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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용서/믿음
제목 : 온전한 용서, 온전한 믿음
성경 : 창 50:15~26
찬송 : 545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1201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 50: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창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창 50: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창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창 50: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창 50: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창 50: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유명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후임으로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25년간 사역한 R. T. 켄달 목사에게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내용으로 책을 한 권 집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켄달 목사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러다가 문득 수십 년 전에 박사학위 공부를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도교수는 그에게 “절대로 가족을 소홀히 하지 말게.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네.”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역에 집중하느라 가족을 소홀히 했습니다. 25년 동안 미국 본토에서 떨어진 영국에서 사역을 했고, 가족을 돌보는 것보다 사역과 설교를 우선시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을 우선시하면서 설교와 사역을 감당했어도 하나님이 축복하셨을 것이라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을 우선으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을 용서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명령을 통해 많은 회복과 치유를 행하십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또한 택하신 백성이 온전케 되도록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룩한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타인이나 혹은 나 자신을 용서한 경험이 있습니까?
창세기를 마무리 짓는 50장은 13장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사, 특히 그 주인공으로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장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단순히 한 개인의 생애를 매듭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한 시대를 지나 다음 시대로 연결되는 연결 고리들을 보여 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은 야곱과 요셉의 죽음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과 명확하게 연결하는데, 이는 400년 후 출애굽한 후손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주연으로 택함을 받았고 가나안 땅의 언약을 이어 받은 약속의 민족임을 상기시켜 주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한편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며 그들의 가족을 돌보기로 확인하는 장면은 형들과의 마지막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 주는 요셉답게 용서와 화해, 실제적인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됩니다. 창세기 50장은 야곱과 요셉 개인의 종말을 통해 성경에서 강조하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 주는 동시에, 다음 세대의 출애굽 사건과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여전히 계속됨을 보여 주는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가 낫고 마음에 평강을 누리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요셉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용서의 힘을 배우고 용서를 실천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함
√창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 50: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창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한 후 요셉의 형들 마음에 다시 두려움이 올라왔습니다. 요셉이 자신들의 죄악에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방패삼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요셉의 복수심을 달래려고 합니다. 야곱이 실제로 이런 유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잘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야곱도 생전에 형제간의 화목을 강조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가끔 저희 집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다섯이 있는데 형제들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라고 표현하며 그들이 야곱과 요셉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들임을 강조합니다(17절). 그러면서 형들이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해 달라’라고 말하자 요셉이 웁니다.
√창 50: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그 말을 들은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 주며 형들의 마음을 풀어 줍니다.
√창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은 형들의 잘못까지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하며, 형들과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요셉의 용서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있습니다. 요셉의 ‘간곡한’(히브리어의 의미는 ‘심장 깊이 스며드는, 감동있는’)고백을 통해 형들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위로’를 받습니다.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여러분!
복수하지 않는 소극적 태도에 그치지 않고 사랑으로 품는 용서를 하려면, 나의 어떤 부분을 바꾸어야 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특히 형들에게 베푼 용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용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요셉의 용서는 단순히 복수하지 않는 소극적이고 부작위한 형태가 압니다. 형들이 복수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내민 손길을 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릴 만큼 마음으로 완전히 그들을 받아들인 용서였습니다. 또한 요셉은 형들을 마음 깊이 위로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더 나아가 그들과 자녀들의 미래까지 책임지며 온전한 연합을 약속하는 완전한 화해를 약속합니다. 이렇듯 요셉이 형들을 참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어난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셨으며, 그 은혜의 결과로 자신의 삶이 온전히 세워졌음을 용서를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 비결을 묵상하고 붙잡을 때 우리도 온전한 용서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회복시키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
√창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요셉이 온전한 용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것은 하나님의 보복을 바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20절과 연결해 ‘하나님은 이미 판단을 내리셨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 질문은 창세기 3장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소망했지만,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라고 단언함으로 아담과 하와의 행위를 거부했습니다.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고 말합니다. ‘해하려 하다’와 ‘선으로 바꾸다’에는 모두 동사 ‘하사브’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동사는 ‘꾀하다’, ‘계획하다’라는 뜻이지만,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형제들의 ‘하사브’는 요셉을 해하려는 ‘음모’를, 하나님의 ‘하사브’는 생명을 구원할 ‘계획’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려’는 노아 홍수 이야기(6:19~20; 7:3) 등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의 주제는 ‘생명 보존’으로, 노아 홍수와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백성’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요셉은 45:7절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려’는 대상으로 ‘당신들과 후손’을 가리킵니다. ‘많은’으로 번역된 ‘라브’는 ‘큰, 위대한’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요셉의 발언이 야곱의 후손이 ‘크고 위대한 백성’으로 번성할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큰 백성’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듯이,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이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을 믿는 새로운 인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 와서 많은 고생을 하고 총리가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과정에 괴롭고 억울한 일들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높이시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요셉은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하지 않았다면 요셉에게 복수할 대상이 많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보디발과 그 아내 등 모두가 복수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그들의 악행을 선으로 바꾸셔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시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므로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미시초등학교에 로버츠라는 사람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습니다. 이 사고로 5명의 어린이가 죽고 5명이 크게 다쳤으며 로버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전국은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곧 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로버츠의 가족 역시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아들을 잃었다는 점을 생각한 아미시 사람들은 사건이 나고 얼마 뒤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미시 사람들은 로버츠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습니다. 어떤 기자가 두 손녀를 잃은 할아버지에게 “범인의 가족에게 분노가 치미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역사에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영원한 소망
창 50: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형제들을 용서한 요셉은 형제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자신이 죽거든 그 시신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가나안 땅으로 갈 때 함께 가지고 올라가 묻어 주기를 맹세하게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과 형제들의 가족들을 반드시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의 유언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과 마지막까지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로 시작하는 창세기는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백성 요셉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요셉의 유언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소망하는 하나의 비전 공동체를 이루게 합니다. 그들은 요셉이 죽자 몸에 향 재료를 넣어 입관해 잘 보관했다가, 훗날 출애굽할 때 모세가 그의 유골을 챙겨 가나안 땅으로 올라갑니다.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요셉은 평생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의 실현이었고,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당신들을 인도해 내실 것’이라고 고백하며 언약을 마침내 성취하실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는 믿음을 보여 줍니다.
요셉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약속의 성취가 좌절된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이 이방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으로 인해 아브라함 때부터 주신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이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무수한 번성에 관한 언약이 성취되기 어려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변함없이 성실하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셉의 신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언약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 성도의 삶에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창조와 구속, 심판과 구원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진행되고 있으며, 종말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 성취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