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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구축, 타인과의 소통
수필시대 격월간평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은 인간학이다>라는 명제에 답하지 못 하는 수필은 실패한 작품이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온기의 총체여야 한다는 의미다. 수필은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로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의 실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는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 발견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필이 인간학의 구현체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문학은 관념과 추상을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실체화해야 하는 문학이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따라서 좋은 수필은 인간애의 정신과 인간성의 탐구라는 주제 지향성에 부합하면서도 동시에 수필가는 자신이 삶 속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잘 배치하여 유기적인 의미의 그물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즉 문학으로써 수필은 미적 구조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타인들이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의미의 그물로 이미지를 만들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험에서 얻은 정신적 반응을 실감의 보수와 실감의 유리라는 미적 경로를 통해 이미지로 구축할 때만, 진정한 본격수필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염귀순의 <봄날의 비밀>은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이미지로 잘 형상화했다. 심선경의 <틈새>는 소통의 가치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정여송의 <불꽃> 역시 광안리 불꽃 축제를 문학적 이미지로 잘 구현한 작품이다. 김선화의 <붉은 꽃 피는 언덕> 역시 위의 다른 작품과 마찬 가지로 수작이다. 구체적 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감각화하는 수법으로 정서적 환기를 강화하여,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위에 거론된 수필들은 한마디로 맛있는 수필이다. 손맛이 있다. 수필 감상을 의미의 재해석이라고 볼 때, 그런 기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읽어나가는 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 수필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로의 소통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감동이다. 작가가 만든 심상과 상징이 독자들의 연상과 상상을 불러들임으로써 표상이 원형이미지로 나가가게 해서 감동이라는 목표를 달성해 내는 것이다. 임매자의 <팜므파탈 능소화>도 이미지화에 성공한 수필이다. 이 작품에서는 ‘팜므파탈’이 주제의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제목을 그냥 ‘능소화’라고 했으면 더욱 좋았겠다.
김수정의 수필은 주제가 제목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아쉽다. 수필은 주제적 양식의 수필이다. 주제는 수필의 문맥 속에 깔려 있어야 한다. 김상태의 수필 역시 너무 설명적이어서 정서적인 감화를 목적하는 수필의 본질과 유리되어 안타까움을 준다. 설명은 문학적 향취를 앗아가는 독소다. 그러므로 수필을 쓸 때 수필가는 구체어를 통한 묘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조영남의 <긴 밤의 여로>는 전개부 말미로 진행되면서 철학적 지식에 대한 열거가 감상에 부담을 주었으며, 마지막 자작시의 인용 또한 과연 필요했는지 의문스러웠다. 김두수의 <창호지 속에서 다시 피는 백일홍>도 제목을 그냥 백일홍으로 했으면 나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호지 속에서 다시 피는’이 주제의식을 함축하는 어구이기 때문에 이는 문맥 속에서 의미화로 드러내는 게 더 수필적 기법이다. 그리고 ‘것이다’라는 종결어미가 많아 우리 글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안 될 것이다’ 등의 당위적 종결어구는 수필어구로 적절치 않다.
이제 여러 글 중에서도 절경의 손맛을 우려내는 작품 몇 편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염귀순의 <봄날의 비밀>은 자외선과 같은 섬세한 부분이자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상태와 동경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작가는 바로 고독한 정신의 움직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섬세한 내면 풍경을 세련된 관조로 그리고 있어서 자조문학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얼굴의 잡티를 레이저수술로 없애면서 작가는 예뻐지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봄’과 상관화시켜 그 이미지의 의미망을 미학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까닭으로 감동을 준다. 가슴에 ‘풀물’을 들여, 몸 속 어딘가에 ‘봄풀’ 하나 세워보리라는 그녀의 소망에 손맛이 힘껏 묻어난다. 순환하는 인생을 봄의 생명력에 기대어 풀어내고, 그 위에 영육을 하나로 묶는 고독한 정신의 사유가 호수 위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자외선 같은 섬세한 서정이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까.
