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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짝 양말들
박 영 준
1
오박사(吳逸祐)는 공항에 나올 때마다 옛날 학생 시절을 생각한다. 근 오십 년 전의 일이지만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러 P시에 가던 때부터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년 동안 방학마다 그는 말을 타고 P시엘 다녔다. 기차는 물론 버스도 다니지 않던 때라 말을 타지 않으면 종일 걸리는 백 리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말 부리는 사람이 채찍으로 신나게 말을 때리면 말이 목에 건 여러 개의 방울을 쩔렁쩔렁 울리며 반달음질로 뛸 때의 기분. 들판 신작로를 지나다가 동네를 통과할 때는 마부가 더 신이 나서 채찍질을 한다. 그러면 말은 머리를 흔들며 방울 소리를 요란하게 낸다. 같은 면내(面內)에서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말을 타고 다니는 학생은 자기 혼자뿐이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말을 타고 신이 나서 좋아하던 그때 비행기는 말로만 들었지 구경도 못 했었다. 그런데 오십 년 뒤인 지금 한국 사람들은 사말 제트여객기를 타고 외국을 이웃처럼 다닌다. 공항에서 여자들과 애들까지 비행기를 타고 외국 출입하는 것을 볼 때 오박사는 한국이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공항에 나와 딸 마리를 기다리는 동안 오박사는 여객기에서 내린 손님 가운데는 한국 사람보다도 외국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았다. 세관을 거쳐 출영 나온 사람들 틈으로 걸어오는 손님들이 한국 사람보다 외국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자 오박사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으나 십여 년 만에 만나는 딸의 모습을 찾기에 그런 생각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고몬 왜 아직 안 나와요?”
중학교 일학년에 다니는 손자 경두(敬杜)가 비행기 도착시간이 사십 분이 지나도록 자기 고모가 나타나지 않는 데 답답증을 느낀 듯 말했다.
“세관에서 조사를 받구 있는 거겠지.”
“남들은 다 나오는데요.”
“짐이 많으면 늦는 거야.”
오박사의 설명에 납득이 갔는지 경두는 더 묻지를 않았다.
사실은 오박사도 마리가 너무 늦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무슨 짐이 그리 많기에 남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마리만이 나오지를 않을까? 딸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그를 초조하게 했다. 십 년 만에 처음 보는 딸. 고국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돌아오기에 더욱 대견스러웠다.
“아버님, 저기 나와요!”
경두를 사이에 두고 옆에 서 있던 며느리 옥경(玉卿)이 여객들이 걸어나오는 쪽을 보며 말했다. 순간 오박사도 마리를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 틈을 비비고라도 앞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오박사는 마리가 가까이 올 때까지도 참고 서 있었다.
“고모 멋쟁인데, 엄마…….”
고모를 사진에서만 보고 실물을 처음 대하는 경두가 자기 어머니에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옥경이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경두가 몸을 움칠 하고는 오박사를 쳐다봤다. 자기가 혹시 잘못 말한 것이나 아닌가 해서 조금 질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박사는 다가온 딸 때문에 경두를 본 척도 안 했다.
“아버지.”
마리가 감격적인 표정으로 오박사에게 달려왔다. 오박사는 이런 때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세상은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 남들이 보는 데서라고 악수를 못 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육십 하고도 다섯이 더 된 자기의 체모가 그럴 수 없었다.
“왔구나…….”
십 년 만에 만나는 딸에게 할 수 있는 첫인사가 이것뿐이었다.
“아버지!”
마리가 오박사 품에 안겼다. 오박사도 마리를 안고 등을 쓸어 주고 싶었다. 목구멍이 막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이 바늘 끝처럼 따갑게 느껴져,
“올케하구 경두가 나왔다.”
하며 마리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마리가 옥경에게로 가서 손을 부여 잡고,
“안녕하셨어요?”
눈물 방울이 매달린 얼굴로 활짝 웃음을 보였다.
“먼 길을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사이지만 그들은 인사말을 똑똑히 주고받을 만큼 태도가 분명했다. 그래서 오박사는 경두에게,
“고모에게 인사를 해야지.”
하고 그들의 시선을 경두에게로 끌었다. 경두는 모자를 벗고,
“안녕하세요'”
마리에게 절을 꾸벅 했다.
“경두로구나.”
마리가 키스라도 할 듯이 경두를 끌어안았다. 누구보다도 마리에게 감격을 준 이가 경두였으리라. 마리가 미국으로 떠날 때 경두는 겨우 네 살밖에 안 되었었다. 그런데다가 그새 오빠가 죽었다. 오빠의 장례식에도 나오지 못했던만큼 경두는 마리에게 두 사람 몫의 감격을 주었을 것이다.
“컸구나…….”
마리는 경두의 뺨을 만지기도 했고 머리를 쓸어 주기도 했다.
2
다음날 오후 오박사는 학교에서 돌아온 경두를 데리고 서울운동장으로 야구경기 구경을 갔다. 원체 스포츠 구경을 좋아하는 오박사이었지만 생각할 일이 많을 때는 특히 운동장으로 가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스포츠 구경을 하는 동안 잡념이 있을 수 없지만 경기를 구경하는 틈틈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골똘히 생각하던 일의 매듭을 우연히 짓는 수가 많았던 것이다.
오박사는 마리가 돌아온다는 편지를 받은 뒤부터 마리의 상대가 될 남자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때로는 친구들을 통해 그 후보자를 골라도 보았다. 그러나 마리에게 내세울 만한 사람을 아직 물색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상대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원칙도 정하지를 못했다. 마리가 삼십 이내의 처녀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서른여섯 살이나 됐으니 그 연령에 너무나 제약을 받아 여자로서의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다.
말하자면 적령기를 넘긴 여자의 핸디캡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올 수 없었다. 그런 핸디캡을 가지고는 어떤 남자라야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사십쯤 된 총각이 있으면 가장 이상적이겠는데 그런 남자가 있다는 말은 별로 듣지를 못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나 그런 나이가 되도록 결혼 못 한 사람은 어딘가 결함이 있다. 결함 있는 남자를 미국서 대학 조교수까지 하다가 돌아오는 마리에게 후보자로 내놓을 수는 없다.
사십대의 남자라면 대개 한 번 결혼했다가 상처를 한 사람이다. 상처를 했다고 해도 전처 소생의 애만 없다면 모른다. 그런 사람이 희소하다. 좀 나이가 아래인 남자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것은 마리 편에서도 불응할 것이고 아무리 미국 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늙다리 처녀와 결혼할 똑똑한 젊은 녀석은 없을 것이었다. 서로 연애를 하는 경우라면 혹시 남자의 나이가 여자보다 아래라도 관계가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마리는 당장에 중매결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마리가 도착할 때까지 망설이기만 하다가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 것이지만 결혼하기 위해 귀국하겠다는 편지를 받은 지 달포가 넘도록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자기가 무능한 아버지 같아서 마리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마리가 은사들과 동창들을 찾아보러 나간 새 오박사는 혹시 어떤 아이디어가 우연히나마 떠오르지 않을까 해서 운동장엘 간 것이다.
야구는 한·미 친선경기였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 중 가장 강한 × ×사단과 한국 실업 팀 중에서 가장 강한 × ×은행과의 대전은 수많은 관중이 모인 가운데 이미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야구의 나라인만큼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 개 사단 군인 가운데서 뽑은 선수로 조직된 팀이 한 나라의 최강 팀과 싸워 이기겠다는 미국 군인팀을 보자 오박사는 자기 국가의 미약성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한국팀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는 자기가 구슬픈 것 같기도 했다.
무승부로 삼회가 끝나고 미군 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 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일루로 나갔다가 이루 스틸을 할 때였다. 한국 팀 캐처가 세컨드로 보낸 볼을 쇼트가 잡아 러너를 아웃시켰다. 심판이 아웃을 선언했을 때였다. 미군 팀 코치가 추심에게 타임을 요청한 뒤 이루로 들어가 심판에게 아웃 선언이 부당하다는 항의를 했다. 그래서 게임이 중단되었다.
결국 심판의 선언대로 러너는 베이스에서 물러나고 게임이 다시 진행됐지만 미군 팀 코지의 항의가 상당히 완강했었다. 그때 오박사는 상대가 미국 사람들이니 한국인 심판이 굴복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다. 그런데 심판이 심판의 권위를 끝까지 지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스포츠만은 독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라.
“할아버지, 미국 사람들이 치사하게 억지를 쓰지요?”
옆에 있던 경두가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이기는 사람들은 무엇에나 이기고 싶어하니까 그런 거겠지.”
오박사는 경두에게 동조하는 것이 그야말로 어른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 동조해 버렸다.
“억지쓰는 걸 보니까 지겠는데요.”
경두는 앞을 예상하며 말했다. 그 판단이 옳건 그르건 경두는 자기 연령에 어울리지 않게 직각 있는 판단을 내리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남긴 하나밖에 없는 후손이라는 점에서도 귀여웠지만 엉뚱한 판단을 곧잘 내리는 것이 더욱 신통해서 오박사는 언제나 경두를 데리고 다닌다. 그래서 그랬는지 경두는 오박사에게 있어서 손자라는 위치를 떠나 때로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삼 년 전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죽은 뒤 식구가 많지 않은 집안이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환갑이 지난만큼 재혼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남편이 죽은 지 육칠 년이 되도록 개가를 않고 시가에 머물러 있는 며느리를 볼 때 자기의 재혼은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쓸쓸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내와 같이 쓰던 방이 넓게만 보여 견딜 수가 없었다. 오박사는 결국 경두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왔다. 자기보다도 더 외로울 며느리에게서 경두를 뺏어오는 것이 잔인한 일 같았지만 머리가 커가는 경두가 독방을 쓰고 싶어하는 기미를 눈치채고 경두의 자유 의사에 맡기는 척하며 자기 방으로 이사 오도록 꾀었다. 경두는 독방을 요구하는 눈치였지만 오박사는 자기 방이 필요 이상으로 넓다는 것, 그리고 식구가 셋밖에 안 되는데 각기 따로 흩어져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서 은연중 자기 방으로 올
것을 희망했다.
어른 비슷하게 눈치 빠른 경두라,
“할아버지와 같이 있어야 성적이 좋아질 거야.”
스스로 계산하고 있었던 일인 것처럼 말했다.
“다 잊어버려서 뭘 알아야지?”
오박사가 겸손한 태도를 취했지만,
“할아버지는 박산데. 나 할아버지한테 영어두 수학두 다 배울래.”
경두는 오박사를 개인교수로 생각하려는 모양이었다. 오박사 방으로 이사하는 구실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리라.
