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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무님 설법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부터는 내가 어떻게 수행을 할것인가가 나와있습니다. 지난주까지의 내용은 일원상의 진리적인 부분에 관한 내용입니다. 진리의 대소유무 부분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진리라 하는 것은 언어가 끊어져버린 입정의 자리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 불교에서 부처님 하는 것이 이름을 붙인 것이지. 어떠한 내용이 있을것 아니냐. 일원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끊어진 자리이다. 왜 언어가 끊어졌어요? 일원이라고 하는 것은 태초부터 있었어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기독교에서는 그러죠. 같은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은 언어 이전자리. 우주시작이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마음으로 이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우리 마음 실상도 언어도단입니다. 마음이라고 이름 붙였으니까 마음이지 마음도 언어도단입니다. 누가 설명해보세요.
분명히 우리 마음은 저의 목소리를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어디 있느냐. 보통 사람은 가슴 어딘가에. 태어날 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다면 크기가 있을것이고 그럽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어서 생긴적도 없습니다. 분명히 있지만 실체는 없습니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이 미묘한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합니다.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 유무 초월의 생사문인 바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다. 보통 사람은 무면 무고 유면 유. 상대적인것을 말하죠. 변화가 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유무를 초월하는 자리. 그 자리를 알고 그 자리를 놓지 않고 유무를 활용해서 쓰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를 초월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상심이 있다. 지난 연말에도 해가 언제 뜰 때 오늘부터는 연말이고 내일부터는 새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냥 붙여놓은 것이죠. 연말연초를 초월한 마음에서 연말연초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짓꺼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면도를 가고 밤을 세고 그럽니다. 수많은 경계를 당하지만 그 경계를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있는 것이 전부다. 혹은 없어지면 허무하다. 이 둘을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면을 다 활용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이런 사람은 어때요? 시험에 붙든 떨어지든. 진급을 하든 안 하든. 그 정체는 여여해. 유무를 초월한 것이여. 여기에 바탕해서 돈도 있다가도 없는거고 그럽니다. 그래야지 나중에 은생어해 해생어은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일원은 사은의 본원이다 이겁니다. 한 기운이 있는데 그것은 원기요. 태화다 이겁니다. 이것을 대종사님은 은혜다. 도다. 그러셨습니다. 온자리도 그 자리요. 갈자리도 그 자리입니다. 사은속에서 나와서 사은속으로 가는 것입니다. 봄이 오게 하고 여름이 오게 하는 그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이름 붙였으니까 하나님인 것입니다.
#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중생은 짐승을 말합니다. 그 성품입니다. 우리가 삼학을 해도 그 성품을 가지고 연구하고 지키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이 다 소자리로는 다릅니다. 인격적으로도 다르고 영향도 다릅니다. 마음씀씀이는 다르지만 그 마음 이전의 정신. 정신 이전자리인 성품은 같다 이겁니다. 얼마나 좋아요. 같다고 하니까. 우리가 미운 사람한테 너 이영애 닮았어. 하면 좋잖아요. 성품이 같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안 좋아요? 나는 제불조사가 별로다?
여기까지를 진리의 대자리에대한 설명입니다. 본래 근원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 능이성무상하고 능이성유상하여
~ 능히 써 항상 있다. 형상 없는 마음도 변하는데 그 이전자리인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불생불명이라. 없는 자리, 변하지 않는 자리로 볼 것 같으면, 성품이라는 것은 상주불멸이여. 항상 멸하지 않는다. 이것을 불사약이라 이겁니다. 옛날 진시황과 백제 의자왕이 불사약 구하겠다고 했는데, 육신의 불사약의 구하는 그런 미련한 놈들이 임금을 했으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이 들었거나 안 들었거나 태어났거나 아니거나 여여자연한 것입니다.
