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시각장애인 3인조 록밴드 ‘아이스크림’
“짜릿한 함성, 벅찬 감동… 그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베이스 기타 반주와 함께 시원한 목소리가 무대를 장악한다. 쭉, 호쾌하게 솟아오르는 성량에 듣는 귀가 탁 뚫리는 기분이다. 드럼 스틱이 박자를 두드리자 가슴이 덩달아 둥둥 울린다. 무대에서 끼를 발산하는 이들은 시각장애인 3인조 록밴드 ‘아이스크림(I-scream)’이다. 그룹명을 듣곤 달콤한 발라드를 부르지 않을까 싶은데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사고의 틀을 반전시키며 강렬한 록사운드로 무대를 이끌었다. 이들에게 시각적인 한계는 없었다.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공연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이들의 말은 구태의연한 생각과 인식은 내려두고, 다른 방식으로 보며 즐기라고 권하는 것 같다. 열정 가득한 아이스크림의 멤버 홍세복·김승태 씨를 만났다. 나머지 멤버 김지명 씨는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는 못했으나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짜릿함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 골볼 공처럼 창쾌한 음색 지닌 보컬 홍세복
Q. 그룹명이 독특합니다.
A. 본격적으로 활동을 준비하면서 어떤 이름으로 정할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나온 그룹명이에요. ‘세복, 승태, 지명이가’라는 의미의 ‘I’와 ‘큰소리를 외치다’라는 의미의 ‘scream’을 붙였지요. 록 장르와도 잘 어울려 만장일치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원 전원이 젊다 못해 어리다(?)는 점입니다. 드럼을 맡은 막내 지명이는 중학생이고, 베이스 기타를 치는 승태는 고등학생입니다. 보컬인 저는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입니다. 지난달부터 충남골볼실업팀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록 그룹으로도 이제 막 첫발을 뗀 신인입니다.
Q. 골볼 선수를 하면서 록 가수로 활동하는 일이 쉽진 않겠어요.
A. 2015년부터 유소년팀 골볼 선수로 활동해 왔습니다. 공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다가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부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피로감이 없지는 않아요. 그 부분을 음악으로 해소하고 있지요.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때면 뭔가 탁 풀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골볼과는 또 다른 매력이죠. 둘 다 매우 좋아하는 일이라서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스포츠와 음악은 여러 사람과 공감을 나눈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감흥을 줘요. 모든 일이 그렇듯, 즐기는 것만큼 좋은 삶의 활력소는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이 노래하고 더 많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골볼 선수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록밴드 보컬로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Q. 세 분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A. 서울맹학교 선후배로 뭉쳤습니다. 학교에서 지원·운영하는 앙상블 활동을 같이하기도 했는데, 학업이나 경기 등 각자 일이 있다 보니 그 활동을 자주 하진 못했어요. 그 점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어느 날 그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아쉬움이 나 혼자만의 마음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셋이서 그룹을 결성해 활동해보는 건 어떨까, 한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고 있을 때 ‘좋은이웃컴퍼니’를 만나게 되었어요. 좋은이웃컴퍼니는 문화예술 발전 및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협동조합이에요. 소속 아티스트 중에 학교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예전부터 학교와 연계해 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곤 했거든요. 대표님이 저희들의 고민을 듣곤 먼저 제안해주셨죠. 악기 연습과 보컬 트레이닝 등 좋은이웃컴퍼니의 지원을 받아 데뷔하게 됐습니다.
- 클라리넷 연주자 겸 베이스 기타리스트 김승태
Q.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데뷔하셨죠.
A. 2019년 12월 22일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겁니다. 처음 앙상블 활동 외에 록 그룹도 할 거라는 얘기를 하자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했어요. “클래식 음악을 잘하니, 다른 음악도 한번 해보는 거겠지!”라는 식이었죠. 베이스 기타 연습하는 걸 보면서도 실감을 못 하던 친구들이 제가 무대에서 공연하자 “야, 너 진짜였구나!” 하며 놀라더라고요. 새롭다, 의외다, 대단하다 같은 격려도 쏟아졌습니다. 클라리넷 연주 경험은 있지만, 록 그룹으로 공연한 건 그때가 처음이라 실은 굉장히 긴장했는데,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Q. 아쉽거나 힘든 부분이 있다면요.
A. 아직은 힘든 부분은 없어요. 음악은 제게 일상이니까요. 난해한 곡은 점자 악보가 필요하지만, 대개는 곡을 듣고 외우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점자 악보를 구하는 스트레스도 없는 편입니다. 다만 제가 수험생이 되면서 규칙적인 록밴드 활동이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지금은 음악 전공으로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때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학생의 본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여유가 생기는 대로 무대에 설 계획입니다.
Q. 록의 매력을 꼽는다면요.
A.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클래식 앙상블은 감동이 은은하게 밀려오잖아요. 그래서 연주 후의 청중들 반응도 잔잔한 편이죠. 시냇물이 위에서 아래로 졸졸 흐르는 것처럼 연주자와 청중들 사이의 공감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루어져요. 반면 록은 박수나 환호 등의 호응이 강하고 즉각적입니다. 관중의 반응이 손에 닿을 듯 생생해요. 그 분위기에 저도 들뜨는 기분이 들고요. 손뼉치고 노래하고 뛰면서 뜨겁게 섞이는 느낌이에요. 이런 힘찬 감정적 소통이 록에 빠져든 이유지요.
Q. ‘아이스크림’의 목표나 포부가 있다면요.
A. 기회가 된다면 멤버끼리 여행을 다니며 버스킹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삶을 즐기는 데는 이런 방식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왜 굳이 록 그룹 활동까지 하려고 하느냐?’며 의아해할 겁니다. 저희는 즐기려고 합니다. 무대에 서겠다는 포부보다 그저 저희 공연을 통해 다른 분들도 함께 크게 웃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이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게 삶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니까요. 그룹명처럼 즐거운 함성이 크게 울릴 수 있도록 분발할 테니, 공연이 열리면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아이스크림이 ‘즐기는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잃지 않기를, 더 많은 무대에 오르면서 사람들과 그 꿈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발췌
PS. 아래 첨부한 동영상은 지난 2019년 12월 '좋은이웃컴퍼니'의 '홈커밍 콘서트'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당시 그 현장에 관객 중 1인으로 공연을 즐겼고,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에 기안지를 제출해 아이스크림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첫 영상은 '좋은이웃컴퍼니' 어울림 F4(임시/가칭)가 공연하는 장면입니다. 이창훈 아나운서를 비롯해 남녀 4인조 그룹입니다. 다들 본 직업 외에도 장애인식개선 강사 자격을 소지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두 번째 영상은 위의 국정 기사에서 소개한 아이스크림의 공연 모습입니다. 홈커밍 콘서트에서 첫 데뷔를 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