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대한 시 ㄱ 가난하다는 것은 ㅡ이 상국 가자미 ㅡ 김 윤식 고추밭 ㅡ 안도현 꾸중 ㅡ 정호승 그 먼나라를 아십니까? ㅡ 신 석정 ㄴ 나무하시는 어머니ㅡ 송 귀옥 5학년 나의 어머님께 ㅡ 베르톨트 브레히트. 헤세 남풍 ㅡ 詩經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ㅡ 장 진성 노모 ㅡ 문 태준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ㅡ 함 동선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 ㅡ 이 승하 늦겨울 ㅡ 최 란주 ㄷ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본다 ㅡ 신 사임당 된장국 ㅡ 나 태주 따뜻한 봄날 ㅡ 김 형영 딸기향 ㅡ 박 형준 동그라미ㅡ 이 대흠 똥지게 ㅡ 심호택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ㅡ 정일근 ㅁ 마지막 외출 ㅡ김용옥 머위 ㅡ 문 인수 멍 ㅡ 박 형준 ㅂ 바람부는날 ㅡ 윤 희순 6학년 바쁜 엄마 ㅡ 권 태응 바닥에 어머니가 주무신다 ㅡ 박 형준 밤비 ㅡ 허 형만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ㅡ 박 형준 뼈저린 꿈에서만 ㅡ 전 봉건 별국 ㅡ 공광규 별 헤는 밤 ㅡ 윤 동주 불 때면서 어머니 기다리기 ㅡ 함 순녀 6학년 불혹의 연가 ㅡ 문 병란 ㅅ 사랑법5 ㅡ 박 진환 사모곡 ㅡ 감 태준. 신달자. 새엄마 ㅡ 권 미란 성묘 ㅡ 이 상국 시집 읽는 어머니 ㅡ 안 정환 손등 물기 ㅡ 김 소운 ㅇ 약속 ㅡ 이 종기 어머니ㅡ고정희. 권달웅.김시천.김 종상. 남진원. 노천명.박경리.박미정(6학년) .박성우.박인로.서정주. 오세영. 오탁번. 이성복.임형욱. 정재완. 정한모. 한 경화(3학년). 한하운.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ㅡ 이해인 어머니 괴담 ㅡ 고 영민 어머니날 ㅡ 노천명 어머니 생각 ㅡ 정 대구 어머니 콩밭 ㅡ 정 완영 어머니에게 ㅡ 에드가 앨런 포우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ㅡ예세닌 어머니와 콩 ㅡ 장 영희 어머니와 명주 ㅡ 김 명인 어머니의 눈물 ㅡ 정 두리 어머니의 땅 ㅡ 신달자 어머니의 손 ㅡ 이생진 어머니 품속 ㅡ 이 화이 어머님의 눈 ㅡ 김 남주 어머님의 음성 ㅡ 이용상 어머니 연잎 ㅡ 최 영철 어머니의 그륵 ㅡ 정일근 어머니의 배추 ㅡ 정 일근 어머니의 텃밭 ㅡ 곽 문연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ㅡ 권 정일 어머니에 대한 고백 ㅡ 복 효근 어머님 그리워 ㅡ 신 사임당 엄마 ㅡ 김 완하. 정채봉 엄마와 하나님 ㅡ 샐 실버스타인 엄마의 발 ㅡ 엄 재희 4학년 엄마 걱정 ㅡ 기 형도 엄마의 런닝구 ㅡ 배 한권 6학년 엄마와 아버지ㅡ 김 찬동 3학년 엄마가 아플때 ㅡ 정 두리 엄마가 울어요 ㅡ 길상호 엄마야 누나야 ㅡ 김 소월 엄마라는 나무 ㅡ 신 현득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ㅡ 심 순덕 염색 ㅡ 김 용락 엉거주춤 ㅡ 김 병호 5월의 어머니 ㅡ 강 인한 우리 엄마 ㅡ 이 석현 우리 엄마 양말 ㅡ 민 성식 6학년 육친 ㅡ 손 택수 이 세상의 밥상 ㅡ 황 지우 ㅈ 자모사ㅡ 정인보 젖 ㅡ 문 인수 ㅊ 추억에서 ㅡ 박 재삼 ㅋ 칼과 어머니 ㅡ 이 덕규 ㅌ 투명 ㅡ 심호택 틀니 ㅡ 문 성해 ㅍ 편지 한장 ㅡ 서정홍 폭설 ㅡ 이 상국 ㅎ 할머니와 어머니 ㅡ 문정희 해당화 ㅡ 박 형준 허물 ㅡ 정 호승 호박꽃 바라보며 ㅡ 정완영 화장하는 엄마 ㅡ 권 미란 3학년 흔적 ㅡ 정 희성
가난하다는 것은 이상국 ㅡ 세사, 어머이를 이렇게 패는 눔이 어딨너 ㅡ 돈 내놔, 나가면 될 거 아냐 연탄재 아무렇게나 버려진 좁은 골목 담벼락에다 아들이 어머니를 자꾸 밀어붙인다 ㅡ 차라리 날 잡아 먹어라 이눔아 누가 아들을 떼어내다가 연탄재 위에 쓰러뜨렸는데 어머니가 얼른 그 머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높다라는 뜻입니다
가자미 김윤식(1947 - ) 함지박 속에는 늘 두어 마리 비린내 나는 깊은 바다 그늘이 사시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지요
물고기 등 빛깔보다 더 흐리고 남루한 안색은 흙먼지 자욱한 해질녘이었고요
어서들 먹어라
밤바다 소리처럼 낮게 앓던 어머니 오늘 어머니의 절뚝거리는 비린내가 그립습니다
고추밭 안도현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 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좋게 키워내셨으니 진무른 벌레먹은 구멍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농사 잘 안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꾸중 정호승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솔잎을 한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 당겼다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 말은 못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예. 알겠심더 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눈물이 글썽했다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깊은 산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다음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5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나무하시는 어머니 송귀옥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 되면 나무하로 가신다 혼자 심심해서 어떻게 나무를 할까? 집으로 오는 모습을 보면 머리는 헉그러진 데다가 티껍지와 귀사리가 머리에 많이 붙어 있다 얼굴에 주름살이 간 곳에는 때가 새까맣게 묻어 있다 송 귀옥 ( 강원도 정선 봉정분교 5학년)
나의 어머니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녀가 죽었을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나의 어머님께 헤세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신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 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 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풍 詩經 ㅡ 칠 형제가 자신들의 효성이 부족함을 자탄한 노래
따스한 남풍이 불어와 가시나무 새싹을 어루만지네 가시나무 그 싹 아직 어리매 어머니 고생도 많으셨네
따스한 남풍이 불어와 가시나무 가지를 어루만지네 어머님은 착한 분이시나 우리는 착한 아들이 못 되었네
여기 한천寒泉이 있어 준마을 아래로 흐르네 준마을 ㅡ 위나라 고을이름 아들 칠 형제를 키우시느라 어머님 고생도 많으셨네
아름다운 꾀꼬리가 정다운 고운 소리로 우네 아들 칠 형제 있으나 어머님 마음 기쁘게 못해 드리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장진성(탈북시인) 그는 초췌했다 ㅡ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母性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ㅡ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노모 문태준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함동선 또랑물에 잠긴 달이 뒤돌아 볼 때마다 더 빨리 쫓아오는 것처럼 얼결에 떠난 고향이 근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잠깐일 게다, 이 살림 두고 어딜 가겠니 네들이나 휑하니 다녀오너라 마구 내몰다시피 등을 떠미시며 하시던 말씀이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물 드는 창가에 초저녁 달빛으로 비칩니다 오늘도 해동갑했으니, 또 하루가 가는가 언뜻언뜻 떨어뜨린 기억의 비늘들이, 어릴 적 봉숭아물이 빠져 누렇게 바랜 손가락 사이로 그늘졌다, 밝아졌다, 그러는 고향집으로 가게 합니다 신작로에는 옛날처럼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 피어 있었습니다 길 잃은 고추잠자리가 한 마리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이내 별들이 묻어올 만큼 높이 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면사무소 쪽으로 기어가는 길을 따라 자동차가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고 동구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온 마을 개가 짖는 소리에 대문을 두들겼습니다 안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손 안 닿은 곳 없고, 손닿은 곳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함 동선(1930 - ) 황해도 연백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깎아드린다 일흔 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 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 