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으로 수학을 정복한다.(2)
교과서부터 바꿔라
교사들은 새로운 접근과 시도에 대해 학부모들이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험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사라졌고 서울과 인천
지역의 중학생들이 연합고사 없이 내신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이들과 교사 모두 비교적
자유로워진 셈이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교의 반응이 호의적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행평가를 이용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는 부담을,
학생들은 일정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탓”이라고 남호연 교사는 말한다.
“현장학습이나 실험을 병행하는 수행평가에는 보통 2∼3주가 소요됩니다. 보통 현장학습, 자료 분석,
보고서 작성은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하고 채점 기준 발표, 주제 토론, 점수 발표와 이견 해결 등에
필요한 시간은 정규 수업 시간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도저히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결국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시간을 줄이게 되는데요. 교과서 분량이 많고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교과서를 다 풀어주지 못하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서 밀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요.”
또한 투자한 시간에 비해 과제를 열심히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평가 점수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도 개운하지 않다. 보통 10∼15점 하는 수행 평가 중 7∼8점은 기본 점수다. 2∼3주의
시간을 투자해 1∼2문제에 해당하는 점수를 얻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배점을 늘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공정성 때문이다. 아이들이 계획대로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지, 역할 분담이나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제대로 파악하려면 교사는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진행 상황을 잘 알아야 하는데 이 작업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재 및
수업 준비, 수업, 학생 생활 관리, 잡무로 이어지는 하루 일과를 감당하다 보면 과제에 개입할 만한
시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시와 성적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초등학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윤은정 교사(방학초등학교)는
“솔직히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가서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발표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토론식 수업이나
실험을 하다 보면 진도를 따라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그럴 때는 어려운 문제를 부분적으로
생략하고 넘어가는데 개운하지 않지요. 교과서가 대폭 개혁되지 않으면 수업은 변하기 힘들거라고 봅니다.”
고등학교의 수학교육 현장은 더욱 어렵다. 입시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렵고 교과
이외의 부분을 하려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성적의 우열을 가릴 것 없이 공통된 현상이다.
육인선 교사(온수고등학교)는 “교과 이외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거부하지 않아도
미안할 때가 있다”고 한다. 원인은 교과서의 질과 양의 문제, 입시 문제다. 또한 그 중에는 비록 성적은
나쁘지만 진심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사례로 논산의 대건고등학교를 들 수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과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온
대건고등학교에서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고공학습’을 실시한다. 고공학습은 처음 몇 주 동안 진도를
나가지 않고 수학의 흐름, 각 단원의 연계성, 대학의 학문과 수학의 관계 등에 대해 집중 강의하는 수업의
별명으로 학교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고공학습은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이해를 도우며
“수학을 못 해도 사회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수학은 입시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아이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마련됐다.
대건고는 이색적인 방법과 새로운 시도로 교사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학교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목받는다는 것은 이 방법을 수업에 활용하는 학교와 교사가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비추는 것이기도 하다.
수학교육학이 필요하다
90년대 중반 이후 속속 출간되기 시작한 수학·과학 대중서가 1∼2년 사이 스테디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야기가 대부분인 수학 대중서는 수학 밖에서 수학을 다룬다. 수학사만을 다룬 서적이 주종이었던
시작에 비해 요사이는 내용도 다양해졌다. 수학의 여러 개념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설명한 책도 나와
있고 천재 수학자들의 생애를 통해 수학을 접하게 하는 책도 꽤 인기가 있다. 수학 대중서는 수학에
다가서는 새로운 방법의 하나면서 수학이 결코 재미없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수학 대중서가 선보이기 시작하고 수학교육의 새로운 시도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데는 수학교육학 전공자들의 힘이 적지 않았다.
국내에서 수학교육학과에 걸맞는 커리큘럼이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이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80년대 이후
수학교육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거나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이들이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학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느낀 교사들이
대학원에서 수학교육학을 전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학교육은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순수 수학과에서 수학 내용학을 주로 배운다면 수학교육학과에서는 수학교과교육학을 주로 배웁니다.
