갖고 또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야 마땅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우리 생명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직접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 사랑하셨지만 특별히 사람을 사랑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 땅 푸른 식물, 새, 물고기, 동물들을 다 만드시고 나서 특별히 사람을 만드실 때는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성경은 기록 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그래서 창세기 9:4-6을 보면 하나님이 노아 홍수 이후에 식물이 부족한 인간을 위해서 동물도 먹도록 하락하시지만 생명을 피 채 먹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고 살인을 금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존재로 사람은 영혼의 존재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적 존재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4-6)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을 때 멸망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생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셨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럴만한 가치,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 고양이 소 돼지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런 짐승은 이 세상 살이 순간으로 그 칩니다. 영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승들에 대한 구원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영원의 존재로서 구원의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죽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 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성경에 바로 이런 이야기가 다 기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 인지, 사람이 어떤 가치의 존재 인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지...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20:3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전 세계에 성경을 배포하는 국제기드온 협회 헨더슨 총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10년 안에 결실ㅇ르 보려거든 나무를 심고, 50년 안에 결실을 보려면 사람을 키우십시오. 그러나 영원의 결실을 맥고 싶다면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구원의 길, 의의 길, 악의 유혹을 이기는 길, 사랑과 봉사의 길 등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점점 물질 만능 주의, 돈의 유혹의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탐욕과 유혹에 빠져들고 자기를 해치며 침륜에 빠집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이런 시험에 많이 듭니다. 돈을 대박으로 많이l 벌 수 있다는 곳에 가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80-90%가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생명 가치와 생명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성경을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도 날마다 영혼이 소생하고 또 우리로 인해서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김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