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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현장] 시인 황동규 / 박미산 | ||||||||||||||||||||||||||||||
지상중계 - 아픔이 시를 쓰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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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동해안에 갔습니다. 한밤중에 눈 내리는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 구경을 나갔다가 2미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뼈는 괜찮으나 4주가 지난 지금도 불편합니다. 이 고통으로 인해 인류가 침팬지와 다르게 직립보행을 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결국은 그 아픔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흔히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고 ‘문학은 무엇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인간의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짜 문학이란 삶의 진실 때문에 쓰고 싶지 않아도 쓰게 되는 것이 진짜 문학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시대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은 중세적인 덕을 가진 사람들이 빠르고 간교하고 아는 게 많은 르네상스적인 인간들에게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중세적인 덕을 가진 리어왕도 그렇고 오셀로, 햄릿도 마찬가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중세적인 사람이 아니고 르네상스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덕을 가진 중세적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간교하고 계산이 빠른 르네상스적인 사람들이 덕을 가진 중세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르네상스적인 셰익스피어는 삶의 진실 때문에 그러한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이야기할 때 남부인들과 대부분의 인텔리겐차들, 하물며 목사까지 노예제도를 필요악이라고 했습니다. 북쪽에서도 노예제도를 드러내놓고 반대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엉클 톰스 캐빈》을 쓴 스토 부인, 《백경》의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등 당시의 위대한 문인들은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노예제도를 반대했습니다. 결국 노예제도를 제대로 반대한 집단은 문인들밖에 없습니다. 문학이 다른 학문과는 달리 인간이 인간으로 살려면 없어져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예이지요. 도스토옙스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말년에 러시아 종교에 귀의합니다. 그는 서구라파에서 들어온 허무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을 배격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매력 있는 사람은 허무주의자 자유주의자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십시오. 카라마조프가의 첫째 아들인 드미트리와 무신론자인 이반과 수도사의 길을 걷고 있는 알로샤가 나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인 알로샤를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습니다만, 이반과 비교하면 알로샤는 성스럽지만 매력이 없습니다. 도스토옙스키도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삶의 진실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쓰게 된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삶의 진실이 그의 의도에 반해 허무주의자 내부에서 인간의 깊이를 발견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진실 때문에 쓰고 싶지 않아도 쓰게 되는 문학을 다른 어떤 학문이나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존경하고 아껴야 합니다.
이 시는 고등학교 때 쓴 시입니다. 고등학생일 때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해서 쓴 시이지요. 여대생에게 바친 시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시라기보다는 대학생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김소월의 시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는 〈가시리〉의 변주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소월이나 만해의 애정시 비슷한 것을 쓰려고 했으나 ‘가시는 듯 도셔오쇼서’라는 감정이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시와는 다른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6·25 전쟁 직후 실존주의가 이 시대를 휩쓸었습니다. 나는 실존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실존주의적인 분위기를 깊이 받았습니다. 사랑도 일종의 계약이요 일종의 선택이다, 영원한 사랑은 없으나 마치 영원한 사랑이 있는 것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적인 삶의 진실이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쓰게 했습니다. 그 모순적인 진실이 있어서 독자들이 이 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진실이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쓰게 한 겁니다. 여러분이 시나 일기, 편지를 쓸 경우 의도할 때와 달리 써지는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처음 의도했을 때와 달리 글이 써질 때, 삶의 진실이 나를 이끌고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십시오.
친구의 친구가 연애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서자였어요. 여자의 집에서 둘이 교제하는 걸 반대해서 결국 그 친구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는 그 친구에 대한 시입니다. 대개 남자든 여자든 한 사람은 다른 데 가고 한 사람은 남아서 노래하는 것이 전통적인 연시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편지〉도 〈조그만 사랑노래〉도 상대방이 나를 버리고 갔다가 돌아오라는 시가 아닙니다. 특히 〈조그만 사랑노래〉는 남녀 둘 다 방황하는 사랑노래입니다.