수학교과교육학이란 쉽게 말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이전에는 수학과와 수학교육학과의 커리큘럼이 거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다릅니다. 아직도 수학을 잘 하면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은 저절로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오해일 뿐입니다.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죠.”
권오남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수학교육과)의 말이다. 백석윤 교수(서울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는
“학습과정에서 흔히 저지르게 되는 오류를 설명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도 수학교육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초등학생의 경우, 분수를 어려워합니다. 특히 분모가 다를 때 더 어려워하는데 특이한 점은 대부분
아이들이 같은 오류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같은 오류를 범한다면 이 오류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수학교육학이란 오류의 원인을 규명하고 오류를 없애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연구하여 방법을 개발해 내는 것입니다.”
7차 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고등학교 교육의 2축은 교육과정과 입시다. 따라서 2가지 중 어느 하나를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그동안 교육과정은 그대로 둔 채 입시제도에만 목을 매왔다. 교사와 교육학자를
포함한 교육전문가들은 “난이도를 낮추고 분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개편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어·영어·수학에 사교육비 지출이 많고 이는 학생들의 이해 수준에 비해
내용이 어려운 점을 감안, 개편해야겠지만 정책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수학의 교과과정을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수학교과의 문제와 파행성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학을 선택과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장에 전면적인 개혁이 어렵다면 인문계열 학생이라도 수학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와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도 ‘IMF 사교육비를 경감을 위한 학교교육
정상화 방안 토론회”(98년)에서 수학교과 내 선택의 폭을 늘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김용운 소장은 “수학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인문계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논리이지 수리논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문과학에 필요한 수학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순수 수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던 교과서를 수학교육학자와 현장 교사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교육학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사 모니터링 제도 등을
도입해 교육과정의 문제를 수렴하고 수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지를 얻고 있다.
교육부는 97년 12월에 발표한 ‘제7차 교육과정’을 통해 수학을 부분적 선택과목으로 개편했다.
수학을 초등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까지 10학년 동안은 국민공통기본과목(이하 기본과목)으로, 고등학교
2∼3학년 동안에는 선택중심교육과정(이하 선택과정)으로 편성,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보다 분량이
30% 가량 적어진 창조적이면서 독창적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와 같은 결정은 그다지 환영받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기본
과목을 배우다 입시가 가까운 2∼3학년에 와서 선택과목을 배우게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교사들은 선택과목이라고는 하지만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선택할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즐거운 수업을 위해
올 7월,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한 우리 나라 대표 전원이 메달을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수학·
화학·물리·생물 등 4개 기초과학 분야의 세계학회가 주최하는 국제과학올림피아드는 각국의 과학
영재들을 대상으로 매년 7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대회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 모두 19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과학영재인 올림피아드 출전 학생들은 부족한 실험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 학기에 서울대 학부
강의를 듣거나 교수의 지도 아래 훈련을 하는 등 대회 출전을 위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작년 7월에는 아시아·태평양수학올림피아드에서 1위를 한 바 있다.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 이렇다 할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다. 영재조기교육의 결실인지, 훈련의
결과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는 듯하다. 평범한 아이들과 비범한 아이들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김용운 소장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학교육은 국민체육과 비슷합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스포츠를 좋아하고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만한
장소가 있어 국민들이 건강한 것이 국민체육이고 건강한 나랍니다. 국민 건강에는 관심이 없고
메달이나 기록갱신만을 목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것은 국민체육이 아니죠. 수학교육도 그래요.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면 공식을 이용할 수 있고 약도(지도)를 그릴 수 있으면 도형과 공간을
배울 능력이 되는 겁니다. 거기에 내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찾아 신고 나올 정도의 집중력만 있으면
누구나 수학을 배울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아이대로, 못 하는 아이는 못 하는
아이대로 수준에 맞게 배우면 되지요. 어때요, 이런데도 수학시간이 즐겁지 않겠어요?”
★★ 신동아 99년 10월호에서 퍼 온 글로 너무 길어 (1),(2)로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