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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년문을 열러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출발하기 전날 집으로 오라하여 함께 동숙한 딸과 손주, 손주내 가문은 광주이씨 가문이다. 명문가 후손이다. 조선시대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다. 여행과 관련하여 약속이 있었던 차, 아이가 관심이 있는 천년고도 경주를 선택하여 길을 나섰다. 숙박지는 보문단지에 있는 리조트, 식은 매식을 우선으로 하였다. 카메라 두 대를 챙긴 후 다른 준비물은 최소한으로 챙겼다. 아이를 위한 간식과 생수와 맥주 몇 갠 그리고 갈아 입을 여벌의 옷이 전부가 바로 외손주와 할배의 준비물 전부다. 그리고 동행인 딸과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외할머니 이렇게 4인은, 길을 나섰다. 가는 길은 한국전도를 펼쳐 놓고 대충 가늠해 두었다.
중부고속도로 - 호법 - 영동고속도로 - 내륙고속도로 - 상주, 경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속도는 규정 속도 또는 5- 10 를 뺀 속도로 정해 두었다. 휴식은 한 곳 정도, 그리고 청송을 지나 동해로 가 감포, 문무대왕 능과 감포사지를 먼저 볼까하다 귀경하는 날, 석굴암과 묶어 본 후 구령포에 들러 점심과저녁을 묶어 먹고 포항 - 대구- 상주 - 충주 - 진천- 안성- 경부고속도로 - 봉암 - 인천 - 제3 인천고속도로 - 외곽도로 - 귀가 하는 것으로 차량 동선을 정해 두었다.
긴 시간 하행시간 아이는 잠을 잘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멀미나 큰 장애없이 약 30분 만에 도착했다는 착각을 만들어 주었다. 점심을 먹을 지역은 바로 경주에서 유명한 황리단 안에 있는 식당이었지만 접근해 보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차를 돌려 외곽으로 나가 식당을 찾아가자 앗불사! 월요일이라 대부분 쉬는 날이었다. 결국 주변에 있는 게장 맛집, 새우장 맛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였다. 이 집에서 딸은 부모들과 자신의 집 등에 게장을 나눔하려고 주문하였다. 귀가하는 바로 다음날 도착하도록 다짐해 놓고 식당을 떠났다.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토암산 아래로 몰았다. 불국사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양옆 가로수 단풍이 절정이었다.
불국으로 가는 길 계단끝에 주혁이를 세웠다. 이제부터 신라의 천년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나무 사이를 걸어 나갔다.
신라는 서라벌 평야 여섯 부족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기원전 57년 사로국을 모태로하여 건국된 나라다.
제22대 지중왕 때 신라로 국호를 확정 짓고, 23대 법흥왕 대에 불교를 공인하여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었다.
천년 동안 신라는 동에는 토함산, 남에는 남산, 서쪽에는 선도산에 둘러 싸인 서라벌을 발전시켜 나갔지만 경주가 된 것은 고려시대이다. 이후 동경이니, 계림부, 경주 등등으로 불리다. 1995년에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지금의 경주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서 수준 높은 전통문화와 전설이 깃든 격조 높은 도시인 경주는 신라의 야외박물관 성격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떨어져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참 결속력이 본드 수준이다.
사적 제 502호인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시작되고 혜공왕 10년(774)에 완성되었지만 조선 선조 26년 임란 당시 의병 주둔지로 사용하여 일본군에 의하여 불탔다. 그 후 대웅전 등을 복원하였지만 1969-1973 건립당시 건물터를 발굴조사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안내 게시판 내용을 충실하게 읽은 후 관람및 탐방하도록 손주에게 일러 주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중 느낀 소감이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을 듣고 보충해 주는 시간을 갖어주었다.
바이러스 영향으로 행동반경이 좁아지자 아이의 몸이 많이 불었다. 걱정을 하자, 학교에 제대로 등교를 하면 문제 없단다. 많은 가정들의 고민이다.
불국사가 앉아 있는 토함산은 높이가 745m다. 경주에서 가장 높은산으로 신라인들의 얼이 깃든 영산이며 東岳(동악)이라 부르기도 하였었다. 호국의 진산이기도 한 토함산은 바닷가에서 밀려 오는 안개를 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연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토함산 신라 문화의 진면목을 간직하고 있는 산으로서 불국사를 비롯하여 석굴암 등 여러사찰이 있는 곳이다.
