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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교 시의 ‘장소성(Placeness)’ 구현과 특성
한영옥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흔히 50년대 한국현대시의 지형은 전통서정과 모더니즘으로 대별된다. 이 구도 안에서 이성교는 ‘전통서정의 축을 담당한다. 특별히 고향인 강원도 지역의 정서를 형상화, 로칼리티를 농후하게 발현하면서 50년대 주요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것이다. 서정주와 박목월의 맥을 이으며 이동주, 박재삼 등과 더불어 50년대 리리시즘의 한 축을 무겁게 담당한 시인임을 한국현대시사의 글들은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이성교 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미비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이에 본고는 마침 부각되고 있는 장소성Placeness에 대한 이론들에 힘입으며 그의 시에 구현된 향토성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장소성은 단적으로 한 장소가 지니는 의미로서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체험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장소만의 고유성을 경험하는 의식을 통해 장소성은 구현된다 하겠다. 개인과 문화의 양쪽에서 장소의 고유성을 앗아가며 의미 깊은 장소를 유래를 알 수 없는 공간과 교환 가능한 환경으로 바꿔버리고 있는 현실에 개탄하는 문화지리학자(에드워드 렐프)의 목소리에 공감하면서 본고는 시적 주체가 그 장소를 경험하는 의식현상과 이를 형상화하는 방법에 주목하였다. 이에 주체의 낙관적 시선과 향토에 대한 승화, 인정과 평안의 세계로의 의식지향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지향들은 향토의 습속과 경관을 여실하게 그려내는 묘사의 박진감에 힘입으며 시적형상화에 높게 이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하여 본고는 개발의 미명하에 국토 전체가 비장소성Placelessness으로 물들어 가며 패스트풍토화 되는 현실 속에서 이성교 시가 발현하는 고유한 ‘장소성’의 귀중함을 반추할 수 있었다.
* 핵심어 : 로칼리티, 장소성, 비장소성, 서정성, 이미지, 주제, 묘사, 박진성
1. 서론
월천 이성교 시인은 1932년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월천리 생으로 향년 80세에 이르렀다. 호 월천月川은 그의 생가 곁에서 바다로 흐르는 냇가에 이름이며 그대로 고유한 지명이기도 하다. 자전적인 글들을 통해 보면 그는 월천의 흐름을 안으며 농촌과 어촌의 풍경이 어우러진 향토에서 자연스럽게 시심을 갖추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한 습작에 임했던 월천은 대학시절인 1956년 1957년 사이에 『현대문학』지를 통해 추천을 완료한다. 평소 높이 우러르던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윤회」, 「혼사」, 「노을」의 세 작품을 선보이며 전후 활기를 띠기 시작한 50년대 시단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1965년에는 가열찬 시작의 첫 결실로 시집 『산음가』를 상재, 이후로 시인은 한국의 전통적인 서정 시인으로 상찬되며 주목 받기에 이른다. 고향인 강원도의 향토성을 형상화함으로써 근원적 향수를 일깨워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려낸 첫 시집은 이듬해인 1966년에 제11회 현대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된다.
돌이켜 볼 때 “일찍이 이성교는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의 뒤를 잇는 한국적 리리시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 받아왔다”는 언급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문학상 수상 이후로도 월탄문학상, 기독교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의 굵직한 수상 이력은 시인의 알찬 시력을 잘 보증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50년대 전통서정시의 축을 담당했던 이동주, 박재삼과 더불어 한국적 리리시즘의 자리를 견고하게 다져갔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마침 지난 2011년에 열 번째 시집, 『끝없는 해안선 그 파도를 따라』를 엮음으로써 시인은 과하지도 적지도 않은 결실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그는 5,60년대의 대표시인으로서의 위상을 다시금 오롯하게 확인 시켜준 셈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권의 시집을 통해 시인이 보여준 세계는 한마디로 ‘향토의 노래’라고 일축할 만하다. 시인은 지치지 않고 그가 태어난 삼척과 청소년기를 보낸 강릉을 중심축으로 삼으며 근처의 지역들에서 건져낸 인간미 넘치는 삶의 모습과 경관들을 시화하는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시인 스스로의 의식적인 지향이기도 하였다. 아홉 번째 시집 『싸리꽃 靈歌에서의 “그동안 내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적 정서의 시, 민족의 시, 향토적 시 추구에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는 언급이나 열 번째 시집 『끝없는 해안선 그 파도를 따라서』에서의 “나는 그동안 동해변 내 고향을 생각하며 향토의 빛이 짙은 시를 써왔다고 할까, 그 가운데서 전통주의 정신을 중요시해왔다”에서 이는 잘 확인된다.
