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송하라”라는 뜻을 가진 ‘할레루야’의 기쁨과 감사의 노래가, 구약 시편에 스물 세번 (시104편~150편), 신약 요한계시록에 네번(계 10:1~6) 기록되어, 신.구약 성경 전권에서 스물 일곱번의 입술의 열매(히13:15)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드리는 찬송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 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므로 “찬송 중에 거하시는 이”(시22:3)라고 하였고, 시편의 거의 반- 150편 중 73편 -을 기록한 다윗도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하였다.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찬송이 구약시대의 중요한 제사의식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21)라고 하여 주 여호와께서도 구원 받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을 기쁘게 받으심을 알 수 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세상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을 찬양해야 함(시150:6)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이 필요에 따라서 불러도 되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자의에 의한 선택적 사항이 아닌, 주님께서 우리에게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사43:21),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는 감사한 마음으로 반드시 찬송을 해야 할 당위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덕을 찬송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찬송가는, 런던에서 태어나 1884년 초대 주한 선교사로 임명된 미국의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 한국이름 원두우)가 그의 저서 [새문안교회]에서 밝힌 대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찬송가가 발간된 것은 1892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중국어 찬송가가 쓰여지고 있었고, - 그것은 물론 한문글자를 우리나라 발음으로 읽는 것이었음- 많은 발전과정을 거쳐 이제는 발간된지 1백년이 지났으니, 현재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 생각해 보면 찬송가의 역사도 결코 짧지 않은 장구한 세월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주님이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신 넓이와 깊이를 다시 생각해 보고 감사하며, 주님께만 드리는 찬송의 당위성을 재고해 보고자 한다.
1)찬송가란 무엇인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교회음악이라고 부르며, 예배 목적으로 사용되는 노래를 찬양가(Song of Praise),찬미가(찬송가,hymns)또는 성가,(sacred music)라고 부른다. 이런 분류는 받는 상대- 하나님, 성도 또는 믿지 않는 사람- 에 따라 분류한 것이지만, 찬송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은혜, 덕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써, 구원 받은 자녀들의 입술의 열매(히13:15)이며 기도의 노래이다. 하나님에 대한 찬미와 찬양, 성도 자신의 신앙적 고양과 교회 안에서의 유대의 교류와 예배의 공감대로서의 기능을 가진 찬송을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라고 하였고, 또한 시편 기자도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시147:7) 라고 기록함으로써, 거듭난 주님의 자녀들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찬송하며, 평생토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찬송해야함 (시41:13)을 일깨움은,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2)찬송을 부르는 목적과 이유 “사랑을 받는 의원(醫院)”(골4:14)이라 불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눅 2:20)라고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가 찬송을 부르는 목적을 뚜렷이 제시한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듣고 보아 마음에 이루어진 영원한 사실을 찬송을 통하여 전파하며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찬송을 해야 한다. 람족속의 부스 사람 엘리후가 욥에게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욥 36:24)라고 하여,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낙심치 않고 유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로를 받고, 끝까지 인내한, 모든 인류의 고난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욥에게도 찬송의 당위성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동시에, 찬송의 당위성에 의한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의 자세를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진심으로 주를 찬양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게 건지셨음이니다.”(시 86:12~13) 라고 하여, 구원 받은 자녀로서 찬송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임을 말하였다. 그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한 입술의 열매(히 13:15)이므로 우리는 찬송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3)찬송가의 분류 찬송가는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받는 상대에 의한 분류, 찬송가 탄생의 동기에 의한 분류, 구미 찬송가, 독일 코랄, 시편가, 단선율성가, 캐롤, 흑인영가, 복음성가 등으로 나눈 찬송가 형태에 의한 분류로 나눌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지으셨듯이(사 43:21), 거듭난 주님의 자녀가 부르는 찬송을 기쁘시게 받으실 주님을 가장 큰 상대로 하여, 받는 상대에 의한 분류만을 다룸으로써 가장 포괄적인 분류가 되도록 한다.
