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열왕 24,8-17; 마태 7,21-29
+ 찬미 예수님
구약성경의 모세오경이 하는 약속과 경고가 역사서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시각에서는 여호수아기와 판관기를 새로운 창세기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는,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스라엘 백성이 상속받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요, 판관기는 열두 판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는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연상케 합니다.
한편, 사무엘기는 탈출기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다윗이 새로운 모세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계약 궤를 모실 천막을 설치하고, 새로운 계약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을 받는데(2사무 7), 이 모든 것이 모세를 연상케 합니다.
그렇다면, 열왕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민수기와 관련이 되는데요, 열왕기에 등장하는 왕들이 하느님께 불충실한 이야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하느님께 대한 백성들의 반항 이야기가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열왕기의 앞부분과 끝부분은 여러 점에서 대조가 되는데, 열왕기의 앞부분에서 솔로몬은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지만, 끝부분에서 유다 왕국은 이집트에 의해 정복당합니다.(2열왕 23,31-37). 솔로몬은 이웃 나라에서 조공을 받았지만, 후대 왕들은 이웃 나라에 조공을 바칩니다. 솔로몬은 금은보화를 축적했지만, 오늘 제1독서에서 들은 바와 같이 네부카드네자르는 야훼의 집에 있는 보물과 왕궁에 있는 보물 그리고 솔로몬이 야훼의 집에 만들어 놓은 금 기물들을 모조리 떼어 냅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바빌론의 왕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치욕적인 바빌론 유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열왕기는 이처럼 솔로몬의 통치 아래서 강대국이 된 이스라엘을 보여주면서 시작하지만, 왕국이 둘로 나뉘어 각각 패망하고 유배를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나라의 지도자와 백성들이 우상 숭배로 빠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비극이 마지막 결말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바빌론 유배로부터 그들을 돌려보내실 것이고, 그것이 두 번째 출애굽이라는 것을 예언자들은 외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하고 선언할 것이라 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언도 했고, 마귀도 쫓아냈고, 많은 기적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고 자기들의 뜻을 실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지 않으면 우상 숭배에 빠지듯,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으면 자기의 뜻을 실행하게 됩니다. 이 자기의 뜻을 복음에 비추어 성찰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상과 같아집니다. 매우 열심히, 힘들게, 하느님의 일을, 그러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자비입니다. 내가 오늘 사랑으로 한 가지 일을 한다면, 나의 오늘은 헛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나는 오늘 한 걸음 더 하느님을 닮은 것입니다.
에두아르트 벤데만, 유배지에서 신음하는 유다인들, 1832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