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늦겨울 최란주 느그들은 나 죽기 전에 시집들 안갈래 요새 아그들은 참말로 애인들도 잘 사귀드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저 시랭이 마을 사는 끝자는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그 머이메와 끝내뿔고 딴 서방을 꿰차고서 딸 하나를 낳아서 알콩달콩 잘도 키우고 살드그만 느그들은 여태 뭐했냐 넘들은 시방 손주를 장개보낸다고 청첩장을 뿌리고 난린디 나는 딸 셋 중 하나도 못 치워서 복장이 터져뿔것다 참말로 근디 시방 어디여 여즉 사무실이라고 그놈의 사무실은 매미맹키로 붙어서 끄륵끄륵 일만 해싸면 무슨 똑바라진 사내자식 하나 엮어준다디 인제 그만 일을 끝내뿔고 싸게싸게 나와서 술 한 잔 먹어제끼고 맘에 든 사내가 있거던 거그서 그냥 모른 척 자빠져쁘러 지도 사람인디 나 물라라 하것냐 뽀뽀는 안 허더라도 업어다 이불에는 눕히기 않것냐 그렇게 갈켜줘싸도 그노메 좋은 머리는 어따가 쓰는겨 초등핵교도 안 댕긴 명옥이는 남재 만나서 잘만 살더그만 대학까정 나온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잔소리라 생각허들 말고 퍼득 정신차려 시간이 없당께 고놈이 고놈잉께 인제 고만 고르고 화딱 소매를 끌던지 바지가랑이를 잡아 댕기든지 하랑께 술 몽땅 묵고 자빠져쁘러 그것이 최고여 그라고 나중 지가 안그러고 고놈의 술땀시 그랗게 되야부렀어야 하면 그만이랑께 최 란주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회 사이버문학상
그놈이 그놈이랑께..글케 갈켜줘싸도..시간이 없당께..너그들은 여태 뭣했냐 잔소릴 또 듣는다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본다 신사임당 늙으신 어머님은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내리네
된장국 나태주 어머님, 갑자기 날씨 쌀쌀해진 요즘 며칠 아내가 끓여주는 뜨뜻한 시래기 된장국 먹으니 어머님 생각 납니다 고향의 그 나날이 비어가는 들판이, 길 모퉁이가, 언덕이, 당신의 손등처럼 까칠해져가는 고향의 나무들이 눈에 밟힙니다 고추밭과 채전밭이, 공동 우물의 맑은 물이 떠오릅니다
어머님, 올해도 농사는 두루 대풍이고 어머님께서는 고추밭에 매일같이 나가셔서 허리 구부려 저물도록 붉은 고추를 따고 계신지요 붉은 고추를 따서 광우리에 채곡채곡 담고 계신지요 어머님 굽은 허리 너머로 피어오르는 초가집들의 저녁
집집마다 여전하지요
어머님, 오늘은 뜨뜻한 시래기 된장국 먹다가 왈칵 눈물이 솟았습니다 시래기 된장국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머님 생각 문득 가슴에 치밀었기 때문입니다 고향 생각 문득 가슴에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봄날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움큼 한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 형영(1945 - ) 전북 부안
딸기향 박형준 어머니 머리맡 딸기 그릇 사십 살 아들 밥해주고 불끄는 것 잊고 잠들어 있다 말라 비틀어진 딸기 하나, 무덤의 환영이 머물러 있다 마지막일지 모를 서울 외출와서 세상의 딸기 다 먹고 인제는 하늘가 딸기밭 거니시는가, 인디언 여인처럼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끙하고 돌아누울 때 무릎에 힘이 없어 넘어진 흔적, 저 뼛 속의 강물 새벽 세 시, 자식은 책상에 앉아 시를 쓰다 지우고 말라버린 어머니 무릎 속 새콤한 딸기향 안타까이 냄새 맡네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 하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이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꼬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 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손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노에 도미에(1808 - 1879) ㅡ 세탁부
똥지게 심호택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둥근,어머니의 두레밥상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판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다 그린 파파야의 향기
마지막 외출 김용옥 가을 볕살 얇디얇은 날 할미꽃 꽃씨 같은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혔다 내 등에 업는 마음으로
"어머니, 보여요? 저 둔덕에 진초록은 무밭이고 연초록 뽀오얀 것은 배추밭이어요" "오, 김장거리? 지금 상달이여? 대지는 사람을 거두어 먹이지 땅 같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여." 세 살배기 나를 기르실 적에 어머니의 기쁨이 이만큼이었을까
"어머니, 이꽃 보여요? 국화가 피었네!" "오, 국화? 사군자여! 서리 맞고도 피는 오상고절의 꽃이지." 말할 줄 아는 , 벙어리가 된 어머니 어머니의 머나먼 세월 뒤안 기억 속에서 촛불로 타던 어머니의 어휘가 환하게 꽃피던 어머니의 언어가 마음 밖으로 외출을 했다 투명한 진리의 시를 지었다
그렇게, 노루꼬리만 한 가을볕 아래 마지막 외출을 했다
머위 문인수 어머니 아흔 셋에도 홀로 사신다 오래 전에 망한 장남 명의의 집에 홀로 사신다 다른 자식들 또한 사정 있어서 홀로 사신다 귀가 멀어 깜깜 소태같은 날들을 사신다 고향집 뒤꼍엔 머위가 많다 머위 잎에 쌓이는 빗소리도 열두권 책으로 엮고도 남을만큼 많다 그걸 쪄 쌈 싸먹으면 쓰디쓴 맛이다 아 낳아 기른 죄 다 뜯어 삼키며 어머니 홀로 사신다
멍 박형준 어머니는 젊은 날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땡볕에 잘 말린 고추를 빻아 섬으로 장사 떠나셨던 어머니 함지박에 고춧가루를 이고 여름에 떠나셨던 어머니는 가을이 되어 돌아오셨다 월남치마에서 파도가 서걱거렸다 우리는 옴팍집에서 기와집으로 이사를 갔다 해당화 한그루가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건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섬으로 떠나고 해당화꽃은 가을까지 꽃이 말라비틀어진 자리에 빨간 멍을 간직했다 나는 공동우물가에서 저녁해가 지고 한참을 떠 있는 잔광 속에서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고춧가루를 다 팔고 빈 함지박에 달무리 지는 밤길을 이고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 되셨다 어느날 새벽에 소녀처럼 들떠서 전화를 하셨다 사흘이 지나 활짝 핀 해당화 옆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이 도착했다 어머니는 한번도 동백을 보지 못하셨다 심장이 고춧가루처럼 타버려 소닷가루 아홉 말을 잡수신 어머니 목을 뚝뚝 부러뜨리며 지는 그런 삶을 몰랐다 밑뿌리부터 환하게 핀 해당화꽃으로 언제나 지고 나서도 빨간 멍자국을 간직했다 어머니는 기다림을 내게 물려주셨다 <춤> 창비.2005년
바람 부는 날 윤희순 바람 부는 날에는 대추가 지붕 위에 탁 탁 탁 하면서 떨어진다
어머니는 방 안에서 대추 돈을 먼저 받아 놨는데 대추는 자꾸만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신다
윤 희순(강원도 정선 봉정분교 6학년)
바쁜 엄마 권태응 날마다 물 여다간 밥을 짓고 틈틈이 실을 자선 길쌈하고 언제나 일 바쁜 우리 엄마
빨래도 바느질도 혼자 하고 들밥도 이고 가고 밭도 매고 언제나 일 바쁜 우리 엄마
KBS2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바닥에 어머니가 주무신다 박형준 침대에 앉아, 아들이 물끄러미 바닥에 누워 자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듬성듬성 머리칼이 빠진 숱 없는 여인의 머리맡 떨기 나무 사이에서 나타난 하나님이 서툴게 밑줄 그어져 있다, 모나미 볼펜이 펼쳐진 성경책에 놓여 있다 침대 위엔 화투패가 널려 있고 방금 운을 뗀 아들은 패를 손에 쥔다 비오는 달밤에 님을 만난다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을 찾아 아들은 밤마다 눈을 뜨고 잠결에 앓는 소리를 하여 어머니가 무릎을 만지고 무더운 한여름밤 반쯤 열어논 창문에 새앙쥐 꼬리만한 초생달
들어온다, 삶이란 조금씩 무릎이 아파지는 것 가장 가까운 사람의 무릎을 뻑뻑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저 여인은 무릎이 비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시골에서 올라와 밀린 빨래와 밥을 해주고 시골 밭 뒤 공동묘지 앞에 서 있는 아그배나무처럼 울고 있는 여인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가슴을 찢어라 그래야 네 삶이 보인다, 고 올라올 때마다 일제시대 언문체로 편지를 써놓고 가는 불타는 떨기나무는 이미 꺼진 지 오래, 불길에 하나도 상하지 않던 열매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졌지만 일찍 바닥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침대 위의 화투를 치우고 모로 누운 서른 셋 아들의 머리를 바로 뉘어주고 한 시간 일찍 서울역에 나가 기차를 기다린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그 시각 밭 갈 줄 모르는 아들의 머리맡에 놓인 언문 편지 한 장.
