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다산인권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사람> 2006년 2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퀴즈 하나 낼게요. 높이 8,848미터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가장 먼저 오른 사람은 누굴까요? 뉴질랜드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 등산에 관심이 많거나 상식이 풍부하신 분이시군요. 모르신다구요? 괜찮습니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으니까요. 현재까지 알려진 정답은 티벳계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라는 셰르파라고 합니다. 그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뒤처진 힐러리를 30분이나 기다린 헌신적이고 강인한 셰르파였다고 하네요.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면, 우리에게 네팔이란 나라는 마치 텐징 노르가이의 존재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똑같이 목숨을 걸고 험한 산을 올랐음에도 우리는 ‘문명화된’ 나라 출신의 힐러리 만을 기억하듯이, 같은 아시아에서 과거의 우리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발걸음을 디뎌가는 네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우리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은 네팔은 만년설이 뒤덮인 아름다운 경치,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의 나라, 풀을 뜯는 산양 무리의 옆에서 한가로이 누워있는 목동과 같은 고정된 이미지에서 한 치도 더 나아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비서구적인 세계를 ‘신비’와 ‘야만’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시각만으로 이해하려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죠.
그러나, 오늘의 네팔에는 분명 변화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수백 년 간 쌓이고 쌓여온 모순이 눈사태처럼 금방 쏟아져 내려올 것만 같습니다. 국왕을 ‘모든 사물에 깃들어있는 존재’인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여기며 존경해오던 순박한 얼굴의 주민들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군주제 철폐를 얘기하며 분노를 토해냅니다. 히말라야의 눈처럼 평등이 세상을 뒤덮길 원합니다. 인권이 보장되고 내전으로 더 이상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없는 네팔을 꿈꾸며 거리로 나갈 채비를 합니다.
지난 주 받은 이메일에도 그런 네팔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1월 20일에는 7개 정당으로 구성된 야권 연합과 학생, 언론인, 변호사, 교수 등 수십만 명이 모이는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1년 전, 갑작스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와 의회를 해산시킴으로써 사실상의 절대권력을 구축한 갸넨드라 국왕의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 언론 자유를 외치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하루 동안 계엄을 선포하고 정치 지도자들과 학생들, 인권운동가들을 대거 연금시키거나 구속시키는 것으로 맞섰습니다. 또, 경찰을 동원해 카트만두로 들어오는 길을 막아버리고, 전화선마저 끊어 외부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걸 차단하려 했습니다.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 천 명의 시위대에게는 최루탄과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날의 일들은 네팔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서막에 불과해 보입니다. 올 한 해, 민주화운동가들은 왕의 손가락에서 절대반지를 빼 버리기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벌일 것입니다. 수많은 학생, 언론인, 노동자, 농민들의 자유와 생명이 민주화의 제단에 바쳐져야 할 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달콤함을 맛 본 국왕이 쉽사리 그 맛의 유혹을 떨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 까닭에 오늘도 네팔의 운동가들과 시민들은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우리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그러나, 연대는 먼저 그들이 어떤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고, 어떤 모순과 고통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실천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네팔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제가 ‘아는 만큼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네팔 국왕, 절대 반지를 차지하다
네팔은 바다가 없는 내륙국입니다. 중국과 인도, 방글라데시에 둘러싸여 있지요. 그 때문에 항상 큰 나라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특히, 인도는 스스로 후견국을 자처해온 나라인데요, 네팔이 경쟁국인 중국과 가까워질 조짐을 보이면 이내 경제적, 정치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곤 하죠. 네팔의 유일한 대외무역 창구가 인도의 캘커타이고, 대외무역의 40%를 인도가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주요 외화수입원 중 하나도 인도에 나가있는 네팔인들이 송금한 돈이니까 압력을 행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인도를 비롯한 외세의 영향력은 네팔 민주화의 변수이기도 해요. 인도는 국왕에 반대하는 의회주의자들을 은근히 지지하고 있고, 중국은 그 틈을 타서 인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국왕 세력과 친해지려 하니까요.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네팔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2천만달러가 넘는 군사원조를 해주다가 최근 국제여론이 안 좋아지니까 눈치를 보고 있죠. 어쨌든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따질 뿐 네팔의 민주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건 확실해 보여요.
