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 2024.11.30.~2025.3.3.
예술 사조의 변화는 이전 시대에 반대되거나, 그것에 반응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경향이 반복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세기의 전환을 이끈 예술가들을 흔히 ‘선구자’라고 부른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하지만, 특별히 선구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비엔나 1900년’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은 불과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예술적 혁신을 이뤄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비엔나라는 대도시, 그리고 혁신의 중심에 있던 ‘꿈꾸는 예술가들’이 가진 ‘이 시대에 맞는 예술’에 대한 생각은 비엔나 예술을 모더니즘으로 이끌었다. ‘비엔나 1900년’은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다양한 예술 사조 중 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를 돌아보는 이유는 역사주의 전통 아래 보수적이었던 비엔나를 실험과 혁신의 상징으로 만든 이들의 도전에 대한 메시지가 지금의 우리 세대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예술가들의 꿈을 찾아 나가는 특별전 <비엔나 1900년, 꿈꾸는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도1 구스타프 클림트, ‘수풀 속 여인’, 1898년경, 캔버스에 유화, 32.4×24.0cm, 비엔나 클림트재단. Photo: Klimt-Foundation, Vienna.
모리츠 네어(Moritz Nähr, 1859~1945), ‘고양이를 안은 구스타프 클림트(Klimt) 사진’, 1911년, 카드보드에 붙인 사진, 레오폴로미술관.
모리츠 네어(Moritz Nähr, 1859~1945), ‘하나지역의 소녀’, 1883년경, 패널에 유화, 레오폴로미술관.
‘비엔나 1900년’의 보고(寶庫), 레오폴트미술관
레오폴트미술관은 한 부부가 남긴 수집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루돌프 레오폴트(1925-2010)와 아내 엘리자베트 레오폴트(1926-2024)는 세기 전환기 비엔나 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오스트리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비엔나 1900년대의 사회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폭넓은 작품들을 소장했다. 2019년에 대대적인 개편을 이룬 레오폴트미술관의 상설전시 제목이 ‘비엔나 1900(Vienna 1900)’인 것은 그만큼 레오폴트 부부의 수집품이 회화 작품들을 포함하여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 드로잉, 사진, 가구, 공예품 등 다양한 예술적 장르를 풍성하게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비엔나 1900년대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다채로운 전시품으로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 음악의 변화되는 흐름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대도시 비엔나를 문화사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목적이다.
도전의 무대, 세기 전환기 비엔나
19세기 유럽에서는 과학, 기술, 산업의 발달로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체계가 바뀌면서, 예술을 역사와 신화를 묘사하는 도구가 아닌 예술 그 자체로 보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성행하던 세기 전환기 유럽, 그중에서도 비엔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두 모인 명소가 돼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비엔나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재위 1848~1916)가 명명한 도시 확장 프로젝트로 약 30년 동안 큰 성장을 이루었다. 약 스무 개가 넘는 건물을 신축하면서 설계, 시공, 장식을 위한 모든 단계에서 각종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했던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한편, 과거의 양식을 표방한 건축물들을 비판한 젊은 예술가들은 ‘이 시대에 맞는 예술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이렇듯 대도시로 성장한 비엔나에서 ‘새로운 예술’에 대한 담론이 나타났고, 이로써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시에서는 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이 비엔나 예술계에 변화를 가져온 양상과 그 무대가 된 비엔나를 조명한다. 세기 전환기라는 짧은 시기에 기존 예술의 틀을 깨고 혁신의 중심이 된 새로운 비엔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클림트 세대가 실레 세대에게 전한 이야기
전시는 프롤로그와 함께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부터 3부까지는 비엔나 예술계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1897년 창립된 비엔나 분리파, 그리고 그들의 철학이 반영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소개하는 ‘앞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후 4부와 5부는 에곤 실레(1890-1918)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특징들을 살펴본다.