"어머니가 너잠자는데 깨수업서 그양 간다 밥잘먹어라 건강이 솟애나고 힘이 잇다." 가난한 여인, 새벽 세 시에 아들은 혼자 화투패를 쥐고 내려다보는 것이다
밤비 허형만 비 나리는 밤이면 어머니는 팔순의 외할머니 생각에 방문을 여는 버릇이 있다
방문을 열면 눈먼 외할머니 소식이 소문으로 묻어 들려오는지 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기대앉던 육순의 어머니
공양미 삼백석이야 판소리에나 있는거 어쩔 수 없는 가난을 씹고 살지만 꿈자리가 뒤숭숭하시다? 외가댁에 다녀오신 오늘,
묘하게도 밤비 내리고 방문을 여신 어머니는 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젖어 차라리 돌아가시제 돌아가시제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박형준 어머니는 팔순을 내다보면서부터 손바닥으로 방을 닦는다 책상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 한쪽 손을 쭉 뻗어 넣고 엎드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 내오신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하얗고 내 머리칼은 짧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도 방바닥에는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닌 흔적이 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먼지가 가득 묻은 머리칼 한움큼을 뭉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져 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달에 한 번 다녀 가실 때마다 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버스 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녀을 보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보게 된다
뼈저린 꿈에서만 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 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회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니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 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 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 육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전 봉건(1928 - 1988) 평남 안주
별국 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더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들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지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르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불 때면서 어머니 기다리기 함순녀 밭에 일하시러 나간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궁이에다 장작을 피워 놓고 어머니를 기다리니 오시지는 않고 날은 어두워지기만 한다 1에서 60을 시알리면 오겠지 생각하면서 시알려도 오시지 않다가 다시 60을 시면 마당에서 발걸음 소리가 터벅터벅 난다 함 순녀(강원도 정선 봉정분교 6학년)
불혹의 연가 문병란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당신의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서 몸부림치며 흘러온 역정 눈 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남매 칠남매 마디마디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 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이 이다지도 융융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벌 만큼이나 내려가서 삼백 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다음끼 네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볼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사연이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히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매어 흐르는 강 나는 아득한 곳에서 회구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 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 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법5 박진환 어머니는 평생을 우산을 받쳐들고 계셨다 살아 계신 동안 어머니의 계절은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우산을 적시고 어머니는 늘 비에 젖어 계셨으나 우리는 한방울도 비에 젖지 않았다 무엇인가 비 아닌 다른 것이 우리를 적시고 있었다 우산 속에서도 젖어버린 그것은 눈물이었다 비 대신 우리는 눈물에 젖고 눈물은 가슴에 스며 봇물 같은 것으로 출렁이고 잇었다 요즘 종종 비에 젖는다 우수보다 큰 아픔 같은 것이 날 세운 못으로 가슴에 와 박힌다 늘 어머니가 젖던 비일 듯 싶다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우산을 받쳐준다 그리고는 양지 밭까지 동행하다가 돌아서버린다 내게는 우산이 없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거나 받쳐줄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산으로 펼칠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눈물이 사랑임을 알 나이인데도 나는 눈물이 없다
흠뻑 젖어 보고 싶은 계절이다 그것은 비를 기다림과 같아서 어머니가 그리울 뿐이다 울고 싶다, 한없는 눈물로 울고 싶을 뿐이다
사모곡 감태준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게 긴 밤을 같이 걸었다 시집< 마음이 불어가는 쪽> 현대문학사.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 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새엄마 권미란 길에 어떤 아이가 새엄마 손잡고 간다 친구들은 새엄마라고 수군거린다 그래도 아이는 새엄마 좋다고 새엄마 아니라고 한다 저 아이는 엄마가 얼마나 좋았으면 친엄마같이 여길까 앞으로 새엄마는 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우리 엄마도 우리를 키우며 살면서도 새아빠와 살지 않는 걸 보면 참 좋다 권 미란 (경북 울진 온정 초등 3학년) 1985년 12월
어린 조카가 하루는 할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면 안되느냐고 해서 우리 엄마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그 애가 벌써 6학년이 되어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새엄마도 없는 아이들도 많다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하고..유년기를 보내는 어린이들이 ..
성묘 이상국 ㅡ야덜아 내 죽거든 태워서 울치 바다에나 뿌려다오
어머니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선산이 수만평이나 있고 아들자식들이 모두 이름 석자는 쓰고 사는 집에서 될 법이나 한 일이냐고 감동골 솔밭 속의 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렸습니다
30촉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드릴걸 평생 어두운 집에서 시시던 분들
손등 물기 김소운 엄마가 아기 손등을 잘근잘근 물었습니다 "엄마, 내 손등을 왜 물어?" "응, 그건 엄마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아기도 엄마 손등을 꽈 - 악 깨물었습니다 "아야야! 아프게 물면 어떡하니?" "응, 그건 내가 엄마보다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야."
시집 읽는 어머니 안정환 아들 공부 잘 했으면 됐지 어미 글 모르는 게 무슨 흉이노 노인대학 가서도 늘 큰 소리치는 문맹이신 우리 어머니 한글은 몰라도 시내버스 타시다 용케 아라비아 숫자는 익히셨다
어설픈 내 시집 나온 날 먼저 한 권 드렸더니 책 표지만 한참 들여다보신다 출판사 시집 순번 '15'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정색하신다 니 책에다 우리 동네서 증심사 가는 시내버스 15번을 왜 써 놨노?
그날 종일 화두 하나 떠나질 않는다 어쩌면 내 시집이 단 하루라도 시내버스 15번이 될 수 있을까 도시 끝에서 끝까지 되풀이 오가며 승차권 하나에 사람들 편하게 나를 수 있을까 러시아워에 급한 인생길 막혀도 가만히 두 눈 감고 몽상하게 할 수 있을까 저녁이나 주말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시끄럽고 먼지투성이인 시장에서 꺼내어 조용한 산사 아래로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 몰두하다 문득 우리 어머니 이미 어설픈 내 시집 다 읽으신 게 틀림없다 생각한다 15번 시내버스라니 가당잖다는 듯한 얼굴 표정 조심스레 살피며 불쑥, 엉뚱한 한 말씀 드린다 어머니, 시내버스 한대 사드릴까요?