찬송가 또는 찬미가(Hymns)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로다”(시 113:1~2)라고 시편 기자도 기록하였듯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예배에 있어서나 교제에 있어서 영원토록 찬송을 부르는 것은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히 13:15), 부르는 성도들의 마음을 멜로디라는 아름다운 ‘끈’에 함께 묶어, 성도들의 마음을 오직 주님께만 드리는 순수함으로 통일시켜, 하나님만을 향하여 찬양하고 간구하며 감사를 드리는 제사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찬송가 또는 찬미가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서정시로, 여기에는 반드시 ‘아멘’이 함께 한다. 이 아멘은 ‘진실로 동감한다’ 또는 ‘그렇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뜻이 있고 형용사로는 진실한이란 뜻이고 명사로서는 ‘진리’,’ 진실’, 부사로서는 ‘참으로’라는 뜻이 있으나, 찬송가에서는 ‘그렇게 이루어(되어)지이다’라는 뜻으로 가장 짧으나 매우 중요한 기도가 된다. 우리 찬송가 전 558장 중 ‘거룩 거룩 거룩’(9장), ‘거룩하신 하나님’(10장), ‘전능 왕 오셔서’(34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41장), ‘큰 영화로우신 주’(50장)등은 찬송가(찬미가)로서 불려지는 곡이다. 대개의 경우 찬송가(찬미가)는 후렴이 없이 불려지고 주로 예배시에 찬송하는 주관적인 서정시라 할 수 있다. 이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하고, 죄인되었던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불러야 하며, 천명이 부르거나 만 명이 부르더라도 그것은 성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결코 다른 사람의 관계가 되어서는 결코 합당한 찬송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찬송가 또는 복음찬미가(Gospel Hymns)"이 복음찬송가(복음찬미가)는 찬송가(찬미가)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되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십자가의 보혈,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곡이다. 우리 찬송가에는 대표적으로 ‘참 아름다워라’(78장), ‘갈보리산 위에’(135장), ‘저 멀리 푸른 언덕에’(146장), ‘구 주의 보혈은’(182장), ‘주 예수 넓은 품에’(467장)등과 같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어떤 역사나 주님의 속성과 복음 등, 주님에 관한 어떤 사실을 들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노래이다. 여기에서는 아멘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복음찬송가 형식으로 엮어가다가 끝에 가서 찬송가(찬미가)형식으로 끝맺는 곡이 있는데, 이때는 아멘을 붙인다. 우리 찬송가 중에 끝부분 여덟곡(551장~558장)의 아멘찬송을 제외하면, 558장중 326편이나 아멘이 사용되었는데 찬송가(찬미가)의 아멘 찬송을 제외하면 모두 복음찬송가(복음찬미가)라 할 수 있다. 이 복음찬송가(복음찬미가)는 설교말씀 전후에 말씀의 이해를 돕고 그 설교의 내용을 오래 간직하게 하기 위하여 부르는데, 서술적으로 진지하게 하기 위하여 부르는데, 서술적으로 진지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불러야 한다. 이는 주로 주관적인 것보다 객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복음성가(Gospel Songs)찬송가를 보면, 구원받은 성도가 부르는 찬송을 받으시는 대상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으로만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성가는 위의 찬송가(찬미가), 복음찬송가(복음찬미가)와 달리 받는 상대가 우리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그의 간증을 노래하거나, 성도들 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훈과 권면, 위로를 노래에 담아 전하는 것으로, 주로 전도 집회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복음성가는 받는 상대가 사람이기 때문에 아멘을 붙이지 않는다. 이 복음성가의 특징은 후렴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찬송가 전 558장 중 후렴이 있는 곡이 247편인데, 후렴과 비슷한 형식의 창법이 구약시대 시편에 사용되긴 하였으나(시136편),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후렴의 개념은, 1875년 미국의 무디와생키(Ira David Sankey, 1840~1908)의 활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일학교부장, 성가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한 강력한 바리톤 음성을 소유한 -음악전도사라 불렸고, 또한 우리 찬송가에도 8곡이나 작곡을 하였다.- 생키나 무디와 함께 주일학교 운동을 시작할 때 부터였다고 한다. 이 복음성가는 그 목적이 전도집회 때 사용하기 위해 쓴 것인데, 우리 찬송가에서 복음성가에 속하는 곡들은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208장), ‘어서 돌아오오’(317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318장), ‘어둔 밤 쉬 되리니’(370장)등이 있다. 이상으로 받은 상대에 따라 세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은 사도 바울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엡 5:19)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찬송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구분해 본 것이다.