네팔은 참 가난한 나라예요. 2천 4백만 인구 중 42% 가량이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고 문맹률이 40%를 넘죠. 아,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마음까지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라는 뜻은 아니에요. 90%의 국민들이 힌두교 신앙을 토대로 큰 욕심없이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온 나라로 알려져 있죠. 실제로 왕정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반대가 심했던 건 아니라고 해요. 오히려 왕의 통치를 당연시하고 존경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네팔의 왕정은 1951년, 현재의 갸넨드라 국왕의 가문인 샤 가문의 트리부반 왕이 부활시킨 거예요. 1959년에는 그의 아들인 마헨드라 왕이 헌법을 제정해 서구식 의회를 도입함으로써 국왕은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죠. 그런데, 국왕 입장에서는 권력을 나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바로 이듬해 말,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와 내각까지 해산시켜 버렸거든요. 그러면서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고, 의회 대신에 ‘판차야트(Panchayat)'라는 독특한 대의기구를 만들어요. 판차야트는 원래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촌락단위 원로모임이었는데, 이걸 국가 단위로 확대시킨 거죠. 하지만, 이걸 소집하고 폐회할 수 있는 권한도 국왕에게 있었고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의 감독을 받아야 했으니까 대의기구라 말하기도 쑥스럽죠. 또한 총리를 비롯해 모든 각료도 판차야트 의원들 중에서 국왕이 임명했구요, 대법원장과 판사들도 국왕이 정했으며, 국왕이 긴급사태를 선포하면 그 즉시 헌법이 정지되니까 사실상 네팔은 국왕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절대왕정 국가인 셈이었어요.
히말라야를 뒤흔든 민중항쟁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국민들의 기본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어요. 누구든 영장과 재판도 없이 18개월 간 구금될 수 있었고, 정치인, 운동가, 학생들을 상대로 한 납치, 고문,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났죠. 절대 빈곤과 부정부패도 심각했구요.
그래서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 바꿔보자’하면서 1979년에 첫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요. 왕정 자체에 대한 반대까지는 아니었고, 판차야트를 해체해 국민들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를 만들어 민주주의 하자는 게 주된 요구였죠. 당시 국왕 비렌드라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난국을 모면하려 했는데요, 결과는 54.8%의 찬성으로 판차야트 체제가 존속되는 거였어요. 대대적인 부정선거로 얻어진 결과였는데, 어쨌든 국왕 입장에서는 한숨 돌린 거죠.
하지만, 한번 분출되기 시작한 개혁과 민주화 열망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어요. 1990년, 드디어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한답니다. 2월 18일 ‘민주주의의 날’을 기점으로 1960년 이래 불법화된 네팔국민회의당(NCP)과 공산당 등 각 정당, 학생, 노동자들이 전국 단위의 민주화 항쟁을 벌였어요. 왕실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수천 명의 시위 참여자들을 검거, 투옥하고 시위대에 발포하는 바람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민중들은 총파업과 동맹휴업, 대규모 시위로 맞섰는데요, 당시 항쟁이 최고조에 달할 무렵엔 총인구 40만 명인 수도 카트만두에서 약 2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하니까,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와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죠.
결국 8주 간의 민중항쟁은 비렌드라 왕이 다당제 의회민주주의 도입과 헌법 개정, 총선 실시 등을 통한 정치개혁과 민선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명실상부한 입헌군주제 도입을 약속함으로써 민중들의 승리로 일단락되게 됩니다.