# 무상으로 보면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로 사생은 육도를 따라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우주는 어떻게 변하는가. 무상이라는 것은 변한다 이말입니다. 우리가 무상자리를 알아야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건강 명예 부귀 재산 이런 것들이 영원할것으로 착각하고 있죠. 우리가 미리연마를 해도 무상에 바탕해서 미리연마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육쌍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잔머리만 굴리게 되어있습니다. 시간돈을 투자해도 무상에 바탕해서 만나고 돈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지가 어디 합격하고 돈좀있고 해도 무상이거든요. 모든 있는 것은 무상입니다.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돌아서 무상이고, 만물은 생로병사로 무상입니다. 여기에 바탕에서 원불교 신앙생활을 하고, 과학도학도 여기에 바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이 무상의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만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한방맞습니다. 장애를 당했다던가 부도를 당했다던가 주변에 누가 죽는다던가 그럽니다. 그러면 자살하겠다고 그럽니다. 무상에 바탕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생의세, 성불제중이라는 서원을 향해서 무상을 바탕한 재색명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어떻게 살아요? 보이는 것만 보고 그럽니다. 자기 잘나서 사는 줄 압니다. 부모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천지가 배푼 은혜도 모르고 각종 공도자들의 은혜도 모르고 그럽니다. 대통령 너는 대통령이니까 당연히 밤새면서 해야되고 그럽니다.
크게 멀리 보는 사람은 계획을 잡아도 이렇게 잡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겨우 잡는다는 것이 지 취미생활이나 한다고 하고 시험 합격해서 어디 놀러간다고 하고 그럽니다. 그것은 축생과도 똑같은 것입니다. 짐승들도 다 똑같습니다. 새끼 위해서 살고 그럽니다. 사람 몸뚱아리 받아가지고 겨우 재밌게만 살려고 하고, 죽을 지도 모르고 죽을 때 되니까 벌벌떨고 그럽니다. 금방 죽거든요.
올챙이 법문 아시죠. 비가 와서 웅덩이가 생겨서 그 웅덩이에 올챙이가 잘 돌아다니면서 삽니다. 곧 그 물이 마르면 죽을 것인데 그것을 모른다고 대종사님이 그러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누구 죽었다고 장례식장에 가서 눈물 흘리면서 그럽니다. 곧 자기도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나도 너같은 생각 한 적이 있다”라는 비문이 있기도 합니다.
오늘 삼성의료원에 갔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의 교도 이십니다. 아들은 잠실교당 교도 회장이요 딸은 어쩌고 저쩌고. 가보니까 교무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인은 출가위입니다. 똑같이 죽는데, 어떤 사람은 초라하게 가고. 어떤 사람은 외롭지 않게 갑니다. 자식 농사는 어떻게 지었느냐. 인연은 어떻게 지었느냐에 따라 그럽니다. 장례식장에서 외로우면 그 영혼은 어떻겠습니까? 똑같이 외롭습니다.
사생은 심신작용을 따라 진급을 합니다. 심신작용의 자유는 자기한테 있습니다. 신구의 삼업입니다. 그것을 따라 그대로 육도로 변화를 시킵니다. 누가? 법신불사은님이 그렇게 합니다.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이생에도 진강급이 있습니다.
* 주산종사 감상문
나눠드린 자료 봅시다. 뒷장보세요.
주산종사님께서 감상문을 쓰신 것입니다.
승급인은 마음씨가 곱고 순진해. 몸이 부지런하고 원기가 있어. 남을 위하고 섬기는 것을 자기의 천직으로 안다. 이기주의는 멸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가 자기를 향해 도는지 착각합니다. 자기 주위 사람들도 자기가 이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합니다. 이세상 어떠한 대상도 내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묻기를 즐겨하며. 이것만 잘 실천해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잘 살 수 있습니다. 배울라고 할 적에 온갖 핑계가 다 나오죠. 교무님 오늘 화요공부방 갈라고 했는데 감기가 왔어요. 친구가 오늘 휴가 나왔어요. 물으라고 하면 또 자존심 상하죠? 아는척하고 앉아있어야 하죠?
좌산 종법사님은 시자시절에 정산종사님을 모시고 있었어요. 하도 질문을 많이 하니까 옆의 동지가 하도 성질나서 ‘니가 전세냈냐’ 그럽니다. 하도 질문을 많이 하니까요. 묻지 않고 어떻게 자기가 스승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알아지겠습니까? 대종사님 당대에 법회볼 때 항상 법의문답 시간이 있었습니다.
적은 일에도 충실하고 성의가 있습니다.
건성건성 한 사람은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가 무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50미터 미인입니다.
가까이 두고 같이 일해보면 환장합니다.
그리고 악의악식에 험한 거처에도 능히 감내한다...