그간 월천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 시집 뒤 지인들의 애정 어린 해설들을 통해 충분히 도모된다. 외에도 여러 신문, 잡지를 통한 단편적인 평문들이 많이 있으나 굵직한 연구 목록으로는 우선 박호영의 「토속적 세계와 신앙의 변주」, 김영기의 「초탁어의 공간의식」, 김형필의 「월천 이성교론」을 들 수 있다. 세 편 모두 ‘토착성’을 근거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경우다. 박호영과 김형필은 ‘신앙’ 시편들에 대한 분석을 아우르고 있으나 이 부분이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이 외에 박진환은 그의 저서에서 월천 시의 공간 구조를 공시적, 통시적 각도에서 다루오 있는데 바다에서 산으로의 수평적 이동과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수직적 이동에 따르는 공간 설정에 대한 논의가 핵심을 이룬다. 월천의 시 구조를 보다 일목요연하게 펼쳐 놓은 성과를 갖는다. 한편 특별히 ‘산’ 모티프에 집중, 물과 불의 원형상징에 기반하여 산의 상상력을 따라간 송영순의 연구는 월천시의 이미지 조성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제까지의 월천시를 대상으로 하면서 그의 시의 변함없는 동력인 ‘향토성’에 집중하려 한다. 한편 본고는 향토성의 의미를 근래에 내세워지고 있는 ‘장소성Placeness’의 의미와 중첩시킴으로서 기존 연구에서 더 나아가고자 한다. 단지 사물의 위치한 것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의미가 집적된 것으로서의 장소성은 단적으로 한 장소가 지니는 의미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장소성은 인간의 체험을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의미로 특징지워진다. 이에 “의미있는 장소를 경험하고 창조하고 유지하며” 장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시편들의 특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월천 시를 장소성의 구현으로 설정함으로서 근대 이후 그 장소만의 고유성을 무너뜨리며 획일화되고 있는 ‘비장소성Placelessness’의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인이 자신의 향토, 그곳의 물리적, 일상적 환경에 반응한 바의 시적 의식은 장소의 고유성으로 의미화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곳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꼬한 그리워하도록 추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만의 특별한 정취를 경험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모처럼 길을 나서서 마주치는 “닮은 경관이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미로와 같은 비장소성”의 현실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귀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에 젖을 수밖에 없다. 마침 개발의 미명 아래 장소의 특별한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장소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문화이론의 중심에 와 있음은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월천의 시편들은 어느 때 보다 귀하게 조명될 가치를 얻는다. 곳곳마다 개발이 자행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월천의 시편들에 숨 쉬고 있는 장소들은 지금 비장소성 속에 있을 것이다. “고향은 늘 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떠나 산 적이 없다”는 고백의 말 대로 그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향토의 면면은 기억에 의해 회고된 것이다. 우리는 시인의 기억에 의해 생생하게 재생된 고향의 장소감을 추 체험하면서 고향의 의미를 귀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인의 생생하게 일깨우는 고향의 의미와 표현의 특성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2. 낙관적 시선과 향토의 승화
월천의 열권의 시집들은(특히 뒤로 갈수록) 삼척과 강릉 주변의 지역들을 반복적으로 호출하고 있다.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월천리는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고 강릉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이곳은 시인의 정체성이 차곡차곡 접혀져 있는 장소들이다. 때문에 시인은 이 두 장소에 대한 애착을 생애 내내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그의 시적특성은 삶의 터전에 대한 사람의 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이른바 ‘장소애호Topophilia’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삼척과 강릉 지역뿐 아니라 월천의 시편들은 장소에 대한 정서적 강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두 지역은 특별히 삶의 방향을 이끌어 준, 견인차로 작동되는 바로 그곳이라는 데서 의미를 더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란 지역에서 말을 배우고 식사법과 인사 같은 예의를 체득하고 자아를 형성해서 행 동 양식과 넓은 세상과 대치하는 방법을 획득한다. 만인 그 토지를 떠난 후라 해도 본인에게 힘든 일이 생긴다거나 방황하게 될 때 고향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확인하려고 한다. 고향은 자기 자신의 뿌리이며 평생에 걸쳐 마음을 의지할 것으로서 무든 일이 생기면 돌아갈 장소가 된다.