어쨌든 경두가 오박사 방으로 이사를 하자 오박사는 덜 고독했다. 밤에 자다가 눈을 떴을 때 경두가 옆에 있는 것을 보면 방 안이 비어 있다는 생각을 안 해도 좋았다. 밥을 먹을 때는 몇 안 되는 식구지만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이 집 습관이다.
그래서 아내가 죽은 뒤 옆자리가 늘 비어 있던 것을 경두가 이사온 뒤부터 경두를 그 빈자리에 앉게 했다.
말하자면 잠잘 때나 밥 먹을 때 아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경두가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도 아니었다. 오박사는 경두의 학습을 지도하는 한편 그에게 바둑을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바둑 친구가 되고 있는 것이지만 스포츠 구경을 좋아하는 오박사를 따라 스포츠 구경을 시작한 경두가 지금은 오박사 못지않게 스포츠 팬이 되었다. 그러니 경두는 오박사에게 있어서 아내보다 더한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다.
경두가 있는 이상 재혼 같은 것은 염두에도 둘 필요가 없었다.
3
칠회까지 무승부였다. 팔회에 접어들었을 때 공격하던 한국 팀의 선수가 투런 홈런을 쳐 단번에 석 점을 얻었다. 한 시즌에 한두 개의 홈런을 치는 박× × 선수였다. 관중석은 야단이었다. 모든 관중이 일어서서 함성을 올렸다. 타자가 홈에 들어올 때까지 앉는 사람이 없었다. 오박사도 경두도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그 대신 미군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측은할 정도였다.
“할아버지, 입장료 값은 뺐죠?”
홈런 치는 것을 보았으니 입장료 값은 넉넉하다고 경두가 만족해 했다.
그런데 홈런을 내자 피처를 갈고 다시 경기를 계속하는 미군 팀을 보고 그들이 기력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오박사는 약간 미안한 것을 느꼈다. 동시에 며칠 전 시골서 올라왔던 사람의 말이 회상되었다.
오박사는 서울서 병원을 개업할 때 시골 부동산을 전부 팔았다. 선친들이 전부 돌아갔기 때문에 친척도 별로 없는 고향이다. 그래도 몇 해 전부터 그는 고향 동네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마을 지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고향엘 가기도 하지만 고향 사람들이 오박사를 찾아오기도 한다.
며칠 전 그곳 이장 곽용대(郭龍大)가 농협에서 개최하는 독농가 좌담회에 참석차 상경했다고 하며 오박사를 찾아왔다. 그는 우선 동네 이야기를 했다.
금년은 풍년이 들어 평년보다 이삼 할의 증수를 할 수 있다는, 그리고 삼포(蔘圃)와 과수원도 다 잘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몇 년 전부터 계획해 오던 기와 올리기 운동은 금년 추석 때까지 일단 끝낼 것을 보고한 뒤,
“추석날에는 공회당에 박사님 사진을 걸구 잔치를 할랍니더. 사진을 한 장 주셔야겠심더.”
하고 말했다.
“사진은 걸어 뭣 해? 그런 거 싫어하는 줄 알구 있잖아?”
오박사는 얼마 전 그들이 자기 비석 이야기를 할 때 단호하게 거절했던 일을 생각하며 말했다. 몇 해 동안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원조했다. 그 결과 둘째 단계의 목표였던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치기 운동이 끝나 가고 있다. 곽용대의 직접적인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오박사의 발의(發意)와 그의 경제적 원조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오 년 전 오박사는 선영에 성묘를 하러 고향에 내려갔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았다. 일본 사람들의 착취가 없는데도 가난이 계속되는 것을 본 뒤 이장 곽용대 씨를 불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오박사는 자기 힘으로 그 동네를 부홍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잘살게 하려면 논농사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각적 농사를 짓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고장에서 전부터 해오던 삼포와 양잠을 부흥시키기 위해 자금을 융자해서 다각농을 장려했다. 그리고 공회당을 지어 주어 정신계몽의 도장으로 삼게 했다. 그 밖에도 가마니틀이라든가 새끼 기계를 사주어 부업을 장려하기도 했다.
곽용대는 오박사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다. 곽용대의 아들은 청년운동을 맡고.
오박사는 동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조금 높아진 뒤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수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작년에는 기와 굽는 가마를 짓도록 하고 거기서 기와를 굽게 했다.
“칠십 호 전부가 기와집으루 변했심더. 와서 그걸 봐주셔야 안 하십니꺼.”
곽용대는 추석날 자기 동네로 초청할 의사까지 보였다.
“글쎄, 가고 싶기는 하지만 딸이 미국서 돌아온다는데 어떻게 될지…….”
오박사도 그런 때 한번 가보고 싶었다.
“꼭 오셔야 쓰겠심 더. 동네에는 또 딴 문제가 생겨서요.”
“딴 문제라니?”
“윤씨네와 송씨네가 싸움이 벌어질 것 같습니더.”
“무슨 일인데?”
곽용대가 요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이야기했다.
“윤송수라구 있잖습니꺼? 글쎄 그 첨지의 딸이 식모살이 한답시고 서울엘 왔다가 얼마 전 내려갔는데 말입니다, 글쎄 깜둥이 자식을 안구 오잖았습니꺼…….”
그래서 동네서는 그 여자를 내쫓아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 중 송씨네 가문에서 더욱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씨네 집안들은 내쫓으면 어딜 갈 것이냐고 동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송씨네 기세에 늘린 윤씨네들은 이장인 곽용대의 선처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순수와 순박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농촌 사람들이다. 만약 송씨네 가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윤씨네도 가만 있지는 않올 것이다. 만약 윤씨네 딸이 깜둥이가 아니고 황색 애를 낳았다면 내쫓으려는 소동까지는 벌이 지 않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그런 것도 안 되겠지. 그러나 지금은 농촌사회에서까지 윤리관이 변해 가고 있다. 그런 정도라면 용서까지는 못 해도 묵인쯤은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다만 윤씨네 딸이 낳은 애가 깜둥이라는 것이 문제다. 깜둥이나 휜둥이나 똑같은 것이겠지만 외국인의 피가 섞인 사생아를 농촌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농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도시에서도 깜둥이나 흰둥이는 황색 인종 틈에 끼여 활보를 할 수가 없다. 설사 불의로 태어나지 않고 떳떳한 결혼에서 얻은 애라도 그는 멸시와 천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오박사는 딸 마리가 미국에 가서 십 년 동안 취직해 있으며 귀국하지 않을 때 유색(有色) 손자를 보지 않을까 그것을 걱정했다.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마리가 서양 사람과 결혼을 한 뒤 그래도 고국이 그리워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귀국한다면 혼혈 손자를 품에 안지 않을 수 없다. 혼혈의 어린애를 안고 있는 자기를 상상하기가 싫었다.
다행히 마리는 한국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귀국했지만 고향 마을에서는 혼혈아 문제로 북새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깜둥이 애는 치욕과 모멸 속에서 자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관중의 박수 소리가 떠들썩했다. 수비를 하고 있던 미군 팀의 외야수가 홈런이 될 뻔한 볼을 점프하면서 용하게 받은 것이었다. 비록 적수라 해도 그 묘기에 감탄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관중의 박수를 받고 있는 미국 선수가 바로 깜둥이었다.
“흑인 중에 천재가 많다지요? 할아버지.”
경두가 물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 가운데 우수한 인물들이 나온다는 말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더라.”
오박사는 경두의 질문에 긍정을 해주며 곽용대에게 해준 자기 말을 회상했다.
“깜둥이라고 죽으랄 수는 없잖아? 동네서 못 살게 하면 그 모녀가 어딜 가겠나?
다시 양부인 노릇을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한 그 모녀에게는 갈 곳이 없으리라는 것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좁은 바닥에서 살면 그들의 천대는 더할 것이다. 그러나 손을 떼고 시골로 간 여자에게 다시 양부인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야구경기가 끝났다. 삼 대 이로 한국 팀이 이겼다. 오박사는 한국 팀이 진 것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움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대신 마리의 결혼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아이디어를 조금도 얻지 못했다. 신통한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마리와 의논을 하는 가운데서만이 아이디어가 떠오를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4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 여섯시쯤이었다. 아직 채 어둡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어수선해지는 시각이었다. 밝음과 어둠의 중간지대에 서게 되면 한낮에 느끼지 못하던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시간의 빠름에 아쉬움을 느낀다. 인생의 황혼을 넘어가고 있는 오박사는 이 밝음과 어둠의 중간지대를 가장 싫어한다. 어디로 가서 시간의 빠름을 잊도록 술을 마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정한 친구를 찾아가 끊임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오박사는 이날 운동장에서 바로 돌아왔다. 마리 때문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딸을 십 년 만에 만났는데 그미를 잊고 집을 나가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오박사는 마리가 벌써 집에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십 년 만에 왔으니 만날 사람도 많을 텐데 어째서 일찍 돌아왔을까? 오박사는 딸이 낯설고 소외감에 젖어 아무도 만나기를 싫어하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했다. 노처녀라고 하기엔 너무나 나이를 많이 먹었다. 서른여섯 해를 혼자서 보냈으니 그새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 고독이 고질화되어 결혼생활을 하면서까지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부부생활이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오박사는 그런 것을 걱정하며,
“만날 사람을 다 만났니?”
하고 물었다.
“모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구 몇을 만났을 뿐예요.”
마리의 대답은 담담했다.
“일찍 돌아왔기에…….”
오박사는 그미가 일찍 돌아온 데 혹시 어떤 연유라도 있음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뿐이라는 자기 변명을 했다. 그런데 마리는,
“한국은 참 좋아요. 오래간만에 만났다구 점심 사주는 사람이 없나, 저녁을 먹구 가라는 사람이 없나…….”
하고 아주 명랑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박사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서만 살다가 돌아와 첫날부터 제 나라를 싫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조국의 좋은 점이 그것뿐이냐는 뜻으로,
“그거야 보통 아니냐? 서양 사람은 그런 맛두 없니?”
하고 물었다.
“미국에서는 정식으루 초대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어요. 초대한다구 해서 가보면 겨우 차 한 잔과 과자 한 개 정도가 일쑤이기도 하구요.”
“한국 사람들이야 조금만 친하면 술 한잔쯤 예사로 사지. 명절이 돼봐라. 음식을 얼마나 나눠 먹는데…….”
“가난해두 인심은 좋은가 봐요.”
오박사는 조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졌을 때 그미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어떤 상대를 구하는지 그걸 알아야 내일부터라도 발을 벗고 나설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말 꺼내기가 힘들었다. 사전 준비를 전혀 해놓지 않은 미안감 때문이었으리라. 하기는 해야겠는데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마리가,
“아버진 ˙병원에 안 나가세요?”
하고 화제를 돌렸다.
“생각나면 가끔 나가지. 그렇지만 이제 진력이 나서 채용한 의사들에게
아주 맡기구 있다.”