약속 이종기 어머니, 그 숱한 말 가운데서 누가 처음 어머니를 어머니로 부르게 하였을까요 어머니.
지구와 지구에서 가장 먼 별만큼 떨어져 있더라도 향기처럼 지울 수 없는 그림자처럼 가까이 계실 어머니
그 어머니께서 한 번 웃으실 때 나 때문에 한 번 웃으실 때 5월의 들에 또 한 송이 꽃은 피고
나 때문에 어머니께서 우신다면 내가 대신 꽃을 피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늑한 꽃밭과 같은 어머니께서 손수 뿌린 한 알의 꽃씨 바르게 자라 한껏 피기를 약속 합니다
어머니 고정희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히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ㅓㅁ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어머니 권달웅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사랑을 아는가 흐르고 흘러서 넘치지 않는 물을 아는가 먼 데까지 가도 사라지지 않는 물을 아는가 주고 주어도 허전한 겨울나무처럼 지금 어머니는 많이 수척하였다
어머니3 김시천 내가 그러진 않았을까
동구 밖 가슴살 다 열어놓은 고목나무 한 그루
그 한가운데 저렇게 큰 구멍을 뚫어 놓고서
모른 척 돌아선 뒤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아예, 베어버리진 않았을까
어머니 김종상 (1935 - ) 경북 안동 들로 가신 엄마 생각 책을 펼치면 책장은 그대로 푸른 보리밭.
이 많은 이랑의 어디만큼에 호미 들고 계실까? 우리 엄마는 ....
글자의 이랑을 눈길로 타면서 엄마가 김을 매듯 책을 읽으면,
줄을 선 글자들은 싱싱한 보리숲 땀 젖은 흙 냄새 엄마 목소리
어머니 남진원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
뒷모습을 지켜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어머니 노천명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서 어머니는 괴로워야 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났다면 괜히 가슴 철썩 내려 앉는 것 - 두더지는 햇볕이 싫어 땅 속으로 든다지만
어느 세상에서나 지하로 지하로만 드는 아들이 있어 모진 바람이 눈 위에 소리칠 때마다 더운 방에선 잠을 못자고 어머니는 늙었다
너도 남들처럼 너도 좀 남처럼 넥타이 메고 행길로 뻐젓이 훨훨 다녀보렴 어머니가 죽기 전에 한번만 이런 모양 보여주렴
어머니 박경리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였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도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이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 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보다
어머니 박미정 아침 일찍 시장에 나와 아직도 고기를 못 판 어머니 지나가는 사람 보고 "마수요, 좀 사 가소." 한다
어머니 옆에서 파는 아주머니는 벌써 다 팔고 "뜨리미요 뜨리미, 많이 주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억지로 판다
어머니는 언제 뜨리미를 할까? 옆에서 파는 아주머니처럼 억지로 팔려고 하지 않는 어머니
오늘 따라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신가 걱정이 된다 물건을 다 팔지 못하면 몸이 어디가 아파도 아픈 어머니 박 미정( 부산 감전 초등 6학년)
어머니 박성우(1971 - ) 끈적끈적 햇살이 어머니 등에 다닥다닥 붙어 물엿인 듯 땀을 고아내고 있었어요
막둥이인 내가 다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일요일이었던 그날 미륵산에 놀러 가신다며 도시락을 싸셨는데 웬일인지 인문대 앞 덩굴장미 화단에 접혀 있었어요 가시에 찔린 애벌레처럼 꿈틀꿈틀 엉덩이 들썩이며 잡풀을 뽑고 있었어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어머니 지탱시키려는 듯 호미는 중심을 분주히 옮기고 있었어요 날카로운 호밋날이 코옥콕 내 정수리를 파 먹었어요 어머니, 미륵산에서 하루 죙일 뭐허고 놀았습다요 뭐허고 놀긴 이놈아, 수박이랑 깨먹고 오지게 놀았지
<거미> . 창비.2002년
어머니 박인로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어머니 서정주 아기야 ... 해 넘어가 길 잃은 애기를 어머니가 부르시면 머언 밤 수풀은 허리 굽혀서 앞으로 다가오며 그 가슴속 켜지는 불로 애기의 발부리를 지키고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돌아온 애기를 껴안으시면 꽃 뒤에 꽃들 별 뒤에 별들 번개 위에 번개들 바다의 밀물 다가오듯 그 품으로 모조리 밀려들어오고
애기야 네가 까뮈의 이방인의 뫼르쏘오같이 어머니의 임종을 버려두고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은 영원과 그리고 어머니뿐이다
어머니 오세영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
나의 열 네살 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이셨다 저무는 여름 하오 울 밑에서 눈물을 적시는,
나의 스물한 살 적 어머니는 노오란 국화꽃이셨다 어두운 가을 저녁 홀로 등불을 켜 드는,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 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 빈 집을 지키는 ...어머니
어머니 오탁번 어머니 요즘 술을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담배도 많이 피웁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잊지 않겠습니다 밥도 많이 먹고 잠도 푹 자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3 오탁번 봄햇살 아기손처럼 고물고물 물레, 낮달맞이, 술패랭이, 현호색 간질이며 연노랑 분홍빛 보라빛 웃음을 터뜨리는 곳 차를 몰고 온 석탄빛 손들이 놀라 길 옆 오이넝쿨 아래로 숨는 곳
나는 방금 돌 지난 앉은뱅이꽃이에요 나는 그저께 이산 온 우산꽃이에요 에헴, 나는 60년 전 애련분교 때부터 이 학교를 지켜 온 부처꽃이지 우리 모두 할미꽃에게 큰절을 드리기로 할까요 까르르 웃음소리에 연못 속 청개구리 수련 위로 뛰어오른다
교실 차양 아래 서 계시던 어머니 흰 수건 벗으시며 들판을 향해 손을 흔드신다 탁번아 이제 그만 놀고 들어와 저녁밥 먹으야제 초가집 위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풀물 든 손을 힘껏 쳐들고 봄아지랭이 가물거리는 논둑을 뛰어온다
쑥빛 검은 손 잡으며 반기시는 청동빛 주름진 얼굴 병석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만히 손을 내민다 어머니, 자리 후훌 털고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어머니 이성복 나는 처음에 봉산탈춤의 사자춤 추는 가면인 줄 알았다 십여 년 전 총 맞아 죽은 아들의 무덤 앞에 풀뿌리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팔순 어머니 자신의 가슴에 남의 가슴에 쪼그라든 주먹으로 못을 박으며 흰 머리 헝클어 무덤을 덮는 어머니 내일이면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제 명에 죽지 못한 아들의 무덤을 맨이마로 바수고 바수는 어머니 대관절 자식이 무엇이기에, 대관절 어찌 그리 귀여운 자식이 있었기에 통곡으로 꿈틀거리는 봉산탈춤의 사자탈 같은 어머니
어머니 1 이성복 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더미에서 자기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와 퍼질러 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으잖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수국꽃 더미로 피어 오르는 5월 나는 스무 해 전 고향 뒷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름 너머로 차올라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 위로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 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의,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
어머니 2 이성복 아직도 뜨거운 땡볕 아래 흰 수건으로 머리 동이시고 펭귄처럼 가파른 계단을 뒤뚱거리며 오르시는 어머니 짐진 하루 해가 공사판 건너 숲 속으로 지기가 그리 힘들던가요 베니어판 흙 떨고 모로 누워도 열덩어리 해는 지지 않고 어머니, 당신이 잠깐 눈붙인 사이 동네방네 애국 소리 딸꾹질 같아, 공사판 근처 일거리 없는 새들이 가랑잎처럼 흩어집니다 어머니, 해고되고 해고되고 떠돌아 목젖까지 차오르는 아우들이 바람 불지 않는 가로를 날아갑니다 아직도 저들은 공사판 근처를 기웃거리며 아내와 자식들 눈을 속인다고요
날아가세요 어머니 날아가세요 베니어판 집어타고 해 떨어지는 곳으로!