독특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서의 장소, 곧 장소성과 관련된 위의 언급은 월천의 시를 해명하는 데 적절한 편의를 제공한다.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형상화되는 지역은 바로 고향인 삼척과 제2의 고향인 강릉 부근이며 시인이 자신의 뿌리로 의식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집에서 두 지역에 위치한 마을들은 시인의 경험과 의식이 투사된 특별한곳으로 그려지면서 고유의 장소성을 현시한다. 첫 시집 『산음가』에서는 다소 정한의 감정이 투사되어 있으나 차츰 낙관적 시선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하는 향토는 삶의 의욕이 꿈틀거리는 역동적 공간으로 승화되기에 이른다. 즉 첫 시집에서의 “밤마다/ 지렁이는 섧게 우는데/ 나뭇가지에 붙은 하얀 침은 어느 누구의 눈물인고(『葛嶺峙』)”와 같은 탄식은 제2시집 『겨울바다』에 이르면서 “아무리 하품을 해도/ 해안선은 피곤하지 않고/ 자꾸만 바다를 향하여 몸을 늘이고(『해안선‧2』)” 있다거나 “날마다 수천마리의 양떼를 몰고 오는(『해안선‧3』)” 향토의 너그러움 속으로 잦아든다. 물론 이후로도 정한의 정서가 말끔히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승화된 향토와 그 안에서의 고양된 삶이 시집들을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음을 간파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시인의 낙관적이며 긍정적 시선에 힘입는다. 이렇게 하여 시인의 눈이 닿은 향토의 곳곳은 승화된 이미지를 입고 높이 떠오르기에 이른다.
基谷里엔
푸름이 잔뜩 깔려 있었다
뒷산 솔밭에서
도고산 정기를
다 푸는 모양이지
마을 앞엔
꿈같은 들판이
항상 가금을 뜨게 했다
어느 해 아침
논가에 솟은 김을 보고
모두 팔자를 고쳤다고 좋아했단다
그해 가을 몹쓸 병을 앓던 언년이도
약물에 눈을 씻고
용케 시집을 잘 갔단다.
– 「基谷里」전문(『눈 온 날 저녁』)
강릉 박월리
그 푸른 바람
내가 사는 바람이었다
내 사랑이 싹트는
큰 바람이었다
한때는 깊은 못에 바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에도
용케 내 손을 잡아준
큰 바람이었다
비록 서러운 땅이었지마는
다시 눈물을 씻고
토담가에 풀꽃으로 피어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큰 손님이 다녀가
동리 앞길이 밝아지고
우물물이 더 맑았다
내 마음 속 깊은 골에
시퍼렇게 시퍼렇게 이는 바람
그 바람은 내겐 큰 약이었다
사랑 병을 고치는 큰 약이었다.