“그래두 간판은 아버지 이름으로 있잖아요?”
“글쎄 간판까지 떼버릴 생각두 있다만 시설이 아까워서…….”
“웰(well), 그럼 제가 결혼을 한 뒤 아버지 병원을 맡아 보지요.”
“좋지. 나두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하구 있었다.”
“아― 대디(daddy) 댕큐.”
마리는 오박사를 쓸어안고 뺨을 비볐다.
오박사는 마리가 기뻐하는 것은 좋았지만 영어를 써가며 서양식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데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오박사는 마리의 기뻐하는 틈새를 타서,
“너 교제해 오는 상대라두 있니?”
하고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없어요. 이제부터 만들어야지요.”
마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무척 낙관적이었다.
“그럼 네가 물색할래?”
“아버지가 골라 주셔도 좋아요. 사람만 좋으면 연애를 해보다가 결혼하지 요.”
오박사는 마리가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때까지 후보자를 물색해 보지 않은 데 대해 크게 미안을 느끼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좋겠니?”
“사람만 좋으면 되지요 뭐.”
“그래두 조건이 있지 않겠니? 연령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 가정환경이라든가…….”
“나이는 저보다 위여야 할 거예요. 직업은 가릴 것 없구요. 제가 병원 일을 맡게 되면 남자야 돈이 없어두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말이다.”
마리가 말하는 조건은 모두가 수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혼을 찾느냐 그렇지 않으면 기혼 남자라도 무방하느냐는 문제다. 기혼 남자라면 자식이 몇 정도가 좋을지. 무엇보다도 그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물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이죠?”
마리는 힘들 일이 하나도 없다는 태도로 반문했다.
“그런데 말이다, 너보다 나이 많은 남자로 미혼 남자가 쉬워야 말이지.”
힘든 말이지만 그는 꺼내고야 말았다.
“한 번 결혼했던 남자면 어때요.”
“결혼했던 남자라면 애가 있을 거 아니냐?”
“애는 딴 사람이 기르겠지요, 문제 될 것 없잖아요?”
마리는 어디까지나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오박사는 낙관일 수가 없었다.
“서양에서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나라에서야 애들은 아버지가 맡게 마련이 아니냐?”
“그럼 고아원 같은 데라도 맡기면 되잖아요?”
“고아원?”
오박사는 마리가 조금 딱하게 생각되었다. 십 년 동안 조국을 떠나 있었다고 해서 조국 사정을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을까? 고아원이란 의탁할 데가 없는 그야말로 고아들만이 모이는 곳이다. 부모 중 한 쪽만 있어도 자기 자식을 고아원에 보내지는 않는다.
오박사의 난색한 표정을 보자 마리는,
“남의 애를 기르는 여자가 있어요? 전 그건 못 해요.”
자기 태도를 명확히 밝혔다. 자애로운 계모 노릇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 중 칠팔은 결혼이 불가능하다. 전실 자식을 안 보겠다는 여자와 결혼할 남자가 어디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외국물이 든 마리에게 남의 애까지 맡아 기를 수 있는 현모양처가 되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사위를 물색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좋은 사람이 나섰으면 좋겠다.”
오박사는 운명에나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서겠지요. 오늘 학교 선생님들한테도 부탁해 놓았으니까요.”
은사들에게까지 결혼상담을 했다는 마리의 대담성에 놀랐지만 오박사는 자기만을 의탁하지 않는 마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될 수 있으면 마리 자신이 자기의 신랑을 골랐으면 했다.
5
오박사는 마리의 결혼에 대한 책임감을 전적으로 느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부탁할 만한 친구들에게마다 사윗감을 부탁했다. 부탁할 때의 조건은 기혼 남자도 무방하나 전실의 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기쁜 소식처럼 말해 주는 사람을 소개하겠다는 후보자는 대게 한두 명의 애가 달렸다는 것이었다. 애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면 저쪽에서는 으레 애가 하나나 둘인데 어떠냐는 반문이었다. 애도 클 대로 다 큰 애니까 있으나마나 하다면서 놓치기 싫은 자리라고도 했다. 오박사도 큰 애가 하나쯤이면 문제가 안 될 것 같아 그런 후보자를 마리에게 알렸다. 그러나 마리는 애와 같이 사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했다. 그래서 애 없는 홀아비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일주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리도 성급하게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부탁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역시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마리가 만족해할 사람이 전혀 없을 것도 아니란 희망을 가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박사는 자기 모교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체면을 볼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모교에는 교수가 많다. 그 가운데는 홀아비 교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총각 교수도 있을 수 있다. 직접 가서 학장이나 병원장을 만나 부탁해 보자. 학장이나 병원장 모두가 아는 사람이니 사정 이야기를 하면 사위를 구하는 자기 심정을 이해해 주겠지.
조반을 먹은 뒤 집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며느리 옥경이 와서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을 했다. 혹시 병원으로 갈 환자가 원장인 자기에게서 진찰을 받으러 집으로 찾아온 것이나 아닌가 해서,
“어떤 손님이지?”
하고 물었다.
“애를 업고 온 젊은 여잔데 만나 뵙구 의논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병 때문에 찾아온 사람이면 병원으로 가라지 왜?”
“병 때문에 찾아온 것 같지는 않던데요.”
병 아닌 일로 자기를 찾아올 젊은 여자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의논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사람을 만나도 보지 않고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찾아온 여자를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여자와 동시에 여자 등에 업혀 있는 어린애를 보는 순간 오박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업혀 있는 애가 깜둥이었다. 며칠 전 곽용대가 찾아와서 이야기하던 윤첨지의 딸 바로 그 여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동시에 그 여자가 찾아온 이유를 직감하기도 했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응접실까지 들어온 그녀를 안 만난다 할 수가 없었다.
오박사는 그미에게 자리를 권한 뒤,
“망대리에서 온 윤첨지의 따님이시군?”
요담을 줄이기 위해서 그미의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렇습니더, 그런데 어떻게 절 아시는기요?”
젊은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이 오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딘가 조금 부족한 데가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오박사는,
“일전 곽이장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지. 그런데 의논할 일이란 뭐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물었다.
“글쎄 동네 사람들이 죽인다구 못살게 굴어서 쫓겨나지 않았습니꺼? 어딜 가서 살아야 할지 몰라 박사님을 찾아왔심더.”
초라한 그미의 몰골에서는 양공주가 발산하는 요염하다거나 음탕스러운 기미 같은 건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글쎄 낸들 어떻게 한담.”
오박사는 책임질 말이 하기 싫었다.
“아버지가 서울 가거든 박사님을 찾아뵈라캤는데 박사님이 모르신다면 어떡 허는기요?”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대두 글쎄…… 내한테 무슨 힘이 있어야지?”
오박사는 어디까지나 회피할 생각이었다.
“전 죽어두 다시 그런 일 안 할랍니더. 먹구 살게만 해주시소.”
양부인 노릇을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 갈 데가 없으면 그런 데밖에 갈 곳이 없는 여자 같았다. 오박사는 그미에게 다시 양부인이 되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애를 고아원에 보내구 당신은 어디 식모살이라두 하지.”
애도 살고 그 여자도 살 수 있는 방법을 귀띔해 주었다.
“식모살이는 좋아두요, 애만은 고아원에 못 보내겠습니더. 다시 없을 자식 아닌기요.”
“왜 다시 없을 자식이야. 애를 고아원에 보내구 혼자 살면 얼마든지 시집을 갈 수 있을 텐데…….”
“저 같은 가시나를 누가 얻어 갑니꺼?”
“천만에, 못생긴 얼굴도 아닌데…….”
“저 그런 말 믿지 않습니더. 한 번 속아 보지 않았습니꺼? 어린애를 데리구 살 수 있게 해주이소.”
“애를 왜 애 아버지한테 보내지 못하지?”
그미는 식모 자리를 소개해 준다면서 동두천까지 데리고 갔던 어떤 남자가 자기 얼굴이 예쁘다고 꾀던 말을 연상하는 모양이었다.
“애 애비가 어디서 사는지나 아는기요? 훌쩍 떠나구는 소식두 없는디요?”
어딘가 모자라는 데가 있는 여자 같았다. 애 아버지가 분명하다면 떠나갈 때 왜 주소도 알아두지 않았을까? 그리고 웬만하면 그 남자를 따라갔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애 아버지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예사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보라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딱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
오박사는 자기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그미는,
“전 선생님만 믿구 왔는데요.” ,
하고 오박사 이외에는 달리 의논할 데도 없다는 것을 억지쓰듯 말했다.
“그래두 낸들 어떡허겠나?”
“박사님만 믿구 안 왔는겨?”
그미는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때 며느리가 들어왔다. 깜둥이를 업고 온 여자니만큼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러 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 그미는 오박사에게 조언이라도 할 생각으로 들어왔올 것이다. 오박사는 정말 며느리의 조언이 필요했다. 그래서 젊은 여자의 사정을 설명하고 또 그 동안의 태화도 요약해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며느리의 의견을 물었다.
“딱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옥경도 묘안이 없는 것을 고백했다. 그러자 젊은 여자가 옥경에게 향해,
“이 댁에서 식모살일 하게 해주시소.”
마치 그걸 바라고 왔다는 듯이 말했다.
“식모가 있는걸요.”
그래두 젊은 여자는,
“이런 댁에 식모가 둘이면 어떻닌교?”
힘들지 않은 일을 힘들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오박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만이라도 집에 두고 애를 고아원에 보내도록 권유하자. 그 뒤 그미를 어디 식모 자리로 보내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다.
갈 데가 없는 그미를 쫓아내면 고향 사람들에게 몰인정한 인간이란 오해를 받게 될 것이다. 다만 며칠이라도 묵혀 보내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옥경을 밖으로 불러내어,
“무턱대구 내보내면 또 타락하게 될 거다. 며칠만 묵혀 두구 애를 고아원에 보내두룩 하자. 네 생각은 어떠니?”
하고 옥경의 동의를 구했다. 옥경이 어찌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 깜둥이가 눈에 거슬렸지만,
“할 수 없군요.”
자기 뜻도 그렇다는 듯이 대답했다.
옥경과 합의를 보자, 오박사는 젊은 여자를 옥경에게 맡기고 모교로 갔다.
6
마리가 맨 처음으로 만난 남자는 역시 아버지를 통해 소개 받은 S의과대학 조교수인 양성우였다. 삼 일 전 아버지와 S의대 학장이 중간 역할을 해서 만들어 준 자리에서 양성우를 만났고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었다.
양성우가 자기보다 나이가 겨우 한 살밖에 차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만이었으나 그가 총각이라는 것과 S의대의 조교수라는 것이 마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었다. 안경을 낀 키가 후리후리한 남자로 건강도 좋은 것 같았다.
