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꿈꾼 나라’, 이창동이 꿈꾸는 세상
[인터뷰] 3주기 추모행사 자문위원장 이창동 감독
안영배 노무현재단 사무처장
이창동 감독을 영화계에서는 '세감'이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감독’의 준말이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감독은 무려 42개나 되는 영화상을 받았다. 이중 15개는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칸영화제 각본상처럼 국외에서 받은 상이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받은 것은 빼고서다. ‘세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정작 본인은 “처음엔 ‘네가 뭐 잘 났냐’ 식의 거의 놀리는 듯한 농이었는데(웃음), 이제 나이도 들고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게 민망하다”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였던 2010년 5월 23일,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봉하부터 찾았다. 그는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후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 “1주기 때 외국에 있어서 오지 못했다. 늦게나마 도리를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칸영화제 시상과 관련한 기자간담회는 그 다음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敍事)
이 감독은 올 가을 촬영에 들어갈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행사 자문위원장 역할과 지난해부터 맡아온 대통령기념관건립기획위원장 일은 늘상 빈틈없이 챙기고 있다. 그런 이 감독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 노무현을 처음 만난 것은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1988년 5공 청문회 때다. 그때 TV화면에 나온 노무현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한국의 정치인, 그 어떤 누구와도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 저런 사람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내 인생은 그 때부터 노무현으로 인해서 변했다.”
이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자신과 많은 국민들이 함께 꿈꾼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敍事)로 풀어낸다. 그는 노 대통령 서거 전엔 온갖 낡은 것들이 쌓여 있는 트라우마 위에 형성된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인간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다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 그 스토리텔링이 서사의 끝인 줄 알았다고.
나중에야 대통령이 그렇게 돌아가신 게 서사의 결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서사는 아직도 낡은 것들이 지탱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 그래서 노무현은 이창동의 일부가 되었다.
만남과 운명, 그리고 ‘코드인사’
그는 참여정부 초대 문화관광부(문화부) 장관으로 직접 인연을 맺었지만, 그 과정은 남달랐다. 장관 후보로 이름이 올라가고 주변의 압박이 거세지자 자신에게 맞는 일이 아니라고 거듭 고사했다. 심지어 소낙비는 피하자는 심정으로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운명’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와 노 대통령은 첫 대면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듯싶다.
“2002년 초여름 무렵이었다. 몇 명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만나는 점심 약속이 있었다. 교통이 막혀서 한 시간 가까이 늦었다. 그야말로 사고를 친 거다. 내가 도착하니까 노 후보는 일정이 바빠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여름이라 샌들을 신고 갔는데, 방에 맨발로 들어갔다. 반갑다고 악수를 하면서 내 얼굴과 맨발을 번갈아 쳐다보시더라. 첫 인상이 어땠겠나.”(웃음)
그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장을 받을 때도 캐주얼 양복 차림이었다. 이창동 장관은 참여정부의 ‘탈권위’ 가치를 실천하는 ‘코드인사’ 자체였다. 출근 첫 날 관용차 타는 것을 거부했다. 오히려 차관과 기획조정실장까지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모시고 출근했다. 그는 취임식도 생략했다. 그 대신 인터넷에 올린 취임사에서 행정부 내의 권위주의 문화를 ‘조폭문화’와 비교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장관실 앞에만 깔려 있는 붉은 카펫, 장관이 나타나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 행정고시를 통과한 사무관 비서가 꼬박꼬박 장관의 차 문을 대신 열어주는 것, 장관에게 누구나 허리를 90도로 꺾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좀 실례되는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조폭문화’를 연상했습니다.”
그는 문화부부터 국민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권위주의적 관습과 문화를 과감하게 버리자고 제안했다. 그런 문화 속에서는 진정한 토론, 소통과 이해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지적도 내놨다. 그렇다면 문화부 장관이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통령은 어땠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에 일찍 도착한 대통령이었다. 한국 사회가 더 성숙했으면 대통령께서도 신명나게 하셨을 것이고, 사회의 활력도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생각하신 가치, 구현하려던 권한행사나 통치방식이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다. 정치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기존의 낡은 틀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꿈꿔라, 스스로 바꿔라
그는 자신에겐 행복하지 않았던 문화부 장관을 1년 4개월이나 한 후에야 ‘세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노무현재단 출범 후에는 상임운영위원을 맡았다. 그에게 노 대통령 서거 3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을까? 올해 추모행사의 주제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건 상대적인 말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따라와, 이게 진리야’, 이렇게 강요한 적이 없다. 항상 상대적 가치를 생각하셨고, 목표보다 절차를 강조하셨다. 그 분은 큰 틀에서부터 작은 데까지도 열어놓고 얘기하셨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뜻도 그렇고,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도 그렇듯 시민들이 스스로의 꿈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라셨다. 모두가 자신의 꿈을 만들고 이를 함께 모아가는 것, 그게 노무현이 꿈꾼 세상 아닐까 싶다.”
그가 3주기 추모행사 자문위원회에서 전시회 참여마당을 ‘내가 꿈꾸는 나라’로 가자고 제안한 것도 그런 의미였다. 그는 3주기 행사가 추모, 그 자체에 머무르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노무현을 사랑하고 추모하는 국민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조금 더 확산할 수 있는 행사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민주진보 진영의 활력이 다소 침체되고 약간의 패배의식도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다들 모여서 힘내자고 서로 격려하고, 이런 마음들을 모아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영화 ‘노무현’을 만들기 힘든 이유
그는 노 대통령의 어록 중에서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때 사람을 제일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 말에는 넓고 깊고 큰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 혹시 ‘사람 노무현’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극영화라면 누가 만들든 지금은 참 어려울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다큐영화는 나도 준비를 했는데, 추진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인 것 같다.”
그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그릇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다큐영화는 대략 한 인물의 일대기라는 꼴을 갖추면서 담을 수는 있겠지만, 작업을 해보니까 노무현은 그런 방식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노무현을 알고, 영화를 통해서 보고 싶어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욕망 자체가 그걸 넘어선다. 너무 다채롭고, 참 어렵다.”
노무현이 꿈꾼 영화, 이창동이 소망하는 세상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노 대통령께서 ‘관객이 편하게 보면서 감동도 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고 완곡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소통을 꼭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취지였다. 나는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노 대통령께서 이 영화를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 너 아직도 변한 게 없네’라고 하실 것같다. ‘ 노력은 하고 있네’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이 감독에게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다. 그에게 영화는 미디어처럼 직접적인 소통도 가능한 예술이다. 영화가 오락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매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그가 감독한 영화들이 흥행과 평론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낸 것도 관객과 소통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노 대통령의 말이고, 이 감독의 생각이다. 소통을 무기로 그들이 꿈꿨던 ‘사람사는 세상’은 현재진행형이고 우리의 미래다. 그는 오늘도 소망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삶과 미래를 모색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