– 「博月理 바람‧2」전문(『강원도 바람』)
두 편 모두 특정한 장소와의 교감을 곡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기곡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는 삼척 지역의 조그마한 마을 기곡리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다. 첫 행부터 “기곡리엔 푸름이 잔뜩 깔려 있었다”라고 색채 이미지를 전경화하며 긍정적 시선을 던진다. 이 시선은 “도고산 정기”와 “꿈같은 들판”으로 높고 넓게 번져 나아간다. 이어 “논가에 솟는 김”은 “팔자를 고치”게 하는 것으로 지향되기에 이른다. 평범한 촌락일 것이지만 이렇듯 시인에게는 특별하고 숭고한 경험, 그 자체로 현현된다. 즉 “가슴을 뜨게”하는 장소로 높게 드러난다. 이는 비단 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마을의 공동체 “모두”의 경험으로 확산되면서 의미를 보강한다. 시에 동원된 “언년이”는 공동체 ‘모두’에 속한 인물이며 그의 “몹쓸 병”을 고친 “약물”은 마을사람 모두를 치유하는 ‘약물’이다. 따라서 사실적 모티프인 ‘약물’은 이 시편 속에서 상징적 모티프로 거듭나면서 성소화된 마을의 이미지를 투사한다.
「박월리 바람‧2 의 경우는 시인이 소년기를 보낸 강릉지역의 마을에 대한 지향을 잘 보여주는 예다. 이 시에서도 “푸른”의 색체 이미지를 내세우며 분위기를 높인다. “푸른 바람”은 “큰 바람”으로 “큰 약”으로 변성되며 강도를 높여간다. 이 이미지들은 “시퍼렇게 이는 바람”으로 강도를 더욱 높이며 “깊은 못에 빠”진 화자를 건져 올려주는 역할과 밀접하게 상응한다. 앞의 시 「기곡리」와 유사한 골격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처럼 월천의 시에 드러난 향토는 고단한 삶을 치유하며 삶을 고양시키는 의미 있는 장소로 승화되곤 한다. 한편 삼척과 강릉의 지역들은 월천에게서 강원도의 정체섯을 결정짓는 제유의 상소이기도 하다. 사실 시에 드러난 강워노 지역들은 모두 강원도의 장소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질펀히 흐르는 강물
끝닿는 데 없이 흘러
다시 바다로 흘러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깊은 그 속사정을 누가 알리
강원도는 안의 신비가 더해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
살다보면 억한 심정도 있지만
강산이 좋은 약이 되어준다
강산이 좋은 약기 되어준다
동으로 가도 집이 있고
서로 가도 집이 있고
북으로 가도 집이 있어
강원도는 경계가 없다
어디고 인정이 줄이 닿아 있다.
– 「강원도‧2」(『강원도 바람』)
앞서 보았던 약물, 큰 약은 이 시에서 “좋은 약”이 되고 있다. “강산이 좋은 약이 되어 준다”는 진솔한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향토에 대한 시인의 승화된 의식을 다시금 엿보게 한다. “억한 심정”을 누르고 향토의 강산으로 시선을 던지는 순간 어느덧 풍광은 바라다보는 이의 가슴이 되어 준다. 경계가 없는 향토의 강산은 곧바로 “경계가 없”는 마음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억한 심정이 풀리고 “어디고 인정의 줄이 닿아 있”음을 환하게 깨닫게 된다. 결국 향토의 강산은 치유의 손으로 작용하면서 시인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장소와 인간은 서로 스며들면서 응결된다. “사람은 곧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이고 장소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임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이상 월천의 향토시편들이 보여준 향토의 승화, 그 면모를 몇 편의 예를 통해 살펴보았다. 향토의 자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며 낙관적 시선을 기를 수 있었던 시인에게서 있어 강한 향토애와 승화의식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겠다.