N호텔 지하실 다방. 높은 테이블과 딱딱한 의자는 잠시 동안 용건을 이야기할 사람들만을 위해 마련된 장소 같았다.
그래도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찻값이 월등 비싼데도 이런 집을 찾아든다.
마리가 다방에 들어섰을 때 양성우는 이미 와 있었다. 그는 마리가 옆에까지 갔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앉은 채 마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여자가 앉을 때는 남자가 의자를 밀어 냈다가 앉는 순간 그것을 밀어 줘야 하는데 양성우는 미국 유학까지 했다면서 그런 예절을 아는 척도 안 했다. 마리가 의자에 앉자, 성우는 그때야 고개를 숙이며,
“지난번엔 실례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마리는 여자를 존중할 줄 모르는 성우가 못마땅해서 대답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성우는 그런 마리의 마음도 모르고,
“뉴욕에 계셨다지요?”
하고 미국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자기도 미국에 간 일이 있다고 하며 뉴욕 어떤 곳에 있었냐고 물었다. 마리는 묻는 대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좋은 데서 그냥 사시지 뭣 하러 나오셨습니까?”
마치 훈시나 하는 것처럼 말했다. 마리는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 감정을 표면에 나타내는 경박성을 경계하며,
“아무래도 제 나라가 좋지 않아요?”
웃음을 섞어가며 대답했다.
“여자는 대부분 거기서 결혼하구 눌러서 산다던데요.”
“그런 여자도 많은 것 같더군요.”
“일만 하시느라구 바쁘셨군요.”
비꼬는 말인지 기특해서 감탄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결혼을 안 하구 연구생활을 계속하려 했어요.”
마리는 성우에게 반발하고 싶었다.
“학교에 취직하구 계셨다면서요?”
“취직두 하구 있었지만 박사 코스도 하구 있었어요.”
“그럼 박사학위를 마저 따구 나오실 거 아닙니까?”
“여기서두 논문만 보내면 되게 됐어요.”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성우가 자기를 비판적으로만 보는 것이 싫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한국이 못마땅해서 다시 또 가고야 만다던 데요.”
그러니까 마리도 미국에 갈 것이 아니냐는 듯이 말했다. 결혼하고 머물러 살려는 사람보고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마리는 사십을 바라보면서 자기 인생의 고독을 느꼈다. 미국에서 결혼할 생각도 가져 보았다. 이왕이면 미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같은 병원에 있는 미국인 의사와 교제를 했다. 그 남자는 결혼을 신청했다. 마리도 응할까 했지만 아들도 잃고 없는 쓸쓸한 노인인 아버지의 업을 이어 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고국에 나와 살려면 한국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 또 결혼을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한다. 늙어 가는 자기 얼굴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우는 남의 마음도 모르고 딴소리만을 하고 있다.
“전 한국이 그리워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리고는 성우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은 왜 이때까지 결혼 안 하셨지요?”
“다 아실 텐데요.”
“짐작은 갑니다만.”
“박사학위를 얻구 또 교수가 될 때까지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결혼을 좀더 미루셔야 하겠군요.”
“너무 늙어 가는 것 같아서요. 그리구 학장 선생님이 권하시는 일이라…….”
이 말을 듣자 마리는 성우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학장의 소개니 마지못해 응했다는 것은 겸손도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좋은 일일 경우 그것을 마지못해 하는 척한다. 그것이 무슨 겸손인가? 도리어 상대방에 대한 모독이다.
이야기를 그 정도로 하고 헤어질 때 마리는 속으로 단념했다. 그리고 다방을 나오는데 성우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런 경우 문을 밀어 놓고 여자가 먼저 나가게 한 뒤 자기가 나가야 하는 예의도 모르는 남자다. 거리에 나와 그와 작별할 때 마리는 조금도 미련 없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7
일주일 이상을 설득시켰지만 동희(東姬)는 깜둥이 딸을 고아원으로 보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신앙과 같은 것이었다.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만큼 오박사로서는 그미를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식모 자리를 얻어 내보내야겠는데 깜둥이를 떼려고 하지 않으니 누가 그런 여자를 쓸 것인가? 공장 직공으로 취직을 시키는 길도 있기는 하겠지만 애를 집에 두고 공장 일을 하려면 애 보는 사람을 써야 한다. 공장 직공으로는 그런 비용을 벌어 낼 수가 없다. 그러니 막연한 채 동희를 집에 머물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희는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마음놓고 집안 일을 돕고 있었다. 식모와 같이 부엌 일을 하는 한편 마루나 방 소제는 식모에 앞서 자기가 맡아 했다. 그뿐도 아니었다. 옥경이 맡아 하던 오박사 시중을 도맡았다.
아침이면 오박사가 일어나기가 바쁘게 오박사 방으로 달려와 이부자리를 개고 세면소로 가서 칫솔에 치약을 쏟아 놓았다. 그리고는 세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수건을 건네주었다.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는지 오박사가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물샐틈없는 시중을 들었다. 밖에 나가려면 옷솔을 들고 와서 양복을 쓸어 주었다. 현관에 나가면 언제 닦았는지 깨끗한 구두를 바로 놓고 난 뒤 구두칼을 내민다.
갈 데도 없고 보낼 곳도 없는 사람이라면 집에 머물게 해서 시중을 들게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해주지 못하던 일. 그것은 며느리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것올 동회가 척척 해내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고민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시집을 가야 한다는 일이거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라는 일 같은 것을 생각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박사는 며느리 옥경이가 마음에 걸렸다. 내보내기는 해야할 여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해 내보내지 못하는 자기의 나약성이 옥경의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동희가 여자라는 점에서 더했다. 그미의 전 직업이라든가 또는 교양면을 생각할 때 상대도 안 되는 여자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다.
오박사는 동희를 증오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있지 않다. 아내 이상으로 세심하게 몸시중을 들어 주는 데 도리어 호감을 느끼고 있다. 동희 같은 여자가 있어만 준다면 아내 없이도 생활의 불편을 전혀 모르고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멸을 표하지 않고 도리어 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자기를 옥경은 여자의 눈으로 어떻게 볼 지 모른다. 여자는 여자에 대해서 눈이 예리한 법이다. 그래서 하루는 옥경을 불렀다. 그리고는,
“내보내기는 해야겠는데 어떡허지?”
하고 우선 동희 처리에 대한 옥경의 의견을 물었다.
“제가 뭘 알겠어요? 아버님 하시는 대로 따르겠어요.”
옥경은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래 둬둘 수야 없잖느냐?”
거듭 물었지만 옥경은,
“아버님 소견대루 하실 일인데요.”
하며 대답을 거부하는 태도였다.
“자기 위치를 잊구 안 해두 괜찮을 일까지 하는 경우가 있지?”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어떤 말에도 대답을 회피하려는 옥경의 태도가 수상했다. 역시 걱정했던 것처럼 자기를 의심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예순다섯이나 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젊은 며느리에게 오해를 받으며 살 수가 있겠는가? 자기는 동희가 있어서 불편을 안 느낀다는 것일 뿐 그 이상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박사는,
“나는 고향 윤씨네 집안 체면도 있구 해서 그러니 네가 알아서 동희를 내보내도록 해라.”
하고 자기가 동희를 내보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 동희 문제를 옥경에게 일임하는 태도를 취했다.
“갈 데 없는 여자를 전들 어떻게 내보내겠습니까?”
옥경이 자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이 집안 사람들이 모두 내보낼 수 없다면 누가 그 애를 내보내지?”
“좀더 둬두구 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어요.”
옥경은 시종 소극적이었다. 소극적이라기보다 동희를 내보내는 일에 참여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태도였다.
오박사는 그 이상 옥경을 추궁할 수가 없어,
“마리의 말을 들어 봐야겠군.”
딸의 의견을 듣고 처리할 뜻을 밝힌 뒤 옥경을 내보냈다.
마리도 거의 비슷했다. 그런 여자를 가지고 신경을 쓸 필요가 뭐냐 하며 있을 때까지 있게 하다가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옥경과 다른 것은 옥경이가 자기는 모르겠다는 데 비해 마리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뿐이었다. 자기 결혼 문제로 관심도 없을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의논의 상대가 안 되는 식구들뿐이니 오박사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옥경의 태도가 찜찜했지만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박사는 경두가 그래도 남자니까 의논의 상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두는 남자일 뿐 아니라 어린 편에 비해 엉뚱한 생각을 잘 하는 애다.
저녁때 경두와 이야기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혼자 앉아 있을 때였다.
동희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박사님, 큰일났심더. 애기가 까무라치고 있지 않습니꺼.”
무슨 변고가 생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데?”
오박사가 물었다.
“빨리 가십시더. 열이 펄펄 끓습니더.”
애가 앓는 모양이라 생각되었다. 오박사는 병원에 나가서 진찰하는 일을 그만둔 지가 몇 해째 되었지만 집안에 있는 청진기를 찾았다.
그런데 동희는 청진기 찾는 동안 참지 못해서,
“어서 가십시더.”
하며 오박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오박사가 청진기를 찾아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에 동희는 오박사가 발길을 빨리 옮기도록 팔을 끼고 끌다시피 했다. 오박사는 당황하지를 않고 침착하게 걸었다.
아침에까지도 애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었다.
어린애가 갑자기 열이 난대도 별 병이 아니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여유 있는 마음이어서 그런지 오박사는 자기 팔을 잡고 가는 동희의 손에서 전해 오는 감촉을 느꼈다. 그 감촉에 어떤 쾌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느낀 느낌에 그는 자기 비판을 안 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여자의 감촉을 아무런 비판 없이 향수하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손으로 쓸어 보는 틋한 착각까지 느끼며 역시 여자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찰한 결과 열이 좀 높다 해도 기관지염 외에 딴 병이 없음올 알았다.
“걱정하지 마. 감기야.”
오박사는 청진기를 떼면서 말했다.
“그래두 몸이 끓구 젖 먹을 생각두 못 하는디유…….”
“약만 먹이면 곧 나아.”
오박사는 어린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과연 까만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까말 수가 있을까? 먹으로 칠을 한대도 그렇게까지 까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까만 것과 누런 것 사이에서 나온 것이라면 까망과 누렁의 중간 색이 나와야 할 것이 아닌가? 먹과 물을 섞으면 묽은 색이 된다. 그런데 사람만은 그런 화학적 작용을 일으킬 수가 없는 것인지…….
혼혈아란 정신면에 있어서도 중간 위치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깜둥이라 해도 한국에서 한국 어머니 밑에 자란다면 한국적 정신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애는 한국에서 사는 것을 슬퍼할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자기 얼굴색과 같은 사람들을 동경할 것이 아니겠는가? 애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아버지 계통의 인종이 사는 곳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동희는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그 모성애를 본능처럼 가지고 있다.