4) 찬송가의 역할 성경은 음악(찬송 포함)에 대하여 839번 이상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토록 음악이 많은 분량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말씀을 낭비하는 분이 아니시고, 성경의 지면을 그저 채우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말씀 하나 하나가 모두 분명한 뜻이 있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지옥에 대해 70번이나 말씀하고 있지만, 성경은 지옥보다 음악을 12배가 더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구원 받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온 땅이 여호와께 감사함으로 노래해야 함(시 96:1, 147:7)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찬송가 협회에서는 칼 프라이스(Carl F. Price)의 정의에 따라 “찬송가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표현한 서정시이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태도, 혹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노래로 불러서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형식에 있어서 단순하고 운율적이어야 하며, 표현에 있어서 문학적이며, 질에 있어서 신성해야 하고 생각이 직접적이고 뚜렷하며, 찬송을 부를 때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찬송의 정의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의 “찬송가의 세 요소, 노래와 찬양과 하나님이 포함된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찬송을 나타낸 것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노래, 찬양과 하나님의 세 요소가 포함된 찬송가가 주님의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찬송가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교회(구원 받은 성도의 무리)의 헌신적인 주님에 대한 일에서, 하나님께 향한 성도들의 감사함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찬송가는 성경의 견해를 밝혀 준다."
현재 상용하는 찬송가에는 558장 전부에 - 단, 아멘찬송 여덟장 제외 - 성경 말씀을 인용한 성구나 참조한 성구를 명기해 놓았는데, 이는 성경말씀이 바탕이 되었거나 시편의 의역, 또는 성경의 어떤 사건이 배경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찬송가를 부르기 전에 그 명기해 놓은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읽어 보면, 찬송시의 뜻이 명확해짐을 알 수 있다.
"찬송가는 구원 받은 성도의 태도와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된다". 찬송가를 부를 때 진정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부른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찬송가라 하더라도 그 참뜻을 떠나서 합당하지 않게 부른다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참 뜻이 사라지고 만다. 한 예로 26명의 모라비아교도 형제들과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Jhon Wesley. 1703~1788)의 동생인 차알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목사 형제들이 미국의 새버나로 가다가 해일을 만나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모라비아 교도들이 부른 담대한 찬송가는 웨슬리목사 형제들을 감동시켜서 이들을 두려움에서 건졌을 뿐 아니라, 웨슬리의 위대한 찬송가 “비바람이 칠 때와”(441장)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 곡은 많은 학자들이 “만입이 내게 있으면”(23장)과 함께 가장 위대한 찬송가로 평하게 되었다. 또한 유명한 설교가 헨리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나는 이 땅 위에 군림하였던 모든 왕들의 명예를 갖기 보다 차라리 웨슬리의 “내 영혼의 구주(Jesus, Lover of my soul)”-우리 찬송가 441장 “비바람이 칠 때와”-를 쓴 명예를 택할 것이다. 그 영광이 더 위대하다. 그 찬송가에는 많은 능력이 있다. 나는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이 찬송가의 작시자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찬송가의 작시자는 세상에서 죽어 갈지 모르나, 이 찬송가만은 영원히 천사들의 마지막 나팔이 불 때까지 불릴 것이고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성도들의 입술에 담겨서 올라갈 것으로 나는 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찬송가 한 곡이 성도에게 주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큰 영광과 기쁨과 감사를 줌 을 알게 해준다. 증조부로부터 3대째 목사의 직분을 이어온 집안에서 모태교인으로 태어난 죤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경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낭독하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고 구원을 받았고 동생 차알스 웨슬리는 형보다 3일 전에 갈라디아서 말씀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 찬송가에는 차알스 웨슬리가 작시한 곡이 무려 16곡이나 되어 우리와 같은 주님의 자녀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찬송을 부름으로써 성도들간의 친교와 화목을 도모한다"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찬양인 동시에 성도들간에는 우애를 돈독히 하는 관계를 갖는다. 함께 교제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고, 찬송을 함께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랑을 심어주어 형제 자매들간의 유대를 돈독히 한다.
"찬송가는 받은 영감과 신앙의 승리의 기록이다".