3. 人情과 平安의 세계
월천 시편들에서 드러나는 향토의 이미지는 인정과 평안함의 육화라 볼 수 있다. 또한 향토의 경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성정을 대변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향토의 장소감은 그곳에서 함께 한 인물들과 그들에게서 우러나는 인정의 경험을 통해 더욱 강도를 높이게 된다. 이는 “공동체가 장소의 정체성을, 장소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월천 시에 나타나는 공동체적 인물들은 어머니, 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등의 혈육과, 또한 혈육과 다름없는 고향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박하고 투박한 향토의 강산을 그대로 육화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이 어울려 자아내는 삶의 면모는 바로 그 장소만의 고유한 의미로 자리하기에 족하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산골짜기에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山川에 버려진
유리조각에도
새 빛이 돋아
가슴은 마냥 환해진다
그러니까
아예 姓과 이름을 묻지 말라
풀꽃처럼 피었다
풀꽃처럼 진다해도
마음에 이는 불길은
끌 수 없다
어쩌다 서로 만나
이야기해 보면
어느샌가 눈이 멀어진다
잔잔한 봄물 속에
어른거리는 얼굴들
아무리 고집이 세다 해도
指南鐵의 引力은
도시 당할 수 없다.
– 「고향 사람들」(『보리 필 무렵』)
고향사람들로부터 풍겨나오는 정의 향기가 물씬하게 배어나오고 있다. 고향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고향의 삶은 가슴이 “마냥 환해”지는 밝고 평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指南鐵의 引力”으로 압축된 표현의 강도가 시의 압권이다. 고향사람들은 만나 얘기다하다 보면 “어느샌가 눈이 멀어지”는 “姓과 이름을” 굳이 물을 필요가 없는 그런 눈물겨운 대상들이다. 이는 고향사람들을 향한 시인의 간절한 애정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역시 특유의 긍정적 시선에 의한 것이다. 그에게서 고향사람들은 산골짜기의 흐르는 물처럼 다정하고 익숙하고 선량한 인물들이다. 아니 그 산골짜기의 흐르는 물과 구별이 따로 없는 그냥 고향의 산천과 같다. 인정과 평안으로 어우러져 그저 강산처럼 펼쳐지는 고향사람들은 “잔잔한 봄물”의 이미지를 입으며 시편에서 전경화된다. 여기에 시인의 얼굴 또한 그 이미지 속에 있음은 물론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다보는 시선의 따뜻함을 주고 받는 고향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들」의 세계는 또 다시 시 「고향 친구들」에서 “모두 한 마음으로/ 자리를 펴면/ 고향집이 들어선다// 산이 성큼성큼들어서고/ 그 앞에 물이 흐르고”로 잇대어 지기도 한다. 이와같이 고향의 집과 산, 물, 친구들은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 동일성의 세계를 구현해낸다. 바로 고향의 정체감을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길게 늘어진 산골이라
아랫마을 웃마을
따로 갈라졌다
우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밀도 많았다
그러나 열매가 익을 때는
한 통속이었다
한 빛깔 속에 한 바람이 부니까
이럴 때 사람들은
사랑을 제일 많이 했다
대관령을 큰 축수로 하여
항상 밝아지길 바랬다
모두 다 행복했다.
– 「강릉 느름내」(『운두령을 넘으며』)
강릉의 산골 마을 느름내의 풍경과 사람살이가 곡진하게 어우러져 있다. 눈에 잡힐 듯한 경관과 삶의 모습이 바로 앞에 있는 듯 선영ㄴ하다. 이 시에서 내세워진 것은 이전이 흐르는 삶의 평안함일 것이다. “비밀도 많”다 하더라도 “한 통속”이 되고 “한 빛깔”을 입을 줄 아는 삶은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이겠는가. 갈등이 아닌 화해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향토의 토박이들은 울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족할 것이다. “모두 다 행복”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꿈을 누구나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유토피아를 그려 놓은듯하면서도 사실적 묘사로 현실감을 놓치지 않고 있어 읽는 이에게 삶의 따뜻함을 생생하게 환기시킨다. 한 장소가 발현하는 특유의 의미를 이만큼 육화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왕산골 어머니는
유난히 눈이 맑으시다
그래서 어둔 귀가
늘 열려 있었다
속으로 흐르는 물도
자연 더웠다고 했다
情이 많아
겨울 산꼭대기 눈도
잘 녹았다
어머니는
산 위에 살면서
항상 이래를
내려다보고 마음을 달랬다
그 옛날 박월리에서
바라보던 달을 생각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 「왕산골 어머니․3」(『싸리꽃 靈歌』)
특정한 인물을 불러들여 이를 통해 인정과 안온한 분위기를 형상해 내는 것, 또한 월천의 한 특징이다. 위의 시는 그 중에 한 예가 된다.
