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거리 풍경
-저녁 산책 시간에
합기도를 마친 꼬마 여자애가 승격 띠를 받지 못했다며 삐진 채 마중 나온 엄마를 미소 짓게 만들고, 길가 한편에 마련된 빌라의 조그만 텃밭에는 늙은 엄마에 순종하는 정신장애 처녀가 심은 채소를 향해 물을 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은 본다) 원성동사거리에 있는 아파트단지 건축예정 부지는 펜스만 세워놓고 하세월이고 천안고등학교를 지나는 도로변은 소나무를 새로 이식하는 조경작업이 한창이고 그 밑에 최근 새로 문을 연 명륜진사갈비집 식당에는 평일에도 손님이 제법 테이블을 채우고 멀리서부터 고기가 굽히는 구수한 냄새를 피운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일 년도 못 버티고 떨어져나간 돼지 대패삼겹살 식당자리에 요즘 유행하는 노란색 일조인 커피전문점이 새로 개업해 준비 중이고 아내 기억으로 처녀 적부터 있은 북경반점을 돌면 힘든 일을 마치고 노천 테이블에서 치맥을 먹고 마시는 주점가가 나오고 유일한 하천인 천안천 주변으로 운동과 산책을 하러 나온 시민들의 한가로움이 흐른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농협 앞에서 채소와 과일 조금을 늘어놓고 매일 팔리기를 기다리는 지쳐 보이는 아줌마, 편의점과 호프집 앞 도로변에서 퇴근 후 한잔 걸치는 검게 탄 일용직 노동자들, 어제는 열렸다 오늘은 닫힌 음식점들, 술집, 또 호프집, 미용실, 테니스장, 지나가는 가벼운 표정의 행인들 (아내와 함께 우리는 걸으면서 이들을 본다) 이제 곧 재단장을 할 것처럼 펜스를 둘러 시민들 접근을 막은 오룡시민경기장 옆의 경사진 길을 오르면 근처에서 제일 큰 천안장로교회를 필두로 두 개의 교회가 더 보이고 학생이 많이 없어진 신안초등학교를 지나 일방도로를 빠져나가면 늙은 엄마에 순종하는 정신장애 처녀가 심은 채소를 향해 물을 주고 있던 텃밭이 다시 나오고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이들을 모두 보았던 우리는) 멀리 맞은편에서 석양이 붉게 노을 지는 한가로운 풍경에서 유월이라는 시간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