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주의 국가인식과 독도침략
독도분쟁은 새살문화의 역사관으로 극복하자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식민주의사관의 잔재를 말끔히 지워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관으로부터 우리는 지금 독도, 대마도, 간도, 위안부, 남북문제, 복잡한 국내외 정치문제 등 수많은 역사적 난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민주의 사관의 뿌리는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사대주의 사관에 그 밑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고대 고조선시대 이후부터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고 주변강대국과 사대적인 조공책봉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비통한 역사적인 삶을 영위해왔다.
우리의 사대적인 외교관계는 강대국에게 있어서는 지배권을 갖는 식민주의사관으로 작용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식민주의사관이다. 따라서 우리민족의 역사는 외세의 강압적 힘에 밀려 우리민족의 기원과 우리민족 문화의 원형마저 스스로 잃어버리고, 외세에 의해 할퀴며 찢겨지고 상처받아 피눈물이 솟아나오는 고통의 역사로만 살아와야만 했다. 이제 이러한 상처받은 병든 치욕의 역사를 치유하는 새살문명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새살문명의 역사는 우리 한민족 본래의 역사를 새로 복원하는 참다운 역사관이다. 우리는 이제 새살을 만들어내는 역사관으로 우리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적 자아의식이 형성되도록 바로 도와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여야만 한다. 일본은 15세기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들의 신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제국주의 형태의 식민주의 국가관을 성립시키고, 동아시아 패권자로 등장하면서 우리민족의 역사를 말살하고 철저히 왜곡시켜왔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말살하려던 왜곡의 역사 속에는 그대로 지금까지도 독도문제는 심각한 한일과 국제 외교문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일본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명분이 세워지면 우리 땅 대마도를 기점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 땅 독도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을 식민지화하려 들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일본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만 한다. 일본은 15세기에 발생하였던 한일 간의 임진왜란 전란 참패 이후 점차로 세계 질서가 서구 중심으로 급변하는 국제질서를 지켜보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싹을 키워왔다.
현대 일본의 국가인식은 섬이라는 일본의 닫힌 문화 속에서 항상 위험에 노출되며 살아야만 하는, 해일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척박한 자연환경속의 닫힌 사회적 문화와 이와 같은 패쇠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 속에서 서구 열강의 팽창적인 제국주의의 역사를 동경의 선망으로 바라보면서 일본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일본의 국가인식은 근세 막부시대(1603~1867)부터 일본 지식인들의 심화된 자아인식과 국수주의의 역사인식으로부터 발아되기 시작하여 동아시아의 침략역사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일본은 서구 열강들처럼 아시아에 대한 멸시와 인접국가에 대한 약육강식의 침략만이 험난한 국제질서 속에서 일본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역사학을 동원시킴으로써 일본 식민주의사관을 체계화시켜 나간다. 즉 일본은 동양문명의 사대주의 사관에서 서양문명의 식민주의 사관으로 국가인식의 변화를 도모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9세기 중반이후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를 완전히 버리고, 서양 중심의 국제질서를 받다 들여 일본을 근대화시킨다. 이처럼 일본은 일본을 근대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중국과 한국을 힘이 없는 나약한 나라로 인식한다. 이러한 국가인식 속에서 일본사회의 지도층들은 동아시아 역사를 일본 중심으로 다시 정의하면서 조선이란 한 마디로 별 볼 것 없는 가여운 존재로 비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서구 열강의 동양진출에 따른 일본의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조선을 침략하는 침략사상을 만들어낸다.
일본의 침략사상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주인이라는 잘못된 우월감에서 비롯된 식민주의 침략사관인 것이다. 일본은 국가인식을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사상에서 근접 동아시아 국가를 침략하는 식민주의 사관으로 바꾸면서, 동아시아에서 또다시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19세기 말에 일으키면서 조선을 식민지화한다. 근세 일본의 조선침략의 시발점은 고종12년(1875)8월 21일 강화도에서 발생한 운요호 사건이다. 일본은 이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조선과 체결한다.
강화도 조약은 고종 13년(1876) 강화도에서 최초로 체결한 조일수호조규와 같은 해 8월에 체결한 조일통상장정(조일무역규칙), 조일수호조규부록 등이다. 문제는 이 강화도 조약 제7관에 조선 연근해의 측량에 관한 규정을 넣어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을 측량을 이유로 조선의 어디서나 일시 상륙이 가능했고, 이 해상측량 자료는 곧바로 일본군 해도 작성에 사용되었다. 즉, 조선 근해에서의 전투에 기여하는 해도 작성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차후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러일전쟁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들 자료를 활용하여 일본은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해상전투의 군사 정보력의 선점으로 러일전쟁에서 최종 승리한다. 러일전쟁(1904~5)은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분할을 위한 열강간의 세력 각축전이었다. 이는 한국 및 만주를 둘러싼 러, 일 양제국주의 국가의 무력충돌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배후에 있는 영국·미국의 자본과, 그리고 러시아의 배후에 있는 프랑스의 자본이 각각 지원하는 제국주의의 당시 국제전이었다. 승리는 일본이었다. 결국 러일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하여 미국 루스벨트가 주도하는 포츠머스 조약에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루스벨트는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이 포츠머스 조약 제2조에서 러시아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군사·경제상의 최고의 이익을 갖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도·보호·감리의 조치를 집행하는 데에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고 서로 승인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국제적 승인 하에 우리민족 최대 치욕의 일제 식민지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최종 전투현장은 바로 독도에서 벌어진 러. 일 해상전쟁이다. 일본은 독도를 기점으로 하여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역사를 연 것처럼, 다시 지금 독도의 식민지 권한을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일본의 최종 목표는 독도가 아니라 다시 한일병합의 일제 식민지 시대를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할까.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벌어진 사대주의 사관과 그 사대주의 사관에서 탄생한 일제 시민주의 사관의 역사성을 바로 알아야만 한다. 사대주의 사관은 상대에게 대우를 받는 것이라면, 신민주의 사관은 사대주의 사관을 벗어나 지배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우리시대 우리민족이 다시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역사는 독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병들고 찌든 우리의 역사를 새로이 복원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씨앗이 어두운 땅 속에서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새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연구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이 험난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독도를 지키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