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름달 열닷새, 개임.
스승의 날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길가의 청주대학교 학군단 학생들이 아침 훈련에 앞서
병아리를 막 벗어나는 어린 수탉의 첫 울음소리 같은
투박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스승의 은혜’를 듣는 순간
스승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듣게 되는 스승 부재의 시대라는 말이 곳곳에서 실감이 나기도 하지만
묵묵히 스승의 길을 가는 이들이
이 땅 곳곳에 드러나지 않은 채 적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고
사실 ‘저 정도면 스승이라고 해도 되겠다’ 싶은 이들을
적잖이 보곤 했습니다.
내게는 예수라는 큰 스승과, 그의 뒤를 따른 수많은 예수의 제자들
부처라는 큰 스승과, 역시 그 뒤를 따른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계보 있는 제자를 두지 않았던 큰 스승 노자를 비롯하여
살면서 잠시 만났지만 기억 속에 큰 스승으로 남아 있는 세 분
충주에 살고 계시는 김상덕 선생님
서울 어딘가에 살고 계시는 정진홍 선생님과 김경재 선생님
모두 마음 속에 큰 무늬를 이루며 새겨진 분들입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지만
학교에서 스승이라고 할만한 이들을 만난 일은 없습니다.
몸으로 만난 가장 큰 스승은
자주 말하는 내 어린 시절 동네에 살던
남들이 약간 모자란다고 하던 나보다 스무 살 정도 많은
‘떵이’라고 부르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내게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분이고
이후 공부를 하는 동안 책으로 확인한 그분의 가르침들은
그대로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종일 스승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아침에 듣게 되는 양희은 서경석이 진행하는 ‘여성시대’,
낮에 듣게 되는 하미진 김동혁이 진행하는 ‘즐거운오후’
오후에 듣게 되는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라디오시대’
그리고 한 밤중에 듣게 되는 ‘산들’이라는 가수가 진행하는 ‘별이빛나는밤에’
오늘은 희한하게도 이 방송들을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나절은 책을 읽고
차 수리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수리된 차를 찾아서 몰고 나와
낚시를 나가 밤이 되도록 앉아 있다가 돌아온 오늘,
스승의 날이라고 전화 한 통과 문자 한 통을 받았고
그런 전화와 문자 앞에 스스로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어울리면 된다는 것이 평소의 내 소신이니
굳이 스승의 날이 내가 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아닌 듯 합니다.
피곤한 몸으로 저녁 상 받아 놓고 반주 한 잔 곁들이는
가벼운 즐거움
내 안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대의 스승들을
아직은 더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스승의 날이 길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손 모으는 시간
여름이 하루의 시간이 갖는 길이 이상으로 깊어진 오늘
‘여름의 한 복판’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짧지 않은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