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판츠민다 마을 -2018.
스테판 츠민다 마을 . 왼편 산위 건물이 이곳에서 가장 고급인 "ROOMS" 호텔이다.-
아래 빨간 건물이 묵었던 호텔로 나찌아주머니가 계속 짓고 있는 건물이다.
카즈베기의 작은 교회-2018
게스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이 지은 호텔 옆에서 바라본 구로산과 스테판츠민다 마을.-2018
카즈베기 가느 길. 달리는 차안에서 찍다.(2010년)
주민센터 정보화 교실에서 "내 컴퓨터 다루기"란 강의를 받으며 혼자 시도해려다 잘못 누른 버튼으로 이번 여행 사진 백여장이 날라가 버렸다
바탕 화면에 깔아 놓은 프로그램조차 원인을 모른채 모두 날아가 버려 컴퓨터가 썰렁했다.
오래전 서유럽을 한달간 여행시 스페인 세비야 호스텔서 만난 필립핀계 캐나다 소녀는 카메라를 잃어 버려 울상이 되어 있었다.
십중 팔구 소매치기 당했으리라.
카메라는 잃어 버렸어도 모든 추억은 네가슴에 남아 있지 않냐고 위로해주었었다.
그때 위로 해주었던 것처럼 내자신이 나를 위로 해야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카즈베기를여행한 추억은 남은 기억과 아내 스마트폰에 남았을 몇장의 사진이다.
산 위의 Sameba 교회.카즈베기산,카즈베기 최고급 호텔 Rooms에서 본 전망 사진이 아쉽다.
다행히 과거 두차레 여행으로 찍어 놓은 사진이 조금 늦은 시기여서 눈이 쌀짝 덮여 이번 방문 보다 산들이 훨씬 좋다.
학자들이 나중에 글을 쓰며 참조문헌시 자기가 쓴 책이나 논문을 자기가 인용한다는 경우가 이경우일까.
과거 사진을 대신 게재하며 실수에 대한 공백으로 대신한다.
사진: Kazbegi 스테판 츠만다 마을과 Kuro 산.-2015
2015년 당시 있었던 많은 고가구들이 지금은 사라졌다.
마을 읍내 카페.(2015)
한밤에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하여 난감했던 때처럼 또한번 일이 꼬이기 했다.
Didube에서 카즈베기까지 90라리에 오기로 한후 카즈베기에 도착해 100라리를 주자 무척 기뻐한 기사.
운전을 잘했고 사람이 친절하고 좋았다.
우리가 가방을 끌고 가는 걸 보더니 차를 가져와 호텔 찾는 걸 도와준다고 차를 다시 타라고 했다
손바닥만한 마을에서 호텔이름을 정확히 아는 주민이 없어 한심할 지경이다
근처에서 내려 우리가 직접 찾기로 하고 서울에서 인터넷에서 본 지도를 상기하며 찾기 시작했다.
아내 스마트폰으로 받아온 유러피안 페게지 로밍은 무용지물이었다.
조지에서 공항에서 유심칩을 사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길아래 자리한 단층짜리 호텔,
뒤에서 보면 호텔방이 길 아래로 내려 앉았다.
정면에서는 아래길과 이어져 Booking.com의 사진과 일치한다.
호텔과 레스토랑을 같이하는 Easy 호텔.
할머니가 나오는 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방 두개를 보여주는데 길아래 방은 작은 두개의 싱글 침대로 약간 이상한 냄새가 났다.
다른 큰방은 더불 침대 두개가 있고 옛날 옷장이 있다.
담배 냄새에찌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아내가 질색을 했다.
두방다 우리가 예약한 150(U$58)라리에 상응하는 가격이 아니다.
트빌리시의 Laerton 고급 호텔 조차 아침 포함 170라리(U$65)였다.
일단 포기를 하고 취소하기로 작정한후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아는 카페를 찾았다.
3년전 방문 했던 카페다.