강급인
그 성질이 죄벽하고 거만하며, 사지가 나태하고 무기력하고
남에게 위함받는 것을 기득의 권익같이 생각하며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고
못났어도 잘난 체하고
항상 외형의 수식에 여념이 없고 큰일도 적다 하여 만홀이 히며
고량진미, 금의사창에 불만을 느낀다.
괴팍한 사람이 자신은 개성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거만한 사람이 이정도 자존심이 있어야 하냐고 그러죠. 착각입니다. 나태합니다. 아쉬우면 너가 우물파라 이런 식입니다.
부모님은 나를 낳으니까 당연히 설거지도 해주고 용돈도 많이 줘야지 그럽니다. 사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됩니다. 길을 가다가도 더러운 것 있으면 치우고 그럽니다. 목욕탕에 가서 물도 잠그고 가로등도 끄고 그럽니다.
질문이 없는 것이 아는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을 가봤더니 잘살고 있는데에서는 여자들이 별로 안 꾸밉니다. 러시아 갔더니 얼마나 여자들이 잘 꾸미고 다니던지. 실지로는 가난한데 말입니다.
없으니까 있는척 하니라고 얼마나 애써. 부동산에서도 그럽니다. 각그랜저 타고 잠바 입고온 할아버지 이런 사람이 부자라고 합니다. 진짜 돈 많거든요. 꾸밀것이 뭐가 있어요.
성불제중 그 같은것이 뭐. 법회출석. 그같으거 뭐. 빠질 수도 있지 그럽니다.
#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진급 강급은 결국은 내가 심신 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 몸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 안에서 진강급이 있고 육도를 할 때에도 진강급이 있습니다. 똑같이 사람몸을 받고 있어도 사람이 아닙니다. 저번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쓰레기 봉투 뒤지고 있습니다. 먹을 것 있는지 없는지. 그거 고양이 새끼랑 똑같이 않습니까. 다음생에 태어날 때 뭐로 태어나겠습니까? 수라보를 받는 사람은 누구랬어요. 자살한 사람이죠. 자살한 사람은 한 번 천도재 지내도 징그럽게 천도 안 됩니다. 자살하면 끝이에요? 육도가 계속 변화합니다.
#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은생어해 해생어은. 이것만 알아도 우리가 얼마나 희망이 있습니까? 우리가 왜 가난하고 못생기고 그럽니까? 다 거만해서 그럽니다. 하지 말란것 하고. 부잣집 자식이 뒤지게 놀다가 아버지가 사업이 딱 망하니까 바로 거지 되고 그럽니다. 사업하다 부도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력을 못키워서 그럽니다. 돼지도 때되면 먹을 것 줍니다.
#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이렇게 무량세계를 전개했다.
그래서 무상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변불변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진리가 이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우리는 누구에요? 나다. 나! 어리석은 중생은. 그것입니다. 어리석은 나는. 이말입니다. 앞에서는 일원은 부처님 성품자리라고 해놓고 여기서는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왜 왔다갔다 대종사님이 합니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따로 계시고.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죠? 같은 존재라고 하죠. 기독교의 모든 예배의식을 보면, 거의 죄의식을 사하기 위한 기도요. 울고불고 기도하는 것들이 그런 죄사함을 간절히 비는 것입니다. 원불교에도 있습니다. 참회문도 있고, 여기도 그것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현실을 살아보면 어떻습니까? 집에 가면 어느새 성질 팍 내고 있고
어느새 아침에 일어나면 좋겠다마는 나는 허리도 아프고 나는 직업상 어쩔 수 없고. 한량없이 용서해주는 자기자신 이지 않습니까? 왜 중생이라고 했어요? 성품은 일원과 같은 존재요. 때로 내가 삼학팔조 등을 실천할때는 정화신불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편화신불입니다. 내가 왜 중생인가? 한가지씩 이야기해보시죠. 게으르니까. 또? 괴팍해서. 성질 더러운가보네. 좋을때는 좋은데? 자기가 키우는 개 고양이는 그렇게 이뻐하면서 지나가다가 누가 스치면 성질내버리고 개보다도 못하게 취급하고 그러죠?
“왜 어리석은 중생인가”
1. 자기가 부처인줄을 모르니까 어리석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따로 법당에 있는 것이고 나같은 것은 중생이다라는 생각이 어리석은거 아니냐. 여기서 우리라고 했다는 것은 대종사님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2. 육도윤회를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죠. 그래서 이생에 지 마음껏 살아보세요 한번. 이생에도 참 처참하고 갈수록 곤란하겠지만 다음생에 어떻게 보장받겠어요. 영생과 육도윤회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이겁니다.