절망은 탄환을 동경한다
하지만, 1990년의 승리는 네팔 민중들의 삶까지 바꿔놓지는 못했어요. 여전히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정치불안도 여전했죠.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총리가 바뀌는 등 혼미를 거듭하던 네팔 정국은 1994년 총선거를 통해 공산당이 집권했다가 이듬해 붕괴하면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해요. 여러분들은 ‘센데로 루미노소’, 혹은 ‘빛나는 길’이란 조직을 들어보셨나요?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1969년부터 자생적인 무장혁명운동을 벌였던 남미 페루의 마오주의 공산반군인데요, 네팔에서도 바로 이를 모델로 한 마오주의자(NCP-Maoist)들이 1996년부터 무장투쟁의 깃발을 올리게 돼요. 입헌군주제 철폐와 경제적 평등, 남녀 평등 사회 건설의 목표를 내걸고, 불과 200여명이 산골 경찰서를 습격하면서 항쟁의 깃발을 올린 이들은 빈곤과 불평등, 권위주의 체제에 지친 농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급격히 세를 불려가죠.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약 4천 명의 핵심 대원들과 1만 5천여 명의 방계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전국 75개 행정구역 중에서 약 20여개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요.
반군과의 내전이 장기화되고 격화되면서 민중들의 삶은 더욱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답니다. 정부군이 반군 지역을 급습해 주민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구요, 반군과는 관계없는 농민들도 반군으로 몰아 죽이기도 했어요. 간혹 네팔 내전에 관한 외신기사를 잘 보면 반군측 사망자 수가 정부군 측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경우가 있어요. 그게 다 반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민간인들을 죽여 놓고서는 사망자들이 모두 반군이었다고 발표하는 식인 거예요. 반대로 반군들은 무장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보급투쟁을 위해 과도한 ‘혁명세’를 강요하기도 해요. 정부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비사법적인 살인이 일어나기도 하구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 그래도 팍팍한 민중들의 삶은 더욱 고달플 수밖에 없겠죠.
어쨌든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은 끝날 줄을 모르고, 국왕과 왕실은 입헌 군주제 하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가 조금씩 여린 싹을 키워가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러던 작년 2월 1일, 갸넨드라 현 국왕이 느닷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내각을 해산시켜 버리는 일종의 ‘궁중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듀바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반군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총선 준비도 부실하다며 ‘민주주의와 법,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국왕 자신이 향후 3년간 국정을 관장하겠다는 거죠. 3개월 간의 비상사태 기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은 철저히 부정되게 됩니다. 특히,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언론법을 제정하고, 그에 반발하는 언론인들을 160명 넘게 구속시키고 2,000여 명 가량을 해고시켜 버립니다. 물론 학생, 인권운동가, 노동조합 등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구요, 이런 억압적인 현실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민주화 시위 때와는 다른 양상이 있다면 이제는 군주제를 근본적으로 폐지하라는 요구가 공공연히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민중들의 생존권이나 인권,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는 국왕과 왕실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국왕들은 그래도 민중들로부터 어느 정도 존경받고 인정받는 측면도 있었다지만, 지금의 갸넨드라 왕은 전혀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그가 왕으로 즉위한 것도 실은 2001년도에 디펜드라 왕세자가 아버지인 비렌드라 전 국왕을 비롯한 9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한 희대의 ‘왕실 일가족 몰살 사건’ 때문이었거든요. 이 사건은 아직까지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독선적이고 유난히 권력욕이 강한 갸넨드라 왕이 군부와 손잡고 일으킨 쿠데타였을 거라 믿는 국민들이 많다고 해요. 즉, 왕위의 정통성 자체도 부인되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제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됐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잡혀가고 있고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이메일이 들어와 있네요.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없으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급해집니다. 10년간의 내전으로 1만 3천명이 숨진 나라, 고질적인 가난의 멍에를 등에 지고 질식할 것 같은 독재에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험난한 산을 오르는 네팔 민중들과 운동가들에게 멀리서나마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 최재훈(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