오박사는 혼혈아를 기르다가 미국으로 보내는 사업체를 생각했다. 펄벅 여사의 재단으로 된 그런 단체가 있다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 단체에 교섭을 해서 그 애를 미국으로 보내도록 하리라 생각했다.
동희가 말을 안 들을 때는 강제로라도 보낸다. 그러면 동희가 슬퍼하겠지만 동희는 젊으니까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게 된다. 그때는 동회도 그 애를 약간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고 그 애는 자기 얼굴빛과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빛깔의 슬픔을 잊올 수가 있을 것이다.
오박사는 혼자 그런 생각을 한 뒤 약 처방을 써서 동희를 주었다. 그러자 동희는 앓는 애를 업고 병원으로 가려 했다. 병원이래야 백 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오박사는 주었던 약 처방을 도로 내라고 한 뒤,
“앓는 애를 업구 가면 안 되겠는데…….”
하고 식모를 불러 병원에 가게 했다. 깜둥이 애 업은 여자가 자기 집을 출입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기가 싫었던 것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오박사는 그 깜둥이 애를 완전히 처리하기나 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경두는 오박사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다.
오박사는 경두의 아이디어를 빌리려 한 것이 아니라 경두가 그새 그 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 감상을 묻는 정도로 말을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경두는 놀랍게도,
“할아버지, 그 애를 왜 죽이지 못하세요? 아무래도 불행해질 앤데 죽이는 편이 그 애를 위해 좋은 일 아녜요?”
하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 애는 어디서 사나 불행한 것만은 사실이다. 죽을 때까지 세상에 태어난 것을 비통하게 생각하며 자기를 낳아 준 사람들을 저주할 것이다. 그리고 오박사 자기는 의사다. 그 애에게 죽는 약을 아무도 모르게 먹일 수 있다. 그리고 사망 진단서를 꾸며서 쓸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어린애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품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바보스런 동희도 알 까닭이 없다. 그렇게 되면 저주스런 어린애의 일생은 비극이 시작되기 전에 종말을 고하게 되고 동희는 불가항력 앞에 자기 슬픔을 잊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 애는 지금 앓고 있다. 식모에 앞서 병원으로 가 자기가 직접 약을 지으면 일은 즉각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오박사는,
“너무 무서운 생각을 하는 애로구나.”
하고 놀랍다는 표정만을 지었다.
“할아버지두, 할아버지는 그 애가 살아서 행복해지리라 생각하세요?”
경두는 오박사가 도리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죽어야 하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불행할 때는 죽는 것이 마땅치 않습니까?”
“그래두 산 생명을 죽일 수는 없는 거야. 생각해 봐라. 세상에 자기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사람이 하나나 있니? 나올 운명 속에서 태어나온 것뿐이거든. 마찬가지로 한번 나왔으면 살아야 하는 운명 속에서 또 별수없이 살아야 하는 거야.”
“나올 때는 마음대로 나올 수 없지만 죽을 때야 마음대로 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다.”
오박사는 이렇게 경두를 눌러 놓았지만 속으로는 경두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린애를 죽이기가 힘들지 않다는 것, 그리고 어린애를 죽임으로써 그 어머니와 어린애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약을 적량보다 조금만 많이 먹이면 애는 고통도 없이 죽어 간다. 애가 그렇게 죽으면 동희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운명에 눈을 감을 것이다.
문제는 산 생명에게 치사량의 마약을 먹여 죽게 하는 자기 양심일 것이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남을 위해 양심을 꺾는 게 죄악일 수는 없다. 죄악일 수는 없지만 양심을 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박사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마음먹었다. 펄벅 재단 같은 데 그 애를 보내면 그 뒤 동희가 괴로워하고 어린애가 불행한 일생을 보내더라도 자기와 상관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응접실로 가 며느리 옥경을 불렀다. 펼벅 재단에 보낼 것을 제의하자. 그러면 옥경도 그것을 명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옥경에게 그런 말을 한 이상 깜둥이 애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을 안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펄벅 재단 이야기를 했는데도 옥경은 시원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대답을 해봐라. 네 생각은 어떤가?”
그래도 옥경은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다.
“내 말에 못마땅한 점이라두 있다구 생각하는 거냐?”
“아닙니다. 참 좋은 방법이라구 생각됩니다.”
“그 말 하기가 왜 힘이 들지?”
“힘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뭐냐?”
“…….”
옥경은 대답을 안 했다. 오박사에게 말 못 할 무엇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8
옥경은 점점 말수가 적어 갔다. 같이 있던 경두가 오박사 방으로 갔으니 같이 이야기할 사람도 없겠지. 그런데 오박사와 얼굴을 대할 때도 어려워만 하고 말이 없었다. 그 대신 동희의 수다는 점점 늘어 갔다.
평생 자기가 살 집이기나 한 것처럼 집안 살림에 참견 안 하는 것이 없었다. 마치 시어머니 없는 집안의 딸과 같았다.
마리는 점점 손님처럼 되어 가고, 오박사가 물색해 준 양성우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한 뒤 몇 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되어 가는 일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짙 수밖에 없었다. 오박사는 운동경기 구경과 바둑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어떤 친구를 집으로 오게 해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층 응접실에서 바둑을 두는데 동희가 맥주 두 병을 가지고 왔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눈치로 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십 분도 안 되어 한 번씩 들어와서는 커피를 가져 올까요, 과일을 가져올까요 하며 대집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같이 바둑을 두던 친구가,
“식모요? 식모룬 아까운 여잔데…….”
하며 감탄을 했다.
“식모는 아니구.”
“그런 따님이 없을 텐데.”
“그냥 기식을 하는 여자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형, 왜 장가를 안 드시우? 많이 불편할 텐데.”
그 친구가 불쑥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망발 작작 하시오.”
“늙어 혼자가 더 외롭답디다. 망발은 뭐가 망발이유? 요즘은 다 있는 일인데…….”
“어서 바둑이나 두시오.”
그들의 이야기는 그 정도였다. 그런데 바둑 친구가 돌아간 뒤 혼자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오박사는 자기에게 너무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할 일이 없다고 느끼는 것 그 자체가 고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둑 친구가 늙어 혼자기― 더 외롭다던 말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생긴 연쇄작용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병원에나 가볼까?’
병원에 나가면 진찰은 안 한다 해도 할 일이 많다. 병원이 잘 정돈되었는가 그것을 살피고 의사와 간호원에게 주의를 시키는 일만 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나가지 않던 것을 새삼스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새삼스럽게 병원에 관심을 가진 것 같은 인상을 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잘 되든 말든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을 고요하게 보내려던 결심이 무너진 것 같은 인상도 보이기가 싫었다. 먹을 만한 재산이 있다. 꽤 큰 빌딩이 두어 개 있고 제이한강교 근처에 땅도 만여 평 있다. 병원 아니라도 넉넉히 살아갈 수가 있다.
시골 고향 사람들이나 원조해 주며 악몽에 잡아넣는 그 구질구질한 환자를 보지 않으리라던 마음이 아직 변하고 있지 않다.
‘시골에나 한번 가볼까?’
오박사는 갑자기 고향 시골 생각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원조하기 시작한 그 동네가 지금은 어느 정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상이 되고 있다.
칠십여 호의 빚이 근 이백만 원이나 되던 것을 지금은 거의 다 물고 초가집들이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도 한 일이다.
오래간만에 성묘를 갔다가 동네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던 끝에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자기가 그 동네를 떠난 뒤 그 동네 사람으로 대학을 다닌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대학은 고사하고 봉급생활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오박사는 자기가 그 동네서 난 유일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경제적 여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좌우간 자기가 그 동네를 도와 줄 유일의 인물이란 생각을 하고, 어떤 의무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 방법을 생각했다.
그냥 돈으로 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넣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생산하는 사람에게 자금을 융자해서 생산 의욕을 돋우기로 했다. 다행히 고향은 인삼이 되는 곳이다.
옛날 오박사의 아버지가 인삼으로 돈을 벌었었다. 그런데 자금이 없어 그 인삼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삼포를 장려하고 그 자금을 대주었다.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자는 물론 원금도 받지 않을 심산이었다.
오박사는 그 중 지도적인 곽용대와 의논해서 삼포말고도 과수원을 장려했고 동네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양잠이라든가 채소의 조기 재배를 장려했다. 그리고 농한기에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부업을 장려했다. 사실 그 돈이란 몇백만 원도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농민들은 융자 받은 돈을 기일 내에 갚는다. 거저 준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최하의 이자와 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 돈을 딴 데 유용하지 않고 그 동네 분으로 놔뒀다가 필요한 때마다 융자를 해줬다. 오박사는 농촌에 투자한 돈을 아주 소비한 재산이라 생각하고 그 돈을 유용하게 쓸 방법만 생각했다. 그래서 이발소도 만들었고 공회당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기와 가마를 만들어 줌으로써 기와를 자급하게 해서 모두들 기와집을 짓도록 했다.
오박사는 자기가 현지에서 그들을 직접 지도하지 않고도 곽용대 같은 지도자를 통해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배출해 준 그 지방이 자기 힘에 의해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다는 데 자기의 삶의 보람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언젠가 시찰을 하러 고향에 갔을 때 고향 사람들이 그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종용했다. 자기들이 발벗고 나서면 당선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오박사는 시찰하기 위해서도 고향에 가는 것을 삼갔다. 어디까지나 뒤에 숨어서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었던 것이다. 고마움에 대한 어떤 보답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보답하려는 농촌 사림·들옴 대하기 싫은 것도 그들을 찾아가기 꺼려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풍년을 맞는 추석에 기와집 완성 축하회를 한다니 이번에야 안 갈 수가 없다. 기와집만으로 된 동네가 보고 싶었다. 초가집만의 농촌에서 초가가 하나도 없는 농촌이 얼마나 보기 좋을 것인가?
그러나 곽용대의 말이 생각났다. 사진을 한 장 달라던 그 말을. 그러니 이번에 내려가면 자기를 임금처럼 떠받들 것이다. 비석 세운다는 말을 다시 꺼낼지도 모른다.
‘내년에나 한번 가보지.’
오박사는 무료하게 방 안을 빙빙 돌았다. 방 안을 돌다가 문득 경두 책상 앞에 멎어 섰다. 그리고 책꽂이 위에 놓여 있는 작문 용지에 눈이 갔다. 경두가 쓴 작문인데 그 작문 용지에 빨간 동그라미 셋이 그려져 있었다. 글을 곧잘 짓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 작문지를 집었다. ‘나의 집’이라는 제목이었다.