그녀는 문학성을 안겨 주기 위해 내면의 풍경을 물감으로 그리듯이 감각적으로 구체화한다. 이렇듯 그녀는 마음의 여로를, 또는 여인의 꿈을, 특유의 미적 상상력으로 그려내어 독자에게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정감을 안겨 준다. 삶의 얼룩과 지친 흔적들을 얼굴에 내려앉은 반점과 상관화시키면서 새봄 같은 내외면을 향한 여인의 갈망을 섬세한 필치로 잘 그려내고 있어 감동을 준다. 생생한 계절을 내 안에 불러들여 나를 지나갈 시간이 어둡지 않도록 홀로의 침잠에서 깨어나 끈끈한 세포 하나 품어내고 싶은 작가의 소망은 ‘나무도 겨울 자국 위에 초록을 길어 올리는 게다.’는 진술로 충분히 합리화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언어의 연금술사가 같은 마력을 지닌 작가의 언어적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 문학의 존재적 가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 기준을 설정해 의미를 구축하고, 내재된 것에 대한 정신적 토양을 견고히 하는 일이 문학의 사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염귀순의 글은 견고한 바탕을 구축하고 있다.
심선경의 <틈새> 역시 세상을 이해하는 작가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섬세한 여인의 감각적 촉수는 시간의 갈림길인 미세한 틈 사이에 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할 정도다. 작가는 틈 사이에 있는 자신을 클립에 끼워진 종잇장에 상관화하는 문학적 장치를 이용,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것도 보이게 하는, 그럼으로써 전서를 환기시키고, 구체화를 통해 상상력을 원형이미지로 몰아가는 데 성공하고 있다. 수필의 문장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문장을 사상의 의미화로 표현하는 것이다. 심선경이 못 박기를 통해 구현하는 주제의식은 소통과 이해다. 그 의식과 정신이 "미세하게 벌어진 틈새에는 그 크기에 꼭 맞는, 혹은 그보다 작은 생명체가 숨어 살기도 한다. 틈새를 만들기 위해 저 거대한 건물들이 제각기 옆을 조금씩 내어주는 것처럼 사람들도 제 곁을 조금씩 내어준다면 그 틈새가 빈 공간이 되고, 빈 공간은 또 다른 생명체의 삶터가 될 게다. 어둠 속에서 제 몸을 찌르고 든 못과 한통속이 되어 뒤엉키는 벽처럼, 살점이 좀 떨어지면 어떤가.“라는 주제의식의 의미화로 드러내고 있다. 양보와 희생의 정신은 공동체적인 의식의 확보와 가치에서 절대성을 갖는다. 틈이 없는 삶의 공간을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심선경이 거처하는 공간은 열림과 깨달음의 의식이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뇌와 메마른 가슴을 관통하는 못 하나가 있어 내게도 푸른 길이 뚫렸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소망에 이르러서 이 수필의 주제의식은 절정을 이룬다. 그녀는 성찰적 자아의 삶을 꿈꾸고자 한다. 그녀에게 못을 박기는 날마다 흔들리고 설레고 아픈 것이 생임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곧 자아찾기의 일환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내면 풍경은 자아 성찰을 통한 일상의 행복찾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톱니바퀴에 끼여 바쁘게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에고적 자아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다. 이 수필 속에는 어느 날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중년 여인에게 불현듯 닥쳐오는 깨달음의 시간이 절경이 되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은 그 작은 못 하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 거대한 건물 전체가 몸을 떨며 함께 운다.“라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는 진술에서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언어의 힘은 절정을 이룬다. 자신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삶의 가치를 체험의 형상화를 통해 미학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마음의 평수를 넓히는 일로 묵언수행하며 밤을 지샌다는 결말 멘트도 재치 일품이다. 인간 정신의 내면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심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존재 이유다. 이 진지한 단면이 심선경에게는 마음의 평수를 넓히는 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정여송의 <불꽃> 역시 수작이다. 불꽃 축제를 화제로 끌어들이기 위해 참깨를 볶으면서 터지는 깨알들의 웃음소리를 도입부에 배치한 착상이 신선하다. 그 소리들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구축해 내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광안리 불꽃놀이는 냄비 위에 포개어진다. “소리가 핀다. 