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9편
괜찮다는 건 괜찮지 않다는 것, 이 씨 아저씨
이혜주
이혜주 선생님께서 경기도 어느 사례관리지원센터에서 일할 때 만난
이 씨 아저씨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술로 힘들어하는 아저씨는 돕는 일.
어느 때는 모래성을 쌓는 것 같습니다.
됐다 싶었지만 돌아서면 다시 제자리이기도 합니다.
함께하는 과정이 조마조마 합니다.
그런데요,
우리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 아니었나요?
사회사업가가 한두 번 말씀드리면
기적적으로 그 삶이 변할 거란 생각이야말로 너무 순진한 거 아니었을까요?
아저씨의 변덕이 우리는 당황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분 만나 그 옆에서 거들어드리고자 택한 직업인데,
이런 상황을 몰랐다는 거야말로 당황스럽습니다.
이혜주 선생님의 이런 기록을 특히 전공 대학생 때 많이 읽었다면,
새내기 사회사업가 시절에 열심히 읽었다면
당사자의 더딘 변화에 대하여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
말처럼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사회사업가의 감정이 요동치고, 하루에도 몇 번 내려놓고 싶어지기도 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성의정심으로 당사자의 삶을 응원하는 선생님들.
그 마음, 그 수고, 그 노력. 고맙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사회사업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배운 바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믿음,
당사자와 진정한 신뢰 관계,
이런 게 있다면 해볼 만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피하지 않게 합니다.
함께 나누며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나아가요.
100편 읽기 모임이 그런 일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혜주 선생님 글 읽고
이런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가족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며 씁쓸하게나마 웃으셨으니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날 밤, 술이 또다시 아저씨를 잡아먹었습니다. 아저씨가 살고 있는 빌라가 요동을 쳤습니다.
관리인과 다른 입주민들은 그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빌고 빌어 겨우 막았습니다.
그에게 10여 년 전 보였던 눈의 독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원망, 나의 대한 원망이 뒤섞여 울부짖는 아저씨를 보니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일주일간 울부짖다가 다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아저씨에게 괜찮음을 강요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저씨는 이제 정말 괜찮다고 하십니다.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 살겠다고 하십니다.
'괜찮다는 건 괜찮지 않다는 것, 이 씨 아저씨'를 읽은 뒤,
댓글로 '읽었습니다' 하고 남겨주세요.
소감이나 질문을 써도 좋습니다
첫댓글 ‘괜찮다니까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당사자의 괜찮다는 말이 괜찮은 게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괜찮다는 말 이면에 다른 어떠한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괜찮다는 것은 정해진 답이 아니기에, 당사자에게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지 않은 모습을 응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센터의 당사자로 만나 이웃으로 만난 아저씨의 이야기가 참 먹먹합니다. 술을 먹지말라는 말 대신 먹어도 건강을 챙기며 먹으라며 음식을 건내는 모습에 아저씨가 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린 덕 같습니다. 당사자를 만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마지막 글귀가 아침부터 마음을 울리네요ㅠㅠ
네 맞아요..사례관리 100편의 글들을 읽으면서 가까운 또는 먼 그곳에서 이렇게 잘 돕고자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는구나...하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이른 시간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는 이곳이 있어 감사하고 오늘도 당사자의 삶을 응원하는 선생님들...응원합니다^^
그저 당사자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 이 진심을 잊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당사자의 변화가 조금 더디더라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겠습니다. 때론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 감사합니다.
사례관리를 하면서 당사자에게 괜찮은지 여쭤보면 “괜찮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괜찮으신걸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이내 더 이상 여쭙지 않고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이 씨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당사자가 했던 괜찮다는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도 어쩌면 당사자에게 괜찮음을 강요한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혜주 선생님의 이야기가 제가 함께하고 있는 당사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당사자를 곡선의 시선으로 한번 더 헤아려 봐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는 소통의 기초는 공감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걸 다 이해하고 헤아릴 수는 없지만, 더 공감하고 더 인정하고 또 헤아리려는 노력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우리의 노력이 당사자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변화의 초석이 될 때 사회복지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 사례를 접할수록 문제 중심에서 해결 중심으로, 그리고 당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제 시선이 더 변화되어 감을 느낍니다.
이씨 아저씨도, 작가님도 잘 지내시길 기원해봅니다. '괜찮은 삶'이란 어떤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번 '욕구'편에서 읽었던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이론이 생각납니다. 생리욕구, 안전욕구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고 이것만 돕는다는건 생존연명의 의미 뿐 삶이라 보기 어렵다 했습니다. 아저씨가 일터로 나가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건 가족을 찾고 싶은 실낱 같은 희망이 있어서였나 봅니다. 애정, 인정,사랑의 욕구를 이룰 상대방이 없다는 것에 무너져내린 아저씨처럼 둘레 사람, 가까운 가족이 없을 때 더 어렵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당사자 곁에서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지원할 수 있음을 선생님 글을 통해 깨닫고 배웠습니다. 선생님처럼 저도 아저씨의 눈에 서린 독기를 가라 앉히고, 깊은 마음 속 회복력을 건드리는 진정성 있는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사자를 만나면서 스스로 괜찮음을 강요하지 않았나 반성했습니다.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