시집 < 남해 금산> 문지. 1989년
어머니 임형욱 못에 박혀, 어머니 벽에 걸려 있다 잘난 아들놈이 대뜸 뽑으려면 아서라 얘야 차라리 이곳이 나에겐 천국이다
언제부턴가 어머니, 저렇게 펄럭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벽들이 어머니에게 못을 요구했을까
알지 못하는 의문이 돋을 때마다 사방의 뾰족한 덫에 찔리고, 찔린 손가락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잠들지 못하는 어머니, 가슴 매만지면 수없는 못자국 누가 이렇듯 모질게 박아대었을까 어느 놈이!
얘야 미워하지 말아라 네 잘못이 아니다 어째서 어머니 말씀, 거짓말 같을까 녹슨 못처럼 어머니, 벽보다 막막한 우리 어머니
어머니 정재완 푸새 한잎엔들 무심일 수 없는 오늘 고향 뒷산 마루에 올라보면 허구한 날, 골짜기 마다에 어찌하여 메아리가 사는 줄을 알겠다
아무데도 소용 없는 年齒만 늘어, 잘못 살아 삶을 등져 감에서 그날, 얼에 뜸에서 불러보는 어머니 ... 하늘만한 은혜 앞에 기대이니 하 그리 많은 주름살임에랴!
그 깊은 골짜기마다에 들어앉아 나는 회한 많은 구꾸기 울음 울고 ... 메아리도 따라 울고 ...
어머니 정한모(1923-1991) 충남 부여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어머니 한경화 우리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장화를 신고 바다에 간다 옷을 적새 가면서 미역도 쫏고 자갈도 쫏는다 손이 퉁퉁 뿔어 가면서도 자갈을 쫏는다 바다야, 우리 엄마 옷 젖게 하지 마라 한 경화(경북 울진 진복분교 3학년)
어머니 한하운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선 말이 없는 어머니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이해인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2005년 어머니와
어머니 괴담 고영민 난 강남의 목화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당신은 끝동 푸른 한복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목화꽃처럼 나타나셨는데 폐백을 드릴 때 당신을 업고 나는 수미산을 돌듯 넓은 방을 한 바퀴 돌고, 돌고, 돌았는데 사모관대를 걸친 막내아들이 늙은 당신을 업고 있는 그 사진을 어머니는 추억처럼 좋아하셨는데 세상 뜨시기 전까지 안방 낡은 유리액자에 꽂혀 즐겁게 업혀 있었는데 당신이 돌아가신 지 5년, 오늘 아침엔 세 살 난 딸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한마디를 건네는데 아빤 왜 매일 어떤 할머니를 업고 있어, 슬그머니 등 뒤를 넘겨다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추스러 올려도 무거워 자꾸만 흘러내리는 아, 나의 업힌 어머니인데 고 영민. 악어. 실천문학사. 2005년
어머니날 노천명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 드린 안나 자아비드의 한 송이 카아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 만 송이 몇 억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아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인노예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가?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빛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 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어머니 생각 정대구(1936 - ) 경기도 화성 허리 구부려 연탄아궁이에 연탄 갈아 넣기는 어머니 몫이었다 웬일로 연탄은 꼭 새벽에만 갈아넣게 되었던지 웬일로 그때는 또 그렇게 추었던지 영하 10도가 넘는 새벽 두 세시 사이에 어머니는 일어나 연탄을 갈러 나가셨다 나는 알면서도 잠자는 척 이불을 덮어썼다 그리고 빈말로 어머니를 속였다 왜 저를 깨우시지 않고 연탄은 또 꼭두새벽에 갈아 넣어야 해요 그래, 그래야 불꽃이 좋아 아침밤 짓기가 좋지 어쩌다 내가 연탄 갈러 나가면 어머니는 질겁해 따라 나오시며 너는 연탄내 쐬면 안돼 또 연탄은 구멍을 잘 맞춰야 하는데 너는 안돼 나를 밀쳐내시고 허리를 구부정, 연탄집게로 더듬더듬 연탄을 가시는데 폭 타버린 밑탄을 들어내고 불꽃이 남은 윗탄을 밑탄으로 앉히고 그 위에 새까만 새탄을 밑탄과 구멍을 맞춰 얹으시고 연탄 아궁이 구멍을 확 열어 놓으셨다 활활 불꽃을 타고 올라오는 연탄내 때문인지 연신 쿨럭쿨럭 밭은 기침을 뱉으시며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 기름 보일러에서 가스보일러로 바뀌어 지금은 연탄 갈 일이 없어졌어요
어머니에게 에드가 앨런 포우 저 높은 천당에서 서로 속삭이는 천사들도 그들의 불타는 사랑의 말들 속에서 어머니라는 말만큼 진정어린 말은 찾을 수 없다고 느끼지요 저는 오랫동안 그 그리운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이상이시고 나의 마음 속에 기쁜 마음을 채워 주는 당신 나는 마음 속에 당신을 앉혀 놓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예세닌(1895-1925) 아직도 살아계십니까, 늙으신 어머님? 저도 살아 있어요, 문안을 드립니다, 문안을! 당신의 오두막집 위에 그 말 못할 저녁 빛이 흐르옵기를
저는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불안을 숨기시고 저를 두고 몹시 애태우셨다고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신다고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당신께서는 저녁의 푸른 어스름 속에서 자주 똑같은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마치 누군가가 술집의 싸움 속에서 제 심장 밑에 핀란드 나이프를 내리꽂은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다만 괴로운 환상일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지독한 대주가는 아닙니다 당신을 뵙지 않고 죽어버릴 만큼의, 예나 다름없이 정겨운 저는 다만 몽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끝없는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우리의 나지막한 집으로 돌아갈 날을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봄답게 우리 흰 뜰에 어린 가지들이 뻗을 때 저를 이제 새벽에 8년 전처럼 깨우지만 마세요
사라진 몽상을 일깨우지는 마십시오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물결 일게 하지 마십시오 너무나 이른 상실과 피로를 저는 인생에서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도움이요 기쁨입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말 못할 빛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불안을 잊으십시오 저를 그토록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지 마십시오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라자니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아사도라 던컨과의 짧고 불행했던 결혼 이후 그는 점점 술과 정신쇠약에 빠져 결국 레닌그라드 호텔에서 자살했다
어머니 콩밭 정완영(1919 - ) 김천 어머님 길 떠나신지 십년 십년 또 십년 그 해 그 가을에 오늘에도 수심 겨워 콩밭에 누렇게 앉은 물 내 가슴에 다 실린다
어머니와 콩 장영희 어머니는 밭에 콩만 가꾸지는 않는다 쇠비름 명아주 애디달개비 패앵이꽃 바랭이 드문드문 두고서 왼종일 콩밭에 산다
