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영국 음악계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우는 그녀.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를리가 없을 텐데요.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난 최고의 여성 첼리스트이자 천재적인 음악가 ‘자클린 뒤 프레’가 바로 그녀입니다. 영화처럼 비극적이고 파란 만장한 일들은 정말 TV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녀에게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하늘도 시기한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5살의 어린 나이에 런던 첼로스쿨에 입학하면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한 자클린 뒤프레는 신동이라 불리며 남다른 천재성을 나타내었고 20세에 이르러 그녀는 유럽 음악계를 제패하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첼로는 첼로 현을 끊을 듯 박력이 넘치면서도 첼로의 음색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애절하고 감성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연주한 영상이 있어 소개드리립니다. 앳된 모습의 아름다운 자클린 뒤 프레가 역동적으로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무언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간주곡, 생상의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 세 곡을 들어보세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였지만 그 당시 신예 지휘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한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은 자클린 뒤 프레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뛰어난 음악성과 표현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자클린 뒤 프레는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유대교로 개종하면서까지 다니엘 바렌보임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만난 지 6개월만에 이스라엘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음악가의 결혼소식은 당대 최고의 이슈가 되었고 음악가들의 러브스토리 1순위에 꼽히는 ‘슈만과 클라라’에 비유되며 재능 있는 두 음악가의 만남이라는 찬사와 함께 세기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지요. 실제로 결혼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연주를 다니기도 하고, 따로 연주를 하기도 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나갔고, 레퍼토리를 넓히며 음악성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녀의 환한 웃음을 더욱 자주 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때였고요.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열정이 지나쳤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도저히 여자의 몸으로는 소화해낼 수 없는 스케쥴로 자클린 뒤 프레를 강압적으로 몰아부쳤고, 이를 묵묵히 감당해내며 혹사당하던 그녀는 결국,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다발성 경화증 (Multiple Sclerosis)에 걸리게 됩니다.
악보가 잘 보이지 않으며, 자주 쓰러지기도 했던 자클린 뒤 프레. 병이 점점 악화되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연주를 끝까지 놓지 않았는데요. 그녀의 이런 상황을 모르던 음악 평론가들은 그녀가 인기와 명성이 높아지더니 거만해져 연주도 대충한다며 악평을 하기도 했지요. 이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꿋꿋하게 참아내며 끝까지 첼로를 놓지 않은 그녀였지만, 결국에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음악 생활을 중단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자클린 뒤 프레는, 언니에게 종종 자신이 나중에 온 몸이 마비되어 음악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본인은 이렇게 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 당시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글썽여지지만, 아마도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병보다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고 믿었던 남편의 배신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온몸이 굳어져 가는 그녀를 곁에서 간호하며 위로해주어도 모자랄 상황에, 다니엘 바렌보임은 더 이상 연주를 하지 못하는 부인을 떠나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피아니스트였던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동거를 하며 두 아이까지 낳았는데요. 이런 사실을 전혀 알리지도 않고 오히려 자클린 뒤 프레에게 이혼을 요구하였으니, 자클린 뒤 프레의 외로움과 절망감은 그녀를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갔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의 무관심 속에서 결국 자클린 뒤 프레는 42세의 매우 젊은 나이에 쓸쓸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녀가 죽고 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동거하던 엘레나 바쉬키로바와 재혼을 하였고 자클린 뒤 프레의 무덤조차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씁쓸하기도 합니다. 한 때 너무나 사랑하며 서로의 음악성에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최고의 호흡을 맞춘다 .
첫댓글 꾹꾹 참아왔던 슬픔과 우울함, 불안, 분노들을 터뜨려 얼마간을 눈물 흘리며 울고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속이 시원해지듯이, 지금 느끼고 있는 우울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매진하기 위하여 슬픈 음악을 듣는다면 적절한 치유책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