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교수는 한국사학계에서는 원로로서 그의 소개가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러나 독자를 위해서 약간의 경력을 소개하면 그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거쳐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학술원 회원이다. 조선시대를 주로 전공하였으나 위로는 고대 중세로까지 아래로는 근세, 현대까지 깊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고발하고 일본학자들과 7회에 걸쳐그 문제에 논쟁을 주도한 학자이다.
이 책의 요지는 1890년대에 일본은 역사학을 본국사(일본사), 동양사, 서양사로 구분하고 교과서를 집필하였는데 한국사를 일본사에 포함시키고 동양사에 넣지 않았음을 천하에 고발하여 국가를 점령하기 전에 우리 역사를 먼저 점령하였음을 발표했다. 그 근거는 삼국사기에는 전혀 없고 오직 일본서기에만 전하는 368년에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기사를 신빙하여 그 이후 한국사는 없고 일본에 복속된 것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한국사를 동양사에 넣지 않고 일본사로 보았다는 주장이다. '동양사'의 경우 '동양'은 서양에서 말하는 오리엔트가 아니라 일본이 지배 점령할 목표로 하고 있는 지나(차이나)를 의미한다고 보았다는 것인데 이를 대동아 공영권으로 지칭하기
저자가 보내준 2책 중 제1책 일본제국의 '동양사'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392p.
위한 역사학 개념이라는 것이다. 일본인이 칭한 동양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일본의 팽챙주의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란 사상가가 일본이 이웃 나라를 선점해야함을 주장하였음을 밝히고 그를 띄우는 작업을 근세 일본의 언론인인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활동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도쿠토미 소호는 황도사상, 천황주의, 야마도 민족주의를 외친 일본 파시즘의 사상적 후견인이었음을 일본 정국의 변화에 따라 잔잔히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장이름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를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플롤로그: 근대 일본 역사학의 국가주의 시원 단초를 찾아(17~32 쪽)
제1부 '동양사' 개발과 침략주의 역사교육: 요시다 쇼인과 나카 미치요
1장 "동양사' 용어의 유래와 인식현황
2장 메이지 정부의 대외침략주의
3장 1880년대 국가주의 체제확립과 요시다 쇼인
4장 서양식 역사학 수용과 나카 미치요(那珂通世)의 '동양사' 제안
5장 일본 동양 서양 3과 역사교과서 제도수립과 천황제 국가주의
제2부 러 일전쟁 이후 도쿠토미 소호의 황실 중심주의
6장 도쿠토미 소호의 평전 "요시다 쇼인"
7장 제1차 세계대전 전후 토쿠토미 소호의 반미주의
제 3부 대륙침략과 도쿠토미 소호의 황조파시즘 국민독본
8장 1920년대 대륙진출과 도쿠토미 소호의 파시즘 저술
9장 1930~1940년대 전시체제와 도쿠토미 소호의 파시즘 국민독본
에필로그: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선점론'에서 천황제 파시즘까지
이 대 저작은 일본 학계를 뒤흔들어 놓은 역사적 고발장이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일본사에 통합하려는 노력은 일본 강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졌고, 한국민족을 영원히 없애 야마도 민족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국가적으로 추진하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제국주의 행태를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발전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제2차대전의 책임은 일본천황이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전범처리에서 미국은 용서하여주었다. 일본의 한국사에 대한 식민사관은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역사이론으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상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일본인의 식민사관 극복은 현재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재성장함에 기초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런 의식을 지지하고 있다. 한 예로 독도문제이다. 이를 교과서에서 자기들의 고유영토였다고 가르침은 언젠가 이를 두고 한국과 전쟁을 해서라도 탈취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독도가 일본령으로 주장된 1905년은 이미 일본의 강권이 조선 정부를 압도하고 있었고, 이에 대하여 즉각 반대 성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의 패배로 한국에 빼았긴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
일본의 황도주의라는 고대적인 신화의 세계에서 일본이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황도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깊은 반성과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첵은 우리에게 역사의 주체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한 나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책이다. 한번 읽어보셔야 할 책이다.
첫댓글 낙암선생님이 소개하신 이태진교수의 저서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일본의 식민사관에 대하여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지로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교육 내지 국사교육이 빈곤한 편이었고 한국인들 가운데는
반일이나 친일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문제는 올바른 역사교육(인식)을 토대로 하지 않은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는 역사대로 바르게 인식하되 현실은 현실대로 냉철히 인식하고 국제관계에 대처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독도의 영유권문제는 그 곳이 한일공동어로수역(?)으로 설정되고 그 정리가 미루어진 채로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시마네 현에 속하는 것으로 함으로써 심각하게 확대된 것이라고도 하더군요.
독도는 돌섬 , 석도(石島)라는 개념과 일치하는 것으로 압니다. 경상도에서는 돌을 '독'이라고 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됩니다. 1960년대 초에 해양경비정에 편승하여 독도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돌섬"이라는 개념이 그대로 인식되었습니다. 나무는 고사하고 풀도 전혀 보이지 않는 완전한 돌섬이었습니다.
일본이 竹島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하여 죽도라고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청계산)
지교수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도를 이미 다녀오셨군요. 저는 15년 전에 울릉도에서 가려다가 풍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죽도라고 칭함은 역사문헌으로 보아 울릉도를 가리켰습니다. 울릉도라고 하면 우리 국민이 살아왔고 조선 영토였음이 너무나 분명함으로
이를 독도로 옮겨 지칭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위 책에서는 독도의 문제는 전혀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가 일본 파시즘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예로 든 것 뿐입니다.
도쿠토미 소호는 근세일본사를 100권으로 저술하였고 국민독본이라는 책도 썼습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이 분열된 일본을 통일할 때 천황의 존재를 그대로 두었다고 하여 이때부터 근세의 시작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의 팽창을 역사적 당위로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민신문을 창간하고 어용지로서 일본 침략주의, 만주국의 건설,,지나사변 등등 일본의 대륙 점령을 극찬하고 천황주의를 강조한 대표적인 언론인이고
할 수 있습니다. .
이태진 교수의 저서 소개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가지고 가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가는 동행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