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란 녀석은 50여 개의 알을 낳지만
절반 이상이 부화되기도 전에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커 가면서 또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지만
결국 스스로 살아남는 한, 두 마리의 새끼가 자라서 늪지의 제왕이 된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가! 강한 놈이 살아남는가?
이번 하천은 물 맑고 경치 좋고, 인심 좋은 경북 영양군 고추나라 속을 파고드는 낙동강 1 지류인 반변천의 지류인 동천 길이다.
지난날 걸었던 반변천은 일월산 동쪽에서 발원되지만 동천은 일월산 서쪽에서 흘러드니 해와 달의 산인 일월산 속살은
또 어떤지...
새벽에 자가용을 이용해 중앙 고속도로와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고추나라 영양에 도착한다.
자가용은 날머리인 선바위 옆 연당리 마을 공터에 주차하고, 영양 택시를 이용해 일월산 오름길에 찰당골 안내판이
서있는 일월재에 도착해서 덕산지맥길을 오르다가 뒤돌아 보니 월자봉이 더 높고 발원지가 길어 보인다.
집에서 지도를 보던 것과 너무 달라 보여 다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며 월자봉으로 오른다.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직 한겨울이라 해도 될것 같이 바람은 차갑고 정상 인근으로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춤을 춘다.
월자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반변천 발원지이며,
멀리 칠보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낙동강길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나다는 양원역에서 분천역 그사이 속살을 파고들어
낙동강에 안기고, 칠보산 동쪽으로 가는 물은 비경 중의 비경이라는 울진 왕피천으로 흘러가서 동해로 흘러든다.
낙동정맥 통고산에서 이어지는 칠보산이 당차게 서있는 모습을 가슴에 두고 이곳 정상에서 북쪽으로 20여 미터
내려가 본격적인 계곡 탐방길로 접어들게 된다.
월자봉에서 본 일월 정상
일월산 산신은 황 씨 부인이라고 하죠
옛날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성을 가진 처녀는 동네 총각과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처녀가 워낙 이뻐서 두 총각이 서로 차지하려고 탐을 내었다
그중의 한총각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신혼 첫날밤 총각은 한잔 마시고
원앙금침에 들기전에 뒷간에 잠시 다녀온 총각은 신방 문 앞에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신방 문 창호지에 칼날을 든 그림자가 얼씬 거리는 것이었다.
"아씨!~ 저 세끼는 그 세끼 아이가 내 죽일라꼬, 이 가시나 하고 작당을 했구먼 하고 달아나 버린다."
사실은 칼날 그림자는 문 앞의 대나무 잎의 그림자였는데.. 돌머리 같은 총각은 그것을 알 길이 없어 그 길로 영영 달아나 버린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는 애간장 다 태우며 몇 날 몇 밤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신부는 마침내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했다.
여인은 살아생전 꽃 꽃 했던 몸가짐으로 앉음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치 돌부처 인양 언제나 신방을 지키듯 그렇게...
어딜 가나 큰 산이 있으면 큰 사찰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 일월산으로는 무속의 기운이 강해 전국 명산 가운데
유일하게 천년고찰이 없다고 한다
일월산의 산신이 황 씨 부인이기에 부처님을 모시지 못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어 일월산 아래 용화사와 천문사 절이
있지만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지나간 경로
월자봉에서 북쪽으로 20미터 진행 후 계곡으로 파고들면 크고 작은 너덜길이 이어지며
조금 내려오다 보면 일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임도길이 나타나고
임도길을 건너 계곡 아래로 내려오면 아주 오래전에 다니던 묵은 돌길이 나타나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일월산 북쪽 깊고 깊은 계곡으로 산삼이 많이 난다는데
이런 칡덩굴 속에 뭐하나 있을까 싶다.
칡덩굴 이 녀석과 싸우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것 같아 잠시 우회해서 지나며
한여름에 오면 독사가 득실 거릴것 같은 너덜길이 끝없이 이어지며
바위 속으로 물소리가 들릴 듯한데 아직 조용한걸 보니
조금 더 내려가야 할 것 같고
월자봉 깊은 계곡부터 조금씩 모였다가 갑자기 나타난 물은 수량이 꽤 많다.
물 맛은 물 맛이고
몇몇 곳에서 물이 바위 속으로부터 빠져나온 걸 확인하고 계곡 아래로 좀 더 내려가니
일월재에서 윗 차골 짜기로 흘러내린 물이 많아 일월재 방향으로 다시 올라가 본다.
