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비단으로 감겨있는 아찔한 바위산 함양 계관山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병곡면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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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절기상 망종(芒種)이었다.
곡식의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뜻으로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이뤄진다.
농촌에서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할 정도로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며
농사의 한 해 운을 보거나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다.
이때쯤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개똥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고 하였다.
농사력(農事曆)에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때 보리를 베어야 논에 모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무르익은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많아 최소한 이때
까지는 보리 베기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면 석양 무렵 밭에서 보릿대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보릿대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차안으로 스며들어 그 향기가
그윽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보니 농촌은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산악회 현실을 보면 여성들의 씀씀이가 커지고 인원이나 분위기 조성에서도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요즘처럼 “잘난 여자”가 많아진 세상에서는 “못난 남자”는 부담 없어 좋다.
사람에게는 좀 허술해 보이는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묘한 심리가 있다.
결함 있는 남성性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여자라고 특별히 못 할 것도 없는 시대에 남자에게 딱히 바라는 것도 없다.
여성시청자가 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 중에서도 여자가 늘다 보니
여성의 시각에서 남자를 보는 시도(試圖)가 늘었다.
섬세함이나 배려 같은 여성적 가치가 부각되고 과(過)한 남성성은 그 자체가
결함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가부장(家父長)의 권위가 무너진 시대에 완벽한 남자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여성은 페미니즘(男女평등주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언어를 갖게 됐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
망가진다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권위를 부여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남자가 망가져 권위가 무너질 때 느껴지는 충격이나 혹은
쾌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영화나 드라마, 개콘(개그콘서트)같은 예능매체가 무능한 가장(家長), 얼간이,
찌 질한 남자들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도 요즘 대중문화의 추세다.
오늘 찾아가는 계관山(鷄冠)은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병곡면의 경계에 있는 높이 1,253m의 산이다.
월봉山(1,279m), 기백산(1,331m), 황석산(1,190m) 등과 함께 영, 호남을
가르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산이다.
산지의 여맥이 동서와 중앙부로 내리뻗고 있으며 남쪽에는 500-1,000m의
능선이 계곡을 안고 이어진다.
괘관산은 2009년 4월 7일부로 대봉산(천왕峰, 계관峰)으로 변경되어 정상
표지석 등도 모두 바뀌었다.
함양군의 뒷산으로 불리는 대봉산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의 활동거점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이지만 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軍에 가지 않기 위해 돈과 빽은 물론이고 원정출산이나 심지어 수술까지
받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나라에서 정한 현충일 국가기념일이었다.
매년 6월 6일 오전 10시에 1분간 묵념을 올리고 국립묘지 참배도 한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각계 공무원과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충일 추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과 순국선열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려야한다.
어제 광주의 한 낯 온도가 30도를 넘었으며 한 여름 같은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봄이 실종되어버린 계절은 곧바로 여름으로 들어섰다.
장미의 계절 6월을 맞아 로맨틱한 장미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으며
아파트단지 내 화단이나 도로, 마을 길가에도 색색의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다.
오늘은 98번 시내버스가 게으름을 부리는 통에 광주역에 도착하니 산행버스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이사의 얼굴이 밝지가 못하다.
약속한 회원들이 개인사정을 내세워 불참을 통보하고 장미 따라 떠나버린
모양이다.
25명 회원만이 가족적 분위기로 계관山 산행을 떠났는데 하늘은 맑고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만 두둥실 떠가고 있다.
오늘 산행은 빼빼 재에서 시작:-
감투山 -옛 고개 -헬기장 3곳 -계관山 -암릉지대(안부, 첨봉) -1060峰갈림길
-무덤 3곳 지나 -은행마을회관으로 내려오는 10km(5시간 30분소요) 코스다.
산행은 빼빼 재에서 시작되면서 서하면 운곡里 옥환마을과 백전면 운산里
신촌 사이에 뻗어 있는 빼빼 재에서 내려 왼쪽 절개지 위로 올라서면 곧바로
등산로가 나온다.
등산로 입구에는 화장실도 있고 지도로 된 커다란 산행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숲이 우거진 좁은 길로 들어서니 도토리나무와 참나무 등 잡목 우거진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이따금씩 산 찔레가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고 있어 꽃 향이 흠뻑 난다.
한참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며 오르다 보니 감투山(1,035峰)이 나왔다.
1000m 가 넘는 고지이지만 빼빼재가 800고지이니 실상은 200고지 밖에
안 오른 셈이다.
억새밭 능선 길을 따라가면 원티재가 나오고 곧바로 헬기장이다.
