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4년 12월 26일, 27일
참석자: 김영도, 권용득
부산 가덕도에서는 해가 질 때까지 등반을 계속 이어갔다. 날카롭게 깎아지른 해벽이 온종일 햇볕을 받아 한겨울에도 등반이 충분히 가능할 만큼 따뜻했다. 게다가 해벽이 해안선을 따라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서 바닷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등반할 때는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등반자와 확보자는 등반자가 퀵드로우 최소 서너 개를 지날 때까지 추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특히 루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퀵드로우 설치 작업까지 해야 하는 온사이트 등반은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영도 선배는 가덕도에서 붙었던 모든 루트를 온사이트로 올랐고 나는 용궁(10b) 루트를 온사이트로 도전하다 도중에 추락 먹고 쫄아서 빤쓰런했다. 가덕도에서는 핑크포인트 등반에 만족해야 했고 그마저 마지막에는 힘이 달려서 억지로 올랐다.
그래도 붙어봤던 모든 루트가 난이도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골고루 까다롭고 재밌었다. 이번에는 우벽만 붙어봤는데(좌벽과 중앙벽에는 고수들이 즐길 만한 매력적인 등반 루트가 많다) 등반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가덕도 해벽의 모든 루트를 섭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등반을 쉬는 동안에는 항구로 돌아오는 컨테이너 화물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쉬다 수평선에 불쑥 솟아오른 잠수함도 구경했다(해군 출신인데 이번에 잠수함 처음 봤다). 하늘과 바다를 삽시간에 붉게 물들였던 석양이야 두말할 것 없고.
이튿날 울산 문수산 암장에서는 난이도 10a 루트 위주로 온사이트 등반에 집중했다. 홀드들이 대부분 작고 미끄러워서 손가락 힘이 많이 필요했고 발을 잘 써야 했다. 발을 더럽게 못 쓰는 나한테는 고달픈 시간이었지만 등반 마칠 무렵에는 그나마 훈련이 됐는지 자신감을 조금 되찾았다.
문수산 암장도 가덕도 해벽처럼 해가 잘 들어서 낮은 기온에도 온종일 따뜻했다. 반면 해가 좀처럼 들지 않는 응달은 바위가 차가워서 등반이 어려웠다. 하필이면 그쪽에 홀로서기(11a) 루트를 온사이트로 도전했던 영도 선배가 애를 많이 먹었다. 영도 선배가 등반 마치고 지상에 내려왔을 때는 꼭 냉동고에라도 갇혀 있다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 같았다.
문수산 암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바위마다 등반 루트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또 바위마다 특색이 조금씩 달랐다. 이를테면 어떤 바위는 밸런스 위주의 문제가 가득했고, 또 어떤 바위는 파워 위주의 문제가 가득했다. 클라이머에게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등반지 아닌가 싶은데 이번에 영도 선배와 나는 해가 가장 잘 드는 끄트머리 쪽에서만 등반했다. 코끼리 꼬리만 실컷 쓰다듬고 돌아온 셈이다.
부산 가덕도 해벽과 울산 문수산 암장 모두 높이면 높이, 규모면 규모, 풍광이면 풍광, 어느 것 하나 빼먹으면 섭섭할 정도로 훌륭한 자연 암장이자 최고의 겨울 등반지였다. 아니,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다시 붙어보고 싶은 등반지다.
첫댓글 갬성 좋네요
이번 주 정기등반은 아무래도 참석이 어려울 것 같은데 문수암 진짜 짱최고! 부디 등반 재밌게 하고 뒷고기에 쏘맥도 꼭 챙겨드삼!
예전 문수암은 너무 추워서 등반하기 힘들었는데 이번 겨울 등반 여행은 따듯했다니 다행이네요!
봄날 같았지. 등반하기 더할나위 없었지. 다음에 또 같이 갑시다!
@권용득 네 그럼요! 문수암은 수직의 페이스에 파워있는 작은 크림프들이 기억에 남네요 ㅎ 볼트 간격이 긴건 덤으로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