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종교적 논쟁을 자극하고 있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제자 유다의 밀고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된 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다. 기독교적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그 사건은, 영화적 소재로 볼 때는 여러 가지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 새로운 충격을 주기에는 소재의 신선도가 떨어진다. 결말이 주는 기대감도 이미 거두어진 상태다. 그렇다면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왜 이 사건을 지금 다시 영화로 재현하는가,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논란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한 영화인이 성경에 묘사된 2천여년 전의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신앙심의 표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동시대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려는 사회적 발언으로 해석할 것인가, 혹은 종교적 사건을 소재로 영화미학의 완성도에 도전하는 실험적 작업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종교적/사회적/미학적 범주의 어느 방향에서 접근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할리우드의 가장 강력한 파원맨 중 한 사람인 멜 깁슨이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자신의 사재 2천 5백만 달러로 만든 영화제작 방식부터, 이 영화가 종교적 논쟁의 불씨를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에 묘사된 상황을 충실하게 재현하면, 예수의 처형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혐의는 영화 공개와 함께 많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렬한 충격은, 이문렬의 소설 [사람의 아들]이나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처럼 예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아니고, 195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르라게르크 비스트의 [바라바]처럼 그의 죽음이 전해준 복음의 의미를 확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수난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 총독 빌라도와 갈릴리의 헤롯왕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가운데 가해진 예수의 태형씬은, 수난의 출발이다. 나무채찍에서 금속물질이 박힌 가죽채찍으로 도구가 바뀌면서 수난은 더욱 구체화된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온몸이 피에 흥건하게 젖는 채찍질은 엔드류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후려치는 락 사운드보다 훨씬 강렬하다. 이러한 수난사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손바닥과 발에 커다란 못이 박히는 순간 극대화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단순하다. 그러나 강렬하다. 멜 깁슨 감독은 극적 내러티브의 낯익음이 주는 영화적 한계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관통해 나간다. 이 놀라운 힘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수난의 순간을 확장시키기 위해 슬로우 모션이 자주 쓰이고 있고 플래시백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체포 이전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플롯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호소력은 있지만 상식적 재현에 그친 예수역의 짐 카비젤이나 막달라 마리아역의 모니카 벨루치보다 훨씬 더 캐릭터의 맛을 보여주는 배우는, 빌라도역의 흐리스토 나우모브 쇼포브다.
극사실주의야말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논쟁의 중심에 서게 한 핵심 이유다. 배우로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멜 깁슨 감독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여한 [브레이브 하트]의 도입부 전투씬에서도 극사실주의는 이미 시도되고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예수나 바리새인들이 아람어로, 빌라도는 거리의 라틴어로 대사를 하며 당시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비할리우드적 제작방식에서 찾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묘사된 예수의 수난에서 찾아야 한다.
수난사의 참혹한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정성과 폭력성의 시비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쾌락적 요소보다는 사실의 구체적 재현에 기여한다. 멜 깁슨은 예수의 잔혹한 희생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관객들을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게 한다. 그리고 원죄의식과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그 속에서 9.11 테러 이후 고난 받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멜 깁슨의 음모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또다른 음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