클림트는 기존의 틀을 깨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클림트 세대가 실레 세대에게 남긴 예술적 유산과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프롤로그,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에서는 비엔나 대도시 확장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법을 구사하던 클림트가 인물화에서 다양한 구도를 실험하고 인상주의와 같은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점차 ‘클림트다운’ 특징들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 준다.도1 특히 그동안 구스타프 클림트를 ‘황금의 화가’로만 알았다면, 이 시대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혁신가 클림트’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도2 콜로만 모저, ‘네 개의 와인잔, 메테오르 100번, 1899년, 20.3×7.5×7.5cm, 레오폴트미술관. Photo: Leopold Museum, Vienna.
‘1부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은 비엔나 분리파가 추구한 다양성을 소개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고자 한 비엔나 분리파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의 보수성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특정 양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1부에 소개되는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잡지 『성스러운 봄』의 표지 디자인, 우표 디자인과 판화 등은 이들이 추구한 다양성과 예술적 통합을 지향한 목표 의식을 보여준다.
‘2부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은 비엔나 분리파의 개방성을 다룬다. 비엔나 분리파에 속한 예술가들은 오스트리아 밖에서 일어나는 예술 운동을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을 풍미하던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오스트리아의 풍경도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졌다. 각종 분야의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었던 비엔나의 시대적 분위기를 함께 전달한다.
‘3부 일상의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은 예술적 장르를 허물고자 설립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들은 일상적인 물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도2 ‘장식’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과 달라진 디자인적 관념을 3부에서 함께 소개한다. 특히 회화와 드로잉 위주의 전시를 기대했던 관람객들에게 비엔나 1900년의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줄 것이다.
도3 리하르트 게르스틀, ‘반신 자화상’, 1902/04년, 캔버스에 유화, 159.0×109.0cm, 레오폴트미술관. Photo: Leopold Museum, Vienna.
‘4부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에서는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실레는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료들과 ‘신예술가그룹’을 창단한다. 이들의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세 번의 전시회에서 강렬한 표현주의적 경향을 선보이며 비엔나 예술계에 세대교체를 알렸다. 표현주의로 두각을 드러낸 리하르트 게르스틀도3과 오스카 코코슈카가 4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소개된다.
도4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년, 패널에 유화 및 불투명 채색, 32.2×39.8cm, 레오폴트미술관. Photo: Leopold Museum, Vienna.
‘5부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는 에곤 실레의 대표작들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5부에서는 실레의 작품 세계를 ‘정체성의 위기’, ‘모성’, ‘검은 풍경화’, ‘에로티시즘’ 등의 주제로 집중 탐구한다.도4 실레 스스로 탐구한 독보적인 표현 방식은 현재 그를 비엔나 1900년의 대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세계 최대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한 레오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도5 에곤 실레, ‘원탁,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 1918년, 종이에 석판화, 67.4×53.3cm, 개인 소장, 레오폴트미술관. Photo: Leopold Museum, Vienna.
‘에필로그, 예술에는 자유를’에서는 에곤 실레가 그린 전시의 첫 번째 작품 <원탁,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도5를 영상으로 다시 만난다. 클림트가 사망한 직후에 그려진 이 포스터에는 클림트와 실레의 특별한 관계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비엔나 예술계의 변화를 이끈 두 예술가의 특별한 이야기로 전시를 끝맺으며, ‘예술의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비엔나 1900년의 예술가들이 쫓은 꿈
모든 일에는 언제나 시작이 존재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이후에 비로소 부여된다. 예술계의 기득권이 보수주의를 강조할 때,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예술을 선보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다’라는 표현 역시 결과론적인 평가이다. 우리는 현재 그들의 도전을 예술의 흐름을 바꾼 선구자이자 ‘비엔나 1900년’의 대표 예술가로 평가한다. ‘비엔나 1900년’의 진정한 의미는 이들의 노력으로 ‘시대에 맞는 예술’과 ‘예술의 자유’를 찾은 것이다. 19세기 말 예술가들의 도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신문 202년 11월 30일(토)/글.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