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1일 대전법회는 보현선생님을 법사로 모시고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먼저 양해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용인즉, 법문을 녹음하여 법회가 끝난 후 천천히 정리하는 것이 옳은 일이나 당일, 순전히 저의 불찰과 무지로 인해 녹취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강의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긴 했습니다만 펜은 말보다 느리고, 또 듣더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받아적지도 못하는 법.
막상 적어놓고 집에 와 읽어보니 문장과 문장이 연결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문맥이 끊기는 부분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는 법사의 허물이 아니라 순전히 저의 허물이오니 읽으시는 분들은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혹 정리된 글을 읽으시고 내가 듣고 정리한 내용과 다른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가차없이 지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강의 뒷부분 연무심님의 질문에 대한 보현선생님의 답변은 차후 연무심님이 정리하여 올려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법회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1부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법문이었고 2부에서는 저희 카페에 올라 온 질문에 대한 답변 법문이었습니다.
정리, 요약도 1부와 2부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대전법회 법문 요약]
1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 그에 따른 공부 방법
* 세상의 모습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뉩니다.
. 보이는 세계 - 현상 - 물질 - 연구방법 ; 과학
보이지 않는 세계 - 마음 - 비 물질 - 연구방법 ; 종교
. 과학과 종교가 대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분법 적인 생각
- 진리의 눈으로 볼 때 과학과 종교는 같은 것이지요.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공부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 보이지 않는 세계 ; 보이는 세계의 공부 방법인 관찰과 분석이 불가능하므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없음 - 따라서 명상이 필요합니다.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실상으론 하나 ;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보이는 세계가 나타납니다.
예) 오케스트라의 예 ; 단 한번의 공연(나타남, 현상, 보이는 세계)를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가 나타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무수한 활동이 존재해야 합니다.
. 보이는 세계는 현상의 세계로서 현상을 이해하려면 지식이 필요하며, 지식은 배워야 하고 지식에 지식을 자꾸 덧붙여야 성장이 가능한 것이지만....
-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무위의 자리, 진리의 자리로서 이 세계를 알기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는 덧붙이거나 배운다는 조건 없이 밝아지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 수행과 삶의 괴리가 생기는 것은 보이는 세계의 위대함을 무시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 서양인들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대립관계로 파악.
예시) 플라톤 ; 세계를 이데아와 현실로 파악. 이데아는 영원불멸의 이상향이며 현실은 영원불멸의 이데아가 나타난 것.
- 사람들은 현실만이 진실인 것으로 안다(동굴의 비유). 그러나 사실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 따라서 경험에만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
- 이데아 세계를 알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제시;
1) 늘 이데아를 상기하라 2) 이데아 세계를 늘 그리워하라, 사랑하라(에로스)
- 여기까진 부처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나 결정적으로 이데아와 현실이 같은 것인 줄 모르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이분법적인 사고가 되며 따라서 진리가 못됩니다.
- 공부는 이렇듯 작은 일에 소홀하면 천지차이로 벌어지므로 불자들은 항상 작은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명심하시길....
. 플라톤의 예에서 보듯 보이는 세계는 무시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만큼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 귀,코,입은 이비인후과라는 단일 진료과에서 모두 다루는 반면, 눈은 안과에서 독립적으로 다룹니다. 보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요.
- 예시) 38억년전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인 종의 증가, 현격한 진화 과정이 진행되었는데 최근까지 그 원인을 알수 없었습니다.
최근 대두된 것이 바로 눈-스위치 이론.
- 눈-스위치 이론이란?
캄브리아기에 생명체에 눈이 만들어짐. 눈은 보이는 세계를 보기위한 것.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훨씬 강력한 것. 눈의 생성으로 인해 비약적인 종의 증가와 진화가 일어난 것으로 분석. 그만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 그러나 보이는 세계를 나타낸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므로 보이는 세계의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ex) 우울증 ; 신경전달물질의 결핍이 원인인데 신경전달물질의 결핍이 왜 일어나는지는 서양 의학에서 설명 하지 못함. - 결국 마음의 문제,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제라는 결론.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존재한다.
--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세포의 수용체에 신호를 전달한다 ; 대행큰스님 말씀.
--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무언가 신호가 있어야 하며, 육체를 움직이려면 마음을 움직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병이 나으려면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원리입니다.
. 성자들의 가르침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풀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조절하는 쪽으로 가는 것. 노장사상이든 기독교든 불교든 다 마찬가지.
수행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기위해 하는 것인데 문제는 너무 보이지 않는 세계에만 집착하다보니 보이는 세계가 망가지게 됩니다.
즉 삶과 수행의 괴리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화엄은 물질과 비물질,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나투며 그 구체적인 방법이 보현행원임. 두 세계의 통로가 보현행원이 됩니다.
현대과학은 이러한 논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보이지 않는 세계의 특징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을 나타내려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기를 보이고 싶어하는 특징이 있다. 빅뱅도 마찬가지, 뭉쳐서 더 커지려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먼지가 뭉쳐 별 - 성운-은하-은하단-초은하단-초초은하단....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똑같이 중요하다.
화엄에선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육조 ; 불법은 세간에 있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을 수 없다고 함.