우리집은 이층 양옥집이다. 방이 열 개도 넘는데 식구는 단 셋뿐이다. 집이 크니까 식구가 더 적어 보인다. 더구나 할아버지한테는 할머니가 없고 어머니한테는 아버지가 없다. 이층에도 양말 한 짝만이 있고, 아래층에도 딴 양말이 한 짝만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그래도 친구들은 우리집을 부러워하겠지? 그래서 나는 친구를 우리집에 한 번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집이 크고 깨끗하기만 하면 뭣 하는가? 수세식 변소엘 들어가면 너무 깨끗해서 소변 보기가 조심스럽다. 목욕탕이 있으니 싫어도 한 주일에 한두 번은 목욕을 해야 한다. 밤이 되면 도둑이 무섭다고 창문을 꽉꽉 잠근다. 시원한 바람도 쐴 수가 없다. 집은 커서 뭣 한담. 외짝 양말 같은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잃어버린 한 짝의 양말을 찾고 싶어하겠지? 그러는 것이 나의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한 짝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얼마나 불쌍한 양말들인가? 할머니가 있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있는 어머니였으면……. 가난해도 좋다. 내가 슬펴져도 좋다. 외짝 양말들이 아니었으면
하고 나는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오박사는 못 볼 것을 본 듯 작문지를 얼른 제자리에 놓고 책상 옆을 떠났다. 그리고 경두녀석이 참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애라는 생각에 다시 놀랐다. 외짝 양말! 특히 자기 어머니를 그렇게 보았을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었구나!’
오박삭는 이때까지 옥경에 대해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 사십도 못 된 여자다. 남편이 죽자 경두를 기르며 개가할 생각을 전혀 안 하는 데 오직 감사만 하고 있던 자기가 잘못이었다.
짝지어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안 하고 한국 여자는 옥경과 같은 경우 혼자서 늙는 것이 예사라고 생각했던 자기가 잘못이었다. 요즘 특히 침울해 있는 것도 결국 혼자 지내는 데서 오는 고독 때문이 아닐까?
경두의 작문을 못 본 척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날 조용한 시간에 옥경을 불렀다. 전부터 이야기를 하려했으나 이야기하는 것이 도리어 옥경을 무시하는 일 같아 이때까지 참고 있었다는 말을 한 다음,
“너 나를 생각해서 개가할 생각을 안 하구 있었지?”
하고 옥경이 듣기 좋도록 말했다.
“…….”
설사 그랬다고 해도 옥경으로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으리라. 오박사는 옥경의 대답을 기다릴 것 없이,
“내 걱정 할 것 없다. 아주 늙기 전에 개가를 해라. 내야 다 늙은 것 불편해서 혼자 못 살 일두 없다. 경두도 다 컸으니까 걱정할 것 없구.”
하고 구체적인 말을 했다. 그런데 최소한도 한 번쯤은 반대할 줄 알았던 옥경이,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오박사는 적이 놀랍고 섭섭했다. 자기가 권하려는 일이지만 옥경이 혼자서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크게 실망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깜짝 놀라거나 섭섭해하는 표정을 지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잘 생각했다. 그래 말이라두 있는 데가 있냐?”
“그런 게 아닙니다. 아버님을 위해 제가 이 집을 나가야 한다구 생각한 것뿐입니다.”
“뭐어? 나를 위해서? 아니 너 그런 논법두 있니?”
“백 명의 효자보다 한 명의 악부(惡婦)가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있기 때문에 아버님이 혼자 쓸쓸하게 사시는 것 같아 나가려는 거예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내게 열부(烈婦)인들 무슨 소용이냐? 그런 생각은 아예 말고 네 앞길이나 생각해라. 이유야 어쨌든 개가만 하면 그뿐이다…….”
“개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친정에 가서 살까 합니다.”
“그건 안 된다. 개가할 목적이 아니라면 친정에고 어디고 집을 나가지 못한다.”
“가서 혹시 마음이 변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또 별문제다만…….”
친정에 가서 마음이 변할 수 있다고 하면 동기를 무어라 하든 옥경을 보내야 한다. 자기 때문에 친정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 떠나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자기 입으로 친정에 가란 말을 했지만 옥경이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오박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아프고 서글펐다. 마음 같아서는 개가를 하지 말고 자기 집에서 경두나 기르며 같이 살자고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가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시 막을 수는 없었다.
오박사는 젊음의 고독을 참지 못하는 것이 현대의 윤리라고 생각했다. 그 윤리 앞에서는 의리도 애정도 돌보지를 않는다. 외국서 돌아온 새 윤리겠지만 그것이 빚어내는 비극이 또 얼마나 클 것인가를 걱정해 보았다. 옥경의 개가는 우선 경두에게 완전한 고아라는 비극적 운명을 가져다 준다. 옥경이 개가하는 한 경두는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할 것이니까 경두에게는 어머니마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살아 있는 어머니를 두고 죽은 것처럼 생각해야 하는 경두의 슬픔이 오죽할 것인가?
그러나 경두를 미끼로 해서 옥경을 붙잡기에는 예날 도덕의 힘이 너무나 미약하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경두르이 슬픔을 최서한도로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경두가 불행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옥경에게 생활비로 예금통장을 하나 새로 만들어주었고 또 그미가 가지고 갈 짐들을 전부 보내 버린 뒤 오박사는 경두의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하겠니? 어미가 내일 아주 떠나는 모양인데 너 울지 않겠니?”
경두는 아무 대답을 안 했다.
“어밀 따라가구 싶으냐?”
그래도 경두는 말이 없었다.
“똑똑히 말해라. 속은 어른이 다 된 애니까 그새 생각했겠지? 어미를 보내구두 할아버지와 같이 살 수 있겠니?”
그때였다. 경두가,
“할아버지가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몰었다. 그 말에는 오박사가 대답을 못 했다.
“할아버지두 엄마를 따라가실 거예요.”
정말 예상 못 했던 말이었다. 옥경이 할아버지가 혼자 살아야 결혼할 수 있다고 하며 경두의 마음을 꼬였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런만큼 오박사는 가슴이 썰렁했다. 그러나 경두의 결심이 선 것을 생각하고 자기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마음먹었다.
“마음대루 해라.”
하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버렸다. 다음날 아침 옥경 모자가 떠날 때까지 오박사는 혼자서 울었다. 옥경도 떠나면서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며 봉투에 넣은 편지 하나를 주었다. 오박사는 편지도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들이 떠난 지 얼마가 지나서야 봉투를 뜯었다.
아버님께 드립니다.
제가 개가하기 위해 친정으로 간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아버님의 외로움을 제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동희가 온 뒤 아버님의 얼굴에 약간 생기가 돌고 있음을 발견하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동희든 누구든 아버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딸이나 며느리가 아닌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있기 때문에 고독을 메우시지 못하며 사실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님은 아직 건강하십니다. 원하시면 여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루빨리 아버님의 고독이 풀리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동희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동희는 좋다는 뜻을 표했습니다. 제 생각이 아버님을 욕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에 빈부귀천이 없을 것 같아 한번 말해 본 것뿐입니다. 저의 경거망동을 용서해 주십시오.
언제까지나 아버님께 건강과 행복이 있으시기 비옵니다.
옥경의 편지를 읽자 오박사는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옥경이 개가를하기 위해 의리와 애정을 져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래도 의리와 애정이 배신당하지 않았다는 따뜻한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희와 예순다섯 살의 자기. 그런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기를 바라서 이때까지 같이 살던 집을 버리고 가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처구니없게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자기와 동희를 견주어 보는 오박사였다.
나이뿐이 아니다. 양부인의 전력을 가진 여자다. 어림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단정했다. 그런데 옥경의 권유에 동희가 동의를 했다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기가 요구만 하는 경우 일은 문제 없이 성사한다. 전력이 어떻든 꽃처럼 젊은 여자다. 어디서 그런 젊음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양부인이라 해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정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하던 여자보다 나을지 모른다. 깜둥이 애가 문제지만 경두 말처럼 그것은 처리해 버릴 수도 있다. 악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펄벅 재단에 보내면 그뿐이다. 오박사는 될 수 없다는 편과 될 수 있다는 편 가운데 자기가 어떤 편에 기울어지곤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될 수 있다는 편보다 되게 하고 싶다는 편에 가까운 것 같음을 느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동희에게 권유까지 했다지만 옥경이 알면 뭐라고 그럴까? 마리는 또 어떻게 생각할 것이고. 시골 고향 사람들이 알면 발칵 뒤집힐 것이다.
9
마리가 귀국한 지 한 달도 채 못 되는 어떤 날,
“저 다시 미국으로 가겠어요.”
뜻밖의 말을 했다.
“그렇게 결심을 했니?”
오박사는 어이가 없었다.
“결심을 했어요.”
“이유는 뭐지?”
“한국에는 결혼할 만한 남자가 없어요.”
“몇 사람이나 만나 봤는데…….”
“어쨌든 한국 남자는 싫어졌어요.”
“적령기가 지난 너의 조건이 나쁘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좀더 두구 물색해 보면 마땅한 남자가 나올지두 모른다.”
“소용없어요, 암만 만나두. 한국 남자들은 전체루 에티켓이 없어요. 그리고 이기적 이구. 그런 사람과 어떻게 결혼을 해요.”
“어떤 나라 사람은 이기적이 아니냐?”
“미국 사람들두 이기적 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에티켓을 알아요. 그리고 의무감이 강하구요.”
“그래두 한국 사람을 일반적으루 예의바르다구들 그러잖니?”
“아무리 예의가 바르면 뭣 해요? 여자를 존중할 줄 모르는데·…….”
“그래?”
오박사는 어의가 없어 말을 못 했다.
“야만인들이에요.”
마리가 흥분해서 울먹이었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한 모양이었다. 오박사는 마리가 남자들에게 모욕당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팠다.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모욕할 수 없는 여자다. 마리가 귀국했을 때 어떤 신문은 그미를 칭찬해서 사진까지 싣고 보도해 주었다.
그런데도 여자로서 또 결혼의 상대로서 남자와 일대일의 교제를 가질 때는 모욕을 당했다. 그것은 서른여섯 살까지 시집을 보내지 않은 자기의 죄다. 만약 마리가 이십대의 젊음을 가졌다면 누가 그미를 모욕하겠는가?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오박사는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만은 알아둬야 한다.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이 다른 점은 애정의 표현방법이다. 애정 그 자체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서양 사람은 애정의 표현을 눈에 드러나게 잘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것을 잘 못 하지. 말하자면 형식적인 기교가 부족하다. 그것으로 애정 자체가 부족하다구 생각해서는 안 돼. 몇천 년 동안 한국 여성들두 남자들의 애정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여자들이 노출된 애정밖에 볼 줄 모르구 그 이상 볼 생각두 않는 것은 서양식 형식성 때문이다.”
“아무래두 좋아요. 전 미국으루 갈 테니까요.”
