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어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죠.
영어 공부에서 가장 핵심은 역시 Vocabulary, 즉 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서점의 영어 교재 코너 마다 가장 많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 어휘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어휘 책들의 상당수가 어원을 중심으로 한 어휘의 수적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이러한 구성에 대해 조금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갖고 있다.
다음의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첫째, party라는 단어는 상당히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에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상대편’, ‘당사자’[예: contracting party(계약 당사자)]이고, 또 하나는 ‘정당’[예: party policy(정당 정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의미에 따라 party에서 파생한 접미어도 다르다. ‘상대편’, ‘당사자’라는 의미에서는 ‘-partite’, 그리고 ‘정당’이라는 의미에서는 ‘-partisan’이라는 접미어가 각각 파생하였다. 따라서 이 같은 어원을 알고 있다면 아래 예에서 보듯이 어떤 단어의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 1. bipartite agreement(양자간 협정, 쌍무협정)
→ ‘bi-’ :둘(兩), ‘-partite':상대편, 당사자
2. nonpartisan assemblyman(무소속 국회의원)
→ ‘non-’:무(無), ‘-partisan’:정당
이와 유사한 예로 side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side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상대편’의 의미이고, 둘째는 삼각형, 사각형 등의 ‘변’이나 ‘면’을 뜻한다. 따라서 이 같은 어원을 알고 있으면 역시 ‘-lateral’이란 접미어를 사용한 단어의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 1. multilateral treaty(다자간 협정)
→ ‘multi-’:많은(多), ‘-lateral’:상대편(者)
2. equilateral triangle(정삼각형)
→ ‘equi-’:같은,동등한, ‘-lateral’:변,면
둘째, implicate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implicate를 어원상 분석하면 ‘im + plic + ate’로 나눌 수 있다. 즉 ‘감다’, ‘싸다’를 뜻하는 ‘plic’이란 어근(root)에 ‘inside(안으로)’를 의미하는 접두어인 ‘in(im)-’과 동사형 접미어 ‘-ate’[예: compassionate(동정하다)]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단어다. 따라서 implicate는 ‘안으로 감다’ 즉 ‘연관시키다, 연루시키다’를 뜻한다.
그렇다면 어원적인 측면에서 implicate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당연히 ‘in-’의 반대말인 ‘ex-’[outside(밖으로)를 뜻함]라는 접두어로 시작하는 explicate가 될 것이다. 그럼 어원상 ‘밖으로 감다’를 뜻하는 explicate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explicate는 ‘상술(詳述)하다’, ‘해설하다’를 뜻하는데, implicate의 경우와는 달리 어원을 가지고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어원을 알고 있는 것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의 두 가지 예에서 첫째 경우만 보면 ‘야, 어원만 알고 있으면 모든 단어의 의미가 술술 풀리겠는데.......’ 하고 마음이 설렐 것이다. 그러나 둘째 경우를 보면 ‘결코 어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영어 단어는 보통 ‘접두어 + 어근 + 접미어’, 즉 의미의 근간을 이루는 ‘어근(root)’에 접두어나 접미어가 덧붙어 이루어진다. 위의 예에서 첫째 경우가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는 어원 가운데 기능어에 해당하는 접두어와 접미어만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능어에 해당하는 접두어나 접미어를 알고 있으면 처음 보는 영어 단어라도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둘째 경우처럼 접두어나 접미어가 아니라, 어근을 중심으로 단어를 분석했을 경우 에는 단어의 의미 파악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 경우에는 어원을 알고 있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중학교 시절 한문 시간에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여러분, 왜 ‘好’ 자가 ‘좋아하다’라는 의미가 됐는지 알아요?
‘여자[女]’가 ‘아들[子]’을 좋아하기 때문에 女와 子를 합한 好가 ‘좋아하다’란 뜻이 된 거에요.
그럼 또 어떻게 해서 ‘男’ 자가 ‘사내’를 뜻하게 됐을까요?
‘밭[田]’을 ‘힘[力]’으로 떠받치고 있는 사람, 즉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릴 의무가 있는 사람이 사내이므로 田과 力을 합한 男이 ‘사내’를 뜻하게 된 거에요.”
선생님의 이처럼 기발한 설명 덕분에 好 자와 男 자를 아주 쉽게 익혔다. 그런데 만약 기본자인 女와 子 자를 모르고 있었다면 好 자에 대한 이런 설명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는 한자를 학교에서 배우므로 女와 子 같은 기본 한자는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효과적인 어휘 학습이 가능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한문을 배우듯 영어의 뿌리어인 그리스 어나 라틴 어를 학교에서 배운다. 따라서 그들은 ‘plic’이 ‘fold(감다, 싸다)’의 의미라는 것쯤은 우리가 女와 子를 알고 있는 것처럼 대개 알고 있다. 따라서 ‘어근’을 통해 어휘를 익히는 것이 원어민들에게는 효과적인 학습법이다. ‘VOCABULARY 22000’이나 ‘WORD POWER’와 같은 교재들은 바로 이 같은 어휘 학습법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 어나 라틴 어를 모르는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그리고 어근으로는 어떤 단어의 한 가지 의미밖에 유추할 수 가 없다. 그러나 한 단어에 꼭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뿐 아니라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의미를 익히는 것, 즉 빈도를 고려하여 어휘를 익히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어근을 중심으로 하여 단어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유추하는 어휘 학습법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휘 학습에 있어서 어원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