2015년 10월말 함께 차타고 온 미국처녀둘 ,폴랜드 커플들과 들렸던 카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값진 가구는 아니나 고가구를 배치하여 카페가 은은하고 편안했다.
그리다 만 것같은 그림은 여전히 걸려있었다.
주인의 친구가 준것이라고 전에 주인이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종업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보고서야 이나라가 빵값,잼값,따로 따로 받는 나라지 하고 실감이 난다
2015년 오픈시 유리창에 커튼이 드리워져있고 창가와 식탁엔 꽃들이 있었다.
트빌리시에서 사왔다는 고가구 식탁들이 몇개는 엉성해 보이는게 그 동안 조금 바뀐것 같다.
주인도 바뀌었을까.
메뉴중 힘들게 고른 송어 구이가 한참후 접시시에 올랐다.
음식을 시켜 놓고 잘못 시켰다는 경우도 드물어 아내에게 미안했다.
빵에 잼을 발라 간신히 허기를 채웠다.
숙소는 전에 두번 묵었던 "Gergeti" 마을 Nazi네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면 그만이라 천천히 쉬며 커피를 마셨다.
게르게티 마을-2015.
가운데 3층짜리 빨간 지붕이 우리가 묵은 Nazi네 호텔이다. 3년전 촬영시엔 공사가 중단 된채였다.
날라가버린 사진중 몇장을 찾았다.-2018사진
나찌 아주머니가 짓고 있는 호텔. 집뒤는 본인 집으로 이곳에서 Guest house를 처음 시작했다.
오른 쪽 집이 나찌 게스트 하우스로 지금도 여전하다 -2015
나찌네 집에 도착하자 낯익은 일하는 아주머니가 반기고 집에 없는 Nazi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세번째 방문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더니 아침 저녁 포함 75라리에 해주겠다고 .
본채 독실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 앞 호텔 2층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짓다만 호텔이 바로 나찌네 호텔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틈틈히 돈을 모아 짓고 있는 모양이다.
나찌 아주머니가 도착해 포옹하며 반갑게 환영한다.
내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라 요금도다시 70라리(33.000원)로 내려주었다.
두사람 아침 저녁 식사 포함이다.
3년이 지난 올해 10월초에 처음 오픈 하였다한다.
1층은 식당이고 2층객실만 영업하며 3층은 내년에 인테리어 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간에 큰 휴게실이 있고 화장실이 딸린 방은 싱글 침대 두개로 아주 깨끗해 마음에 들었다.
앞 베란다창으로 구로산의 멋진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시간을 내어 Facebook 을 통해 Booking.com 에 호텔 취소 통지와 더럽게 냄새나는 호텔임을 알렸다.
어떻게 그런 호텔을 추천 리스트에 올릴수 있는지 항의 내용과 함께.
2015년 10월
중심가 도로옆에서 구로산(Kuro )산을 마주 보고 있는 알렉산더 카즈베기.
조지아의 유명한 향토시인으로 알렉산더 카즈베기의 본성은 "초피카슈빌리"다.
러시아에서 준 '카즈베기"를 성으로 받아 아버지가 변성(變姓)했으며 산이름도 카즈베기로 명명했다.
Mountkazbegi는 조지아말로 MInkinvarlsveri라고 하며 <얼음을 머리에 이고 있는 >그런 의미다.
동산에서 길을 따라 100여미터 가면 시인의 기념 박물관이 있어 아내와 찾아갔으나 없어지고 말았다.
전시 물품이 내용이 좋았는데 이곳에 전폭적인 지원이 없는 이상 박물관 유지가 무리였나 보다.
구로산 밑, 인공으로 조성된 숲아래 큰 건물이 호텔 "Rooms"다.
개관한지 10여년 된 것으로 골조에 외관을 나무로 붙인데다 검게 태워 가까이 다가가면 언뜻 화재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아내에게 좋은 전망을 선사 하고 싶어 내가 도착하는 날 체크를 해보았으나 방이 없었다.