“좋두록 해라. 할 수 없는 일이겠지.”
오박사는 마리를 붙찹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리는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가 지어 준 이름 혜정(惠貞)을 마리로 고쳤다. 이름까지 서양식으로 고친 마리가 한국적인 것에 향수를 느낄 까닭이 없다. 결혼 대상으로 남에게 떳떳이 내놀 수 없게 되도록 시집을 안 보낸 자기의 잘못을 뉘우칠 뿐이었다.
“그럼 미국 사람과 결혼할 셈이냐?”
“그러겠어요.”
“점찍구 있는 사람이라두 있니?”
“있어요, 고국에 가서 아버지 승낙을 받구 온댔어요.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오박사는 그 남자에 관한 것을 물으려 하지 않았다. 너무나 마음이 허전했던 것이다.
“병원이랑 내 재산은 어떻게 하지?”
오박사는 아버지로서 마지막 말을 물었다.
“경두가 있잖아요? 언제건 돌아온다구 생각해요. 그 애에게 주세요, 그것이 당연한 일이니까요.”
재산까지 포기하는 마리였다.
그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마리는 여러 남자 가운데서 김연오라는 사람을 좋게 생각했다. 마흔다섯 살인 그는 어떤 대학의 교수였다. 결혼했던 여자가 죽었다. 애는 낳아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만났다. 김연오도 그미에게 호감을 보였다. 그래서 하루는 길을 걸으며 그의 팔을 끼었다.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김연오는 자기 팔을 낀 마리의 손을 잡아 내리며 ‘이건 곤란해’ 하며 당황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볼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남의 이목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리는 그것을 노상의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노상에서 여자를 모욕할 수 있는가? 남의 이목이 무서우면 조용한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지 어찌 노상에서 상대를 창피하게 만들 것인가? 노상에서 모욕을 주는 남자하고는 교제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양성우에게서 환멸을 느낀 뒤 김연오에게서 모욕을 당하자 한국 남자들에게 정이 떨어졌다. 소위 대학 교수들이 이러니 딴 남자들이야 어떠하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예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지만 그런 사유를 듣고도 오박사는 마리를 붙잡지 못했다.
마리의 머리는 어떤 관념에 고정되어 있다. 그 고정된 관념은 어떤 방법으로도 고쳐질 수가 없다.
10
마리가 떠난 뒤 오박사는 완전히 혼자였다. 혼자라는 것은 싫었다. 혼자라는 것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박사는 불나비를 생각했다. 혼자 살아도 살 수 있을 것인데 밝은 빛이 그리워 불로 날아든다. 죽어 가면서도 불로 날아든다. 얼마나 혼자가 싫기에 죽음의 공포까지 잃고 불로 날아드는 것일까?
오박사는 마음을 돌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위를 해보았다. 아내와 아들은 죽었다 해도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리가 갔고 옥경과 경두가 갔다 해도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거리 속에 살고 있다. 거리가 떨어져 있을 뿐이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혼자가 아닌 것이 아닌가?
그러나 떨어져 있는 그 거리를 메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는 지척이 천 리도 될 수 있다. 그 거리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는가? 역시 고독해야만 했다. 거리를 메울 수 없는 고독은 결국 혼자라는 고독과 비슷한 것이었다.
커다란 집이 을씨년스러웠다. 빈 창고들처럼 방마다가 썰렁했다.
오박사는 빈 궁전에서 혼자 사는 왕을 생각해 보았다. 부족한 것이 없다. 많은 국민이 그에게 존경심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넓은 궁전 어디를 가도 따뜻하게 웃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는 마침내 유폐되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유폐되었다는 생각은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약한다. 거리로 뛰쳐나가 본다. 그러면 국민들은 모두 걱정을 하고 그를 궁전으로 다시 모셔다가 앉힐 것이다. 뛰쳐나갈 수도 없다.
오박사는 바둑을 두러 나간다. 스포츠 구경을 한다. 유폐된 왕보다 훨씬 자유스럽다. 그래도 외로웠다. 외롬을 느끼고 있을 때 동희가 접근해 왔다. 고마운 일이었다. 자기에게 따뜻함을 주는 오직 한 사람이었다.
“선생님, 옷을 갈아입으시소.”
어제 갈아입은 내의를 갈아입으라고 한다.
“그건 자주 갈아입어서 뭣 하니?”
옷이나 자주 갈아입는다고 해서 외롬이 가실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너 나와 같이 살지 않을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입에서 나오지가 않았다.
“빨리 갈아입으시소. 제가 입으시라 하잖습니꺼?”
동희는 옷을 입혀 주기라도 할 듯 두 손에 든 내의를 내밀었다.
“고맙다.”
오박사는 동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기를 그만큼이라도 생각해 주는 사람이 동희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선생님두, 고맙기는요?”.
동희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었다.
순간 오박사는 동희를 끌어안았다. 모든 것을 망각한 감정의 발로였다. 인간을 느끼게 하는 감정 교류를 이겨 내치 못했던 것이다.
동희는 손에 들었던 옷들을 떨구었다. 그래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오박사 품에서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보였다, 오박사는 동희의 뺨에서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갑촉을 느끼고는 이것이 일마 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동희를 풀어 놓고 아랫목으로 가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는,
“갈아입을게 놔두고 가.”
동희를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동희가 나간 뒤 오박사는 동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외롭지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동희는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해줄 수 있는 여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깜둥이를 처리하자. 그리고 정식으로 의사를 표명하자.
동희가 나간 지 십 분이나 됐을까 했을 때 오박사는 다시 동희를 불렀다. 혼자 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동희가 바쁜 걸음으로 달려왔다. 무엇인가 말을 해야겠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 일도 없이 부른 자기가 우스워 그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고 웃고 있을 수만 없어,
“나 커피 한잔 줄래? 응접실루 갖다 줘.”
그리고는 응접실로 갔다. 물 끓이는 시간이 왜 그리 오랠까? 오박사는 부엌으로 가고 싶었다. 부엌에 가서 동희와 함께 부엌 일을 하고 싶었다.
옛날 신혼 당시 오박사는 잠시나마 아내와 떨어져 있기가 싫어 부엌에 나가 곧잘 일을 도와 주곤 했었다. 그때 아내는 부엌엘 다 나오느냐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했지만 역시 같이 있어 주는 것을 좋아했었다. 동희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주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책을 부릴 수는 없었다.
동희가 커피와 케이크 한 개를 가지고 왔다. 시키지도 않은 케이크까지 가지고 온 동희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이건 동희 먹어.”
하고 케이크를 동희에게 주었다.
“어서 잡수시소. 저야.”
“아니다. 난 안 먹어. 어서 받어.”
오박사가 내밀어 주었다. 동희는 할 수 없이 받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먹을 생각을 안 했다.
“여기 앉아서 먹어.”
오박사는 동희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혔다.
그날 밤 동희가 자리를 펴려고 방에 들어왔을 때 동희가 있는 데서 잠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다 깔아 놓고 나가려는 동희를 불러 요 위에 앉혔다. 부끄러워하는 동희를 그냥 끌어안았다.
“이래서 되겠습니꺼?”
동회는 아무 반항을 하지 않았다.
11
다음날 아침 식상을 들고 들어온 동희를 옆자리에 앉힌 오박사가,
“이젠 나하구 같이 사는 거다.”
그것이 기정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
“그래두 되겠습니꺼?”
동희는 차마 자기가 바랄 수 있는 일이냐는 듯이 말했다.
“이제 할 수 없는 일 아니냐? 마음놓고 살두룩 해.”
“아기두 내가 잘 길러 줄 테니까…….”
“네?”
동희가 놀라는 눈으로 오박사를 쳐다봤다.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오박사 자신도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밤 사이에 결정한 데는 오박사 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동희를 범하고 나자, 그는 인생을 새로 맞이하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새 인생이었다. 말하자면 동희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던 茨이다.
그런데 어린애를 펼벅 재단에 맡기면 동희가 자유로운 몸이 된다. 깜둥이를 눈앞에서 없애는 것은 어떤 면으로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동희가 자유의 몸이 되면 자기를 떠날 가능성이 있게 된다. 어떤 기회에 어떤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칠지 모른다.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오박사는 밤새 생각했다. 동희를 놓치지 않는 길은 깜둥이 어린애를 데리고 같이 사는 것뿐이라고. 그 어린애와 같이 사는 한 동희는 아무한테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게 밖에 내보내지를 않고 집 안에서만 기르자. 그러면 아무도 알 서람이 없다. 그새 동회가 자기 애를 낳게 되면 그미의 애정이 새로운 애에게로 쏠린다. 그때쯤 해서 깜둥이를 펄먹 재단에 보내자.
그러면 동희도 덜 섭섭해할 것이요 또 새로 난 애 때문에 딴 데 갈 생각을 안 할 것이다.
“모든 걸 내게 맡겨. 동희가 슬프지 않게 해줄 테니까…….”
“제가 뭘 압니꺼?”
동희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오늘부턴 식모가 아니라 이 집 주인 행세를 하란 말야. 알았지?”
“그래서 되겠습니꺼?”
“안 될 거 하나 없어.”
이렇게 해놓자 오박사는 자기가 혼자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조금도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운동경기는 없는가? 그는 스포츠 구경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신문을 뒤적였다. 오늘이 바로 아시아 여자 농구경기가 있는 날임을 알자 그는 신나는 게임을 보게 되었다고 혼자 즐거워했다.
오박사가 장충단 체육관으로 가려고 할 때 뜻밖에도 경두가 찾아왔다. 자기 어머니와 나간 뒤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경두가 왔구나.”
그는 경두를 얼싸안았다. 자기를 떠나간 경두를 오래간만에 만났는데도 오박사는 조금도 역겨워하지 않았다.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엄마두 잘 있니?”
“네!”
“새아버지 얻는단 말 없던?”
“그런 말 못 들었어요. 저두 속으로는 그러길 바라구 있는데.”
“그게 정말 네 진심이냐?”
경두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했다. 오박사는 경두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새아버지를 얻기는 얻어야 할 텐데…….”
할 뿐 그 이상 더 말을 못 했다.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얻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과 그러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의 비중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는 경두에게 확고한 자기 태도를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개가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이 경두의 진심일 것이다. 진심인데도 그것을 감추고 어머니의 개가를 바라는 듯 말했다가 할아버지가 추궁하는 바람에 확답을 못 하는 경두의 마음을 더 괴롭힐 수가 없어 오박사는,
“바둑이나 둘까?”
하고 화제를 돌렸다.
“오늘 여자 농구경기가 있잖아요?”
경두는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오박사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사실은 거길 갈까 하구 나가려던 참이다. 가자.”
