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와 이스라엘의 공동사업
두 왕의 공동사업에 대한 기록은 《성서》밖에 없기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정치적으로는 다소 이스라엘 쪽이 유리했지만 동맹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에게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정리하면 티레는 내륙 통상로의 안전과 배후의 군사적 안정 그리고 백향목의 대금이 밀과 올리브유라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농산물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은 티레의 상업과 기술 노하우를 제공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열왕기 상> 10장 22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과 은, 상아, 공작새와 원숭이를 실어오는 타르싯 상선대가 등장하는데, ‘타르싯’이란 고유명사에 대해 많은 설들이 있지만 광물이 풍부한 스페인 남부의 ‘타르데소스’를 의미한다는 학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그러면 페니키아들은 그 곳까지 진출했던 것인가? 결론은 “아니 더 멀리 진출했다” 이다. 여기서 그들이 연 ‘고대의 대항해 시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대항해 시대와 무역 거점의 건설
네아폴리스(나폴리), 비잔티움(이스탄불), 마살리아(마르세이유), 타렌툼(타란토), 시라쿠사이(시라쿠사)... 그리스 인들이 지중해 각지에 건설한 도시의 이름들이다. 기원전 8-6세기에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연안의 폴리스들이 모도시의 내분과 인구과잉 때문에 해외로 진출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그리스인들의 활약은 역사의 절반에 불과하다. 페니키아인들은 그들보다 먼저 해외에 식민도시를 건설했고, 지금도 카데스(페니키아어로는 카디르, 현재의 카디스), 카르타헤나, 바르셀로나, 말라가. 리스본(페니키아어로 안전한 항구를 뜻하는 알리스 웁보(Allis Ubbo)에서 유래), 탕헤르, 리비아의 트리폴리, 사르디니아의 칼리아리,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등이 지금도 건재하다. 지중해의 큰 섬 들인 키프로스는 ‘실 삼나무’, 시칠리아는 ‘시클리[팽이]을 가진 사람’, 사르디니아는 ‘신이 최초로 표시한 발자국’이란 페니키아 어에서 유래했고, 발레아레스의 어원은 페니키아인의 최고신 바알이고, 스페인은 사판 Sapan 즉 ‘토끼가 많은 땅’에서 나왔다. 이런 점을 보아도 페니키아인이 지중해 간선 항로를 개척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파괴된 도시까지 치면 한니발 덕분에 카르타고는 워낙 유명하지만 우티카, 시칠리아의 모티에, 이비사, 릭소스 등.. 그리스인들의 도시들보다 더 많다. 하지만 이 항구 도시들은 말 그대로 항구도시이자 무역 거점 일 뿐이었다. 그들은 힘들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내륙 진출과 개척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이탈리아 특히 중북부에는 거의 진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중부 카이레 해안가에 작은 마을 푸니쿰에서 페니키아의 거점이 있었다는 것 정도가 밝혀졌을 뿐이다.
어쨌든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한 도시는 그리스 인들의 도시가 대부분 동지중해와 흑해에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대부분 서지중해와 대서양 연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의 항해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카데스의 경우는 로마의 역사가와 지리학자들이 트로이 멸망 전후에 건설되었다고 주장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했다. 그 중에는 스트라본과 로마의 장군이자 역사가 플리니우스도 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카데스는 카르타고와 같은 해에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의문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보면 페니키아인들은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동에서 서로 새 도시를 만들며 정착했을 것 같다. 따라서 카르타고나 우티카가 카데스나 말라가 보다 먼저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속의 보고인 스페인에 먼저 도시가 건설되고 중간거점이 나중에 생겼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금은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 브로델의 표현처럼 고고학만이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페니키아 인들의 서지중해, 대서양 연안 ‘정복’은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기원전 12세기 설과 8,9세기 설이 부딪히고 있지만 최소한 12세기에 동지중해로 진출 했던 ‘정황’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시기는 앞서 이야기한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대 격변과 일치한다. 따라서 가나안 인들은 거주지역의 축소, 인구 과잉 등의 이유로 이 격변기에 바다로 나가 ‘페니키아’ 인으로 변신하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 시기에 알파벳이 준 영향보다는 못 하겠지만 하드웨어 방면에서도 대 발명을 이루었는데 바로 2500년 이상 지중해의 바다를 지배하는 ‘갤리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