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성경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권의 책으로 간주했고, 책 제목은 『에스라』였다. 그런데 교부 오리게네스가(185~253)가 처음으로 「제1에스라」와 「제2에스라」로 구분했고, 그 이후에는 그 전통을 따랐다. 현대성경에는 책 저자에 따라서 제목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정해졌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권의 책으로 간주하여, 책 제목을 「에스라」라고 하였을까? 두 책은 모두 아닥사스다 왕 때를 배경으로 하였고, 그 내용이 짧아서 합권하기 좋았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동시대를 살았고,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14년 먼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다. 에스라는 제사장으로서 유대총독 느헤미야보다 나이로는 한참 선배이다. 유대백성들이 초막절기간에 예루살렘에 모여 에스라가 읽어주는 모세의 율법을 듣고 회개하는 장면이 성경 「느헤미야」 8장에 나온다. 요약하자면 유대국은 성전중심의 사회였고, 성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책 제목이 에스라로 정해진 것이다.
성경 「에스라」 1장1절~3절에는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 즉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70년(BC605~536)만에 유대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성경 「예레미야」 25장11절 말씀 "(너희들은) 70년 동안 바빌론의 왕을 섬기리라", 느부갓네살 왕과 그 후대 왕들을 섬기는 70년이 끝나면, 너희를 이곳 유대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유대의 옛 영화를 다시 누리게 되리라는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Cyrus) 원년(BC536)에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말하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고레스 왕은 이같은 사실을 8세기에 활약한 선지자 이사야가 쓴 예언서를 읽고서 알게 되었다. 성경 「이사야」 44장28절에는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고 적혀있다. 물론 제1이사야보다 2~3세기 후에 활약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제2이사야가 써 넣었다는 현대성서학자들의 주장도 있으나, 요세푸스는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다고 적고 있다. "내가 열국의 왕 고레스를 정하여 내 백성들을 고향 유대로 돌아가게 해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한 것은 온전히 나의 계획이었다." 고레스 왕은 이사야의 이 같은 예언을 읽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이롭게 여겼으며, 거기에 쓰여진 대로 실행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야심에 사로잡혔다.
고레스 왕의 포고에 따라,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왕은 그의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약탈해온 성물들을 유다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었고, 세스바살은 귀환하는 유대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갈때 그 성물들을 갖고 갔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두고 떠날 마음이 없었기에 그냥 바빌론에 남았다.
성경 「에스라」 2장에는 예루살렘으로 제1차 귀환한 명단이 나오는데, 온 회중의 합계가 42,360명, 남종과 여종이 7,337명, 말이 736마리, 노새가 245마리, 낙타가 435마리, 나귀가 6,720마리였다. 또 어떤 족장이 성전건축 예물로 금 6만1천 다릭(1다릭은 130g드라크마), 은 오천 마네(1마네는 60세겔, 1세겔은 4드라크마, 1달란트는 60마네), 제사장 옷 백 벌을 헌금했다. 그리고 각자의 성읍에서 살았다.
성경 『에스라』 3장에는 일곱째 달에 각자의 성읍에서 살던 주민들이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다.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를 드리며,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켰다. 그리고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고레스 왕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 둘째 달에 성전공사를 시작하여 어느덧 성전의 기초공사가 끝났다.
성경 「에스라」 4장, 그런데 주변의 민족들이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자기들도 함께 공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이를 거절하였는데, 앙심을 품은 적대세력들이 건축을 방해하여, 고레스 왕부터 다리우스 왕이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건축을 막았으며,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주민을 고발하고, 아닥사스다 왕때도 글을 올려 예루살렘주민을 고발하여, 예루살렘성전공사가 다리우스 왕 제2년까지 중단되었다고 적고 있다. 성전공사가 다리우스 왕 제2년까지 중단된 것은 맞는데, 성경은 다리우스 왕의 아들인 아하수에로 왕과 다리우스 왕의 손자인 아닥사스다 왕을 다리우스 왕보다 앞서 통치한 왕들로 잘못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요세푸스의 기록을 참고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레스 왕은 유대인 귀환령을 내린 후, 사후조치를 하지 않고 원정을 떠났다. 그 결과 유대인들의 귀환을 반대하는 예루살렘 주변민족들이 담합하여 성전공사를 중지시킨 후, 고레스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고 있는 그의 아들 캄비세스에게 청원하여 성전공사의 허가를 취소시켰다. 이때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성물들의 반환도 철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전의 기초공사만 해놓은채 세월은 흘러가서, 다리우스 1세 제2년(B520)에 유대총독이 된 스룹바벨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대거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이 내용이 성경에는 빠져있는 것이다.
