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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차의 역사] 다지리·다소 등 茶 관련 지명 많아 … 조선 말기 쇠퇴 | |
화순에는 야생 녹차밭과 지명 등 곳곳에 차 흔적이 남아있다. 화순읍에 자리한 남산과 알매산을 비롯해 능주 만세동, 동복 독상리 등 도처에 야생 녹차밭이 존재하며 화순읍과 남면의 다산(茶山)마을, 화순읍 다지리(茶智里), 북면 다곡리 다소(茶所) 등 차 관련 지명도 많다. 쌍봉사에서는 차를 만들때 부르는 노래인 ‘다요(茶謠)’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화순은 역사상 이름을 날린 다인(茶人)과도 인연이 깊다.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라는 화두로 유명한 당나라 선승 조주스님과 동문 수학했던 철감선사는 쌍봉사를 창건했으며, ‘작설’이란 용어를 처음 쓴 진각국사도 화순출신이다. 고려말 목은 이색은 춘양 개천사 행제선사가 보내준 ‘영아차’(靈芽茶)를 먹고나서 “양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인다”(淸風生兩腋)고 시로 표현했다. ‘동다송’(東茶頌)을 쓴 우리 차의 중흥조 초의선사도 20대 초반에 쌍봉사에 머물며 차심(茶心)을 키웠다. 화순작설차회는 ‘빙허각 이씨’의 글로 미루어 볼때 200여년 전 까지도 화순에서 차가 널리 재배되고 생활속에 자리했으나, 조선말기와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며 쇠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화순 동면에서는 10여년 전부터 녹차재배를 시작해 현재 22농가가 ‘청정골 화순녹차’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하고 50ha 에서 연간 50t을 생산, 고품질의 녹차와 가루차를 상품화해 단절된 화순차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문의 061-371-1551) [출처] <광주일보> 화순 차 (남도문화재지킴이) |작성자 바람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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