시에 등장하는 ‘왕산골 어머니’는 시인의 실제 어머니가 아니다. 향토의 인정 속에서 혈육처럼 맺어진 어머니다. “왕산골 어머니”는 겨울 산의 눈도 녹일 만큼 “情이 많”은 분이다. 또한 “항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마음을 달”래는 평강한 자태의 어른이다. 왕산골 어머니에 대한 시는 네 편이나 되는데 그만큼 시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왕산골은 대관령 아래의 산골짜기 마을이다. 이 마을의 평화로움과 함께 안온하고 넉넉한 왕산골 어머니의 자세가 시인에게 그리움을 펴게 했을 것이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피어오르는/ 人情의 구름밭(「東海上空」)”
“산골 사돈도/ 바닷가 아재도/ 다 한 곬으로 만나/ 서로 안부를 전했다(『섣달 대목 장날』)”
“늘 오리 모양으로/ 속을 터놓고 사는 사람들// 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정은 한결 같았다(『동해안의 서정․10』)
“항상 흙 냄새가 나서/ 항상 솔 냄새가 나서/ 담박하다// 밝은 햇살에/ 떠 있는 눈을 봐도/ 매섭지 않다(『강원도 사람』)
“반가운 손님이 오면/ 바닷 속 고기 한 마리라도/ 더 먹여 보내려는 마음/ 그 얼굴 속에 가득 차 있었다(『묵호 외삼촌』)
“컴컴한 골방에 들어가/ 분이 핀 꾸뎅이를 들고 들어와/ 정을 베풀었다(『꾀보네 할머니』)
“늘 숲 속 도라지꽃의 수줍음도 감춘 채/ 웃음 띤 욕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가부랑골 욕쟁이 할머니』)
아무렇게나 골라본 시의 부분들이다. 물씬한 인정의 면면들이 진솔하면서도 소박하게 드러나 있다. 사돈, 아재, 외삼촌, 꾀보네 할머니, 가부랑골 욕쟁이 할머니 이 외에도 그의 시에 드러나는 많은 인물들의 이미지는 한결같이 맑고 겉치레가 없다.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소박한 향토 그 자체로 자리하는 인물들이다. “아름다운 강산이 펼쳐진 그 무대 속에, 그 人事 속에 내 시는 쓰여졌던 것”이라는 회상대로 월천의 시는 강산 속에, 울고 웃는 고향사람들의 인사 속에 그대로 놓여진다 하겠다. 그에게서 강산은 어머니의 품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시는 삶을 일궈준 향토의 장소감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이에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그 곳의 고유함을 경험하며 장소의 소중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4. 습속과 경관의 迫眞性
월천의 시편들은 향토의 면면한 삶 속을 흘러온 갖가지 습속과 경관에 대한 박진한 묘사를 통해 사실감을 크게 얻는다. 대부분의 시들 속에서 습속과 경관은 따로 놓이기 보다는 서로 어우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은 습속이 이루어지는 터전이 그대로 경관이 되기 때문이다. 향토의 사람과 삶과 산천이 어울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월천의 시편들은 민요가락처럼 스며들며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서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시인이 스스로 토로한 바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서 보다 잘 이해된다.
모두들 내 시에 강원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토속미가 잘 나타나 있다고 평했다. 특히 우리 고향 사람들의 평이 대단했다. 그들은 시를 잘 모르면서도 내 시가 그렇게 좋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내 시에 나타나 있는 독특한 말, 지면, 생활 습속에 감명 깊었다는 것이다.
