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9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나귀와 까마귀
막11:1~6
<이 시대 한국 영화의 의미>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최근 본 영화들로 엊그제 본 ‘정글북’ 그리고 ‘곡성’ ‘아가씨’
정글북은 아내와 함께 봤고, 곡성, 아가씨는 혼자 가서 봤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 시대 영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빠진다.
우리가 공부할 때,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배웠다.
“있을 법한 이야기!” 아직도 이런 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본다면 이는 착각이다.
곡성 감독 나홍진은, “곡성의 사건은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뭘 의미하는가? 곡성의 시나리오는 “있을 법한 이야기로 꾸며 만든 것이 아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소제들을 동원하여 주제를 표현한 영화다.
요즘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다.
그래서 한국의 영화가 엄청나게 잔혹해졌다. 국제적으로 이미 정평이 났다.
왜 이렇게 잔혹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가?
그만큼 주제를 강렬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감동도 못 주고, 주제를 전달도 못한다!
요즘의 영화 관객은 영화와 현실, 분명히 선을 긋고 봐야 한다.
저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지만,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구나! 이걸 알고 영화를 봐야 한다.
곡성이라는 영화가 너무 잔혹하니까,
곡성 주민들이 곡성을 영화 제목으로 쓰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설명한 논리로 설득하여 영화 제목을 쓰게 되었다.
영화에 끔찍한 장면이 많이 나오니까, 어쩌다 한번 영화 보는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영화 마니아들이 봐야 할 영화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안 갔다.
곡성에 나온 한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곡성’에서 쓰이는 까마귀>
주인공의 딸에게 강력한 마귀 귀신이 씌었다. 할머니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왔다.
황정민이 무당으로 분했다. 주인공 곽도원의 집에 당도한 황정민이 미리 집안을 휘 둘러본다.
다음날, 황정민이 곽도원의 집 마당에 한켠, 장독대를 턱으로 가리키며,
“저게 뭐여?”
“장독대 아닙니까?”
“저거 이리 가져와 봐!”
곽도원이 커다란 간장독을 낑낑거리며 마당 가운데로 가져왔다.
무당 황정민이 그 장독을 와장창 깨뜨린다. 간장이 마당으로 흐르고, 깨진 항아리 조각,
황정민이 이리저리 젖히자 그 속에서 까마귀 시체가 나온다. 헐~
여기에 확 가 버린 곽도원, 그는 영화 속에서 현직 경찰관이다. 그럼에도 그 장면에서 뿅~~
천만원짜리 푸닥거리를 한다. 헐~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사실은 뿅 갔었다!
“오마나! 세상이 이럴 수가~ 예수 믿든지, 푸닥거리를 하든지 해야것구만~~”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러 갔다.
두 번째 보니까, 제대로 보였다. 간장 독 안의 까마귀 시체, 어떻게 된 걸까?
무당이 밤사이 아무도 몰래 간장독에 넣었을 것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제야 보였다.
목사인 나도 그런데, 하물며~
그때 성경속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바로 오늘 본문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타시는 새끼 나귀>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신다.
왜? 새끼 나귀를 타시는가?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 탄생 500여년 전, 선지자 스가랴의 예언이다.
구세주로 오시는 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 메시아!
그 분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 화려한 말을 타지 않고 초라한 새끼 나귀를 탄다!
이렇게 예언했으니,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타셔야 한다.
그래야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어떻게 마련하실까?
무당은 자기의 영험함을 드러내기 위해 밤에 아무도 몰래 까마귀를 간장독에 쳐 넣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천만 원짜리 푸닥거리를 하도록 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새끼 나귀를 타야 한다.
예수님은 아마도 나귀를 키우는 집을 찾아가서 미리 예약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보낸다.
(2~3절)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은 시킨 대로 했다. 마치 곽도원이 간장독을 마당 가운데로 옮긴 것처럼!
제자들이 맞은편 마을로 가보니 예수님 말씀처럼 나귀새끼가 한 마리 있었다.
고삐를 푸는데, 주인이 “왜 그럽니까?”하고 물었다. 주님이 시키신 대로,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알겠습니다. 끌고 갔다가 꼭 되돌려 주십시오!” 그리고 허락했다.
예수님이 참 신령하다! 어찌 나귀 주인이 순순히 따를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권능 있다고 생각했다.
<무당은 자기를 높이고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신다>
무당은 아무도 몰래 까마귀를 간장독 안에 쑤셔 넣어두었다.
예수님은 나귀 주인을 미리 만나 당부를 해 두었다.
내가 사람을 보내어 “주가 쓰겠답니다!”하고 오거든 보내주십시오!
두 사건 모두 신령스럽다. 심상치 않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당은 그렇게 해서 천만 원짜리 푸닥거리를 하게 한다.
자기 배를 채우고, 마귀 사탄을 만족시킨다.
예수님은?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신다!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타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신다!
세상을 구원하신다! 그 광경을 보고 감동하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한다. 할렐루야!
우리가 영적인 일에 분별을 잘 해야 한다.
한국사람 치고, 무당이 간장 독을 마당 가운데로 옮기게 해서 몽둥이로 와장창 박살을 냈는데,
거기서 까마귀 시체가 나왔다? 미혹되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다.
