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 고구려의 치성과 옹성
4. 고구려의 축성기법
고구려의 축성기법은 특이하다.
사람이나 차마(車馬)가 드나들 수 있는 성문(城門)은 옹성(甕城) 모양이며, 성벽은 치성(雉城) 형태이다.
옹성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장독처럼 생겼다.
그러니까 성문의 정면에서 바라볼 때는 성문이 보이질 않는다. ‘ㄷ’ 자 형태다.
성안으로 바로 직진하여 들어갈 수가 없다. 좌측 左側이나 우측 右側으로 우회 迂回하여 입성 入城하여야만 한다.
흔히 공성전(攻城戰)에서 많이 사용하는 충차(衝車)가 옹성에서는 필요가 없다.
쓰일 곳이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수비에 이보다 더 완벽한 성문은 없다. 동서고금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고구려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축성기법이다.
성문을 파괴하려면 성벽을 끼고 ‘ㄷ’형태의 안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한데 그러면 3면에서 오히려 성내 城內의 수비군에게 공격을 받는 형국이 된다.
공격자들은 바로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되어버린다.
그 유명한 안시성(安市城)도 옹성인 것이다.
그러니 인류사상 최대 원정 전투 규모인 수와 당나라의 100만이 넘는 대군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다.
함락시키기가 그렇게 어려운 성문의 모양새다.
흔히 말하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이다. 사극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거목(巨木) 앞쪽을 뾰쪽하게 깎아 만든 무지막지한 충차 衝車도 옹성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별 힘을 내지 못한다.
나무로 바위 치기다.
치성 雉城이란?
성벽의 형태를 성벽 곳곳에 일정간격으로 앞쪽으로 튀어나오게 한 축성기법인데, 우선 성벽 자체를 튼튼히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도 하지만,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치(雉)에서 그러니까 적의 옆에서도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치 雉는 꿩을 뜻하지만, 새의 날개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치성은 날개 달린 성이란 뜻이다.
이 역시 수성(守成)하기에 효율적이며 손쉬운 방어술로서, 치성의 과학성과 효율성을 절감한 당나라에서는 훗날, 고구려의 치성 기법을 도입 導入하여 축성한다.
그 후, 먼 유럽의 로마 성벽에서도 볼 수 있다.
당나라나 로마 Rome 가 고구려를 모방(模倣 :bench marking)한 것이다.
고구려가 전투력을 제대로 갖춘 웅혼한 거대 국가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UNESCO의 세계 문화유산에 신청하면 0순위로 등재될 것이다.
* 몇 해 전, 한반도 경북 성주에 설치한 ‘샤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문제로 촉각이 고추
선 중국의 주석, 이 지도를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연결된 날조, 왜곡된 그림) 미국의 대통령에게 제시하며,
“예로부터 한국은 우리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샤드 배치를 항변 抗辯하자,
아시아의 고대사(古代史)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국의 대통령은 그 말을 그대로 언론에 인용해 버린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동양사를 잘 모르는 미국의 대통령에게 중국이 ‘샤드’ 배치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였다.
그러자, 답변이 궁색해진, 미 대통령은,
“한국의 고대 역사와 지도를 제시해달라”고 당시, 우리나라 이 모 대통령에게 의뢰하였다.
기업인 출신으로 돈 버는 데는 천재지만 역사관이 미약한 이 모 대통령,
강단의 역사학자들에게 고대의 영역을 표기해달라고 하니까 그들은,
‘중국 측이 제시한 내용이 맞다’라며 한 줄 수정도 없이 그대로 미국 측에 제시해 버린다.
“?”
“?”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 당시 자문을 맡은 외교관과 역사학자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 자리에서 그 업무를 담당할 능력이나 소양이 있는 작자들인가?’
“그대들이 정녕 한국사를 공부하고 연구한 사학자들이 맞는가?”
그 이전에
"그대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는가?”
굳이 애국지사가 아니라도 한글을 알고 역사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땅을 치며, 대노(大怒)할 일이다.
한반도 북부지역과 만주 평원 전역 全域, 그리고 북경과 산동성 전 지역에서 발굴된
1. 단군조선의 비파형 청동검과 세형 청동검,
2. 단군조선의 화폐인 명도전의 발굴지와
3. 동이족의 상징인 고인돌의 분포지
4. 그리고 동이족의 전용 빗살무늬토기 발굴지를 내보이며
중국의 산동성을 비롯하여, 대륙의 동쪽 해안선의 대부분이 동이족 단군조선의 관할 영토였음을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왜 주장하지 못하였는가?
동이족의 적자이자, 고조선과 고구려의 후예인 우리나라가 왜 중국의 속국이었는가?
그들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주구 走狗에 불과한 매국노와 진배없다.
속이 쓰리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 다시 갈석산으로 가보자.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영토와 역사를 한 개인이, 자신의 영달 榮達만을 위해 날조 捏造한 허술하고도 치졸한 논문 한 편으로 그렇게 허망하게 이웃 나라에게 넘겨 줘버리다니.
900여 년(중국 사서의 기록)을 동북아 최강자로 군림해 왔던 고구려, 그 고구려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그러다 명멸 明滅해간 수많은 중원의 왕조들.
연대표와 관할 영역을 비교 대조해 보면 누가 당대 當代의 지배권자이며, 누가 그에 복속된 국가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뒤엎어 버린 현 역사관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역사는 흘러간다. 그러나 마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바로 곁으로 이렇게 되돌아서 다가온다.
역사의 그림자는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올 수도 있고, 후손들의 자존심을 아프게 건드리면서 화를 내며 올 수도 있다.
그런데, 근래 우리가 느끼는 민족의 역사는 대부분이 아프게 다가온다.
왜?
그런가?
그 이유가,
민족의 아픈 생채기에 강단의 역사학자란 작자 作者들은 치료 약 대신, 그 위에 소금을 덧뿌리고 있다.
그 소금도 국내산 일반 천일염 天日鹽이 아니라, 주변국에서 가공 加工한 출처 出處도 불분명 不分明한 외국산 맛소금을 밀수입 密輸入하여, 마구잡이로 상처 위에 ‘훌훌’ 뿌리고 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미래에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극적인 순간에 또 어떻게 되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왜 역사가 중요한가?’
사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한 번 더, 되새겨 보아야 할 사안 事案이다.
- 8. 元甫
첫댓글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나쁜 것은 숨기고 좋은 것은 과장하여 드러내는데 좋은 것에 대한 역사마저도 모르고 있다면 ....
슬픈 현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