무디, 생키 등과 절친한 교제를 나누었던 시카고의 법률가인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교수가 자기의 네 딸이 탄 배가 해상사고로 침몰한 바다 위를 지나며 비통해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위안의 시인 “강 같은 평화일 때(When peace like a river)”-우리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 태어나게 되었다. 또한 “내 주여 뜻대로(My jesus, as Thou wilt)”(431장)는 독일의 루터파 목사인 벤야민 슈멀크(Benjamin Schmolck)가 반신불수와 같은 몸으로 먼 곳의 심방을 다녀와 보니 집에 불이 나서 사랑하는 두 아들이 불에 타 죽어 있는데 슈몰크 목사 부부가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나님께 울부짖은 시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한 예수님의 기도를 상기하면서 지은 진정한 신앙의 빛이라 할 수 있다.
"찬송가는 설교 말씀을 오래 간직하게 한다"
대부분의 복음 찬송가는 설교자의 설교 내용을 오래 간직하게 하기 위하여 설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시한 시로, 이 시를 잘 알려진 곡에 맞추어 부르게 했던 것이다. 찬송가 276장 “하나님의 진리등대’는 위대한 전도자 무디의 설교에서 많은 감명을 받은 필립 블리스(Philip P. Bliss)가 시와 곡을 모두 쓴 것이며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257장은 영국의 부흥사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ehouse)의 설교에서 감명을 받고, 그 설교 내용을 역시 필립 블리스가 시와 곡을 쓴 것인데 반하여, 우리 구원 받은 성도들은 찬송을 부름으로써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설교 말씀을 떠올릴 수 있고 또한 그에 합당한 말씀 가운데 거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는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는 순수 음악과 문화, 소위 예술분야와 연관된 것이 포함된다. “기뻐하며 경배하세”(13장)와 동일한 곡인 “오늘 모여 찬송함은”(287장)은 우리 청년 형제, 자매의 결혼식에서 함께 찬송하며 축하해 주는 곡인데 이 곡은 악성이라 불리는 베토벤(1770~1827)이 작곡한 교향곡 제 9번 합창 중의 4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의 멜로디와 같고, “오 거룩하신 주님”(145장)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며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하(1680~1750)가 44세 때 작곡한 [마태수난곡]에 여러 번 - 전 78곡중 5곡이 조만 다르게 작곡됨- 나오는 합창음악이며, 찬송가 75장 “저 높고 푸른 하늘과”는 영국의 시인 죠셉 에디슨의 시와 교향곡 120곡을 작곡하고 우리 찬송가에도 5곡이나 작곡한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하늘은 말한다”에서 곡을 빌어온 것으로, 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찬송가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근대 시문학과 서양음악의 소개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은 간과할 수 없다고 하겠다.
5) 현재의 통일 찬송가에 대한 소고 찬송가는 믿는 이의 신앙적 감동과 고백을 문학과 음악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통일 찬송가의 체계가 갖추어지기까지는 200년 이상의 세월을 요하는 많은 변천과 발전과정을 거쳤다. 우리나라의 카톨릭교가 전래된지 200년이 되었고 그리스도교(예수교)가 전래된지 100년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최초로 찬송가가 발간된 1892년의 기점으로 하면 1백년동안의 자취는 계속적으로 시와 음곡의 향상, 찬송가 저작의 활발, 연합적 찬송가 사업의 구현등 긍정적인 방향을 따라 부단히 정진해 오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찬송가 선정과 간행이 교파별 사업으로 시작된 분파성의 문제나 신학적 갈등의 문제, 선교사와 한국교회의 갈등, 이권의 개입의 개입 등은 다른 문제와 함께 반성할 점인 것이다. 현재의 통일찬송가에 이르기까지의 찬송가는 천주가사의 시대(1779~1924), 교파별 찬송가시대(1892~1907), 초기 연합찬송가시대(1908~1945), 합동찬송가시대(1946~1966), 개편찬송가시대(1967~1982)를 지나 통일찬송가시대(1983~현재)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 찬송가의 시작은 전래 이후 많은 가톨릭교인들 사이에서 당시 한국문학의 주요 형태인 가사체를 빌어 지어지고 불려진 여러 편의(천주가사)가 전하고 있고, 그리스도교(예수교) 찬송가는 그 선교와 함께 비롯되어, 찬송가 자체의 변화와 전환을 계속하여 이룩해 온 것은 물론, 특히 우리나라의 근대 시문학과 서양음악의 소개와 발전에 영향을 끼친바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발간된 1892년 이전에는 한문글자를 우리나라 발음으로 읽는 중국어 찬송이 쓰였는데, - 그 중 특별히 전하는 찬송가에 표기된 “주 야소 애아”를 “쥬 야소 아이 워”라는 중국 발음, 혹은 “주 예수 애아”라는 한글식 음역 발음으로 노래했다고 전한다. -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교회의 초기에는 서양의 찬송가나 중국어 찬송가가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불리워지고, 필사나 차트 등으로 제작되어, 