어머니 두런두런 혼자 하는 이야기를 물리도록 먹고 자란 콩은 열여덟 꽃 같은 나이에 사벌 땅 퇴강리에서 상주군 사벌면 퇴강리 세찬 바람 휘몰아치는 낙동강 건너 풍양 땅 성당골로 시집온 어머니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불영계곡처럼 깊은 시름 다 안다 인동 장씨 초계파 31대부터 34대까지 살붙이 이야기 죄다 안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 걸고 자랑스레 들려주는 제 갈길 떠나버린 육남매 이야기 마을 사람들보다 더 잘 안다 우리 어머니 가꾸는 콩들은 자라면서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해마다 가을만 되면 보석보다 귀한 것을 보따리에 싸주시며 도회지에 가서 식구들 먹고 남으면 팔아 가용에 쓰라고 한다 뿌듯이 담긴 콩 자루를 보면서 돈 좀 살 수 있겠다 싶지만 팔 수가 없구나 그냥 내 마음 알아 줄 벗들에게나 거저 줄란다
뙤약볕 등에 업고 투박한 손으로 콩 다듬는 엄마 모습 생각하면서 눈물로 불려서 콩밥을 지어 아이들 먹이고 나 먹으면 어머니가 내 속에 있는 것 같아 마음도 몸도 다 든든하다
콩알 하나 또르르 틈새로 굴러가면 그 까짖것 그냥 버려둬도 좋으련만 그 뒤로 어느새 나타난 어머니 바지런히 따라간다 어머니 하늘나라 가고나면 누가 이 콩을 가꾸고 다듬어서 바리바리 보따리에 싸 줄까 장 영희 우리시 . 2007년 12월
어머니의 눈물 정두리 회초리를 들었지만 차마 못 때리신다 아픈 매 보다 더 무서운 무서운 목소리보다 더 무서운 어머니의 눈물이 손등에 떨어진다 어머니의 굵은 눈물에 내가 젖는다
어머니의 땅 신달자(1943 - ) 대지진이었다 지반이 쩌억 금이 가고 세상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순간 하느님은 사람 중에 가장 힘센 사람을 저 지하 층층 아래에서 땅을 받쳐 들게 하였다 어머니였다 수억 천 년 어머니의 아들과 딸이 그 땅을 밟고 살고 있다
어머니의 손 이생진 겨울 바람은 양산봉을 수십 차례 넘난들어도 동백나무는 용케 그 바람을 피한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쑥부쟁이 어쩌면 우리 어머니 손등 같을까 한참 만지다 간다
어머니와 명주 김명인 고치 짓느라 하루 종일 주름접고 앉았던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애비야, 시골집 내 장롱에 명주 한 필 있으니 풀 뽑으러 내려가거든 그걸 가져다 다오 망초를 솎다 말고 문득 어머니 평생을 가둔 장롱 속에서 몇십 년 보자기에 싸여 누렇게 빛바랜 비단 한 필 끌러낸다, 중국 어디라던가 황하가 범람할 때 물에 잠긴 뽕나무밭 우듬지 위로 허벅지 적시며 처녀애들 뛰어다닌다. 뽕잎 갉고 아직도 애벌잠인 어머니가 기어오르고 퉁퉁 분 젖어미들 쥐어짜면 거기 물안개인 주검들! 피륙에 내려앉은 뽀얀 누에들은 어디서 캄캄한 실꾸러밀 자아오는 것일까 펼쳐 보니 물레를 돌리던 메마른 소금들이 갈피마다 헝클려 있다, 삭은 명주필로 활옷을 지어 입고서 어머니는 또 어디론가 날아가시겠지, 이곳은 뽕밭 둘레라서 나는 아직 몇 잠은 더 자야 한다
현대문학 2006년 8월호
어머니 품 속 이화이 어머니 품 속은 동화의 나라
하이얀 꿈 아롱아롱 피는 봄 들녘 아지랑이 보오얀 새털처럼 포근한 품속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는 어머니 품 속은 아기자기 동화의 나라
어머님의 눈 김남주 밤중에 잠이 깨니 어머님이 내 몸에 이불을 끌어 덮어 주신다
캄캄한 데서도 웃으며 반짝이는 어머님의 눈이
인제도 나를 세 살 먹은 애로 보시는 것 같다
어둔 밤의 어머니 눈 아아 그 눈을 나는 못 잊는다 <신소년> 1926년 3월
어머님의 음성 이용상 <얘들아! 저녁 먹어라!> 어머니 부르시는 소리에 조무래기들은 뛰어 집으로 가고
어느집 추녀밑 된장국 내음이 흡지吸紙처럼 내 몸에 스며 발을 멈췄다
저멀리 멀리 들려오는 저건 어머니 날 부르시는 소리가 아닌가
선술집 문을 제쳐 부르시는 소리에 취해 보려나 거치른 숨소리로 취해보려나
이처럼 기댈 곳 없는 밤과 밤에 어머니 한번 더 날 불러 주세요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은 어리광을 부려야만 나아집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연잎 최영철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개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 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배추 정일근 어머니에게 겨울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한 포기 배추가 될 때까지 손을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이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으니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시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시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었으니 어머니가 온 몸으로 쓰신 저 푸른 시 앞에서 뜨거워진다, 사람의 시를 이제 사람은 읽지 않지만 자연의 시는 자연의 친구들이 읽고 가느니 새벽마다 여치가 달려와서 읽고 사마귀도 뒤따라와서 읽는다 그 소식 듣고 밤새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는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시 시집 속에서 납작해져 죽은 시가 아닌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을 쉬는 저 시
어머니의 텃밭 곽문연 무씨를 뿌려놓은 텃밭 무순이 빽빽하게 솟아나오면 어머니는 새순을 솎아 밭고랑으로 던지셨다
못난 놈만 뽑혀나가는거여 빈자리가 많아야 무가 실한 법이여 지금껏 이랑과 이랑을 무사히 건너왔다
어머니는 질척한 밭고랑을 흙발로 업어서 건네주셨다 솎아낸 무는 살아남은 놈의 밑거름인 거여 사철 푸는 어머니의 텃밭 단단한 무 쑥쑥, 회초리처럼 자랐다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권정일 그 때 나는 세모시 저고리에서 달빛보다 더 선연한 바늘의 등뼈가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열 손가락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화처럼 가지런한 이마가 환한 빛을 내던 토방 쪽마루를 보았다
어머니 반짇고리 곁에는 내가 이름 지어준 별들이 내려와 집을 짓곤 했다 못에 찔려 피 흘리던 내 꿈들 우리집 추녀 끝에 밤마다 찾아드는 바닷소리를 들었다 한 채 섬이 된 우리집 마당으로 물방울처럼 별 하나, 별 둘 똑똑 떨어지는 기척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가 섬이 되어 떠다니고
푸른 슬레트 지붕이 녹스는 소리마저 정겨운 여름밤이었다 흑싸리 화투패 같은 빈 껍질의 어머니 가슴에서도 녹스는 소리가 들렸다 어쩜 그것은 내 가슴팍을 적시는 물살이었다 추깃물 같은 반딧불이 우리집 낮은 담장 너머에서 몇 번 어둠을 흔들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고백 복효근 때 절은 몸빼 바지가 부끄러워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던 그 어머니가 뼈 속 절절이 아름다웠다고 느낀 것은 내가 내 딸에게 아저씨라고 불리워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질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잖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어머님 그리워 신사임당 산첩첩 내 고향 천리연만은 자나깨나 꿈 속에서도 돌아가고파 한송정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락모이락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
엄마 김완하 첫돌 지난 아들 말문 트일 때 입만 떼면 엄마, 엄마 아빠 보고 엄마, 길 보고도 엄마 산 보고 엄마, 들 보고 엄마 길 옆에 선 소나무 보고 엄마 그 나무 사이 스치는 바람결에도 엄마, 엄마 바위에 올라앉아 엄마 길 옆으로 흐르는 도랑물 보고도 엄마 첫돌 겨우 지난 아들 녀석 지나가는 황소 보고 엄마 흘러가는 도랑물 보고도 엄마, 엄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저 너른 들판, 산 그리고 나무 패랭이 풀, 돌, 모두가 아이를 키운다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문학사상사 패랭이
