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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08(목) ◈ 창 5:1-32 수고와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복음으로 쉼을 주셨다.
창 5:1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창 5:2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창 5:3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창 5:4 아담은 셋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5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6 셋은 백다섯 살에 에노스를 낳았다.
창 5:7 셋은 에노스를 낳은 뒤에, 팔백칠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8 셋은 모두 구백십이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9 에노스는 아흔 살에 게난을 낳았다.
창 5:10 에노스는 게난을 낳은 뒤에,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11 에노스는 모두 구백오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12 게난은 일흔 살에 마할랄렐을 낳았다.
창 5:13 게난은 마할랄렐을 낳은 뒤에, 팔백사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14 게난은 모두 구백십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15 마할랄렐은 예순다섯 살에 야렛을 낳았다.
창 5:16 마할랄렐은 야렛을 낳은 뒤에, 팔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17 마할랄렐은 모두 팔백구십오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18 야렛은 백예순두 살에 에녹을 낳았다.
창 5:19 야렛은 에녹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20 야렛은 모두 구백육십이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21 에녹은 예순다섯 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창 5: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창 5:24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창 5:25 므두셀라는 백여든일곱 살에 라멕을 낳았다.
창 5:26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뒤에, 칠백팔십이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27 므두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28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창 5:29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창 5: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뒤에, 오백아흔다섯 살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31 라멕은 모두 칠백칠십칠 년을 살고 죽었다.
창 5:32 노아는 오백 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 은혜가 왕 노릇하는 복음
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되었다.
1) 아담과 여자는 한 몸이 되고, 벌거벗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유와 평안 속에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열매를 먹고, 에고의 눈이 밝아진다.
2) 아담과 여자가 핑계를 대며 탓할 때, 하나님은 여자의 자손을 통한 구원을 약속하신다.
3) 은혜의 복음을 믿은 아담은 여자를 “생명(하와)”이라 부르고,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2. 가인과 아벨은 부모로부터 들은 죄, 복음을 듣고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반기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반기지 않으신다.
1) 하나님은 가인의 분노가 정당하지 않고 “죄가 너의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너는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으나, 가인은 아벨을 죽인다.
2) 우리 안에 있는 “가인, 종교주의, 바리새인”을 알아차리고, 은혜의 복음을 의지하며 긍휼을 구해야 한다.
3)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 쉬지 못하게 되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성을 쌓는다.
4) 가인의 후손들은 예술(유발), 기술(두발가인), 경제(야발) 면에서 문명을 일구어 쉼을 대체하려고 하고, 셋은 아들을 에노스(깨어지기 쉬운 존재)라 부르고,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한다.
3. 아담의 계보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부터 시작한다.
창 5:1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창 5:2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1) 3장의 죄, 4장의 살인과 죄의 왕노릇이 있음에도, 5장은 다시 '창조'의 시점으로 돌아가 시작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복”은 여전히 있다.
2) 타락 후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과 혼과 몸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의 복을 여전히 받고 있다.
3) 우리는 죄로 인해 망가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폐기 처분되지 않는다. 도리어 복음으로 우리 안에 일그러진 이 형상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하게 복구해 가신다.
4.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에 이어서 “아담의 형상을 닮은 아들을 낳음”을 말한다.
창 5:3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1)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셋은 아담의 형상을 닮은 아들이다.
- 셋은 하나님의 형상과 아버지의 형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 누가복음 3장에 예수님의 윗대는 요셉이고... 아담에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눅3:38)”고 한다.
3) 하나님을 믿은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믿음의 계보를 이은 셋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아담의 아들이다.
4) 셋부터 노아, 아브라함부터 우리까지 복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육체적인 부모의 아들과 딸이다.
5. 동시에 아담의 아들이기 때문에 타락한 본성이 유전되고, 그 결과로 "...하고 죽었다"는 문구가 반복된다.
1) 복음을 믿어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과 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을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롬 5: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롬 5: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 인류의 역사는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살다가 죽었다’는 허무의 반복이다.
2) 그러나 아담이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복을 받은 존재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게 한 복음으로 인하여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6. 가인의 계보가 사망이 왕노릇하는 계보(역사)라면, 셋의 계보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생명의 계보(역사)다.
1) 그들은 에노스임을 알고, 세대를 이어가며 주의 이름을 불렀다.
- 복음을 믿어 생명을 얻고, 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며, 생명을 얻었다.
2) 복음, 예배, 생명의 계보에서, 특별히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에녹이 나타난다.
창 5:21 에녹은 예순다섯 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창 5: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창 5: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창 5:24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7.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다.
1) 영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귐인데, 에녹은 땅에서 영생을 살다가, 영원으로 옮겨진다.
2) 에녹은 죽음을 이기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자가 된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을 데려가신 하나님은 미가를 통해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부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한다.
1) 므두셀라는 "그가 죽을 때 그것(심판)이 오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죽던 해에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다.
2) 에녹은 가인의 계보로 인하여 죄악이 넘치고, 그 죄에 셋의 계보도 오염되어, 심판이 있음을 알았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고, 그 후에 구원으로 다시 시작하실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다.
3) 죄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과 심판을 알고, 다시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는 일상의 삶을 살았다.