러시아 <우정의 탑>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박의 말대로 아침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마을을 지나 올라가는 길,
아내가 갑자기 "불박"이네 하고 소리쳤다
관광버스가 내려오며 박종완 사장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 떠나는 한국 관광객들을 전송했다.
카즈베기에서만 우연히 세번이나 만난 블라디미르 박과의 인연.
우연이 세번이나 겹친걸 보면 참으로 끈끈한 인연이었다.
쿠로(Kuro)산을 배경으로 본 사메바 성삼위 교회(2015)
호텔 Rooms에 도착했다.
전망 좋은 테라스. 그러나 커피를 마시기엔 너무 추워 레스토랑 옆 북 카페처럼 이어진 곳으로 갔다.
나무 바닥. 낡은 책들. 그런데로 잘 어울어진 친환경적인 호텔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성삼위 교회와 카즈베기 산을 보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계절에 카즈베기를 찾은 것은 행운이다.
때맞추어 내린 눈으로 온산이 하얗게 덮혀있다.
온세상이 연록빛으로 물드는 봄날이 아니라면 이세상의 순백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엔 이계절이 제격이다.
-2015
산언덕위 교회까지 도보로 트레킹을 한다면 편도 한시간 반이 걸린다.
약 2.6키로
Nazi 남편의 차를 이용하여 올라가기로 했다.
누구를 픽업한다고 산에서의여유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했다.
도보나 자동차나 같은 길을 이용했던 전과 달리 마을로 통하는 길은 한참 공사중이고 멀리 임시 우회도로로 차고 높은 Van 차량괴 SUV등이 힘들게 올라간다.
아스팔트를 깔고 주차장을 만들고 화장실도 만들고 .
산위에는 지금은 공사중이어서 모든 차들이 볼썽사납게 교회 밑에 바싹다가가 주차들을 했다.
카즈베기 영봉(해발5,047m)이다..정상엔 바람으로 눈이 날리고 있었다.-2015
아래가 게르게티 마을,건너 구로산 기슭이 "스테판츠민다" 마을이다.
스위스를 연상하게 하는 산골 풍경-2010
땅이 넓지않은 이곳이라 밭농사보다 목축업이 더 중요하다.
카즈베기 산봉우리(해발 5,047미터)
도중에서 만난 Anton과 Maria 부부. 벨룰루시에서 왔다.
귀국하여 그들에게 이멜로 사진들을 보내자 곧 답신이 왔다.
부엌에서 둘이서 미소를 지으며 행복했던 시간들을 보고 있다고 .
함께 동반하여 즐거웠고 나머지 여행도 멋졋으라고믿는다는 ......
카즈벸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오랫만의 사진.-2015
겨울 산수유 . 우리나라것 보다 크다.
3년전 왔을 때부터 마을은 Gas가 공급되어 살기가 한결 편해졌다.
전에 이곳 겨울의 삶은 혹독 했으리라 . 2010년 처음 방문시엔 개스가 없었다.
대신 Gas파이프를 설치하며 공사비가 많이드는 지하관 방식을 피하고 옥외로 개스관을 돌려 온동네가 노란 파이프로 둘러쌓였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어 집집 마다 이어진 파이프로 마을과 집들이 흉물스럽다.
한집에서 기르는 소가 아닌것 같다.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 해질무렵이면 각기 집을 찾아가는 잘 훈련된 소들이다.-2015
개발이란 명목아래 도로를 포장하고 부수고 자연적인 모습들은 사라져간다.
이런 풍경은 다시보기 어렵다
일찍 다녀온 덕분에 누렸던 호사였다..
소박, 경건,평화란 단어가 깨어지고 요즘 찾는 관광객들은 과거는 모른채 지나치리라.
게르게티 마을 표지판.
이도로를 10여키로 달리면 러시아 국경에 이른다.-2015
테르기(TERGI)강
" Market Google"주인 아주머니(우측)와 이웃아주머니들
뭐가 있을까 들린 미니 슈퍼.아직 물건 진열이 어설펐다.