시를 모르는 고향 사람들이 읽고 좋아할 수 있는 시라면 월천의 시가 놓이는 자리를 이보다 더 높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교감의 정서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향 언저리의 정겨운 마을들과 익숙한 토박이 언어가 가득한 월천의 시편들은 그대로 고향의 노래가 되어 고향 사람들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우선 국정교과서(중학교 1학년 2학기)에 실려 널리 알려지게 된 「가을 운동회3」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시의 세계에 닿아보기로 한다.
둥둥 복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人花가 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연신 터지는
출발 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창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하루 종일 빈 집에
석류가 입을 딱 벌리고
그 옆엔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고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온갖 山들이
모두 다 고개를 늘이면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
– 「가을 운동회」전문(『보리 필 무렵』)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인은 “이 가을 운동회는 학생뿐 아니라 온 주민들의 일대 축제였다”고 회고한다. 예전에는 어느 마을이고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그 마을의 축제와 다름없었다. 연중행사였던 운동회는 마을의 한 풍습으로 자리하기에 족하다. 이날은 온 동리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모두 운동장에 모여들어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기꺼이 즐기는 날이었다. 여름에 지친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였으며 또한 곡식이 여무는 풍족한 계절 이였기에 행사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 운동회의 풍경이 실감나게 그려진 시다. 이 시는 행사가 벌어지는 광경과 그 주변을 마치 카메라로 찍듯이 사실적으로 스케치해나가고 있다.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과 먹을거리가 쌓인 차일 속, 한가하게 비어있는 인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로 렌즈를 옮겨가며 그날 하루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자의 주관적 시선은 일체 배제하고 그대로의 정경을 박진감 있게 살려내어 운동회가 열리는 날의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려 준다. 특히 운동장의 “땅이 흔들리”는 역동적 광경과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는 빈집의 정적을 대비해 보임으로써 사실감은 한층 고조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연의 “바람은 어느새 골목으로 왔다가/五色테이프를 몰고 갔다”고 행사를 마무리하는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은 향토의 경관과 삶이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모내기 하는 날은
온 집안이 수런거렸다
이날만은 설익은 살구도
땅에 떨어졌다
앞에 흐는 봇도랑물도
둑이 철철 넘쳐
온갖 풍요를 자랑했다
우후후후 우후후후……
잽싸게 손을 턴
아낙네들의 소리가
더 요란했다
젖먹이러 온 아희들은
써레질 속에
나오는 감자를
손에 가득 줏었다
오라잇 하고
못줄을 들 때마다
꽂아놓은 모포기가
바람에 조이 흔들렸다.
– 「모내기 하는 날」(『눈 온 날 저녁』)
모내기 하는 날 역시 운동회가 열리는 날 만큼 훙성스러운 날이다. 농촌의 성스러운 연례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의 추수를 위한 첫 발을 조심스레 딛는 날이기 때문이다. 온 동리 사람이 모여들어 품앗이를 하고 밥과 술을 나누며 한 해의 수확을 다짐하는 날의 분위기를 풍성한 이미지로 포착해 보이고 있다. 이날은 “온 집안이 수런” 거릴 수밖에 없는 날이다. “설익은 살구도 땅에 떨어”지며 훙성스러움을 보태고 이어 “붓도랑 물도 둑이 철철”넘친다. 살구나무로부터 봇도랑 쪽으로의 시선 이동은 모내기하는 날의 분위기를 보다 여실하게 잡아낸다. 이에 더하여 “젖 먹이러 온”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가래질 뒤에 잡혀 나온 “감자를 손에 가득” 줍는 광경은 이 날의 전모를 눈에 잡힐 듯 펼쳐준다. “우후후후”의 반복 또한 이날의 역동성과 잘 조응하는 의성어로 꾸밈없이 사실감을 높여준다. 이 날의 平康한 분위기가 “바람에 조이 흔들”는 모포기로 응결되면서 모대기하는 날의 풍경은 더없는 평화로움을 투사한다. 이 시에 동원된 구석구석의 광경들은 모내기 하는 날을 지켜본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부려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해종일 일을 하다가
갯목에 나서면 온 몸이 空中에 뜬다
늦은 가을볕이
여기에 다 몰려있다
민물을 다 삼킨 바다는
크게 더 크게 배를 내밀고
숨을 쉬고 있다
뒤척이는 물 사이로
시퍼런 다랭이가
뛰고 있다
먼 山 밑에서
脫穀機 소리가
바다까지 들려 온다.