제가 지난 10년간 관심 갖고 있는 것이 아픔입니다. 젊었을 때는 아픔을 잘 몰랐지만 은퇴하기 직전부터 갑자기 병이 찾아왔습니다. 눈앞에 물체가 날아다니는 비문증이 생겼습니다. 별일을 다 해도 눈앞의 물체가 사라지지 않고 날아다녀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고통의 시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날건 말건’ 내버려두자고 시를 썼더니, 그다음부터는 의식할 때만 보이더군요. 결국 시와 대화하면서 시가 병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4년 전 1997년 1월에 귀 수술을 했습니다. 이비인후과 수술은 대개 2시간 정도면 되는데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반에 걸쳐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퇴원하고 이틀 후에 얼굴이 찌그러지는 안면신경마비가 와서 재입원했습니다. 문제는 입원을 하고 잰 얼굴 탄력 수치가 다음날 재 보니 더 악화되었다는 겁니다. 수술하다가 신경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그날 밤 한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남은 일생 동안 찌그러진 얼굴로 살 수밖에 없다니…… 다음 날 아침 집도의가 희색이 만면해서 병실에 들어왔습니다. 컴퓨터의 고장이었으니 다시 재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고 그날 약을 한 아름 타 가지고 퇴원했지요. 그날 저녁에 쓴 시입니다. 그날 보니까 배터리의 생명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저는 인간의 고통뿐만이 아니고 생물이나 무생물의 아픔까지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후문에서 한 정거장을 더 가면 마을버스 종점입니다. 그날 눈이 조금 내리고 나서인지 하늘이 무척 맑았습니다. 갑자기 별이 보고 싶어져서 걸었습니다. 어둠이나 빛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장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같이 아프고 같이 기다리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시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이 시를 쓰기 전 늦겨울의 마지막 문턱에서 저는 감기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이번에도 낙상해서 혼났지요. 인간에게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그 아픔이 없었던 경우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이 없는 것보다 앓다가 나으면서 인간의 아픔에 대해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번 낙상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지옥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픈 동안 보통 때보다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썼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번에 낙상한 것이 낙상하지 않은 것보다는 더 낫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 대개 2년마다 한 번씩 앓았는데 2년 후에는 또 어떤 일이 올지 모르겠습니다만.
터키 사람은 내 시집 《꽃의 고요》에 실린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 달러, 원 달러!” 하면서 사진첩을 파는 절름발이 사내인데 자존심 때문인지 사람들 앞에서 다리 저는 일을 애써 억제하더군요. 대개 동정을 받으려면 더 다리를 저는 게 보통인데 이 사람은 우리와 헤어져 돌아갈 때 무척 다리를 절더군요. 나는 그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나는 장님이나 벙어리를 보면 피하거나 못 본 척했습니다. 아마도 젊었을 때 이런 장면을 보았다면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시집 《겨울 밤 0시 5분》이 나왔을 때 시집이 어떻게 꽂혀 있나 싶어서 서점에 갔어요. 그런데 다리가 땅겨서 내 시집은 사지 않고 두툼한 미술책을 사서 난간을 잡고 올라왔습니다. 내가 아프니까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나는 것 같았습니다. 힘들게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때 두 사람이 수화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프러포즈한 것 같았어요.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는 것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수화가 얼마나 아픈 대화입니까? 이 장면을 보고 마음속으로 나의 절름을 극복한 셈이지요. 일종의 추상적이나 관념적이 아니고 시 속에서 아픔과 만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아픔이란 성스러움입니다. 아픔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더 깊이 보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픔을 통해서 서로 통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 자신은 깊은 인간이 되지요.
청중과의 대화 ▶ 남녀가 정말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 때문에 상대방과 자기가 더욱 높아집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면 대상이 확장됩니다. 〈즐거운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어떤 것이다.”라는 아포리즘은 좋은 시가 아닙니다. 멋있는 말인 것 같지만 대개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문제는 추상적인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체험이 중요하고 그걸 시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멋있는 말을 전하려고 하지 마세요. 《겨울밤 0시 5분》에 사랑노래가 없다니 의외입니다. 그러나 시집을 14권이나 냈는데 한 권쯤 사랑노래가 없는 것도 좋지 않은가요? 다음 시집을 낼 땐 아마도 사랑노래가 있을 겁니다. 선생님은 시인으로서 오르실 대로 오르고, 인생으로 봐서도 최고의 인생으로 사셔서 상처가 없는 분 같은데 이러한 상처 있는 시를 쓰셔서 우리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를 쓸 때 몸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아파, 가슴앓이를 하는 황동규 시인으로 보게 되어 오늘 더 선생님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 그 사람은 미국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덕수초등학교 여자 동창인 제 친구의 언니입니다. 미국에서 서울에 오면 셋이 만나서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그동안 세 번 만났습니다. 이제 그분을 만나면 담담하지요.
▶ 풍장은 이중 장례입니다. 풍장은 서해 남해의 섬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수 주일씩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아들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아들이 부모의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의식입니다. 간단하게 다락 같은 집을 짓고 거기에 시신을 모시고 짚 같은 것으로 덮습니다. 아들이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배 타고 올 때쯤이면 부모는 탈골이 됩니다. 그때 장례의식을 하면서 유골을 땅에 묻습니다. 선유도에서는 조그만 무인도로 가서 풍장을 치르기 때문에 먼발치로만 보았고, 후에 보길도에서는 바로 옆에까지 가서 보았습니다. 〈풍장〉은 40대 중반쯤 죽음을 극복하려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풍장을 쓰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습니다. 죽음과 대결하기 위해 시를 쓴 셈입니다. 저는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치매는 두렵습니다. 제 아들에게 치매에 걸리면 즉시 치매환자를 다루는 요원이나 간호원이 있는 치매요양소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면 생명 유지 장치를 붙이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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