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가 들고있던 도(刀)의 이름이었다. 묵빛 도병에 붉은 실과 노란 실이 어우러져 수놓였고, 쭈욱 뻗은 도신은 미끄러지듯 솟아있었다. 그리고 하얀 검신의 안에는 보랏빛 색깔이 멋지게 조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눈을 뜨고 잘 살펴보면 도날에는 붉은 기가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벤 사람들의 피가 그만큼 배어 있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귀혼도가 지르는 귀곡성(鬼哭聲)이 귀에 쟁쟁하다. 영물(靈物)과도 같은 도였다. 닿기만 하면 돌이 바스라졌고, 사람의 피를 더욱 원했다. 사부가 익힌 독특한 심법이 아니면 절대 사용불가(私用不可)인 도였다.
여기서 그 심법이란 무엇인가? 귀혼심법(鬼魂心法)이라 불리는 심법으로써, 마음속에 순수한 사기(邪氣)를 깃들게 하여 귀혼도의 소리가 마음속에 들리지 않게 한다. 귀혼도는 사람을 베고 베고 또 베어 결국은 자기가 주인을 조종하는 요도(妖刀)이다. 정범우는 현운에게 귀혼심법을 전수해 주었다. 현운은 의외로 손쉽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현운의 마음속에는 완벽한 마기(魔氣)가 깃들어 있었다. 독하게 사람을 네명이나 죽인 것으로 보아서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탄성을 지를 만큼 현운은 귀혼심법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귀혼심법은 마교의 혈마심법(血魔心法)과는 다르다. 혈마심법은 공격형(攻擊形)으로도 사용가능하나, 귀혼심법은 이름 그대로 귀혼도밖에 상관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운은 모험을 감행(敢行)했다. 귀혼심법과 혈마심법을 동시에 익힌 것이다. 현운의 자청에 의해서였다.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었다. 물론 정범우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렇게 잡혀들어올만큼 약하디 약한, 정면대결은 절대 불가능한 자신을 더욱 더 날카롭게 제련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현운은 주화입마(州火入魔)에 들어가고 말았다. 사지가 뒤틀어지며 입에선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완전히 폐인이 된 그를 구한 것은 정범우와 천현랑이었다. 천현랑의 마기어린 선천지기(先天志氣). 정범우의 귀혼심법의 다스림으로 인해 현운은 약 삼십 오일 만에 주화입마를 깨뜨리고 만다. 본디 큰 장벽을 깬 자는 더욱 더 커지기 마련. 현운의 성취는 그 후로 더욱 커졌다.
빠른 성취였다. 그러나 현운은 귀혼도법을 전수받을 수 없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내공의 운용(運用)이 약했다. 어떻게 해야 내공을 발산하는지 그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듯 했다. 외공(外空)은 가히 천하역사(天下力士)라 할 만하나 내공은 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발전이 거의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흔히들 세인(世人)들은 검법(劍法)이나 도법(刀法)이 단지 외공(外空)이라고만 생각한다. 참고로 그건 웃기는 소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검법이나 도법은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초식을 더욱 원활히 활성화(活性化)시키기 위해서는 검기(劍氣)의 부드러운 발출(發出)과 그걸 운용할 수 있는 내력(內力)이 반드시 필요했다. 현운이 만약 지금 도를 들고 마구 휘두른다 쳐도 그것은 단지 칼부림밖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동안은 현운은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게다가 귀혼심법도 극성으로 익히지 못해 귀혼도도 쥘 수 없었다. 현운은 절망감에 젖어들어갔다. 아무리 수련을 하고 자학을 해도 도대체가 이놈의 혈마심법이란 놈의 성취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손에선 혈마장도 잘 운용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 운아야. 한번 모험을 해보지 않으련? "
정범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그에게 '네'라는 대답을 원하는 말을 했다. 현운은 사부의 이런 태도가 맘에 안드는지 눈길을 찌푸렸다. 자신 역시 괴로워 죽겠는 판이었다. 아무리 나무에 손을 들이대어서 혈마장을 발현해보아도 나무에 금만 갈뿐 박살나지는 않았다.
" 어떻게 하는 건데요? "
" 그건 말이다…. "
정범우가 꺼낸 얘기는 아직 혈마장도 못 배운 현운에게 ' 수라 환신 대법 '을 전수시키는 것이었다. 수라 환신 대법은 내공을 높이는 데도 일조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수단이었다. 정범우는 현운에게 수인(手印)을 맺는 방법을 전수해주고는 느긋이 현운을 지켜보았다.
" 이익… "
현운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큰 물체를 담기 위해선 그에 맞는 그릇이 필요한 법인데, 그 그릇은 지금 너무 작아 넘칠 지경이었다. 방법은 억지로 늘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만큼 고통이 뒤따랐다.
