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우리 엄마 목소리가 이렇게 고왔나? 모두의 얼굴에 감동한 빛이 역력했다.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사 람~아."
"빰빠라 밤~~~"
노래방 기계의 화면이 요란스럽게 바뀌며 소리 높여 백점을 알렸다. 그보다 더 큰소리로 우리들의 함성이 터졌다.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에 다시, 엄마의 노래가 이어졌다.
"참~을~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은 엄마의 십팔번이다.
엄마 생신을 기념해 친정 쪽 대가족이 여행 왔다가 밤에 노래방에 들른 것이다. 한차례 씩 노래를 부르고 엄마 차례가 되었을 때 서슴없이 마이크를 잡으셔서 놀랐다.
"그냥 부르면 백점이 나오더라"
빙긋 웃으며 말씀하신다. 엄마의 연속되는 백점에 한층 고조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년 여름엔 아빠 생신에 맞춰 서해안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갔다. 대학을 다니던 조카들도 나중에는 모이기가 힘들 수 있다며 동행했었다. 20여분 배를 타고 나가 '배 낚시터'에 도착했다. 배 중앙에 네모난 낚시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힘차게 팔딱이는 20대 조카들은 처음 본 바다 낚시터를 둘러보며 신이 났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배의 움직임을 따라 속까지 울렁이는 무섬증을 눌러 참았다. 모두들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낚시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 낚시 대회에는 상금도 있습니다."
오빠가 흰 봉투를 흔들며 개회를 선언했다. 딱히, 상금을 바라지는 않았겠지만 분위기가 더 밝아졌다. 낚시에 비호감인 나는 시큰둥했다. 지나가는 배에 시선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낚시를 해도 되나 생각하고 있었다.
초반에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한 두 마리씩 고기를 낚고 즐거워했는데 그 후로 잠잠해졌다. 낚시가 취미인 둘째도, 가끔 배낚시를 온다며 오늘의 행사를 준비하고 이끈 셋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카들도 낚싯대를 얕게 또는 깊게 조절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선장도 이상하다며 분명히 물고기를 충분히 넣어 주었다고, 안 잡힐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명이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엄마의 낚싯대에서는 계속 물고기가 올라왔다.
"와! 우리 엄마 최고시다!"
"할머니, 최고!"
우리들은 자기의 낚싯대 대신 엄마의 요술 같은 낚싯대에 눈길을 주며 계속 딸려 올라오는 물고기를 반겨 주었다. 이어지는 환호 속에 엄마도 연신 웃음을 지으셨다.
"낚싯대를 천천히 움직여봐라!"
낚시 비법을 알려 주시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젊고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그날의 대회 상금은 엄마 차지가 되었다. 아들들이 모종의 회의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날의 미스터리를 나는 모른다.
엄마는 그런 분이다. 무엇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사람. 음식 솜씨가 좋아 동네에서 일이 생기면 꼭 엄마가 계셔야 했다. 엄마는 일을 진두지휘하셨고, 몸이 불편한 어른들께 빠짐없이 음식을 챙겨 보내드리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어릴 적엔 미용기구 일체로 온 가족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하셨고, 재봉틀로 웬만한 옷은 만들어 주셨고, 뜨개질로 소품이나 스웨트 등을 떠 주셨다. 농사도 다른 집보다 더 잘 되었고, 꽃도 탐스럽게 잘 키우셨다.
시어른을 세분이나 병시중을 들으셨고, 삼년상을 치르신 것으로 유명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방을 차려 끼니마다 음식을 올리고 곡을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엄마는 말 그대로 "현모양처"이시다. 그런 지극한 삶을 살아내신 분이기에 온 가족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엄마는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너무 완벽해서 그 앞에서는 모두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김수희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께 야단맞는 일이 잦았는데 어설프고 개구쟁이인 오 남매에게 해야 할 말들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엄마의 잣대에 맞게 바르고 곧게 키우려는 마음에 엄격한 엄마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눅 들 것까지는 없다. 종갓집 종부답게 넓고 큰 마음으로 넉넉하게 품어 주시는 아량 또한 갖추고 계신 분이니까.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 사람과의 접촉이 반 강제적으로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엔 트롯 열풍이 불었다. 친정에 가면 엄마는 늘 노래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계셨다.
"엄마! 드라마가 재미있지 않아요?"
"난 노래가 더 좋다. 모사 꾸며서 남 해치는 꼴 보기 싫더라."
엄마는 매일 듣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수만큼 실력을 키우셨다. 낚시도 그럴지 모른다. 친정 마을 앞 저수지는 유명 낚시터라 낚시꾼들이 끊이지 않는다. 바쁜 엄마가 한가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을 리 만무하지만, 눈썰미가 좋으신 분이니 그것도 엮으려면 못할 말도 아닐 터다.
매사에 유심히 관찰하여 말씀하시고 실수 없이 행하시던 엄마가 올해 팔순이 되셨다.
"내가 요새 왜 그런지 모르겠다"
깜빡 잊는 일이 잦아지셨다고 한다. 군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 후에 치매 예방약과 뇌 영양제를 드시고 나서 조금 좋아지셨다고 한다.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하시는 일은 몇 해 전부터 있었지만, 본인이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팔순의 연세에도 소일거리로 로컬푸드 직매장에 온갖 생산물을 납품하는 재미를 붙이셨다. 안부 전화라도,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이라도 조금 더 자주 해야겠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찔레꽃'과 '여자의 일생'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엄마! 좋아하는 노래도 들으시며 쉬엄쉬엄 하세요~♡♡♡"
"고마워 내 딸!"
고운 찔레꽃에서 향이 퍼지 듯 엄마의 얼굴에 번지는 함박웃음이 보이는 듯하다.
위 사진은 검색하여 가져 온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현모양처 여장부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장한 어머님이십니다
민작가님도 어머님 판박이신 걸요
가족모임 차암 행복해 보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서로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종부이신 어머니의 헌신과 노력이 아닐까 싶어서 존경스런 마음으로 닮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농장주변 찔레꽃인줄 알고 너무 예뻐서 업어갔는데
검색해온 찔레꽃이네요
업어간 거 다시 내려 놓을게요 ㅎ
네~~ 붉은 찔레꽃이 귀하더라구요. 아래쪽 흰색 찔레는 농장에서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