3. 소소영영한 인과보응의 이치가 있는것을 아느냐.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대체적인 분류로 볼때는 마음이 거칠어지고 현상만 보고 살다가. 그럽니다. 대종사님을 여러분이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육도를 알겠으며 영생을 알 것이며 자신이 부처임을 알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왜 법회볼 생각을 하겠으며. 일요일에 푹 쉬지 뭐하게 교당가느냐 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겟씁니까?
#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는 것은 진리를 체받는 것이요. 성리를 체받는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무엇을 체받아요? 누가 좋은 집 장만했다고 하면 누가 식당에서 맛있는거 먹었다고 하면 그거 체받을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은 어떤 현상을 체받을라고 합니다. 일원상을 체받는다는 것은 그 실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현상속에 있는 善도 체받을 것 없습니다. 악을 상대하는 선을 체받을 것 없다. 실상을 체받는다는 것은 선악을 초원한 것을 체받는 것입니다.
성공시대에 나온 사람들보면 대체로 본받을만하죠? 그러나 정말 본받을 것은 법신불일원상입니다. 나타난 것뿐만 아니라 더큰 이면의 실상을 본받는다 이겁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게 뭐냐. 붓글씨를 쓸라면 어떻게 해야 잘써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 스승의 체본을 받아야 합니다. 근데 붓글씨 한달 배운 사람한테 배워봐요. 그게그거지.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을라면 법신불일원상을 깨달은 스승, 경전, 따르는 사람을 체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성품에 근간해서 해라 이겁니다. 얄팍한 상대심 비교심 계교심으로 하는게 아니라 그 이면의 성품의 마음. 진공에 체를 삼고 나타난 현상을 적용해라 이겁니다.
우리는 원불교에 다니면서 착한 사람만 본받을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선악을 초월한 법신불일원상을 본받아야 한다. 신앙의 대상을 모시고 믿고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받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대산 종사님이 견성을 꿔서라고 하라고 했씁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타난 현상을 체받게 됩니다. 누가 얼마를 희사했다더라. 누가 몇 명을 교화했다더라만 봅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허망해집니다. 절대 항마위에 못 올라갑니다. 지식 이면의 지혜를 본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삼학이죠? 삼학은 이따가 쉬었다 하겠습니다.
□ 공 연
보리상자 - 바이올린& 피아노
피아노 독주
□ 김제원 교무님 설법(후반전)
(피아노가 아주 수준있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딱딱한 교무와 부드러운 음악. 궁짝이 맞죠?)
오늘 일원상서원문 마치겠는데요.
왜 어리석은 중생이냐. 한주간을 살면서 내가 내 몸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했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법신불은 일원상을 말하는 거죠. 일원상을 체받아야지 나타난 현상이나 작은 구분을 체받으면 안 됩니다. 진리를 체받고 그런 현상을 아울러 활용해야 합니다.
#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마음만이 아니라 몸도 기릅니다.
守護. 내수외호의 준말입니다. 안으로 뭐를 지켜? 사심망상 분별망상에 내가 빼앗기지 않고, 밖으로는 온갖 유혹과 어떤 경계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삼독심과 착심 원망심 분별심 잘났다는 마음 못났다는 마음을 지켜낸다. 보통사람들은 충동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표현해요. 충동적인 젊은 사람은, 수영도 못한 놈이 물속에 팍 뛰어든다고 했씁니다. 허우적대다가 바로 가는 것이죠. 수양이 없이 연구가 없이.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사람은 바로 그것과 같습니다. 저녁에는 하루를 살면서 내가 얼마나 외부경계에 빼겼는데, 나의 망상을 얼마나 비웠는가를 수양을 통해서 비우고, 아침에서도 내가 잘 지켜내고, 본래 텅빈 마음을 회복하고. 먹어본 놈이 맛을 알아요. 아침 수양시간을 통해서 진경자리를 맛본사람이 그것을 알고 나중에 경계속에서도 참을 수 잇씁니다. 염불 잠깐 해서 수많은 번뇌망상이 끼어들잖아요. 그 텅빈 자리에 함께할 때 그 충만감이라고나 할까. 이것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경계자리에 갈 수 있겠습니까? 자주 가봐야 그 자리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대종사님도 깨치신 후에도 한참 부여에 가셔가지고,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은게~~~그것을 보고 막혔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우리들에게 경계심을 주기 위해서 그러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내가 수시로 아침조석으로 수양을 하지 않을 때 쭉정이 밭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정시수양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심신을 수양해도 동정간에 다 해야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또아리를 틀고 면벽을 얼마나하고 이것을 도력으로 쳤습니다. 지금은 활동시기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일어나는 그 마음을 얼마나 멈출 수 있느냐. stop. 멈췄다 가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즉흥적이고, 퍼 붓어버리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합니다. 좌선 백시간 하는 것보다 성질 이빠이 올라왔을 때 딱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도 성질이 있어가지고 처음에 고생했습니다. 원불교 와서 많이 양반 됐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인정합니다. 나이 먹는다고 알아서 꺽어지는 것 아닙니다.