" 아아악…! "
현운이 참다 참다 못해 잇사이로 비명을 내질렀다. 팔에 힘줄이 가득 잡혔다. 손에 고통 완화(緩和)용으로 준비했던 나무토막이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수라 환신 대법의 인을 맺기 위해 나무 조각들을 놓은 현운은 재 수인을 맺었다. 수인을 맺자 마자 찌릿 거리는 충격이 척추에서부터 머리까지 올라왔다. 손바닥에선 이미 다섯 개의 핏자국이 나 있었다. 너무 꽉 쥔 나머지 피까지 흐르는 것이다. 단전이 파괴되는 듯한 고통이 닥쳐왔다. 현운이 떨리는 손으로 수인을 고쳐맺었다. 마지막 단계의 수인이었다. 입에서 울컥 하며 검은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공이 흐르는 것을 막던 나쁜 것들이 솟아나온 것이다.
" 뭐하는 건가?! "
그 상황을 본 천현랑이 달려왔다. 정범우는 좌수를 내뻗어 그를 제지했고, 천현랑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 지금 혈마심법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아이에게 뭐하는 건가? "
" 그러니까 이러는 걸세. 제가 스스로 바란 일이야. 죽는다면 …. 제 팔자겠지. "
- 울컥.
그 상황을 고통속에서도 듣고있던 현운의 머리에 한가닥 주름이 잡혔다. 폭발한 듯 해보였다. 다시 이를 악물은 현운은 수인을 절대 풀지 않으며 온몸을 경직시켰다. 손아귀를 꽉 쥐어잡으며 현운의 몸이 크게 넘어질 듯 엎어질 듯 흔들거렸다. 천현랑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 저 애 지금 …. "
" 것 보라구. 오기가 치미는 걸세. 흐흣. "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정범우를 보며 현운은 손을 뻗어 다른 나무토막을 움켜쥐었다. 확실히 소량의 내공이 나무토막에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 파아악!
나무토막이 잡히지도 않았는데 산산히 조각나고 말았다. 내공의 유통(流通)! 현운의 몸이 가라앉았다. 그 수많던 핏줄도 사라지고 있었다. 현운이 피를 뱉으면서 일어났다. 다리가 저리는지 계속 절고 있었다.
" 제기랄…. 크윽. "
어지러운지 현운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 다시 혈마장을 시전해 보거라. "
현운이 밖으로 나가 가죽신을 신고, 터덜터덜 나가서 큰 아름드리 나무를 주시했다. 현운이 고사리같은 손을 들어올렸다. 혈마장을 운용하는 자세로 손을 끌어모았다. 좌수에 푸른 기운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된다! 부드럽게 내공이 운용되고 있었다. 푸른 기운이 주욱 주욱 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에 맺힌 푸른 기운은 타오르며 붉은 기운으로 변했다. 마침내 손에 모든 기운이 맺히자, 현운은 기합을 내질렀다.
" 합! "
- 쩌어엉….
지릿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현운은 손을 떼어내고 있었다. 된다. 된다. 된다!
- 쿠우웅!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나무가 마구 내려앉았다. 내공의 운용이 원활했다. 현운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두달 동안 쌓이고 쌓였던 모든 것이 확 풀리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단전을 흐르는 내공은 상단전으로 올라가, 팔을 타고 올라와서 혈마장을 구현해 내었다. 마구 마구 내지르고 싶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 됐다. 됐어! 됐다아-!! "
현운이 기쁜 마음으로 양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 짜식…. "
정범우는 히죽 웃으며 현운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弟 四章 「 귀혼도객(鬼魂刀客) 천혼염(天魂念) 」
" 이제 귀혼도를 잡을 수 있어요? "
현운이 두 눈망울을 빛내며 사부에게 말했다. 정범우는 싱긋 웃었다. 우선 씻고 나오라는 의미였다. 하루에도 계속 혈마장만을 연습하느라 - 유일하게 발출할 수 있는 장법(掌法)이니까. -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현운은 재빨리 집 옆에 나있는 강으로 달려가 나무통에 물을 가득 담고 개구리처럼 미끈하게 뛰어들었다. 참방대며 때를 벗기는 현운을 보면서 정범우는 킥 웃었다.
' 이런 경험도 오랜만이군. 내가 배우는 건 몰라도 가르치는 거라…. '
그는 귀혼도를 바라보았다. 슬슬 설명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몸을 전부 씻은 현운이 물기를 닦지도 않은채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쪼르르 달려왔다. 정범우는 귀혼도의 도병을 어루만지며 현운에게 말했다.
" 우선 닦아라 닦아. 그게 씻은거냐? "
" 헤헤헤…. "
뒷머리를 긁으며 웃어대는 현운을 보며 정범우는 그만 자신도 웃고 말았다. 현운의 이러한 순진함이 귀여웠던 것이다. 정범우는 손짓했다.
" 하핫. 알았다 알았어. 대충 들어와라. "
현운은 재빨리 먼저 달려가 신을 내팽겨치고 문을 잡아 열었다. 정범우가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루에 올라가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으며 현운에게 탁자 하나를 가져오라 시켰다. 현운이 재빨리 탁자를 집어오자, 정범우는 주섬주섬 허리에 묶인 검대의 끈을 풀었다. 보랏빛 끈이 풀리며 귀혼도의 검대가 풀렸다. 정범우는 귀혼도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 손을 대어 보아라. "
현운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어 스르르 얹어보았다. 순간, 현운은 몸이 기우뚱 하는 것을 느꼈다.