일월재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보니...
월자봉 계곡보다 더 상류의 물이니 영양 동천 발원지는 이곳 일월 재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일월재에서 시작되는 영양 남대천 발원지
계곡으로 내려오며 만나는 폭포
암반 위로 흐르는 물은 하얀 포말을 그리며
오래전에 일월재로 다니던 묵은 수랫길 처럼 꽤 넓으며
가끔 계곡을 건너는 동안 길은 끊어지나 잘 살피며 걷는다면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없을 것 같다.
오염되지 않은 계곡길은 길게 이어지며
계곡길에 만나는 좌선 바위
물소리 들으며 좌선하면 금방이라도 득도를 할 것 같은곳
어느 도인이 이곳 좌선 바위에서 도를 깨우쳤다나 말았다나 그런 전설이...
2번째 폭포를 지나지만
용소 같은 깊은 담(潭)은 없지만 하늘나라 선녀가 달 밝은 밤에 목욕을 하러 오지 않았을까
달 밝은 날 이곳에서 지켜보다 보면 어느 이쁜 선녀가 목욕하러 올지도 모르겠고
3번째 폭포를 지나
혹시라도 영양 일월산 산행하고 임도길로 내려오신다면 일월재 계곡으로 하산해 보시면
아주 흡족해하실 것 같다
등산로는 묵은 임도길이 있으며 물론 없는 구간이나 계곡을 건너가다 보면 길이 끊겨 당황하실 수 있을지도
계곡길이 끝나고 염소 키우는 농장을 만난다.
잘생긴 댕댕이도 보이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 하는데 배낭에 먹을 게 없어서...
흑염소 농장 겸 식당
청기 저수지
청기 저수지에서 본 일월산 정상 부근
벚꽃이 활짝 핀 오지 산간 마을
상류에 청기 저수지가 자리해서 그런지 하천에 물은 별로 없고
이리저리 돌아서 본 일월산 정상
청기면 무진리 벚꽃길을 탕탕 거리며 가시는 농부님의 모습
무진리 마을 앞 풍경
무진교에서 본 동천 풍경
영양의 반변천이나 동천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걸어가면서 이런 풍경은 쉽게 접할 수 있어 좋고
영양군 청기면 토구리 마을 앞 갈대 들녘으로 고추밭에 비단 같은 검정 비닐 깔고 계시는 분들이 자주 보인다.
회사 일 때문에 자주 찾아가는 영양군은 한여름 뙤약볕에 긴 옷 입고 묵묵히 고추 따는 외국인들의 모습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게 되던 곳
고추농사는 전체 수익의 30%는 인건비 나머지는 30% 고추 약값 자제비
그 외 40%는 농장 주인 몫
지방하천 3,773개 중 하나인 동천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하천 가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하천가에 정자 보이시죠
영양군에 있는 정자 대부분 저의 회사에서 만든 정자이다.
알록달록한 건물 일월초등학교 청기 분교
청기면 정족리 마을 앞 하천 공사로 흙탕물이 떠내려 가지만 얼마 못 가서 물은 다시 깨끗해진다.
이어지는 하천길에 이쯤에서 물 건너 진행해야 하는데
영양의 고추님께서 바로 근처에 와 계신다고 연락이 온다.
고추님과 같이 오신 ***님
따뜻한 통닭 한 마리와 음료수를 준비 해오셨는데
잠시 앉아 계시며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집니다.
두 분 바쁜 시간에 이렇게 찾아 주셨는데 고마웠습니다.
영양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고추 주산지죠
요즘은 사과와 배 농사도 같이 지으며 부자 동네로 거듭나는 곳입니다.
지나온 하천길
하천 정비를 한 곳은 이렇게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어 보기 좋고
날씨는 다소 쌀쌀하고
지나온 하천길에
청기면 저리 마을 앞
페인트 통을 잘라서 만든 바람개비에 태극무늬까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덜그럭 거리며 잘 돌아간다.
저리 마을 앞 부연이며 보이는 산은 지맥 길의 무이산이다.
부연이란 가마소 풍경
위에 하천 정비 공사로 물은 흐리지만
이무기가 살듯한 가마소에는 이무기는 보이지 않고
까만 가마우지만 살판난 듯 연신 물속을 들락날락 거린다.