국권을 빼앗긴 후 황폐화 되어가는 불국사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불국사는 삼국통일 후 불교문화가 절정기인 750년 경에 세워졌으며 높은 축대 위에 평지를 조성하고 신라인들의 꿈꾸던 불국을 현실화하여 큰 영웅을 모시는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의 각각 영역을 구분하여 만들어 졌는데 위는 부처님의 공간인 불국토이고 아래는 범부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백운교, 청운교는 모두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33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다리위의 세계가 부처님의 세계이고 그 아래가 바로 범부의 세계라는 의미가 있다.
대웅전은 1765년 중창되었으나 기단석은 신라당시의 석물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다보탑이다. 손주가 이젠 익숙하게 알아서 자기가 자리를 잡고 앉아준다.
다보탑은 사면으로 계단을 설치하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추녀가 가로로 뻗친 사각 기와 집 형식을 취하였다. 연꽃잎 모양의 창문을 팔각정이 세워진 3층이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석가탑은 남성적 기품이 있다면 다보탑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탑이다. 이에반해
석가탑은 무영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위에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들이 단순한 모양으로 크기가 줄어들면서 차곡차곡 쌓아올려 3층을 이룬 탑이다. 통일신라 3층 석탑은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걸작품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석가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국보 제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불교에는 여러 종류의 부처가 존재하듯, 각각의 부처가 사는 세계도 다양하다. 석가모니 부처는 영취산(고대 인도의 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다. 설법하던 장소를 특별히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며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을 교화한 사바세계 불국이다. 중생들에게 무한한 수명과 극락왕생의 길을 제시하는 아미타불은 서방의 극락세계를, 비로자나불은 연화장 세계를 주관하는 부처이다. 통일신라는 화엄사상이 크게 유행해 비로자나 부처를 숭배했다. 화엄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봤다는 연꽃 속의 웅장한 세계, 즉 연화장(불교적 이상세계 중 하나)에서 유래했다. 온갖 꽃(부처의 공덕)으로 장엄한 연화장의 세계가 곧 화엄인 것이다.
관음전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 상승미가 압권이다.
비로전에 대한 설명서를 읽고 있는 손주, 교육효과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불국사의 영역은 크게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등 3개 영역으로 나눈다. 대웅전은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 부처의 사바세계 불국을, 극락전은 아미타경 또는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 부처의 극락세계를, 비로전은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 부처의 연화장 세계를 상징한다. 결국 불국사에는 서로 다른 3가지의 부처가 존재하는 것이다.
불국사 범종각
가을빛이 느릿하게 퍼져 다가 오는 시간, 토함산 그늘 불국사 경내도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숙소로 입실하여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 되어 불국사 문을 나섰다.
할머니가 손주를 찍기를 기다렸다가,
주혁이를 불러 앉으라 했다. 잠시 쉬게할 요량이었다. 그리고 불국사에서의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주차장으로 걸어서 내려 오면서 만난 빈가지에 유일하게 남은 나뭇잎 두 개,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홀로 남는다는 일,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누군가 홀로 남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인지 모른다. 누구로부터 조차도 배웅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최후의 존재성이다. 그러한 시기를 지나려면 담대해야 하고 모든 것에 달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림없는 짓이지만 허공에 대고 후 입 바람을 불어 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떨구고 싶다는 욕심이 부른 일종의 전위행위다.아침나절에 주혁이가 자기가 크면 자기가 모실것이라며 자기가 결혼할 즈음에 몇살이 되시는지 계산하다 스스로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실망감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변화고 있다는 것 까지는 그래도 생존이지만 떨어진다면 바로 사라짐 즉 멸(滅)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운 단풍잎을 찍어두었다.
석양빛이 가족들의 그림자를 길게 남기고 있었다. 가을도 쓸슬하지만 사람의 뒤모습도 보기에 따라 쓸쓸해 보인다. 하루가 곧 넘어갈 것이다. 차를 몰아 보문단지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체크인한 후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후 노트북을 꺼내 자료를 정리하고 잠을 청하였다. 다음날 일정을 되짚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오늘은 가장 일정이 복잡하게 얽힌 날이다.