– 「가을海邊」(『南行길』)
이번에는 바닷가 풍경을 그려내는 경우를 보기로 한다. 바다서가 사람이기도 한 시인은 바닷가 그중에서도 그의 향토인 강원도 바닷가의 면면들을 보여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살펴보면 월천 시의 특징은 향토의 삶과 자연 경관의 어울림을 통해 결국은 삶의 경관을 형상화 하는데 있다. 따라서 순수하게 자연 경관만을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위의 시역시 인사와 자연의 융화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은 “민물을 다 삼킨 바다”가 “크게 더 크게 배를 내밀고 숨을 쉬”는 바다의 출렁거림과 “시퍼런 다랭이가 뛰고”있는 바다의 싱싱한 생명력을 만나 볼 수 있다. 이어 마지막 연을 통해 산과 바다로 이어진 향토와 그 가운데서 영위되는 삶을 “탈곡기 소리”로 들을 수 있다. 마침 가을 해변이기에 ‘탈곡기 소리’는 그대로 박지감을 더한다. 뛰어오르는 다랭이와 탈곡기 소리가 엮어 내는 마을의 풍경은 안온한 가운데 풍요롭다. 이와 같이 월천은 역동적 이지들을 그려내면서도 안온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특징을 보인다. 이는 일상어와 다름없는 구어적인 표현의 낯익음과 철저한 리듬감에 의한 가락의 창출과 관련된다.
5. 결론
이상으로 지금까지 우리 앞에 놓인 월천의 시편들을 오가며 ‘장소성 구현’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했다. 특별히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로컬리즘과 관련된 인문학도서를 기획 출판하면서 붙인 선언적인 글 “그동안 국중심의 사고 속에 로컬을 주변부로 규정하며 소홀히 여긴 데 대한 반성적 성찰”의 촉구는 월천의 시편들을 다시 주목하도록 만들었따. “몸은 비록 고향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눈과 마음은 언제나 강원도 생활에 집착”하면서 끈질기게 향토의 기억을 불러내는 월천의 시편들을 통해 로컬, 특유의 참신한 정서를 보다 강력하게 흡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천이 그의 시편들에서 실감나게 형상화시킨 강원도의 토속적인 세계는 시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고향을 향한 목마름을 추겨주기에 족한 것이었다. 무한개발의 논리가 곳곳을 헤집어 어설픈 도시화를 지향하며 장소성을 잃어가는 현시점에서 고향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은 “생존 경쟁의 도시적 삶을 떠나 대자연 속에 파묻힌 삶의 비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향토의 소박함과 순수함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정을 맛보는 귀한 계기를 월천의 시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의 투명한 어조로 힘들이지 않고 읽는 이의 마음을 열어가는 시편들의 유연한 힘은 오랜 시력의 증거임을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적지 않은 그의 시편들 중 특별히 삼척과 강릉 지역의 장소를 소재로 삼고 있는 경우를 대상으로 삼아 ‘장소성’이 발현되는 메카니즘에 주목하였다. “장소에 대한 참된 태도란 장소 정체성의 전체적 복합성을 직접적이며 순수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월천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직접적이며 또한 순수한 경험의 형상화는 그대로 장소성의 현현으로 자리하는 것이었다.
월천 시편들 속의 향토는 승화된 특별한 장소로, 또한 인정과 평안이 자리한 장소로 지향되어 아련한 향수를 불러내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들은 대상 위주의 보여주기 기법에 의한 표현의 박진감에 힘입어 시의 밀도를 한층 높이고 있었다. 이외에도 강원도 지방의 방언이 시에 미치는 친근감과 시인의 철저한 리듬의식에 의한 형식미의 탐구를 통해 월천 시의 높이를 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본고는 이 부분을 숙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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