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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후손 4:16~24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셋과 에노스 4:25~26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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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가인은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며 에녹을 낳습니다. 가인의 자손인 라멕은 자신의 상처와 상함으로 인해 사람을 죽였다고 두 아내에게 전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다시 아들을 낳아 셋이라 하고, 셋이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 짓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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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을 위해 쌓은 성 (4:16-22절)
가인은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 앞을 떠난다. 그는 방황의 땅인 놋에 거주하면서 인생의 허무함으로 자녀에게 집착한다. 아들 에녹의 이름으로 성을 쌓아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자기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심지어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하는데, 이는 아담과 하와의 일부일처제를 깨뜨리는 것으로 반인륜적인 성적 문란으로까지 진행된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性)을 영적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니라 쾌락의 도구로 쓰면서 불신앙의 화려한 문명을 만들어간다. 야발, 유발, 두발가인 모두 '풍부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부를 이루고자 치열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삶은 결국 자기 이름을 높이며 자기 성을 쌓는 죄악으로 나아갈 뿐이다.
●세상을 부러워하다가 하나님을 외면한 채 나를 위한 성을 쌓고 있지는 않는가? (16절)
2. 칼의 노래 (23-24절)
라멕은 아내들에게 자기가 포악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랑하듯 노래한다. 죄악을 감추지 않고 말하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이는 가인의 살인이 라멕의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죄가 계속 자라난 것이다. 가인의 후손에게서 상처와 분노, 폭력과 살인의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자가 짓는 죄는 극심한 파괴력과 전염성을 갖고 공동체에 확산된다. 많은 사람이 돈과 명예,권력만 있으면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풍요로움을 만끽해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자체로 비참할 수밖에 없다. 가인의 후손처럼 잘 먹고 잘살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일이 없는 것이 저주이다.
●돈, 명예, 권력, 학벌, 스펙만 있으면 잘 살 것 같아서 하나님 없이 칼의 노래만 부르고 있지는 않는가? (23-24절)
3. 아벨 대신에 주신 다른 씨 (25-26절)
가인의 자손이 6대손에 이르도록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에, 아담은 다른 씨인 '셋'을 낳아 믿음의 계보를 이어간다. 셋이 낳은 아들인 '에노스'의 이름의 뜻은 '치료 불가능한 병든 상태의 한계상황'이다. 셋은 부유하고 강성한 가인의 아들들과는 반대로 '인간의 전적 무능과 부패를 나태내는 이름'을 짓는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이 '에노스'를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세우셔서 셋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시게 된다(눅3:23,38). 이처럼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택해 그분을 나타내신다. 내 연약함을 선포함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이 성도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이다.
●치료 불가능한 한계상황에서 나의 약함과 악함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26절)
기 도
세상을 부러워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나를 위한 성을 쌓고, 가인의 후손처럼 돈과 명예를 좇아 칼의 노래를 부르던 저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상황 속에서도 저의 약함과 악함을 보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오니 저로 하여금 구속사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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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6-24절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로 추방되었지만, 놋 땅에 정착하여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유목과 농경, 예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문명을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제 안전을 지키려 성을 쌓고, 스스로 힘을 키웠습니다. 라멕의 노래는 그들의 잔인함과 호전성을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조차 조롱하는 그들 의 모습에서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인류의 첫 범죄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동생을 쳐 죽인 가인의 잔인함, 또 훗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했던 이들의 교만이 덧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진보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늘 목적을 분명히 정립하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25,26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세상을 건설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이도 있었습니다. 아벨을 대신한 ‘셋’은 에노스를 낳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인류 문명을 주도하며 제 힘을 자랑하던 때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세상을 일군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오롯이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속하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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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인생의 아픔(4:16~24)
놋 땅에 거주한 가인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평안해 보여도 실제로는 심히 고단한 삶입니다.
아벨을 죽이고 부모 품에서 쫓겨난 가인은 놋 땅에서 결혼해 후손을 이어갑니다.
몇 대가 이어지면서 가인이 범했던 죄도 점차 잊혀지고,
유리방황하는 삶도 점차 안정을 찾는 듯 보입니다. 라멕의 자손에 이르면 각종 문명이 창시되기도 합니다.
목축과 음악과 철기 문명이 라멕의 자손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평안함은 없습니다.
놋 땅은 늘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습니다. 라멕은 여러 사람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깊은 상처를 입고,
그로 인해 분노와 원한을 품은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살인에 더한 보복이 따르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불과 다섯 세대 만에 가인 때보다 세상은 훨씬 더 악해졌습니다.
물질이나 기술은 절대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 묵상 질문: 원죄가 아담에서 가인으로, 그리고 라멕으로 대를 이어 전수되며 어떻게 발전하고 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 없는 탁월한 재능은 어떤 곳에 사용될까요?
나의 재능은 누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나요?
예배하는 인생의 복(4:25~26)
가인이 놋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족보를 이어 가는 동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의 족보를 이어 갑니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서 죽은 아벨 이후 새롭게 태어난 아들인 셋과 그의 아들 에노스로 이어지는
집안이 세워진 것입니다.
특히 에노스에 이르러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집안으로 든든히 세워졌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평화는 오직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임합니다.
- 묵상 질문: 가인의 자손과 셋의 자손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각각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의 계보를 이루기 위해 지금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가인을 보며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불행한지 깨닫습니다.