가까운 곳에 두개의 헬기장이 더 있는데 세 번째 헬기장을 지나면 천왕봉
(대봉산:1228m)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는 필요한 곳에 적당하게 세워져있어 산행에는 불편이 없었다.
계관山 바로 밑 평탄한 곳에 계관峰(1253m) 표지석이 있고 암봉을 올라가면
산꼭대기에 다다른다.
암 봉(岩峰)으로 이루어진 정상에서는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연봉(連峰)을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녹색의 비단이불을 펼쳐놓은 듯 윤기가 흐르고
산 아래에는 그림 같은 마을이 있어 사람에 그리움을 더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분 좋은 감상도 잠깐이었다.
계관山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도차 200m의 1060峰까지의 긴 암릉지대가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올해 들어 땀을 가장 많이 흘린 것 같다.
고산지대라 기온이 낮아 지열이 없고 가끔은 바람도 불어 시원했다.
안부를 지나 첨봉을 오르고,
로프를 잡고 아찔한 바위를 기어오르기를 수십 번 우리 나이가 몇이 길래
암봉을 즐기면서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체력이 문제다.
고소하고 연한 맛의 밴댕이는 오뉴월의 별미로 꼽히는데 제철을 맞은
밴댕이는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빛깔도 밝다.
“집 나간 며느리를 가을엔 전어가, 봄엔 밴댕이가 불러들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밴댕이는 배 부위가 은백색인 전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옆구리에
검은 점선이 없는 것이 다르다.
둘 다 기름져 고소하지만 밴댕이가 좀 더 담백한 맛이 나고 육질은 연하면서
씹히는 식감이 살아있다.
오뉴월 밴댕이는 산란기에 앞서 영양분을 가장 많이 비축해놓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밴댕이회는 머리와 가시를 도려낸 뒤 몸통 전체를 초고추장에 찍어 한입에
털어 먹는 게 제 맛이다.
미식가들은 밴댕이의 고소한 맛과 참치처럼 입에서 녹는 듯한 느낌에 반해
농어나 도미를 제치고 “횟감지존”으로 꼽기도 한단다.
밴댕이는 잡히자마자 바로 죽는다.
갓 잡은 밴댕이를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켜 먹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밴댕이는 서해와 남해에서 두루 잡히지만 강화도산(産)을 으뜸으로 친다.
산행 중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물통이 바닥이 나서 군왕봉에게 까지
물을 얻어 마셨다.
1060峰갈림길에서 운곡里 은행마을까지 내려오는 하산 길은 암릉지대를
지나는 것보다 힘이 더 들었다.
급격하게 경사도가 낮아지면서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으면 중량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가락 통증이 심했다.
발톱 두 개정도는 빠질 것을 예상하면서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고도가 1000m인 내리막길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다.
나는 함께해주는 군왕봉이 미안해 자꾸 먼저 내려가라고 해도 끝까지 군왕봉은
나를 동행해주었다,
파묘가 된 무덤 세 곳을 지나 절뚝거리며 내려오니 은행마을이 나왔고 마을정자
옆에 산행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서하면 운곡里 마을 초입 비석에는 “은행마을”이라고 적혀있다.
비석이 있는 곳에서 동네 안길을 따라 들어가면 함양 운곡里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406호)가 있다.
높이 38m, 둘레 8.75m, 나이가 8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몸통과 가지가 건강하고 잎이 풍성하게 나 있어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운곡里마을이 생기면서 심은 나무로 마을의 이름도 이 나무로 인해
“은행정”, “은행 길”, “은행마을”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마을이 배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나무가
마을의 돛대 역할을 하여 마을을 지켜준다고 소중히 보호하고 있단다.
봄이 지나면 / 나무들이 화가 난 듯 푸르러진다.
꽃 시간의 아쉬움이 폭발한 듯 / 저마다 잎이 커지고 짙어진다.
그래, 나무들이여! / 한번 살아 보라.
축축한 장마와 태풍을 만나 보라 / 한여름 불볕더위를 어디 한번 견뎌 보라.
잎마다 상처입고, 가지가 부러지고, 쓰러져 우는 / 친구의 모습도 보라
(정용철의 “나무에게”에서)
오늘 하산 주는 지리산휴게소에서 돼지김치찌게를 만들어 먹었다.
(2013년 6월 7일)
첫댓글 하산해서 양말을 벗어보니 발톱 두개가 까만 멍이 들어있었다.
피가 흐르고 아프다.
발가락이 문제인지.. 등산화가 문제인지.. 여하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빨리 완쾌되시길 빕니다.
저런 발가락이 얼마나 아플까. ㅉ.ㅉ,ㅉ,차라리 모내기나 할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