천만 원 아니라 오천만 원짜리 굿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사탄의 궤계이다. 마귀 사탄의 전략이다.
여기에 너무 쉽게 사람들은 미혹된다. 빠진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람들 교회를 욕하면서, 무당집 문전성시를 이룬다.
얼마 전에는 공중파 티비, ‘스타킹’에 미녀 점쟁이가 출연을 했더라!
미녀 점쟁이에게 연예인 한 명이, “나 어떤지 한번 봐 주세요!” 그러니까, 미녀 무당,
“올 유월에 바람 쐴 일 있겠는데요!” ··· “와 족집게! 우리 유월에 일본 가요!”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무당에게 빠져요!
“유월에 바람 쐴 일 있겠는데요!” 이 말이 그렇게 용한 점괘냐? 아무 것도 아니다.
어느 달치고 바람 안 쐬는 달이 어디 있냐? 그런데 이렇게 갖다 붙이면서 점쟁이에게 빠져든다!
“예수 믿으십시오!” 그러면 “내가 왜 예수를 믿어요?” 그럴 사람들이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려는 것들>
신문마다 ‘오늘의 운세’ 코너가 있다.
거기에 띠별로, 쥐, 소, 호랑이, 토끼 등등의 그림이 있다.
짧게 두어 줄로 나와 있다. 뭐가 나와 있냐?
“당신은 오늘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당신은 친구 관계를 조심하라!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
“오늘 당신은 귀인을 만날 점괘다! 당신을 돕는 자가 나타난다!”
“오늘 당신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차 조심해라!”
“오늘 어쩌면 오랜 숙원이 풀릴 수 있다. 기대가 되는 날이다!”
이런 점괘들이다. 이거는 나도 만들 수 있다.
살다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그냥 한 번 환기 시켜주는 것이다.
차 조심하라! 사람 너무 믿지 마라! 돈 거래를 조심하라!
이거는 개띠, 돼지띠, 말띠, 호랑이띠, 뱀띠···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여기에 빠지는가?
처음에는 심심하니까, 할 일없으니까, 장난삼아서 읽는다.
그런데 하루 지내고 저녁에 생각해 보니, 아침에 읽었던 오늘의 운세가 딱 맞았다!
자칫하면 사고 날 뻔 했다. 자칫하면 사기 당할 뻔 했다. 후유~ 오늘 돈 문제 해결했다!
등등, 모든 것이 꿰어 맞추면 다 맞아 들어간다.
이 오늘의 운세가 왜 있는가?
이게 마귀 사탄의 작전이다. 이런 걸로 자꾸만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는다.
예화
어느 인기 개그맨과 목사가 만났다.
목사가 얘기했다. 당신이 얘기하면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는데, 내가 말하면 왜 조냐?
개그맨 왈,
“나는 거짓을 가지고 사기 치듯 얘기하고, 당신을 진리를 가지고 심각하게 얘기한다.”
“사람들은 사기꾼이 다가가면 귀를 쫑긋하지만, 목사가 다가가면 손사래를 친다!”
“거짓을 이야기하면 귀담아 듣고, 진리를 이야기하면 귀를 닫는다.”
사람들이 반대로 하고 있다.
살길을 마다하고, 죽을 길로만 찾아간다. 이것이 세상이다.
세상의 권세? ··· 사탄이 거머쥐고 있어서 그렇다.
<나는 지금 누구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지난 한 주간의 삶을 한 번 뒤 돌아보라!
나를 움직인 것은 무엇인가?
황정민이가 깨뜨린 간장독 속의 까마귀가 나를 이끌지는 않았는가?
오늘의 운세를 보면서 한 주간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내 마음 속의 분노가 나를 이끌지는 않았는가?
돈을 쫓다가 한 주간을 다 보내지는 않았는가?
내 고집이 나를 이끌지는 않았는가?
직장에 얽매여, 사업에 얽매여 정신없이 보내지는 않았는가?
지난 주간에 하나님 생각 몇 번이나 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성령님의 탄식 소리 귀 기울여 들었는가?
기도는 몇 시간이나 했는가? 성경은 몇 장이나 읽었는가?
간장독 속의 죽은 까마귀가 나를 이끌어 가는가?
새끼 나귀 등에 타신 예수님이 나를 이끄는가?
오늘 예배하는 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가?
찬송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가?
찬송가 가사, 아멘이 되는가? ··· 아멘이 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찬송가 부를 때 가사를 생각하면, 너무 뻥이 심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살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은혜가 된다.
기도할 때,
설교 들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가?
단 한 마디라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면, 그 음성 꼭 붙들어라!
그 음성으로 또 한 주간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교회 주보, 두 개의 칼럼이 실려 있다.
꼭 챙겨가서 매일 아침 읽어보라! 한번 읽고 팽개치지 말고, 뜻을 음미하면서 또 읽어라!
그렇게 하다보면, 오늘의 운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간장 독 속 까마귀, 멀리 내칠 수 있다.
오직 성령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귀한 삶을 살 수 있다.
새끼 나귀 등에 앉으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9절)”
죽은 까마귀에 미혹되지 말고, 살아있는 나귀! 그 위에 앉으신 주님!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