멈추고 멈추고 멈추는 것이 수양입니다. 직장다니다가 성질나서 엎어버렸어. 그 어렵게 들어간 직장 빠이빠이 해야 합니다. 한순간 감정을 조절 못하고 안 할말 튀어나오면 주어 담지도 못하고 그럽니다. 수양력이 없으면 그럽니다. 경계때 멈출라면 내가 정시수양을 해야 합니다. 그 멈출 수 있는 힘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욕을 단련하는 사람이 누가 찔러봐요 뭐가 나오나. 내가 평상시에 뭐를 단련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원상의 서원을 실행하고자 할진대 감정조절을 잘 해야합니다. 욕심으로 하면 한순간 물거품입니다. 혹시 그랫으면 바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미안하니까 안하고 쪽팔리니까 안하고. 그래서 언제가 공부찬스냐. 경계때입니다. 스탑! 공부찬스다! 공부는 언제 하느냐. 내가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그때입니다. 자고싶을 때 일어나야하는 마음. 서원이 있는 사람. 목적이 있는 사람은 일어납니다. 내가 빨리 일어나서 회사를 가야 먹고 살지. 나도 불보살이 되어야 하는데 어서 일어나야지. 그러한 경계속에서 수양력이 쌓아지는 것입니다. 한경계에서 딱 멈추고 멈출 때 수양력이 쌓입니다. 제일 쉬운것이 서원을 대조하는 것입니다. 일어난 착심과 분별성의 마음을 빨리 분리시켜야 합니다. 성질난 나와 성질난 나를 지켜보는 두사람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멈추지 않으면 이것이 하나가 됩니다. 하나가 되면 성질난 나를 지키는 놈이 힘이 약해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게 됩니다. 빨리 멈춰라.
수많은 경계 속에서 나의 마음이 불리자성. 내 성품을 떠나지 않는다. 성품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어떻게 성품을 떠나지 않아? 염불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그래서 평상시에 우리가 염불좌선을 하고 기도를 하고 차분히 자기를 되돌아보는 시간. 이런 시간을 가져야한다.
그런 시간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실지 경계에서 내 마음을 챙겨나갈 때 수월하다. 그런데 묘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공부라 그러는데 실지 경계에서 딱 멈추고 자기자신과 대화를 해보세요. 그러면 왜 묘유라 했는지 알게 됩니다. 아! 신기하구나. 내가 경계를 대하기 전에는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경계 후에 이런 마음이 났구나. 이것은 나와 분리된 마음이구나. 철든 사람은 자기와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시간 없이 게임하고 음악듣고 구경하고 그래요?
