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 혁명 |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1919년 3월 노인들의 결집을 촉구하는 〈노인동맹단〉의 취지문이 발표되었다. 백발노인이 죽기를 기필할 때 적인(敵人)도 오히려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라 잃은 울분을 토하며 거리로 나온 노인들이 국내외에 거주하는 몇 백만의 노인들을 향해 던진 포성이다.
1백 년 전 이 땅, 선배 노인들의 패기와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 시대의 노인은 기껏해야 복지의 대상이거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밀려나 있지는 않은가? 머지않아 8백만 베이비부머의 멀고 긴 노년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들을 누가 보살피고 누가 돌볼 것인가? 노인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을 돌보고 또 주변을 돌보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전망은 불가능한 것인가? 최근에 대두되는 노인문제는 좋은 노년을 위한 조건을 다각도로 만들어야 함을 시사한다. 노년은 좌절인가, 즐거움인가
‘노인의 열 가지 좌절[老人十拗]’이라고,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 소개되었다. 노인의 신체적 증상에는 계급이
없다. 영조 임금은 52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83세까지 살았다. 조선 후기의 중흥기라 불릴 만큼 왕성한 업적을 남긴 임금 영조도 노년에
이르러서는 각종 신체적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공부하는 중에 깜빡깜빡 조는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읽으라고 명해 놓고는 다시 졸아 들리지도 않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 ‘민망한’ 증세를 임금은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제아무리 왕후장상이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노인 증상이라면, 그것과 마주하는 인식과 태도의 혁명이 필요해 보인다. 청춘처럼 살 것인가, 노년답게 살 것인가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심수경(1516~1599)은 “나이 82살인데도 여전히 병이 없는” 자신을 몹시 대견스러워했다. 과거 동기생[同榜] 다섯 중에서, 자신은 “재주와 덕은 최하이지만 벼슬과 수(壽)는 최고”라 하고 하늘이 주시는 것은 공평하다고 한다. 겸손의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런 심수경은 75세에 아들을 낳았고 81세에 또 아들을 낳았다. 비첩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지만 사람들은 ‘은발 청춘’의 왕성함을 축하하였다. 그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심수경은 심정을 시로 읊었다.
『견한잡록』의 저자 심수경은 유독 ‘나이듦’에 민감하였다. 그의 글에는 누군 몇 살이고 누군 몇 살이라는 방식의 서술이나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는 방식의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그런 심수경의 노년의식을 굳이 따진다면 “여전히 청춘”이고 싶은 거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겸손과 성찰의 자세로 일관한 미수의 노년의식이 참으로 그립다. 우리 역사를 산책하다 보면 노년의 자존감을
잘 가꾸어낸 많은 노인을 만나게 된다. 80이 넘은 나이에 나라의 큰 직임을 맡게 된 김상헌(1570~1652)은 “시골로 물러가 노년을 지키며
늘그막의 절개를 보전할 수 있게 해 주소서.” 라고 하였다. |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
|
|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다산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실 분은 dasanforum@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