박물관 견학 - 그리고 각종 영상물 찾아 시청하고 현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야경빛 따라 걸음 투어도 해야하고 일찍출발하고 싶어도 주혁이가 학교수업을 시청각방송 통해 해야하는 날이라 출발이 많이 늦어지는 날이다. 우선 아침부터 리조트식을 단품으로 챙기기로 하였다.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눈에 띠어 다가가 서서 한 해도 얼마남지 않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탄절에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나무 열매다. 호랑가시나무는"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호랑가시나무가 귀하게 대접받는 나무이며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외에 축복을 받는 나무 또는 축복을 주는 나무로 신성시하게 여기는 나무이다.
옛날 로마의 태양을 숭배하는 농신제(農神祭)에서는 호랑가시나무(Holly: 호올리)를 그들의 친구들에게 존경과 좋은 소망의 상징으로 선물을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알려준다.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호랑가시나무로 만든 차가 홍역에 좋다고 믿었으며, 잎으로 만든 쥬스는 황달,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전하며 중국에서는 껍질과 잎이 달린 가지로 즙을 내어 마시면 강장제로서 특히 콩팥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호랑가시나무의 잎의 표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지나칠 정도로 윤이 번쩍 번쩍거린다. 태양의 빛을 반사해가면서 잎에서는 엽록소 활동을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바이러스 영향으로 공공건물을 출입하려면은 통과의례가 생겼다. 체온측정을 하고 손을 세정하는 일이다. 반갑게 방문 인사를 해 주시는 근무자의 환영을 받으며 정문을 넘어 우선 매점으로 가 신라문화에 대하여 소상하게 적힌 책 한권을 선택하여 주혁이에게 선물해 주었다. 보면서 견학을하면 학습에 많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입실하기 전 광장에 서서 박물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조형미의 극치 석조미술에 대하여 자주 야외에서 접하는 이유로 메모성격의 비석과 관련된 내용을 잡아 두었다.
석조미술이란?
아주 오랜 사람들에겐 돌은 강인함과 영원히 유지되는 생명력으로 신성 시 된 물질이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던 무형의 가치였기에 손 쉽게 구하고 친근감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흔한 돌을 이용하여 생존, 생활도구를 만들기 시작하고 선사시대에는 족장들의 무덤인 고인돌을 만들었으며 일상적인 생활과 신앙을 표현하는 그림과 부호등을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던 것이 불교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돌부처를 만들고 탑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돌로 만들었다하여 모든 것이 석조예술이란 말 할 수 는 없다. 단순한 돌의 성격을 뛰어넘어 돌에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냈을 때 비로소 석조 미술품이 되는 것이다. 석탑, 승탑, 탑비, 석등 등이 대표적인 미술품이며 이러한 미술품들은 삼국시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성숙되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절정기를 이루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석굴암, 불국사 다보, 석가탑 등이다.
실내에 입장하면서 다시 한번 더 체크를 받았다. 그리고 주혁이는 정식으로 신라로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주혁이를 연대표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1000년의 역사를 걸었던 왕조는로마와 우리나라 신라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년대별로 살펴 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단박에 불국사가 오래된 절이 아니고 더 앞세 세워진 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황룡사, 분황사 등이 그 절이었다. 박물관 관람이 끝나면 그리로 갈 것이다.
때로는 엄마가 스승이 되어주고, 주혁이는 자신이 배운 것이 나오면 스스로 설명하려고 하며 박물관 견학을 즐거워 하였다.
할머니 설명도 조용히 청취하고~~
청동기 문화관에선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견학에 열중했다.
특히 금관에 대해 알고 싶어하여 간추려 설명해 주고~~
아쉽게도 일 관만 열어 나머지 관은 차후로 견학하는 시간을 갖어야 하였다. 1관을 뺀 나머지 관은 지금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첫댓글 손주가 많이 컸네요~^
할아버지와 좋은 추억 되었네요
역사의 현장 할아버지 설명 들으며
기억에 남을 여행~*
보기에 좋습니다~*
그렇지요. 영한이도 많이 컸지요. 의젓해 지고~~ 그만큼 우린 늙어간다는 증거죠.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