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10월10일 동문산악회에서 경주 남산을 문화유적답사란 타이틀을 달고 다녀왔다.
일명 노천 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 남산,1000년전 우리조상들이 새기고 다듬어 놓은
역사 유물들을 보고 그 매력에 정말 감동하고야 만 뜻 깊은 하루였다.
글솜씨가 없어서 졸필이지만 사진의 설명내용은 당일 초빙한 도우미의 말을 세심하게
듣고 옮긴 것이다.
배리삼능은 시내에 있는 무덤들과는 달리 무덤내부 벽면이 돌담이 아닌 흙으로 되어 있고
더욱이 변두리라서 관리가 부실하여 도굴이 되었다고 한다.주위엔 많은 무덤들이 있은 흔적이 있는데
현재는 3개만 남아 남아 있고 맨앞은 신라8대 아달라왕,가운데는 53대 신덕왕릉,
맨뒤엔 54대 경명왕능이라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후에 고고학자들이 개발에 들어 갔을때는 도굴의 흔적으로 금복주병이 나왔다고 함.
그래서 당일 삼릉앞 주점에서 금복주 몇병 마시고 왔슴.
석조여래좌상;삼릉을 따라 300m쯤 위에 위치 해 있는데 발아래 계곡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여
현재위치에 놓음.얼굴이 없어진 상태이고 8세기 중엽 신라의 위풍을 보여주는 당당함이
엿보인다. 가사 끈을 매듭지어 놓은 것이 너무도 섬세하여 우리매듭의 역사를
고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마애과음보살입상;석불좌상 30여m왼쪽위에 있음 , 선홍색의 입술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발아래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는듯.이 역시도 나비날개 매듭의 가사를 입고 있다.
선각육존불;왼쪽은 아미타 3존불은 내세상의 부처이고 오른쪽 석모가모니 3존불은
현실세계의 부처라고 한다.. 부처상이 상하지 않도록 바위 윗쪽에 물꼬를 만들어서 물줄기를 옆으로 바꿔 놓은 것이 특징이
고 맨 왼쪽부처 아래에 연꽃받침이 없는 미완성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발아래에 가려
진 바위를 손상하지 않을려고 미완성이로 남겨둔 것을 보면 당시에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둔
조각가들의 자연에 대한 배려의 모습을 엿볼수가 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자연을 훼손 했다고 농섞인 한마디씩을 하고 지나가는데
신라인들은 이렇게 말한다."바위속에 갇힌 부처를 밖으로 드러 내였을 뿐이라고.."
현실세계을 인도할 아미타 3존불 ; 현실에서의 삶을 비는곳
마애선각여래좌상;선각육존불위 200m쯤에 위치한 우아하고 여성스럽고 소백한 차림의
부처 이며 선각여래좌상옆에는 부부바위가 있어서
부부의 행복을 비는 곳
석조여래좌상(보물666호);얼굴의 손상이 심해 아무렇게나 수리되어 있어도 뒷받침(광배라고함) 미적인 조화
등 전체적으로 잘다듬어진 부처.보물로 지정되어 있음 .72년에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광배가 산산조각이 나서 아쉬움을 더해 준다.
조만간에 보수가 있을예정이라고함. (잘 생긴 아줌마는 초빙한 도우미 아줌마임)
상사바위 ; 예순살 된 노인이 8살(?)난 어린아이를 사랑해서 자살을 하고 아이의 꿈에 뱀으로
나타나서 아이의 목을 감고 내가 너를 사랑했는데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서 바위아래
떨어져 죽었노라고 말을 했는데 다음날 이 아이도 같은 장소에서 뛰어내려서
저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음.
이 바위 뒤에는 산신당이 있어서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이 많이 찾아 온다고 함.
또한 바위 뒤에는 주위 밭에서 찾아낸 작은 보살상이 하나 세워져 았슴.
금오산 정상 ; 여기까지가 일명 냉골이라 부르는 곳의 유적이고 다음 부터는 용잠골이라 부르는
곳으로 하산을 하면서 조선초기에 설잠스님(김시습)에 의해 쓰여졌다는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집필지이고 배경이 되었다는 " 용잠사지" 유적을 살펴 볼까 한다.
금오산 아래에서 지은 소설이기에 "금오신화"가 아닌가 사료됨
용잠사지 삼층석탑(보물186호) ; 신라후기의 탑으로 보임, 탑지붕밑의 옥개받침이 4개로 불국사의 5개와 비교.
조선시대초기엔 3개라고 함. 그리고 탑 받침(기단)이 보통은 2계단인데 1계단만 만들고
1개 계단은해발200m인 자연석 바위 전체를 이용하였다.그래서 세상에서 가장높은 탑이라는 역설이 있슴.
용잠사 삼륜대좌불 : 당시 용잠사 주지 대현스님이 기도하면서 탑주위를 돌면 불상도 스님을
따라 목을 돌렸다는 글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고 한다.
특이하게 세개의 둥근단상위에 부처님이 모셔졌다고 삼륜대좌불인듯 하다.
이불상 동쪽6~7m 전방에
마애여래좌상(보물913호)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삼륜대좌불 역시 목이 없다. 이 아래에도 또 하나의 석불좌상이 목이 없는 상태로 있는데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 일제시대때 손상이 된것이 아닌가 의심을 했는데 이 모두가 조선초기
이성계의 "숭유억불 정책"의 유산으로 마음대로 굴려떨어지는 바람에 불상중에 제일
약한 목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한말씀 더 덧붙이자면 남산에는 보물13점 사적13개소
그리고 왕릉13기 절터147개소,불상118기 등 많은 유물이 있어서 불국사,석굴암과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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