성경 「에스라」 3장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는, 스룹바벨이 지휘한 유대인들이 바빌론을 출발한 후 일곱째 달이 되자, 대제사장 예수아와 총감독인 스룹바벨은 전 유대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그 곳에 제단을 만들었다. 그 곳은 유대인 제1차 귀환때 성전의 기초공사를 하기에 앞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이 세워졌던 곳이다. 그러자 적대적인 인근 족속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경 「에스라」 3장4절~7절 말씀처럼,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장막절:9~10월경)을 1주일 동안 지켰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석공들과 목수들에게 큰 액수의 돈을 지불하였으며,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는 일은, 시돈사람들이 통나무들을 한데 묶어서 그것을 뗏목에 급히 실어 욥바 해변으로 운반하였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지시했던 것이었으나, 실상은 다리우스 왕의 지시로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성경 「에스라」 3장8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지 2년 둘째 달에 공사를 시작하고". 즉 다리우스 왕 제3년(519) 2월1일 성전건축이 착수되었으며, 성전건축의 책임은 20세에 이른 레위지파들 가운데 몇 사람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그의 아들과 형제들, 그리고 유다의 형제인 갓미엘과 그의 아들이 맡았다. 이렇게 하여 성전건축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과, 고레스 왕과 다리우스 왕의 순종과, 유대인들의 열성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진행되어, 성전건축을 재개한지 7년만인 다리우스 왕 제9년(BC513) 12월23일에 완성되었다. 성전봉헌식이 행해졌고, 그 이듬해 1월14일에 유월절을 지켰다. 따라서 「에스라」 6장15절 "다리오 왕 제6년 아달월 3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는 잘못된 것이다.
성전이 완성되자 제사장들은 제사장복장을 하고 나팔을 들고 있었으며, 레위지파들과 아삽의 자손들은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지파사람들과 가문의 나이 든 지도자들은 엄청나게 크고 웅장하고 화려했던 솔로몬성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지금 완성한 스룹바벨성전을 보고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스룹바벨성전에 크게 만족하였다. 그런데 「에스라」 3장12절은 '성전의 완성'이 아니라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유대인들이 위와 같은 엇갈린 모습을 보였다며 잘못 기술하고 있다.
물론 성전을 세울 때도 성전의 기초공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주변의 적대세력들의 방해가 있었다. 그러나 성전의 기초공사를 할 때와는 달리, 스룹바벨은 유대총독이었고, 다리우스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어서, 그들의 거짓 투서로도 유대인들의 성전건축을 도우려는 다리우스 왕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또한 다리우스 왕은 메대에 있는 엑바타나요새에서 고레스 왕의 칙령을 찾아내어 성전공사를 방해하는 적대세력들의 주장을 잠재웠고, 오히려 그들에게 유대인들의 건축공사를 도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에스라」 5장3절을 보면,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관리들이 다 나아와, 스룹바벨과 에수아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는 성경구절이 나온다. 이때 예루살렘성전을 완공한 유대인들은 아직 예루살렘성곽에는 손을 대지 못하였다. 고레스 왕이나 다리우스 왕의 명령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지, 성곽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성벽과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불탄것은 유대인들이 3년 동안이나 농성하며 항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성경 「열왕기하」 25장8절~12절을 보면,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제19년(BC587) 5월17일에, 바빌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시위대장이 그 땅에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이처럼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멸망시킬 때까지 예루살렘성벽과 성전은 반역의 댓가로 무너지고 불탄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