박물관을 찾으며 돌아본 마켓Google 은 있으나 초라해졋다
당시 슈퍼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은 여전할까-2010년
그루지아의 대문호로 전원시인인 알렉산더 카즈베기(1848-1893년)박물관이 있었던 곳.-2010년
19세기 초 이곳을 러시아가 이곳을 '카즈베기'로 명명하자 알렉산더의 조부는 원래의 성" 초피카슈빌리'에서 카즈베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렉산더 카즈베기다.
2010년박물관으로 사용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알렉산더 박물관-2018.10월
박물관뜰에 남아 있는 알렉산더의 흉상-2018
그의 동상이나 흉상 앞에서서 그의 시 한편이라도 자기나라 말로 혹은 영어라도 번역하여 읽어 줄수 있는 가이드가 있다면 ....
그는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목동으로 보내며 시심을 키웠다.
누구나 그렇듯 고향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한다.
티빌리시에서 공부하고 레닌그라드(현재 쌍 페테스부르그),모스코바에서 창작활동을 했으며 기자생활도 했다.
말년 정신이상으로 병동에서 지내다 티빌리시에서 사망했다.
카즈베기의 시집
그가 즐겨 연주했다는 피아노-2010
Mount KazbeK으로 해발 5,047미터.
지나고 보니 이런 시간, 이런 풍경이 내게 큰 행운이었음을 알았다.-2015
학교에서 바라본 게르게티 마을과 사메바 교회-두 점으로 보인다.(2015)
바로 아래 스테판 츠민다 마을엔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들이 늘어났다.
도로 포장을 많이 했고 사는 집들도 많이수리하고 개축했다.
2010년 방문시 초등학교를에 올라 하교하는어린이들을 찍었던 사진.
이제 어엿한 청년,처녀들이 되었으리라
옛 학교 건물이 보이지 않고 새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 걸 보면 시대에 맞게 다시 지은듯.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잡는 포즈가 너무 자연 스러운 꼬마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화사한 겨울 옷을 입은 여자 어린이들-.2010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갈 수없으리"
스테판츠민다 마을을 걸으며 소설 제목이 갑자기 떠오른다.
변해가는 마을은 전처럼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시인 카즈베기(알렉산더) 동상.오늘은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2015)
방목하는 조지아 돼지. 저녁이면 정확히 자기집들을 찾아간다.-2010년
2015
2015
첫댓글 카즈베기의 아름다운 풍경들
천진남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첫사랑,첫키스 -모두가 처음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2010년 첫방문이 가장 좋았고 카즈베기에에 대한 이미지가 그 당시로 남아있습니다.
그후 2015년,올해 이렇네요. 만약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Mestia 와 카브베기를 다시 들려봐야겠지요.
@jb-lee 그치요 첫방문 첫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지요
카즈베기...참 멋진 풍경 입니다
@인천김종희 눈에 익은 곳이나 풍경만큼은 언제나 신선합니다
우리나라 산도 아름답지만 확연히 산의 모습이 다릅니다.
언제고 봄에 다시 가 볼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합니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지요?
게스트 하우스 할머니가 매우 반겨 주셨네요
카즈배기같은곳에 사는 사람들은 경관 마큼이나
마음이 포근 할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닌은 인도 리시께시 여행중 찍은 사진입니다
언제 이곳에 또 올수 있을까 하던 곳들도 몇번이나 가게되고 만나게되고 하더군요.
Nazi 집을 떠나며 이번이 마지막일런지 모르겠다고 인사를 나눈게 공연히 마음에 걸립니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어야 하는건데요.
가을 아닌 봄을 택하고 싶네요.
인도는 미루다 미루다 아직입니다.
jb님, 아련한 뭔가가 떠오르는 글과 멋진 사진들 잘 읽고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으로 카즈베기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는게 참 안타갑네요...
소박한 박물관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생애를 정신병원에서 보낸 전원시인인 알렉산더란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었지요.
위대하거나 그렇지않거나 한사람의 지나온 삶은 하나의 소설이요 위대한 연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