9. 므두셀라는 969세로 가장 오래 살았다. 이는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셨는지를 보여주는 '은혜'의 상징이다.
1) 하나님의 인내를 모르는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해지자, 라멕은 안식을 갈망하는 노래를 부른다.
창 5:29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쉬다, 안식하다, 위안)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2)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특징이 “쉬지 못함”이었는데, 셋의 계보에서 “쉼, 안식, 위안”을 소망할 만큼, 죄로 인한 “쉼 없음”이 가득하게 되었다.
10. 노아(쉬다, 안식하다, 위안)은 쉬지 못하는 수고와 고통을 끝내줄 은혜의 상징이다.
1) 6장부터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는 노아가 위로와 안식의 통로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2) 죄악이 너무나 관영하여서 “쉼과 안식”을 주기 전에, 홍수 심판이 집행된다.
3) 노아의 홍수보다, 노아의 방주가 핵심이며, 구원의 방주를 통하여 “쉼과 안식”을 얻는다.
11. 우리 인생의 홍수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노아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의 쉼을 얻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기를 원한다.
마 11: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마 11: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1)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수고와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우리를 안식하게 한다.
12. 죄의 왕 노릇이 생명의 계보인 셋의 계보에까지 미치는 역사는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인내와 구원을 아는 에녹처럼,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쉼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심판 후에 찾아오는 참된 안식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신다.
3)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홍수와 죽음, 그리고 부활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쉼을 주신다.
4)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그리스도 안, 하나님 품속에 있다. 참된 안식과 쉼이 임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마음 눈으로 그 은혜를 보고, 감사하며, 그 쉼을 누리자.
◈ 생명 얻기
종교주의, 살인, 분노, 거짓과 핑계로 일관하던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받은 가장 큰 저주가 “쉬지 못함, 떠돌아다녀야 하는 불안”이다. 성을 쌓고, 문명의 혜택을 누려도 불안하고 쉼이 없게 되었다. 당연하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부른, 셋의 후손들에게도 “쉬지 못함과 불안”이 엄습했다는 것이 새롭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나와 동일하기에 너무 익숙하다.
에녹처럼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명의 사람도 있지만, 라멕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수고와 고통을 겪으며 쉼을 구한다. 세속의 역사도 반복되고, 영적인 역사도 반복된다. 아담과 셋의 후손에게 주어진 은혜의 복음으로 생명을 얻었지만, 그 복음이 가인의 후손들에게 생명을 주기보다, 가인의 후손들의 죄와 발달된 문명이 셋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일, 안타까운 일이 반복된다. 그 때는 홍수를 통해 죄를 끊으시고, 방주를 통해 구원하시고, 참된 안식과 쉼을 주셨다. 또 그 때는 아들을 통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시고, 참된 안식과 생명을 주셨다. 그리고 광야를 통해 나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성령님의 견인으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안식 가운데 있음을 알게 하신다.
완전한 구원과 은혜의 왕 노릇에도 나는 쉬지 못하고 불안하다. 그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쉼을 얻어내거나 안식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은혜의 복음으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사신다. 나는 아들의 나라, 생명, 은혜의 왕 노릇안에서 안식과 쉼이 있다.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이며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다만 사단이 속임, 에고의 왕 노릇과 무지로 인하여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누리고 있는 은혜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통해 내가 받은 생명과 은혜를 본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나의 짐을 벗기고,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게 하시고, 쉼을 주셨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배울수록 마음에 쉼을 경험하게 된다. 경험되지 않아도 이미 생명과 쉼은 주어졌고, 친히 주님이 가르쳐 주심으로 마음의 쉼을 경험하게 해 주신다.
은혜의 복음으로 나에게 주신 은혜의 통치안에 거하며, 은혜의 지배를 즐거이 받아들인다. 나는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고멜이나 사랑받는 존귀한 자다. 은혜의 왕국에는 쉼과 안식과 평안과 생명이 충만하기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려진다. 그래서 호흡할 때마다 생명을 얻고,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린다. 항상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그 눈으로 나를 본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복 받은 자이니,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한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에고의 주도권으로 내가 받은 은혜와 생명과 쉼을 놓치고 삽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게 하시고, 눈을 들어,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있음을 보게 하소서. 주 안에는 쉼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사단의 속임, 제 에고의 연약함과 주인 노릇, 다른 사람의 에고에 휘둘리는 불안, 세상의 오염과 뉴스가 들려주는 불안이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의 통치와 안식에 비하면 작은 것입니다. 진리대로 보게 하사, 불안과 고통의 세상에서도 안식과 쉼과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이 환히 보이게 하사, 영으로 생각하고, 보고,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복 받은 자입니다. 주님이 복음을 통하여 제가 해야 할 그 모든 일을 전부 이루어 주셨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더 무엇을 하려고 하거나, 더 나은 존재가 되려 하지 않고, 주가 다 이루신 그 은혜의 복음을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주님, 사단과 에고의 속임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교우들과 교회들을 건져 주십시오.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에고를 치유하사 평안하게 하시고, 질병을 치유하사 강건하게 하시고, 하늘 아버지의 은혜로 필요가 채워지게 하여 주십시오. 하늘 찬양으로 쉼으로 찾는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십시오. 은혜가 왕 노릇하는 교회로 지어져 가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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