우리 본래 마음은 본래 요란하고 번뇌 망상이 있고 밖으로 내팽개칠 것을 원해요? 우리는 본래 수양을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가자는 것이 수양입니다. 왜 못가? 바쁘잖아. 딴 짓꺼리 하니까 바뻐. 놀아야지. 서원있는 사람이 바쁜 것과 없는 사람이 바쁜 것은 다르다. 서원이 있든 없든 우리 본래 내면에는 넉넉한 그것을 원하지 않느냐. 그것을 한번 해보자. 기도 염불 좌선을 한번 해봐라. 해보면 내가 체험이 생기고, 내가 이뻐집니다. 마음공부를 하면 자기가 자기를 이뻐합니다. 이런 체험이 자신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교도님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성질대로 해서 이익볼것이 얼마나 있습니다. 성질 못죽여서 이빨 때워줘야지 감장가야지 고쳐줘야지 뭐 사야하지. 다 해봤죠? 강선생님 몇 개나 뿌러뜨렸어? ㅎㅎ
사리를 원만하게 알면. 동정간의 사리. 일과 이치. 보통 사람들은 일은 좀 알죠. 나한테 이득이 되냐 안 되냐. 옳냐 그르냐. 이런 것은 분석은 잘 해요. 그런데 진짜 필요한 책은 없습니다. 이치에 대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주의 이치. 대소유무에 대한 이치는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일에만 관심이 있지 이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치를 봐다가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마음을 보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에서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일도 자연히 잘 됩니다. 이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돈만 보고 명예만 봅니다. 돈과 명예를 쫒되 거기에 허망함 무상함을 알고 보는 겁니다. 돈과 명예가 일원상의 서원을 위한 쫒음인가 개인의 쾌락을 위한 것이냐. 이것이 다르다 이겁니다.
그런 이치를 잘 보게 해주는 것을 눈을 봐라 경전. 생각을 해라 성리. 글로 써라 정기일기. 말로도 해봐라. 회화. 강연 전체를 다 언제 어디서나 원만한 인격을 갖추도록 정기훈련법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정시사리연구에 제일 중요한 것은 미리연마입니다. 정시에 사리연구는 미리연마입니다. 교무님 오늘 공부방을 갈라고 했는데 일이 아직 덜 끝났고. 뭐를 빠뜨렸고.. 묘하죠. 애들이 가만히 있다가 장난감이 갖고 노니까 그 장난감이 관심있죠. 법회날만 되면 왠지 내가 바빠지고 그러죠. 더 약속을 만들고 싶고 그럽니다. 서원이 있는 사람은 그러지 않습니다. 신심이 있는 사람은 딱 정해버립니다.
오늘 감기가 걸려서 올까 말까 하다가 왔다고 오늘 누가 그럽니다. 그것은 마음이 정한 마음이 아닙니다. 교무님이 챙기면 오고 안 챙기면 오고. 이것은 아직 그 서원과 믿음의 두가 얇은 것입니다.
동시에는 밝고 빠르게 판단하는게 중요합니다. 며칠 후에 무슨 일이 잇어요. 그러면 시간 장소를 잡아야 하지 그때 보세. 그럽니다. 다른 사람이 다시 전화했어요 그러면 약속을 못잡는거죠. 미리 밝게 빠르게 하자 이겁니다. 실지 생활에서 판단 빠르게 해서 제대로 하자 이겁니다. 지지리 한다는 그것이 엄한 일을 해놨어. 어떤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이 뒤따라서 뒤정리를 해줘야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미리 준비 잘 하고, 뒷정리도 잘 합니다.
순명님은 미리준비를 잘 하십니다. 밥이 남으면 누룽지를 딱 해놓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면 밥 대신 그거라도 해줍니다. 교화는 교무님만 하는게 아닙니다. 주무님. 교당에 와서 밥을 먹을 때도 미리 알려주면 좋습니다. 아무 연락 안 하고 와서 ‘먹어도 돼요?’ 그럽니다.
우리가 근본지를 알고 바탕을 알아야지 일을 할 때 촉박하지 않습니다. 서원도 사리연구에 바탕한 서원이면 좋습니다. 큰 포부. 이생에 일년계획밖에 없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몰라. 사람이 일생만 알면 안 됩니다. 영생을 알면, 조그만 것에 대해서 대범하게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림만 크게 그려놔도 조급하지 않습니다. 단견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별지로 판단하냐 근본지로 판단하냐 그것은 다릅니다. 어두울 자리에 어두울 수 잇고, 밝을 자리에 밝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미 일과 이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이생과 내생에 복있게 살고 싶다 다 있을 겁니다. 우리 내면에는 일과 이치에 대한 갈구함이 잇다. 이것을 믿습니다.