엄마와 하나님 쉘 실버스타인(1930-1999)미국 하나님이 손가락을 주셨는데 엄만 "포크를 사용해라." 해요 하나님이 물엉덩이를 주셨는데 엄만 "물장구 튀기지 마라." 하고요 하나님이 빗방울을 주셨는데 엄만 "비 맞으면 안 된다." 해요 난 별로 똑똑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엄마가 틀리든 하나님이 틀리든 둘 중 하나에요(부분)
엄마의 발 엄재희 우리 엄마는 발이 부르텄다 꾸덕살이 떨어진다 엄마는 논도 썰고 밭도 갈고 밭 매고 소죽도 끓인다 일하러 갔다가 오면 그대로 누워 잔다 발 씻어라 하면 싫다 한다 나는 엄마의 발을 보면 눈물이 날라 한다 엄 재희(경북 울진 온정초등 4학년)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비지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 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배 한권(경북 경산 부림초등 6학년) 1987년 5월
엄마와 아버지 김찬동 엄마와 아버지는 가끔 싸움을 하신다 아버지는 엄마보고 집을 나가라고 하신다 그래도 엄마는 나가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좋다 김 찬동(대구 서도초등 3학년) 1990년 왓토 ㅡ 놋그릇 씻는 여인
엄마가 아플 때 정두리(1947 - ) 경남 마산 조용하다 빈 집같다
강아지 밥도 챙겨 먹이고 바람이 떨군 빨래도 개켜 놓아 두고
내가 할 일이 뭐가 또 있나
엄마가 아플 때 나는 철드는 아이가 된다
철든 만큼 기운 없는 아이가 된다
엄마가 울어요 길상호 성경책을 읽다 말고 엄마가 울어요 엄마 눈길을 따라 책 속엔 짠 비가 내릴 거예요 길을 가던 글자들 발이 푹푹 빠지는 통에 발걸음 더는 떼질 못해요 이불 뒤집어쓴 채 자는 척도 못하고 훌쩍훌쩍, 나는 울음에 쉽게 감염되는 나이 고막이 얇은 문풍지도 방 안 소리를 듣고 어깨 떨고 있을 거예요 아빠처럼 바람도 잠잠한 밤 바람처럼 아빠도 소리 없는 밤 엄마는 구석에서 울어요 바닥에 떨어진 울음이 흘러 나에게 닿는 줄도 몰라요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라는 나무 신현득 엄마는 가지 많은 나무
오빠의 일선 고지서 소총의 무게 절반을 오게 하여 가지에 단다 오빠 대신 무거워 주고 싶다
시집산 언니 집에서 물동이 무게 절반을 오게 하여 가지에 단다
그 무게는 무게대로 바람이 된다 동생이 골목에서 울고 와도 그것이 엄마에겐 바람이 된다
뼈마디를 에는 섣달 어느 밤 엄마는 오빠 대신 추워 주고 싶다
그런 맘은 모두 폭풍이 된다
엄마라는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홀로 대충 부엌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깍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엉거주춤 김병호 .협성대 교수 허리를 비끗한 어머니가 끕끕한 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대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등목을 해 달라 하기에 남세스럽게 다 큰 자식을 부려 먹는다며 퉁을 놓고 버티다, 못 이기는 척 수돗가로 따라 나섰다
길고 가파른 밭고랑을 써레질하던 강마른 소의 등허리 같기도 하고 뒤안에 감또개 떨군 단감나무 같기도 한 어머니의 엉거주춤한 뒷모습이 낯설어 물 한 바가지 끼얹고, 잠시 망설이는데 고목에 눌러 붙은 이끼처럼 어머니 몸에 핀 검버섯들 한때 처녀였고, 어머니였던 흔적들
그 흔적들 씻어 내려 서둘러 알뜨랑 비누로 문지르는데 뜬금없이 고목에 핀 꽃처럼 피어나는 비눗방울들 어머니는 금세 봄꽃처럼 화사하게 부풀고 물줄기로 비누 거품을 날리자 고목은 다시 가을이 되는데 꽃이 피는 것보다 나무가 잎을 띄우는 것보다 아이의 붉은 잇몸을 뚫고 하얀 이가 솟는 것보다 어미된 목숨만큼 아픈 게 또 있을까
힘겹게 엉거주춤 앉은 어머니는 간지럽다며 연신 웃음만 삼키는데 검버섯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알뜨랑비누는 자꾸 미끄러지기만 하고 대신에 풀솜을 펴 놓은 듯 가볍게 둥실 뜬 구름이 건너 산 능선을 뭉개고 있었다 시작노트 스무 몇 해밖에 차이나지 않는 어머니는 내게 어머니이면서 누나이면서 연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한 아이의 아비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빚이라는 난감하고 부끄럽고 어이가 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일수 이자를 갚아도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사채처럼 어머니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찌할거나 2008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염색 김용락 (1959 - ) 일흔 둘의 노모가 양지 바른 수돗가에 앉아 염색약을 개고 있다 솔이 뻐드러진 칫솔과 깨어진 면경 조각을 앞에 두고 빨래판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앞에는 분유 깡통에 심어놓은 지난 가을 황국 한 포기 겨울 추위에 형체가 없이 뭉개져 있다 폭설이 내린 산길 같은 어머니 머리 결을 따라 아래 위로 칫솔질 하다가 나는 문득 아득한 심산유곡에 갇혀 그만 길을 잃었다
5월의 어머니 강인한 5월의 부신 아침 햇살이 키 작은 사철나무 새로 돋은 여린 잎새에 빛날 때면 어머니, 꿈 같은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나비처럼 팔랑팔랑 외갓집 가던 길 파아란 하늘은 구름 둥둥 하얗게 목화꽃을 피우고
징검다리를 건너서 논둑길을 건너서 어머니가 내게 펼쳐 보여주신 우리 나라의 5월은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어쩌다 동무들과 어울려 땅 뺏기며 구슬치기로 해를 넘길 때 어두운 골목 어귀에서 긴 목으로 서성이며 기다리던 어머니, 밥물 냄새 은은한 어머니의 치마폭은 한없이 넓은 평화였습니다
철없이 나이 들어 슬프고 험한 세상 어지러운 나날로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어머니는 언제나 그리운 5월입니다
지친 등허리를 다국거려 쓸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던 어머니, 당신은 사철나무 여린 잎새에 꿈같이 맺히는 아침 햇살입니다 맨 마지막까지 기다려주는 넉넉한 사랑입니다
우리 엄마 이석현(1925 - )함북 회령 파랑별 따다가 호롱불 켜고
장미 포기 모아서 꽃방석 깔고
은행잎, 가랑잎의 이불 기워서
우리 엄마 편안히 쉬게 했으면 ....
우리 엄마 양말 민성식 우리 엄마는 내 양말 안 신는 거 신고 밭에 가서 일을 한다 자세히 양말을 보면 고무가 늘어져서 질질 내려오거나 구멍이 난 것이다 엄마는 구멍이 나든 어쩌든 아무 거나 신고 일만 한다 민 성식(경남 밀양 상동초등 6학년) 2002년 11월 9일
육친 손택수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닳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글을 쓰던 버릇도 버릇이지만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종이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어머니 침이 묻어 있네 어린 날 오도독 오도독 씹은 생선 뼈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그 침 페이지 페이지 얼룩이 되어 있네
이 세상의 밥상 황지우 병원에서 한 고비를 넘기고 나오셨지만 어머님이 예전 같지 않게 정신이 가물거리신다 감색 양복의 손님을 두고 아우 잡으러 온 안기부나 정보과 형사라고 고집하실 때 아궁이에 불지핀다고 안방에서 자꾸 성냥불을 켜시곤 할 때 내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내가 잠시 들어가 고생 좀 했을 때나 아우가 밤낮없는 수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새벽 교회 찬 마루에 엎드려 통곡하던 그 하나님을 이제 어머님은 더 이상 부르실 줄 모른다 당신의, 이 영혼의 정전에 대해서라면 내가 도망쳐 나온 신전의 호주를 부르며 다시 한번 개종하고자 하였으나 할렐루야 기도원에 모시고 갔는데도 당신은 내내 멍한 얼굴로 사람을 북받치게 한다 일전엔 정신이 나셨는지 아내에게 당신의 금십자가 목걸일 물려주시며 이게 다 무슨 소용 있다냐, 하시는 거다 당신을 금을 내놓으시든 십자가를 물려주시든 어머님이 이쪽을 정리하고 있다고 느껴 난 맬겁시 당신께 버럭 화를 냈지만 최후에 십자가마저 내려놓으신 게 섬뜩했다 어머니, 이것 없이 정말 혼자서 건너가실 수 있겠어요?