세곡마을과 이중산에서 무이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길
가마소로 이동하며 본 저리 마을과 무명봉
가마소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
이곳에 어느 분의 무덤이 자리하는데 아주 좋은 곳에 자리 잡았으니 후세분들이 모두 조상님의 영향으로 잘 사실 것 같다.
가마소 지나서 본 절벽에 계단이 보이지만 사용하는지 안 하는지 커다란 바위가 무너져 있다
임진교에서 본 하천길
연당리로 가는 길에 만나는 하천길의 노거수
이런 풍경은 전국 어느 하천을 가더라도 보이는 쉽게 접하는 모습이다.
연당리 거북 바위가 자리하는 곳
서석지 안내글
연당리 서석지
서석지는 연못으로써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집에서 볼 수 있는 연못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고 했지만
과연 일반 백성들이 마당에 이런 연못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찌 됐던 광해군 때 정영방이란 분이 자양산 남쪽 마을인 이곳에 만들었다고 하시니...
연못 속으로 60여 개의 작은 서석들이 있어 서석대라고 한다.
연못 주위로는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어 사우단(四友壇이라 이름 붙였는데
선비들이 즐겨 그리시던 사군자(梅蘭菊竹) 중에서 청초한 난초 대신에
자기밖에 모르는 까칠한 소나무를 심으신듯하다.
서석지를 떠나며
400년 정도 된 학자수(學子秀)인 은행나무가
담장 밖까지 가지를 뻗쳐 공부 좀 하다가 가라며 손짓한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는 담에 하는 걸로 치고
연당리 서석지를 보고 나오면 만나는 석불 좌상
통일 신라시대 말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인선에 둥근 약 항아리를 들고 있는 약사여래불인데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으며 얼굴 부분은 아주 심하다.
아무런 재물도 올리지 않고 소원을 빌기에는 양심에 찔려 두 손 모아 합장만 하고
돌아서서 가는 길에 "부처님 로또요 하며...ㅎㅎ
일월산에서 이어지는 지맥 길의 날머리 부분 남이포 절벽
남이 장군의 전설이 깃든 남이포
남이 장군은 젊은 17세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큰 칼을 휘두르며 이시애의 난을 평정했으나
"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라는 시구절을 남긴 것을 유자광이 역심을 품었다고
예종에게 고변하여 역적의 혐의를 받아 온갖 고문을 당하고 28세에 처형당했다.
남이장군의 시
白頭山石 魔刀盡 (백두 산석 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닳아지고
豆滿江水 飮馬無(두만강수 음마 무) 말 먹여 두만강 물 말리오리다.
男兒二十 未平國(남아 이십 미평국) 사나이 스물에도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後世誰稱 大丈夫(후세 수칭 대장부) 후세에 누가 나에게 대장부라고 말할 수 있으랴
남이포의 절벽은 거대한 군함의 뱃머리 인양 남으로 향하고 있으며 좌측에 반변천을 두고, 우측에 동천을 두고 있다.
두 물은 반변천이 되어 임하댐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선바위
남이 장군이 이곳에서 자룡 형제의 반란군을 토벌한 후 다시는 역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물길을 돌려야 한다며 칼로 내리쳐
산줄기를 잘랐다고... 한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니 인근에 주차해둔 차는 잘 있는지
영양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고향집 의성으로 가서 자고
내일은 의성의 남대천길을 걸어 가본다.
첫댓글 맑은 물이 있으니 또한 산세도 수려하고 경관 토한 존내요
수고하셨습니다.
영양은 산이 깊고 물은 깨끗한 동네죠
덕분에 고추 그리고 여러가지 산화된 산마물의 주산지가 되기도 했구요
사진과 자세한설명까지 잘 봤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늘 부족합니다.
하천길도 이제 10개 정도만 남겨두고 있는데
조만간에 끝날것 같습니다.
깨끗한 하천을 위해서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산삼 한뿌리 캐드시고
목간 나온 선녀분이라도 뵈었어야했는데
어째 둘 다 못하셨네요
강길 첫물 찾는건 역시나 쉽지않고
직접 가봐야 아니
다시 오르는걸 마다 않고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강길 소중한 자료가 어렵사리 만들어지니 방장님 이 노고가 귀할 따름입니다
한걸음 또 수고하셨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