화요공부방 시작할 때 나는 어떻게 시작했냐. 우리는 대학생 이상이 되면 간절한 구도적 열망이 있다.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정전공부에 들어갔어요. 내가 요리를 잘 못해서 맛이 없을지는 몰라도 본래는 맛없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 이것은 취사입니다. 공부방을 하면서 느낀 것이 그겁니다. 몇 번 참석하고 들은 사람은 대충 이해는 갑니다. 근데 실행이 안 됩니다. 실제 생활에서 상시 응용주의 사항이 안 됩니다. 교당에 와서는 열심히 법회보고 생활에 와서는 아침에 늦잠자고 저녁에 티비만 보다 자면 그것은 똑같지 않냐 이겁니다. 실지 취사는 안됩니다.
교무님 십년을 다녀도 이십년을 다녀도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럽니다.
대종사님 법대로 살면 분명히 진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뚜벅뚜벅 잘 가면 됩니다. 내 안의 지갑에 돈만 가지고 다니는게 아니라 의두를 가지고 다니고 저녁에는 참회 대조하고 내일 계획도 세우고 내가 단장이면 단장으로서 맡은 것은 무엇인가 등등을 챙긴다면 생활을 개선할 수 잇을 것이고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은 건강도 좋아지고 그럴 것이다 이겁니다. 그래도 개선이 안 된다면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원불교는 설교만 들으러 오면 안 됩니다. 염불할 때도 실지로 염불하고, 동지들간에 이야기 하고, 밝아진게 있다면 실지 생활에 써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실생활에 활용할 것을 주의할 것이요 라고 했씁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을 제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문답을 하냐 감정을 받냐 훈련을 나냐 그럽니다. 예회는 법회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요일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투자를 해보자 이겁니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에 가게도 안 엽니다. 결혼도 안 합니다.
취사는 실질적 점검을 해나가야지 변화가 되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런가 봤더니, 체험이 없어서 그럽니다. 성취감을 느끼는 체험이 없습니다. 어린이한테 왜 다독거리냐면 자신감을 가지라 이겁니다. 수행도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왜 체험이 없냐. 안하거든요. 교화도 디지게 해보고 안 되면 그 때 안된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두려우니까 교육하고 그럽니다. 어떤 예비교무가 그럽니다. 교무님같이 못하겠다고요. 그러니까 예비기간을 두는 거죠.
지성으로 하여. 정성이요. 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밖으로 표출된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이 어떤 것을 이뤘어. 이것을 정성입니다. 誠則聖 이라고 합니다. 지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극하게. 밥해봤잖아요. 확실하게 온도가 올라간 뒤에 뜸을 들여야 밥이 되지. 이것을 때다말따 하면 밥이 되요? 기도를 하다말다 좌선도 하다말다. 경전도 앞대가리만 읽고 그럽니다. 지성이란 것은 이게 아닙니다.
끊임이 없는 마음입니다. 어중간한 중근기보다는 우직한 하근기가 낫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조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당히 무식한데 오롯하게 기도하고 스승님의 말씀 들을니까 진급합니다. 겉똑똑한 사람들 많습니다. 언제 지성이냐? 생활 속에서 지성입니다. 따로 기도만 백일기도 하는게 아니라. 일과를 지켜나가고 그런 것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밥을 꼬박 먹었습니다. 저는 밥 먹는것에 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특별해야 지성이 아닙니다. 생활 속의 평범한 것이 지성입니다. 화요일 저녁만 되면 막 오는 것입니다. 그게 지성입니다.
지성이 될라면 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욕심만 있는 사람은 지성이 가다가 끊어집니다. 서원은 고통이라는 문턱을 쉽게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서원이 있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들이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친구가 전화만 와도 흔들리는 것입니다.
#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되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일원의 위력을 우리가 신앙하는 것입니다. 사은의 한량없는 위력을 신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위력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비어야 합니다. 체성이라는 것은 진리의 내용. 속성입니다. 그래서 언제 그러면 위력이 합하고 언제 체성이 합하냐?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만나는 대상대상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망념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아놨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아가지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빨래도 설거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원함! 그랬죠. 누가 누구한테 서원하는 것입니까?
내가 나한테 하는 것이죠?
딱! 서원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이기홍 부장님이 정성스럽게 정성스럽게 타이핑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타이핑 해 주시니 큰 은혜가 됩니다. 많은 공부하시고 그리고 성불하시고 제중합시다.
기홍부처님 순명부처님 감사합니당~~!!^^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혜독은 입지 이니하기로써...................(원문)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을 지언정 강급은 되지말며, 혜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궁금한점) 아시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