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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箱理想異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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掌片 書信 스크랩 1387
周佳飛 추천 0 조회 23 09.05.20 22:0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발로 뛰어 장학금 타내고 방학땐 세끼 손수 해먹여이른 봄 석양 아래 초등학교 6학년 쌍둥이 형제가 땀 범벅인 얼굴로 엉엉 울었다. 지난 3일 오후 5시 경남 밀양 공설운동장.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주최한 '제11회 전국 꿈나무선수 선발 육상경기대회' 남자 6학년부 800m 결승에서 평택 중앙초등학교 이창주·충주(12) 형제가 2분24초로 5위와 6위를 했다.

이들은 작년 같은 대회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1·2위를 했던 형제다. 자기 최고기록보다 8초나 늦게 들어온 게 억울했는지 아이들은 눈물·콧물 네 줄기를 흘리며 어깨를 들먹였다. 코치 한칼라(여·32)씨가 '억지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소리 질렀다. "뭘 잘했다고 울어? 자기 기록도 못 뛰고 입상할 줄 알았어?"

한씨는 말없이 자기 차에 중앙초등학교 아이들 넷을 태우고 밀양 시내 여관으로 돌아갔다. 규모가 큰 전국 대회지만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학부모는 한 사람뿐이었다. 맞벌이로 빠듯하게 살림을 꾸리는 가정이 많아서다. 풀죽은 아이들이 몸을 씻는 동안 한씨는 딸기 2㎏를 사 들고 왔다.

경기도 평택 중앙초등학교 육상부 어린이들과 훈련하고 있는 한칼라 코치(사진 왼쪽). 한씨는 제자들에게 손수 세끼 밥을 해먹이며 중앙초등학교를 육상 명문으로 키워냈다./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아이들이 딸기를 오물거리는 동안 한씨는 "오늘 성적이 시원찮아도 보름 뒤 도(道) 대표 선발대회에서 잘하면 5월 소년체전에 나갈 수 있다"고 다독거렸다. 아이들 얼굴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대회 이틀째인 이튿날, 중앙초등학교 강현경(11)양이 여자 5학년부 8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평택 중앙초등학교는 최근 급속히 떠오른 초등학교 육상 명문이다. 이 학교 육상부원 15명이 작년 한 해 동안 전국 규모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포함, 메달 20여개를 땄다.

중앙초등학교의 분전 뒤에는 8년째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한칼라 코치가 있다. 이 학교 이길선(54) 교감은 "한 코치가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아이들이 시집도 안 간 처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다"고 했다. 부모들도 어지간한 일은 전부 "코치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맡긴다.

한씨의 아버지는 미군이었다. 미군 기지 근처에서 장사하던 어머니와 만나 두 살 터울 자매를 낳았다. 한씨의 부모는 결혼 16년째인 1991년에 이혼했다. 아버지는 언니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한씨와 둘이 평택에 남았다. 이후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 한씨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칼라'는 외할머니가 지어준 본명이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삶을 살라"는 뜻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아이들이 "아프리카로 돌아가라"고 놀렸다.

한씨는 남들한테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부에 들어갔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소년체전 경기도 대표 선발전 멀리뛰기 경기에 나가서 초등학교 여자부 대회 최고기록(5.24m)을 세웠다.

한씨는 "육상을 하면 남들이 모두 나보고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며 "등을 펴고 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육상 스타가 되겠다는 꿈이 꺾인 건 중3 때였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무릎 연골이 비정상적으로 계속 자라고 있어 그냥 두면 곧 걷지 못하게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씨 모녀가 "수술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걸을 수는 있겠지만 선수 생활은 끝난다"고 했다. 한씨는 어머니를 붙들고 며칠 밤을 운 끝에 수술을 받았다.

이후 한씨는 2년제 대학 생활체육과(야간)를 다니다가 학교생활에 재미를 못 붙이고 중퇴했다. 전북 임실에 내려가서 초·중·고 육상 코치로 잠깐 일하다 그만뒀다. 한씨가 평택 중앙초등학교 육상코치를 맡게 된 것은 2002년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던 그녀에게 옛 은사가 코치 자리를 소개했다. "선수가 없어서 육상부가 사실상 해체됐다가 교장 선생님 뜻으로 다시 육상부가 부활한 학교"라는 설명이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 운동장에 나간 한씨는 깜짝 놀랐다. 또래보다 한참 작은, 도토리 같은 아이들 7명이 올망졸망 서 있었다. 7명 가운데 3명이 한부모 가정 혹은 조손(祖孫) 가정 아이였다. 형편이 어려워 세 끼를 다 못 먹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부모가 빚 때문에 잠적하는 바람에, 빚쟁이가 학교 체육관까지 찾아와서 아이를 붙들고 "네 아버지 어디 갔는지 대라"고 윽박질렀다.

한씨는 "나는 그때 딱 두 가지를 다짐했다"고 말했다. 첫째, '나부터 열심히 살자'. 둘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자'였다.

한씨는 시·도 육상경기연맹과 각종 육상 단체를 돌며 장학금을 따냈다. 체육관에 들어온 빚쟁이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 쫓아내기도 했다. 한씨 모녀가 단둘이 사는 평택 시내 89㎡(27평)짜리 아파트가 중앙초등학교 육상부원들의 단골 '합숙소'였다. 날마다 일기장과 훈련일지를 쓰게 하고, 하루 2시간씩 걸려서 꼼꼼히 검사했다.

여름방학·겨울방학 넉 달 동안은 병설유치원 요리실에 들어가서 아이들 하루 세 끼와 간식을 직접 만들었다. 한씨는 "초등학교 육상은 '기럭지(키) 싸움'이라고 한다"며 "훈련 많이 한 애보다 잘 먹어서 키가 1㎝ 큰 애가 이길 확률이 99%"라고 했다. 아이들은 "우리 코치 엄마(한씨)가 해주는 개고기랑 사골국이 최고"라고 했다.

부임 이듬해인 2003년, 당시 이 학교 4학년이었던 황자능(16·현 경기체육고 1년)군이 그 해 열린 모든 전국대회 80m 경기를 석권했다. 이후 5년간 중앙초등학교 육상부는 전국대회에서 줄줄이 금메달을 땄다.

한씨는 정식 교사가 아니라, 1년 단위 계약직 코치다. 그녀의 올해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 5월 열리는 소년체전에서 아이들이 금메달을 따는 것. 둘째, 4년제 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하는 것이다. 장차 교사 자격증을 따는 게 꿈이다. 한씨는 "우리 육상부를 거쳐 간 모든 아이에게 '선생님도 열심히 나아지고 있다'고 보여주는 게 나의 의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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