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제가 한겨레 신문에 토요일마다 연재하고 있는 <그림으로 읽는 아이들> 중 6월 17일자 글의 원본입니다.
(글을 데스크 맘대로 자꾸 고쳐싸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떠나는 모습, 순안공항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텔레비전을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이 일기로 그림으로 그 느낌을 나타냈습니다.
우린 그동안 김정일을 '신경질적인', '도발적인', '변덕스러운', '호색가인'....사람으로만 알고있었는데,...북한은 얼굴 빨간 도깨비에 험상궂은 사람들만 모여살고 있다고 배웠는데...
아이들 눈에 북한은, 김정일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아이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림으로 읽는 아이들 ·15>
남북 정상 회담과 민족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2000년 6월 13일 화요일 날씨 : 뜨거움
<대통령 평양에 가시다>
우리 나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가셨다. 비행기 타고 47분을 걸려서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니까 배가 너무 많이 나왔다. 꼭 소문자 b 같았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옆에 경호원이 있었다. 또 같은 김씨다.
우리 나라와 북한이 통일됐으면 좋겠다. - 3학년 남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하시던 날, 하던 공부를 멈추고 아이들과 같이 생방송되는 텔레비전을 봤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으로 떠나는 모습,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는 모습,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김대중 대통령을 아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수로 환영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눈물이 다 핑 돌았다.
위 글은 그 날 이 장면을 보고 한 아이가 쓴 일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가 b자 같았다'는 말, 참 잘 봤다싶다. 나이를 몇 곱절 더 먹은 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그렇게 자세히 보게된 것이 처음이니까. 어떤 아이는 "김대중 대통령은 막 뒤뚱뒤뚱 걸었다."고도 했다. 또, '평양 사람들은 춤을 추듯이 환영'하더라고도 했다. <그림1>은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6월이 되면 '민족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행사를 한다. 이름도 길고, 뜻도 어려운 '민족공동체의식 함양' 행사. 해마다 그리기 대회, 글짓기 대회, 나의 주장 발표대회, 표어 짓기 대회를 열고 잘 하는 아이를 뽑아 상을 준다. 이런 대회를 해마다 하다보니 아이들 그림도 글도 해마다 거기서 거기다. <그림2>처럼 우리가 30여년 전 그리던 그림이나 요즘 아이들 그림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한반도 지도에 철조망 있고, 남쪽은 파란색, 북쪽은 빨간색을 칠하고, 북한에는 빨간색 얼굴을 한 도깨비 닮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총칼을 든 모습, 남쪽은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그리고 비둘기와 함께 남북이 악수하는 모습을 버릇처럼 그린다. 아이들이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을 가만보면 오히려 통일을 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을 다지게 할 지 모를 정도로 표현이 험악하고, 틀에 박혀있다. 상 타는 아이는 늘 정해져 있고.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어서 지겨운 '민족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그림 그리기를 안할 수 있게.
이부영 / 서울고일초등학교 교사, 어린이 문화비평가 eboo0@hitel.net
<그림1> 통일이 될 날은 멀지 않았다 -3학년 여
<그림2> 우리의 소원은 통일 -3학년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