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다시 만나다.
◀마지막 잎새
◀두메산골
◀돌아가는 삼각지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
◀파도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
◉‘뜨거운 안녕’의 쟈니 리는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최근 화제가 됐습니다.
80대 원로가 ‘복면가왕’에서
가왕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렇게 불릴 만도 합니다.
게다가 까마득하지만 팔팔한 후배 가수를 상대로 두 차례나 가왕 자리를 방어했으니
대단한 노익장을 보인 뮤지션이 분명합니다.
◉살아 있었다면 쟈니 리 보다 젊은 나이였을 가수 배호는 떠난 지 벌써 50년이 됐습니다.
그도 역시 가요계의 영원한 전설로 남았습니다.
유난히 젊은 나이에 떠난 가수들이 많았던 11월에,
그는 29살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떠난 지 반세기가 되는 배호를 노래로 만나봅니다.
◉배호 노래의 결은 기존 트롯 가수와는 조금 다릅니다.
중후한 저음을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하고
절정부에서 애절하게 고음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음을 교묘하게 흘리면서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그의 노래는 흉내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초기에 그는 트롯보다는 스탠더드 팝이나 재즈, 라틴 계통의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가 빅히트하면서 그때부터 트롯 가수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배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5년 남짓,
24살 때부터 29살까지였습니다.
24살 때 신장염이란 병을 얻어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병마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할 틈이 없이 바쁜 일정에 쫓기다 결국
50년 전인 1971년 11월, 낙엽이 지는 어느 가을날 마지막 잎새가 돼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떠나던 그해 여름에 녹음했던 마지막 노래
‘마지막 잎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배호가 떠난 8일 뒤 이 음반은 세상에 나왔습니다.
https://youtu.be/bamm6E1aYxE
◉배호는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이주한 부모 아래서 산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광복 후 세 살 때 귀국했지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부산 이모 집에서 살면서 삼성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해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외삼촌 김광빈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외삼촌 밑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배호의 데뷔곡이나 마찬가지인
‘두메산골’은 바로 외삼촌 김광빈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1963년 배호가 21살 때 김광빈이 부르라고 했지만
촌스러운 노래라며 부르지 않았습니다.
1966년 김광빈이 다시 권유하자
배호는 그때는 정성을 들여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망향의 노래로 남았습니다.
배호 어머니와 외삼촌의 회고 육성과 함께
이 ‘두메산골’을 만나봅니다.
https://youtu.be/3rii3fqR3D8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경이 된 삼각지 로터리에
있었던 입체교차로는 1994년 지하철 공사로 철거됐습니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는 배호의 노래비와 동상이 서 있고 ‘배호 길’도 있습니다.
그만큼 삼각지와 배호는 서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무명 가수로 밤무대와 지방을 전전하던 배호는
1967년 신장염을 얻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때 대구 KBS 전속가수이자 작곡가인 배상태가 찾아옵니다.
배상태는 삼당숙, 아버지의 8촌 형제였습니다.
배상태는 삼각지를 지나면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고 만들어 둔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의 악보를 보여주면서 불러 보겠느냐고 물어봅니다.
이미 여러 가수에게 보여줬지만 퇴짜를 맞은 곡이었습니다.
배호가 부르겠다고 나서면서 노래가 제 주인을 찾게 됩니다.
건강을 염려한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녹음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불멸의 히트곡이 된 ‘돌아가는 삼각지’입니다.
자신도 히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배호의 육성이 노래 뒤에 담겨 있습니다.
https://youtu.be/Wr2SSopygdQ
◉실제로 처음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대구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은 부산 광주를 거쳐 서울에 상륙할 때는 태풍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톱10에 들어서더니
6개월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전국을 평정했습니다.
1967년 방송사 가요상을 휩쓸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배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대중들의 열광 속에 배호는
‘누가 울어’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같은 히트곡을 잇달아 만들어 냈습니다.
다행히 건강이 다소 회복돼 TV와 쇼 무대 등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배호 특유의 창법으로 가슴을 울리는 ‘누가 울어’는
PD였던 나규호가 배호를 생각하며 악상을 떠올렸다는 최초의 배호 맞춤형 노래입니다.
배호가 떠난 가을에 어울리는 이 노래는 1968년 가수의 날 공연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MOr1dY1iQ50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배호는 5년 동안 20개의 앨범에 2백 곡이 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몸을 혹사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한창때 연예인 납세실적이 3위에 이를 정도였으니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짐작이 갑니다.
배호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항상 걱정스러웠습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도
그런 어머니의 염려속에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https://youtu.be/I580RuSjZLE
◉배호의 노래비는 있는 곳이 전국에 일곱 곳이나 됩니다.
강원도 강릉 소돌항 바닷가에는 배호의 ‘파도’ 노래비가 서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의 노래비는 경주 용담정의 최제우 생가에 서 있습니다.
최제우 생가가 있는 현곡면이 이 노래의 작사가인 정귀문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고향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정귀문은 지난해 78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호가 활동한 기간이 다른 가수에 비해 짧은 편인데다
당시 영상 기술도 신통찮아 직접 노래하는 영상이 별로 없어 아쉽습니다.
배호의 ‘파도’를 자료화면과 함께 들어봅니다.
https://youtu.be/jMllzLSjHbo
◉1967년은 전국을 안개 속으로 몰아넣은 해였습니다.
배호의 노래로 가장 많이 불려지는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이 이때 나왔습니다.
같은 해 정훈희의 ‘안개’도 크게 히트했습니다.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과 함께 안개 노래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은 작곡가 나규호의 데뷔곡입니다.
연세대 음대 작곡가를 나온 나규호에게 작사가 전우가 권유해 만든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기점으로 배호와 나규호 전우로 이어지는 황금 트리오 군단이 만들어집니다.
이어서 ‘누가 울어’ ‘안녕’ 등 배호의 히트곡들이 잇달아 등장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을 맺지만 두 뺨에 눈물이 고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짧은 노랫말로 작사가 전우는 방송사로부터 작사상을 받았지만
절묘하게 배호의 삶을 그린 노래처럼 돼 버렸습니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간 배호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듣습니다.
https://youtu.be/BUzmVGZ7hwg
◉요즘 TV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국민가수’란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떠난 지 50년이나 됐지만 배호는 지금까지도 ‘국민 가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국민가수로 뽑히기도 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중국에도 배호를 사랑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올해 배호 50주기(週忌)를 맞아
이런저런 추모 행사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졌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함께 활동했던 악단 멤버들이
매년 배호를 기억하는 행사들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후배 가수들이 꾸준히 배호의 노래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