그래서 그들은 장충단 체육관엘 가기로 했다. 외출복을 갈아입기 시작할 때 오박사는 동희를 부르려 했다. 외출한다는 것도 알려야 하지만 옷을 갈아입는 데 시중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두에게 딴 눈치를 보일 수가 없어 그는 혼자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현관에 나설 때야 동희를 불러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동희는 현관 바깥까지 따라 나오며 돌아와서 저녁을 잡숫겠느냐 물은 뒤 안녕히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다. 그때 오박사는,
“와서 먹구말구. 두어 시간 뒤 올게.”
하고 대답했다. 오박사는 식모를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말했으나 경두가 달리 눈치채지나 않았을까 약간 마음이 켕겼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경두가,
“엄마가 할아버지 결혼하셨나 살펴보구 오랬어요.”
하고 오박사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어떤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래 살펴봤니?”
“살펴봤는데두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가 결혼을 할 것 같으냐?”
“하셔야 한다구 그러던데요, 엄마가.”
“네 생각 말이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다 늙은이가 결혼이 뭐냐? 안 그래?”
“제가 알아요?”
경두는 자기 어머니가 재혼 안 하기를 바라듯 할아버지도 결혼 안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도 모른다고 대답을 회피한다. 오박사는 이야기하기가 난처했다. 그래서,
“엄마가 살펴보라고 했다면서 넌 왜 할아버지한테 그걸 직접 물어보지?”
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할아버지한테 숨기구 싶지가 않아서요.”
“기특하다. 가서 그런 것 같지 않더라구 말해라.”
“할아버지, 그런 거 안 하시죠?”
경두가 묻는 말투로 그것이 그의 희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희망을 가진 경두에게 실망을 줄 수가 없어 오박사는,
“걱정 마라.”
하고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눈앞에 있는 경두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꾸며 대기는 했으나 탄로되고야 말 거짓말에 오박사는 스스로 불안을 느꼈다. 어린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떳떳지 못한 자기의 내면생활. 그 속에는 동희를 남에게 뺏기지 않기 위한 ㅎᅟᅳᆨ막까지 들어 있다.
체육관에 들어가 열띤 경기를 구경했지만 이날처럼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날이 없었다.
12
다음날 오박사는 동희의 애를 딴 방으로 격리시켰다. 식모의 방을 이층 가장 구석진 방으로 옮기게 하고 동희의 애를 거기서 재우게 한 것이다. 어떤 방에든 집 안에 있게 하기야 마찬가지지만 신경을 덜 쓰기 위함이었다. 이때까지는 동희와 깜둥이 애를 자기 방에서 자게 했었다. 깜둥이를 볼 때마다 그렇게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두에게 거짓말을 한 뒤 깜둥이 애를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 애를 볼 때마다 거짓말한 자책이 짙은 색으로 변했다. 차라리 그 애만 보지 않아도 조금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동희에게는 두 사람의 생활을 좀더 자유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위장을 한 뒤 애를 격리시켰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떨어진 방에 두는 것이 신경을 덜 쓸 것이 아니냐고 이층 구석방으로 보낸 것이지만 오박사의 속셈은 어린애의 울음 소리가 밖에서도 들리지 않게 하고 싶은 데 있었다. 애가 아래충에 있으면 아무래도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가 쉽다. 좌우간 자기 집에 깜둥이가 살고 있다는 말이 밖에 새어 나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애기가 아니고 어른이라면 깊숙한 방에 가두고 그 방을 유폐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동희는 오박사가 시키는 대로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것은 불만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오박사가 어린애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박사가 그 애를 안아 주거나 귀여워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러는 거지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던 것이 오박사와 한방에서 자게 될 때부터 오박사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깜둥이가 아니라 해도 남의 애를 옆에 끼고 자는 것이 좋을 까닭이 없다.
말로는 그 애를 그냥 데리고 있으라 하지만 그 애 때문에 자기가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쫓겨나기는 싫었다. 동희는 시골서 송씨네들이 자기 아버지를 못살게 굴던 일들을 생각했다. 별별 사정을 다 해보았지만 아버지를 때리기라도 할 듯이 떠들어 대던 송씨네들. 동희는 무서워서 방 안을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린것을 죽인다고 대드는 것이 아닌가? 동네에서 나가지 않으면 깜둥이를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방 안에서 듣기만 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송씨네들은 손에 몽둥이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동희는 어린애도 또 자기도 맞아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아직 동네 사람들이 거동하기 전 동희는 애를 업고 동네를 빠져 나왔다.
“서울루 가거라. 오박사를 찾아가서 의논을 해봐라.”
동구까지 나와 귓속말처럼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오박사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 고대광실 같은 집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다. 이 집에서 또 쫓겨나다니…….
그렇지 않아도 동희는 오박사의 집에 온 날부터 쫓아내지만 말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키지 않는 일까지 했다. 잠을 자지 않고라도 시키는 일만 있으면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박사가 어린애를 식모 방에서 재우라고 한다. 명령에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박사가 어린애를 미워서 그러는 거다. 조금 있으면 애도 내쫓고 자기도 내쫓을 것이다.
그날 밤 동희는 오박사 품속에 있었다. 오박사가 따뜻한 손으로 동희의 등을 쓸어 주었다. 등뿐 아니라 온몸을 쓸어 주었다. 그리 고는 동회를 꼭 껴안아 주는 것이었다. 동희는 오박사의 손길이 가는 곳에서마다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이분이 나를 내쫓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애기를 어디다 줄 데는 없겠습니꺼?”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때 오박사가,
“안 돼, 줄 데가 어디 있어?”
무섭도록 딱딱하게 말했다.
“왜 없을라꼬요? 선생님두…….”
그때 오박사는 팔에 힘을 주어 동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선생님 이 뭐야? 밤낮 선생님인가?”
하고 이야기를 딴 데로 돌렸다.
“남편이야.”
오박사는 손가락으로 동희의 볼기를 꼬집기까지 했다.
동희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박사보고 남편이라고 부르라니? 그러면 자기는 오박사의 부인이 아닌가? 세상에 이런 희한한 일도 있을까? 동희는 오박사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동희는 못 들은 척했다. 무엇으로든 방해당하고 싶지 않은 행복이었다. 그런데 울음 소리는 계속됐다.
“가봐.”
마침내 오박사가 그미를 밀어 냈다. 귀찮은 태도였다. 할 수 없이 동희는 잠옷 채로 달려갔다. 빨리 갔다가 오박사의 따뜻한 손이 식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식모 방에 가자 애에게 젖을 물렸다. 젖을 물리는데도 애는 그냥 울었다. 앙징스러웠다. 그미는 어린애가 울지 못하도록 젖꼭지를 물린 채 젖을 눌렀다. 젖으로 코가 눌린 애가 숨이 막혀 울음 소리를 내지 못했다. 애가 숨죽이고 꼼짝도 못 할 때 그미는 애가 죽은 것이나 아닌가 하고 젖을 떼었다. 그러자 애는 전보다도 더 요란하게 울어 댔다. 볼기를 한 대 갈겼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미는 다시 젖으로 애의 얼굴을 눌렀다. 울음 소리가 멎었다. 그러기를 몇 번 거듭하다가 결국 애를 재운 뒤 오박사에게로 달려갔다.
그새 오박사는 잠들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왜 늦었느냐고 야단치지나 않을까. 그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13
다음날 오박사는 바둑을 두러 친구 집엘 갔다 왔다. 그런데 식모가 나와 동희의 애가 죽었다고 했다.
깜등이 시체 있는 데로 갔을 때 동희는 시체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울지도 않았다. 시체를 검진했다. 아침까지도 아무 일 없던 애인만큼 병명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오박사는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를 묻지 않았다. 죽은 것으로 끝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적당히 사망진단서를 써서 매장케 했다. 매장이 끝난 뒤 오박사는 동희가 애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죽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늙었으나마 자기에게서 남자를 맛보고 갑자기 시집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나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오박사 자기에게서 쫓겨날까 해서 죽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삼 일이 지난 뒤 동희는 명랑한 얼굴로 오박사를 대했다. 침울해 하는 것보다는 보기가 조금 나았지만 금시 명랑해질 수 있는 동희의 속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골서 곽용대가 올라왔다. 송씨네와 윤씨네가 대립되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면서 오박사더러 한번 내려가 달라는 것이었다. 이쪽에서 싸움이 멎으면 저쪽에서 싸움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얼마밖에 남지 않은 추석을 앞두고 동네 잔치를 준비하려 했지만 그런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오박사가 내려가서 화해를 붙이지 않으면 그들의 대립은 해소될 길이 없다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내 말이라구 들을까?”
오박사는 동네의 분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님 말씀만은 안 듣겠습니꺼? 정 안 들으면 원조를 끊는다구 말씀해 주이소.”
곽용대가 말하는 그런 면에서 동네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박사는,
“벌어지기는 쉬워도 합치기는 쉽지가 않을걸.”
하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화해를 한다고 해도 상처가 아주 아물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결릴 것이다.
“그놈의 깜둥이 때문에 안 그렇습니꺼?”
곽용대가 한심스러운 듯 말했다.
지금 와서 그런 말을 되풀이할 것은 아니지만 오박사도 동감이었다. 가난 속에서 그래도 기와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그 깜둥이 때문에 동네가 불화 속에서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다니…… 깜둥이는 이미 죽어 버렸는데.
“언제쯤 내려가 주실랍니꺼.”
곽용대가 확답을 들어야겠다는 듯이 물었다.
“글쎄 아무 때나 내려가지.”
오박사는 아무래도 자기가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루라두 저와 같이 가십시더.”
“그러지.”
오박사는 승낙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곽용대와 같이 시골로 내려가려 할 때 동희가 편지 한 장을 가져왔다. 미국서 마리가 보낸 편지였다. 그곳 미국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연과 결혼할 남자와 같이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곽용대는 편지 사연은 물어볼 생각도 않고 동희만을 보며 알은척을 했다.
“아직 선생님 댁에 있었나 베?”
그때 오박사는 용대에게 동희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한 것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동희의 대답이 있기 전,
“갈 데가 있어야지.”
하고 한마디로 동희 이야기를 끝내고,
“가세!”
용대를 앞세우고 집을 나왔다. 기차를 타고 P시까지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고향 시골로 향했다. 싸움하는 사람들을 싸우지 않고 살게 하기 위해 가는 길이지만 오박사의 가슴속에는 전쟁이 일어난 듯 온갖 생각들이 뒤범벅되어 뛰쳐올랐다.
마리, 깜둥이, 며느리, 경두. 모두가 다른 제각기의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말들은 하나도 오박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옛날 말을 타고 다니던 길을 지금 택시로 달리고 있다. 얼마나 살기 편한 세상인가? 그렇지만 조용하기만 하던 동네는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오박사 가슴속은 쑤셔 논 벌집처럼 되어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 삼중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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