예배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통일 찬송가는 1983년 12월에 총 558장의 찬송가와 교독문 76편이 수록되어 발행되었으니, 벌써 10년이상을 건재하여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이 통일찬송가가 나오기까지는 1892년 최초로 발행된 찬미가로부터 10번 이상이 변천되었고, 통일 찬송가 이전의 개편찬송가가 1967년 9월에 모습을 나타내었으니, 15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이 통일찬송가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각 교파별 찬송가의 모습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대대적인 집회 때에는 상당한 혼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각 교파별 찬송가마다 장수는 다르다 해도 가사가 통일되었다고 한다면 그다지 큰 혼란은 없었을 것인데, 대대적인 집회 때 사회자가 합동찬송가 몇 장, 새 찬송가 몇 장, 개편 찬송가 몇 장 하는 식으로 장광설을 늘어놓아야 하는 불편 정도는 그래도 극복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세 개의 찬송가가 가사까지 다르므로 세 개의 찬송가는 대중 집회때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어느 한 찬송가를 택해서 그 찬송가를 별도로 인쇄하여 배포해 주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한 찬송가를 택했을 경우 다른 두 찬송가를 사용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는 불편을 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에, 이구동성으로 찬송가를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한국찬송가협회가 1975년 초부터 시작한 설문조사에는 한국교회 교인 99.8%가 하나로 통일된 찬송가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통일된 찬송가 없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그래서 1976년 7월 마침내 찬송가 합동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이전에 사용하던 개편, 합동, 새 찬송가 등 세 종류의 찬송가를 하나로 묶어 편찬한다는 전제하에 작업을 시작하였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1983년 12월 현재 사용되는 통일 찬송가가 발행되었다.
이 통일 찬송가는 7년이란 오랜 세월이 소요되어 작업을 하였지만 이전의 찬송가와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같은 곡으로 불리우는 찬송가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전 558장중 같은 곡이 27곡이나 된다. 17,8세기에는 찬송곡의 부족으로 한 찬송곡으로 여러 편의찬송가를 불렀다고 하였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나라 찬송가와 비교하면 같은 찬송곡으로 불리는 곡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곡들을 열거하면, 13장과 27장, 23-170, 376, 26-227, 28-433, 459, 32-39, 52-243, 55-334, 61-94, 74-90, 81-85, 127-245, 144-496, 141-269, 148-244, 174-418, 181-294, 188-510, 206-260, 214-291, 280-525, 281-503, 536, 285-357, 426-487, 516-248등이 있다.
둘째는 같은 찬송을 두 곡으로 불리는 찬송이 있다. 36장과 37장, 113-114, 459-460등인데, 36-37과 113-114는 동일한 제목으로 되어 있고, 459-460은 제목과 가사가 동일하다. 또한 459장의 경우는 28장과 433장 등과 같은 곡으로 되어 있다.
세째는 현재의 통일 찬송가 이전의 개편찬송가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찬송가가 27편이 들어 있었는데, 17편으로 줄어들었고, 삭감된 찬송가들 중에는 많이 애창되던 찬송가들이 있었는데, 그런 찬송가를 살리지 못함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네째는 찬송가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총 558장 가운데 8편이 아멘찬송이므로 실제 찬송가는 550편에 불과한데, 새찬송가(1960년, 671장), 개편찬송가(1967년, 620장)에 비한다면 너무 적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찬송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글성경에는 16가지 악기가 사용되었고, 흠정판 영어성경에도 한 악기가 한글성경에는 여러 악기로 번역되어 있지만 예로, 코넷은 양금(삼하6:5), 각(대상 15:28), 나팔(대하 15:14), 호각(시 98:6)등으로 역시 16가지 악기로 기록되어 있다.
이제 우리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들은, 이들 여러 악기의 곡조에 맞추어 불려지는 찬송을 기쁘게 받으실 뿐만 아니라, 찬송 중에 거하시는 (시 22:3) 주님을 생각하고, 또한 우리를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지으신(사 43:21) 주님의 뜻을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 구원 받은 주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주님께 드리는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언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