- 밀교 ; 매우 현실 중심적인 불교. 화엄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매우 긍정적인 불교. 그러나 개인 중심적이며 개인의 성불을 강조하다보니 어두워짐. 화엄은 더불어 감을 강조하므로 이런 점에서 밀교와 차이를 보임.
* 부연설명
. 화엄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강조.
- 일심이 밝아지면 보이는 세계가 밝아진다.
. 유위법과 무위법
- 조건을 붙이면 유위, 조건이 없으면 무위.
그러나 본래 유위, 무위가 없으므로 유위에도 무위에도 빠지면 안됩니다.
무위가 따로 있는 줄 알면 안 됩니다. 즉 이분법으로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 행복 역시 유위도 무위도 아닙니다. 조건을 붙이면 유위의 행복이 되고 조건이 없으면 무위의 행복이 됩니다.
50평 아파트에 살아야 행복하다는 조건이 붙으면 49평에 살 때 불행하다고 느낀다. 50평에 살게 되었을 때 행복해지겠지만 70평에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불행하게 느낀다. 이건 유위의 행복에 불과하지요.
- 모든 것에 유위도 무위도 없는데 우리가 조건을 붙여 유위를 만듭니다.
그래서 불교는 일심을 강조합니다.
----- 1부 법문 끝.
첫댓글 법혜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모임에 참석 못하신 분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부분인데 제 불찰로 녹음기를 준비못하여 너무 죄송스러웠는데 이렇게 정리를 잘 하여 올려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역시 정리의 달인이십니다. 저도 나름 적어 놓은 것을 정리 해 보니 무슨 말인지 연결이 끊어지고 영 신통찮아 나중으로 미루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연민심이 수행의 출발이자 지향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법혜님의 이 수고스러움이 공부의 바탕이 되시고 우리 님들의 공부 바탕이 되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_()_
적으시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셨으니 의사선생님이 되셨겠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애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야 의대에 진학한다는게 얼마만큼 공부를 해야 한다는걸 알게되었으니... 이제라도 훌륭한분들과 같이 함께할수 있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며 정리하신내용 고맙게 공부하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A0
감사합니다. 편안히 앉아서 귀한 법문 들으니 죄송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_()()_
생생한 강의록 감사합니다!!!
이렇게 쉽게 볼수 있도록 정리하셨네요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를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데아의 세계는 비물질적이고, 감각에 의해 느낄 수 없는 존재의 영역으로서 환상적인 세계이며 이성의 세계이다.
반면에 물질 세계는 가시적 세계이고 감각 경험의 세계이며, 변화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모형이며, 실재는 이데아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플라톤의 철학은 수학적, 이론적, 형이상학적이며, 추상과 사고를 중시해서 결과적으로 경험적인 것보다는 관념적인 것을 강조하게 된다.
이데아(Idea)는 변하지 않는 본질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어떤 동굴에 몇 사람이 동굴의 벽을 보고 앉아 있는 채로
손과 발이 묶이고 벽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묶여 있는 사람들 뒤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장작불과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동물이나 사람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벽을 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뒤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고서 신기해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그사람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 보지 않습니다.
그림자로써 만족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그림자는 이세상의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곧 사라질 것들을 의미합니다
동굴에서 벽을 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리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앉아서 그림자가 전부이니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림자의 진짜 존재는 뒤에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뒤를 돌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진정한 본질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동굴밖의 진짜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동굴밖의 진짜 세계가 바로 이데아의 세계 입니다.
그림자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비춰진 것일 뿐 사라져버릴 존재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그 그림자만 보고서 좋다 싫다 신기하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봤던 그 사람이 앉아있는 사람에게 뒤를 돌아봐 진짜 세계가 있어!
라고 말해보지만 그들은 재 무슨소리 하냐 이렇게 보이는게(그림자) 전부야.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존재는 육신이 아니라 육신안에 있는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영혼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진정한 존재가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이데아의 세계입니다.
플라톤은 우리 인간이 이데아의 세계에서 망각의 강을 거쳐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데아의 세계에서 있었던것을 잊고 있지만
점점 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학습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플라톤의 대화론인 '파이돈'에 나와 있습니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소크라테스가 사유로써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형이상학적인 부분인것입니다.
이데아론은 플라톤이 처음 주장한 형이상학 이론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론에서 이데아는 현상 세계 밖의 세상이며 이데아는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이상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글입니다만 결국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허상을 쫒고 있는 인간을 비유한 것이네요..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_()()()_
^^ 올해도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법문 공부 합니다. 다음 법회에는 꼭 참석할 수 있도록 원을 세워봅니다........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늦게 참석하여 많이 아쉬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법혜님 학교다니실 때 족보maker 였을 것 같습니다. ^^ 정리를 정말 잘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수고 넘 많으셨습니다,애쓰주신마음 기도로서 보답하렵니다..마하반야바라밀.._()()()_
부럽고 감사합니다. 정말 유익한 강의였을 것 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법회를 준비하신 모든 마음에 공경합장 올립니다()()()
다시 새록새록 공부합니다. 제가 적어 둔 것으로는 가물가물 하기만 했는데 법혜님의 정리를 보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