「 아이야…. 아이야…. 도를 뽑아라…. 」
짙게 안개가 서린 듯한 목소리가 현운의 머리속을 분탕질해 놓았다. 현운은 손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손이 아교에 붙은 듯 끈끈하게 떨어지기 않았다. 현운은 우수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입에선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아이야…. 모두 죽여라…. 다 죽여라. 」
" 아아악! "
이제는 현운이 몸을 뒤틀며 고함을 질렀다.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도병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 희안한 목소리는 계속하여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정범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현운은 재빨리 마음을 가다듬으며 귀혼심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흔들린 마음은 좀처럼 제대로 가라앉지가 않았다. 현운은 어지러웠다. 게다가 피곤함까지 겹쳐서 그는 힘들었다.
「 헛된 일은 말아라…. 느끼는 거다…. 피…. 기분 좋지 않느냐…. 」
- 귀혼심법(鬼魂心法)
필사적으로 펼쳐낸 귀혼심법의 덕택으로 그 마성(魔性)은 가라앉고 있었다. 목소리도 이제 메아리처럼 잦아들었다.
「 아이야…. 이야…. 야……. 」
" 휴우… 사… 사부님. 이거 도대체 뭐죠? "
현운이 가까스로 손을 떼어내어서 말했다. 정범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 … 이게 바로 귀혼도를 아무나 사용 못하는 이유다. "
사부는 귀혼도를 잡으면서 말했다. 사부에게는 그런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현운은 아직도 떨리고 있는손을 다른 손으로 꾸욱 움켜쥐었다.
" 귀혼도는 옛날 마교의 무장(武裝)이었던 귀혼도객(鬼魂刀客) 천혼염(天魂念)이 가지고 다니던 도이다. "
사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 귀혼도객 천혼염은 무공(武功)으로써는 마교 최강(最强) 자리에 군림하는 자였지. 하나, 오만하고, 자신의 힘을 조금도 겸손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죽었다. "
사부가 음절에 딱딱 힘을 주어 말했다.
" 하·지·만,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혼을 귀혼도에 주입시켰다. 말하자면 귀혼도는 천혼염의 정신이 들어가 있는 귀도(鬼刀)가 된거지. 그때 그와 함께 마교를 평정했던 전 사마천왕 마혈참도 비류는 망설였다. 이 도를 파괴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자에게 넘겨주어야 하는가. "
사부의 말로는 마혈참도 비류는 결국 후자를 택했고, 귀혼도를 더욱 더 날카롭게 제련시켜 - 풍문으론 귀혼도를 제련한 장인은 사흘만에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했다 한다. - 그러나 마혈참도 비류는 천혼염이 건네준 비서(秘書) 귀혼도법을 영구 봉인(永久封印)시키고 말았다. 귀혼도를 쥔 자는 모두 광인(狂人)으로 화해 제압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심하던 끝에 마교의 장로가 귀혼도법의 이 마성(魔性)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내었다. 귀혼심법! 그가 지은 이름은 이렇게 심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하여 귀혼도법은 이렇게 전수되고 전수되온 것이다.
" 너의 대에서 귀혼도법이 끊어지게 하여선 안된다. "
사부가 침이 마르고 또 마르도록 입에서 떼어놓지 않는 말이었다. 귀가 떨어질 정도로 들은 말. 아예 각인(刻印)마저 되어버린 듯 했다. 사부는 아직 나에게 귀혼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장난스런 말투로 귀혼심법이나 극성으로 익히고 배우라는 둥 놀려댔다.
" 쳇. 치사하게 정말…. "
현운은 투덜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입을 세자는 내민 채로 강가로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역시 녀석도 귀혼심법을 익히기 위해 자기가 자주 앉던 바위로 향하는 것을 정범우도 느낄 수 있었다. 정범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 어디 있더라…. "
그는 방에 있던 몇 안되는 가구를 뒤져 서랍에서 눅눅한 책자를 꺼내들었다. 책자의 앞에서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귀혼도법(鬼魂刀法)」 이라고 써져 있었다. 시원스러운 필체, 과연 천혼염 다운 필체였다. 정범우가 살살 한 장을 펼치자, 조그만 붓으로 쓴 듯 조그맣게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 절대 이 도법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 죽이기 위해 만든 도법으로 죽이지 말라는 건 이해가 안갈테지만. … 절대, 사람을 죽이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겪어본 자가 전하는 말이니 …. 이 글을 읽은 자네 역시 이 슬픔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정범우는 책을 툭 덮어버리곤 서랍에 던지듯 팽개쳐 두었다. 그가 실눈을 뜬채 바깥 햇살을 바라보았다. 햇살은 눈이 부시게 땅에 뿌려지고 있었다. 정범우가 문득 버선을 신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