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최인호 님의 대담'
▦ 최인호
한때 저도 진심으로 출가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스님의 글 중에 계를 받은 후
승복을 입고 걸어갈 때 환희심이 넘쳤다는
구절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지요.
그래서 저도 어느 스님의 승복을 빌려 입고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압구정동 거리를 걸어 보았는데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승복을 입기 전의 내가 아니었어요.
▦ 법정
나도 출가하기 전에 친구와 함께
축성암이라는 절에 간적이 있는데
스님은 없고 가사 장삼이 걸려 있기에 한번 입어봤어요.
옷을 입는다는 것도 업인데,
뭔가 정답고 그 전부터 입었던 옷 같더군요.
그때 친구도 나를 보고 꼭 스님 같다고 그랬어요.
내가 처음 절에 들어가서
스님들 바리때 공양을 봤을 때도 정말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그때 어떤 스님은 내게 삭발을 부탁하기도 했어요.
한국전쟁 직후라 미군용 나이프를 갈아 삭도로 쓰던 때인데,
나는 생전 처음이었지만 스님의 머리를 아주 잘 깎았어요.
스님도 아프지 않다고 하고 그래서
'아 전생에 나는 중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금생의 출가 수행자들은 몇 생을 두고
그 길에서 지내다가 때가 되니
제 발로 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신학 대학에서는 정기적으로 학생을 모집하지만
옛날부터 스님 모집한다는 광고는 없잖아요.
승가대학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이미 승려가 된 이들이 다니는 곳이고
절에는 다들 제 발로 걸어 들어옵니다.
다 인연 때문이지요.
최 선생도 승복을 입었을 때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 최인호
네. 걸음걸이도 아주 반듯해지고
진짜 자유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출가는 못했지만요.
▦ 법정
전생에 한 번은 거쳤을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 소설도 쓰게 되었지요.
소재가 있다고 해서
아무 작가나 관심을 갖고 쓰는 것은 아니니까요.
▦ 최인호
저는 ‘길 없는 길’을 쓸 때 행복했어요.
경허 스님이라는 인물에 3년 동안
몰두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길" 이라고 지어 놓고 있었는데
사실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러던 중 수덕사에서 방을 하나 내주어 거기 누워 있는데
갑자기 '길 없는 길' 이라는 제목이 떠올랐지요.
마침 다음날 아침 사고(社苦)가 나가기로 했었어요.
그래서 급히 전화해서 제목을 바꿔 달라고 했죠.
그때 참 행복했었습니다.
▦ 법정
길 없는 길 제목이 참 좋습니다.
소리 없는 소리가 있듯이
불국사에는 옛 설법전인 무설전이 있습니다.
법문을 설함이 없이 설하고
들음이 없이 듣는다는 유마경의 내용처럼
‘길 없는 길’ 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이겠지요.
형상이 없는 길.
길이란 집착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니까요.
출처 :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