하나님 없이 부와 명예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그 결국이 허망함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 이름으로 세워졌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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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6-24절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로 추방되었지만, 놋 땅에 정착하여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의 후손들도 유목과 농경, 예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문명을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제 안전을 지키려 성을 쌓고, 스스로 힘을 키웠습니다. 라멕의 노래는 그들의 잔인함과 호전성을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조차 조롱하는 그들 의 모습에서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인류의 첫 범죄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동생을 쳐 죽인 가인의 잔인함, 또 훗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했던 이들의 교만이 덧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진보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늘 목적을 분명히 정립하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25,26절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세상을 건설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이도 있었습니다. 아벨을 대신한 ‘셋’은 에노스를 낳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인류 문명을 주도하며 제 힘을 자랑하던 때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세상을 일군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시류에 합류하지 않고, 오롯이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지속하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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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가인의 족보)과 5장(셋의 족보)은 아담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동쪽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이 점점 동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 동쪽으로 쫓겨난 후에 가인도 아벨을 죽인 후에 에덴동산 동쪽 놋 땅으로 옮겨갑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옮겨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구조를 볼 때도 지성소와 성소는 서쪽에 있고 출입하는 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창세기 4장 12절에 가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심판은 가인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열심히 노동해도 더는 노동의 대가를 땅으로부터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망은 하나님의 심판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죄의 본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두 번째 심판은 가인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한 지역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놋 땅에 거주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놋'의 뜻은 '유리하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유리하는 자가 되라는 심판이 내리셨는데, 가인은 '유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놋' 땅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의도적으로 하나님 심판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에 선악과를 먹었던 것처럼 가인은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뜻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17절을 보면 가인은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에녹'의 뜻은 '바친다'입니다. 가인은 성을 쌓아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기 자신에게 바침으로써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을 하나님을 위하여 다스리는 자로 세우신 것과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죄가 수치스러워 나무 뒤로 숨었던 아담과 달리 가인은 죽음의 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을 쌓고 왕이 되어 자신에게 바칩니다. 이 얼마나 악한 모습입니까?
이것이 인본주의 모습입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왕처럼 살 수 있다고 거짓으로 유혹하는 세상에 성을 쌓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죄를 자벡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며, 우리의 왕 되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가인은 놋 땅에 거주하며 성을 쌓고 에녹(자기 아들 이름)이라고 부르며 자신에게 바쳐서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인의 후손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기계문명을 발달시키고, 문화를 누리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문명은 가인의 후손들에 의해서 발전된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의 후손들은 땅에 성을 세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4장과 5장을 보면 같은 이름이 발견됩니다.
오늘(에녹)과 내일(라멕)은 각기 다른 족보에 기록된 동명이인들의 삶을 통하여 두 족보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셋의 후손 중에 나오는 에녹은 아담으로부터 7대손입니다. (7이라는 상징적인 대표성이 있습니다) 에녹은 아주 특이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족보에는 의도적으로 그의 후손들이 “죽었다”라고 반복되지만,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에녹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으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으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가인의 아들 에녹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에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자였습니다. 에녹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에 성을 세우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성을 세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문화를 이 땅에 드러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늘에 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난 자에게 속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에녹이 하늘로 올라간 이유가 믿음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 믿음은 하늘로부터 난 자에게 속한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녹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는 성도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성을 세우는 모습은 하늘로부터 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은 어디에 성을 세우고 있습니까?
'소원 건대 하늘에 성을 세우는 자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늘에 성을 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매 순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며 그와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성령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사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권면하셨듯이 우리의 마음을 하늘에 둘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장 19-20절)
오늘 하루도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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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신뢰의 사이에서 갈등합니다(16~26절).
가인은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합니다. ‘...여호와 앞을 떠나서...’ 단순히 여호와 앞에서 떠났다는 표현보다는 여호와와 분리된 가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놋’은 ‘떠돎’,‘유리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쁨의 땅인 에덴과 거리가 먼, 유랑(놋)의 땅에서 그는 살게 됩니다. 가인은 아내를 만나 에녹을 낳고, 성을 쌓는데 그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고 합니다(17절). 방랑자로 유리하며 살아야 할 가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인의 계보인 에녹의 후손들이 7대까지 소개가 됩니다.
그 중에 마지막으로 소개된 ‘라멕’은 반인륜적인 모습과 복수의 화신이자 폭군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는 두 아내, ‘아다와 씰라’를 취합니다. 일부다처제가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보여 준 부부의 원리가 무너졌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가인의 계보에서 목축과 예술 그리고 문명이 유래하게 됩니다(20~22절). 문명이 빠르게 발전은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죄의 세력 안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라멕은 적극적인 공격과 복수로 잔인한 자기 방어력을 갖춥니다. 그는 가인을 해친 자에게는 7배의 벌이 주어지지만, 자신을 해친 자는 벌이 77배가 될 것(22~24절)이라며 공포를 조장합니다. 어두운 이야기 뒤에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해 셋을 주심으로 새로운 계보가 시작됩니다(25절). 남은 자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보여 주는 셋의 자손은 가인의 자손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위대한 문명의 발전을 이룩한 사람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연약한 자를 찾으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죄악으로 만연된 이 세상에서 괄목할 만한 없적을 남기는 사람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해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보호하시고, 책임을 져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내 안에 있는 불신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해서 계속해서 죄가 자라게 하고, 확장되어 가게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불신과 신뢰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셋 계열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 나라는 영원할 것인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영원한 그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무한한 사랑의 증표를 보여주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 길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창 4:1~26절)... 빛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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