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제목 :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오늘의 말씀 : 창세기 35:16-29 찬송가: 28장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중심 단어: 라헬, 베냐민, 죽으매, 이스라엘,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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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
16절: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 심한 산고를 겪음
17절: 난산 끝에 아들을 낳음
18절: 죽기 직전에 아들을 ‘베노니’라고 부름/ 야곱은 그를 ‘베냐민’이라고 부름
19절: 죽음/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됨
20절: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움
도움말
1. 베노니… 베냐민(18절):‘베노니’는 ‘내 슬픔의 아들’을,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을 뜻한다.
2. 에델 망대(21절): 목자들이 약탈자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가축을 돌보는 망대’라는 뜻이다.
말씀묵상
라헬의 죽음
라헬은 에브랏에 이르기 전에 심한 산고를 겪게 됩니다(16절). 그녀는 난산 끝에 아들을 낳았고, 죽기 직전에 그 아들을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은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아들을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고 불렀습니다(18절). 이후 야곱의 12명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근간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이 구체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야곱의 첩인 빌하와 동침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22절). 르우벤은 인간적인 생각과 성급한 행동으로 야곱의 장자로서의 권리를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간의 어리석음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때때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범죄함으로 인해 징벌을 받고 고난에 처하게 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언약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며 피할 길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의 성취를 본 이삭은 이제 열조에게로 돌아갑니다(29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그 자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성취될 것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라헬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하나님께서 언약의 계보를 잇기 위해 야곱에게 허락하신 것은 무엇입니까(23-26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여러분이 새롭게 정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연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이 이슈가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란 단어의 어원은 성경에 ‘블레셋’으로 나와 있다.
이 족속은 창10:14 함의 후손으로 등장한다.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노아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던 함을 저주했다.
‘창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지금도 셈의 후손이 함의 후손을 통치하고 다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노아의 저주는 계속 되고 있는 것 같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하므로 데려갔다가 죽임을 당할 뻔했고 (창20:7),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창26:2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때 블레셋을 통과하는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부터 그들은 영향력 있는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블레셋과 원수처럼 지내며 수 없이 전쟁을 했다. 그 중에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사람이 삼손이었다. 블레셋과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사울 왕이요, 가드 사람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다윗은 영웅이 되었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가자지구의 ‘가자’는 블레셋 5대 도시의 하나로 성경에 여호수아가 정복하고 유다 지파에게 주었던 성읍이다. (수10:41, 수15:47) 이곳에는 다곤 신상이 있었다. (삿16:23, 삿16:24)
‘수10:41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현재 가자지구 인구의 3/2가 1948년 제1차 중동 전쟁에 의해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자손이라고 한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일부로 변모되었지만 2007년 하마스가 점령한 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에 놓이게 되었다.
혼란을 겪고 있는 이 시대 오늘 이 말씀이 새롭게 다가 오고 있다.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벧엘을 떠나 베들레헴에서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사망하게 된다.
에델 망대에서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이자 아버지의 첩인 빌하를 범하는 불미스런 일이 생긴다.
이것은 르우벤이 비록 죄를 지었지만 그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야곱을 이제 ‘이스라엘’로 부르고 있고 ‘이스라엘’의 12아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12지파가 될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의 열두 아들로 하나님의 언약은 이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금도 팔레스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주일 아침 오늘도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계신다. ‘살아계신다!’라는 고백을 하게 하신다.
그래서 어제 묵상했던 말씀이 더 가까이 느껴지고 있다.
‘창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을 다시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들꽃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 주님이심을 알게 하시옵고 그 주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며 동행하시고 지켜 주심을 느낄 수 있는 새 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