전주예수병원에 다녀온 날, 당신 좋아하시는 생선 반찬으로 상을 올려도 잘 드시질 않는다 병든 노모와 앉은 겸상은 제사상 같다 내가 고기를 뜯어 당신 밥에 올려드리지만 당신은 " 입맛 있을 때 너나 많이 들어라." 하신다
목에 가시도 아닌 것이 걸려 거실로 나왔는데 TV에 베로나 월드컵 공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살아서 펄펄 날뛰고 있다
慈母思 정인보 12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이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補空 되고 말아라
37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이라 여짜오니 고국 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40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부터 있단 말가 빈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정인보 1948년 <담원시조집>
젖 문인수 오랫 만에 고향엘 다녀왔다
대구에 가면 이런 거 흔하고 흔합니다 헐하고 헐합니다 하고 말렸으나 어머니는, 나도 많이 늙었다 오래는 더 못살겠다 하시면서, 무말랭이며 머귀나물 매운 풋고추 같은 걸 자꾸 챙겨주셨다 이만큼 전송나오시다가 또 쫓아들어가 다른 거 한 보퉁이 들고 나오셨다 무릎 앞에다가 이것들을 끌러놓고 깊이 냄새를 맡는다 어느덧, 여름 밤 천지에 가득하고 그윽한 먼 별빛,
긴 바람의 젖을 물고 나는....
추억에서 박재삼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칼과 어머니 이덕규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칼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 칼을 가장 능숙하게 잘 쓰는 사람 자르고 썰고 족닥이고 생선대가리를 아무 생각없이 뎅겅뎅겅 날려 칼집을 내고 저녁상을 차리는 어머니
한밤중에 물 먹으러 부엌에 나갔다가 움푹 파인 도마 위에 파랗게 실눈을 뜨고 누워있는 식칼을 보고 들어와, 반월도처럼 웅크리고 칼잠 자는 어머니를 반듯하게 고쳐주면 날을 세우듯 다시 모로 눕는 어머니
자는 척 늘 깨어 있는 ..... 이제는 당신 마음을 다스리던 인내의 사원 그 시퍼렇게 빛나는 천근 칼날 지붕아래에서도 평온한 어머니, 칼을 들었을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칼끝이 오직 자식을 행해 열려있는 도마 위의 그 날렵한 칼솜씨를 보면 무인가문의 후손이 확실한 어머니 그러나 칼의 볼모로 잡힌 이래 집 밖으로 칼을 내돌리지 못하는 몰락한 칼잡이의 딸 쓰-윽 나도 모르게 감쪽같이 내 가슴을 가르고 들어온 날선 비수 한 자루
투명 심호택 가을날이었다 들판에 뻗친 흰 물줄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이 나더러 내성적이라던 고등학교 2학년 내 자전거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시내들 앞에 뽐내며 멋들어지게 커브를 꺾다가 그만 콰다당 넘어지고 말았다
먼 밭에서 어머니는 가슴이 덜컥했다고 한다 보이지도 않는 밭에서 녹두를 거두고 있던 어머니는 그 소리가 내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틀니 문성해 웃고 있다 물 담긴 사기그릇 속에서 흠뻑 웃고 있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저리 신나게 웃는 어머니를 어금니 사이 푸른 이끼 한 줄 나 몰래 무슨 즐거움 씹어 잡수셨을까
나는 불안하다 턱이 없는 어머니가 아침이면 턱 안에서 굳게 갇힐 웃음이
턱을 빠져나온 웃음이 밤마다 목욕탕을 뒤흔든다
저 웃음을 어머니 턱 안에서 완성시켜드리고 싶다
편지 한 장 서정홍 우리 어머니 아직도 그 편지 한 장 버리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집살이 떨쳐 버리고 싶다고 보내 온 큰누님의 편지 한 장
우리 어머니 눈물로 얼룩진 편지를 보고 "똥 잘 누는 년이 무어 고되다고 야단이냐."더니 밤새 뒤척이셨다
우리 어머니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편지 한 장 버리지 않았다
폭설 이상국 哭을 하다 배고프면 국수를 먹었다
처음에는 두 형님과 소리가 엇갈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은 어우러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살다 이렇게 가는구나 하며 나는 속으로 아는 체를 했다
꼬질대가 휘도록 눈은 퍼붓고 차일 밖에서 마른 눈을 삼킨 개들이 컹컹 기침을 했다
문상객들은 눈을 털며 들어와 양초나 문종이로 부조를 하고는 피가 비치는 돼지고기에 독한 소주를 먹으며 내년 농사 걱정을 했다 눈은 잠처럼 쏟아지고 영정 속의 어머이는 졸리면 형들에게 맡기고 들어가 자라 했으나 나는 추우면 화롯불을 쬐다가 다시 곡을 했다 <유심> 2006년 여름호 곡을 하다 배 고프면 국수를 먹는다..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에 이 시인이 참 좋다 아버지는 우셨다. 며느리가 직장암 말기라고.. 이제 죽을거라고 울지말라고..죽어야 될 운명이면 죽는거고 산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문상객을 받는다고. 아니라면 왜 장례식장 앞에 식당들이 그렇게 많냐고 위로했다 .... 아버지 울지 마세요....벌써 8년 전 일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문정희 김포공항을 떠날 때 나는 등 뒤에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남편의 사진은 옷장 속에 깊이 숨겨두었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어져서 바람소리 숭숭 들려오는 넉넉한 나이도 기꺼이 주민등록증 속에 끼워두고 왔다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들었지만 날을 듯이 가벼웠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출렁이는 자유, 소금처럼 짭잘한 외로움 이거면 시인의 식사로는 풍족하다 그런데 웬일일까 십수 년 전에 벌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감쪽같이 나를 따라와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
해당화 박형준 어머니는 겨울밤이면 무덤 같은 밥그릇을 아랫목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내 어린 발은 따뜻한 무덤을 향해 자꾸만 뻗어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배고픔보다 간절한 것이 기다림이라는 듯이 달그락달그락 하는 밥그릇을 더 아랫목 깊숙이 파묻었습니다
밥그릇은 내 발이 자라나는 만큼 아랫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내 발이 아랫목까지 닿자 나는 밥그릇이 내 차지가 될 줄 알았습니다 쫓길 데가 없어진 밥그릇은 그런데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자 나는 밥그릇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습니다 설령 밥그릇이 있다 해도 발이 닿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밥그릇의 따뜻한 온기보다 더한 여름이 내 앞에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시골 소년에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사나운 짐에 떠밀리다 문지방에 어른거리는 것이 있어 방문을 여니, 해당화꽃 그늘이었습니다 뿌리에서부터 막 밀고 나온 듯, 묵은 만큼 화사해진다는 처음 꽃 핀, 삼년생 해당화 붉은 꽃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느새 늙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저녁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밥그릇처럼 해당화꽃 그늘 속에 서 계신 어머니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가슴에서 무언가를 꺼내느라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라졌던 밥그릇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 묻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늙은 어머니의 손에서 떠난 그 작은 무덤들이 붉디붉은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물 정호승 느티나무 둥지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호박꽃 바라보며 ㅡ 어머니 생각 정완영 분단장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젤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화장하는 엄마 권미란 점심 달라고 엄마 보며 기다리는데 화장만 죽자 사자 하는 엄마 아무리 엄마 엄마 불러도 내 딸 없다는 듯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화장한 엄마 보면 우리 엄마 아닌 것 같다 빨간 입술 찐한 눈썹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나에게는 화장하지 않는 엄마가 좋다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권 미란(경북 울진 온정초등 3학년) 1985년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사는 게 꿈이었습니다 .... 엄마도 여자인지라 곱게 화장하고 싶은 날들이 있을텐데 ...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살 순 없고
흔적 정희성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어머니가 벗어놓은 그림자만 남아 있다 저승으로 거처를 옮기신지 2년인데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이 보낸 체납 주민세 납부 청구서가 날아 들었다 화곡동 어디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자식들 몰래 ..살아 계신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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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해물과 백두산이 원문보기 글쓴이: 아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