불꽃이 터진다”로 시작된 불꽃 축제는 현실을 보는 작가의 세계관에 의해 ‘빛의 향연, 빛의 환희, 빛의 찬가, 빛의 화합, 빛의 상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녀는 불꽃의 의미를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정조준하고 있어 여성수필이 놓치기 쉬운 시대정신을 잘 견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우리 시대의 어두운 곳을 응시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작가의식은 ‘억압을 떠나 자유로이 춤을 추는 빛’이란 진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품의 절정은 불꽃에 구체적 이미지를 더하는 데 있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사람들을 생각하는 시점에서 주제의식은 선명히 구체화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상상과 연상을 하게 만든다. 그녀가 불꽃을 보며 건져내고 싶은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열정이다. 불꽃의 상징은 일시적인 인기와 시류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성이 있는 신념이다. 작가는 그들이 자기 가치를 위해 ‘자유로운 인간의 길, 진리의 길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살아야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사례라 하면서 그 뜻이 역사가 되었다는 말로 희생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의미화하고 있다. 이 작품이 갖는 가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역사가 되는 열정을 구현한 주제의식이요, 여기에 더하여진 작가로서의 현실인식이 시대정신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꽃의 낭만성에 기대를 건 독자들의 선입관념을 쫓아내버린 신선한 의도다. 수필은 한마디의 문학이다. 수필은 주제를 상상케 하는 한마디가 전체 수필을 살리는 수가 있다. 결말부의 “소리가 핀다. 불꽃이 터진다. 봄이 열린다”라는 표현은 ‘동장군이 버티고 있는데 언덕의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린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의해 그 의미가 구체화되면서 주제의식의 상상적 묘미를 절묘하게 펼쳐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의미의 재구성이란 감상의 목적에 부합하는 표현으로써 수필의 여운성도 함께 꿰차고 있는 것이다.
김선화의 <붉은 꽃 피는 언덕>이라는 작품 역시 사물을 보는 예리한 작가의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수첩갈피에 꽂아둔 해당화 다성 장의 꽃잎 향기를 맡으면서 도입부를 연다. 그 향기를 통해 가끔씩 작은 섬에 가 보는 꿈을 꾸기도 하는 로멘티스트 여류 작가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작가의 눈길을 끈 것은 한 송이 해당화다. 작가는 이 꽃과의 만남의 순간을 “그 중 메꽃무리가 나를 안다는 듯 덩굴손을 뻗으며 밤새 닫았던 입을 연다”로 묘사하고 있다. 향기는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작가와 대화를 하게 만든 것이다. 무더기로 피어 모래톱을 수놓는 해당화로부터 작가는 간밤에 쏟아져 내린 별들의 속삭임과 잔물결을 일으켜 부려놓은 은빛노래를 듣는다. 이 작품의 쾌미는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한 작가의 넉넉한 여유와 재미있는 해석이다. “개인의 인생여정을 꽃이 지닌 색채로 에둘러 말한다면, 해당화 꽃잎에 매료되어 지내는 날들을 내 생의 절정이라 정의 내려도 좋으리.”란 표현에 녹아 있는 의미는 핏빛 해당화의 낮은 키를 생각하게 하면서 작가의 열정적이며 낭만적인 체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흔흔한 노랫가락에 문향 따라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 가지나 그려보는 작가는 분명 청초한 여인이리라. 꽃잎의 향기에 정다운 사람을 선연히 떠올릴 줄 아는 작가는 이로써 자연과 사람의 조화 속에 생의 향취를 느껴 보자는 주문을 간접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겠다. 수필은 서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 특징들이 여성성과 교류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것, 그러한 이미지가 특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상징이나 암시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것, 이런 기능으로 인해 심리 변화나 정서적 반응이 감각화되어 표출된다는 것 등의 확인을 통해서 대상의 서정화를 도모한 것은 수필의 문학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다음에 열거하는 작품들도 수준작이었다. ‘해마다 청향나무가 만발하는 여름이 되면 나는 거친 밤바다 같은 지난 날의 삶도 그저 고맙기만 하다. 밤새 세상을 향기로 채우고도 한마디 공치사조차 하지 않는 청향은 원망도 절망도 부끄럽게 한다. 여름 밤 청향은 이제는 철지난 해역에 노수부처럼 남겨진 내게 또 다른 해역을 찾아 힘차게 떠나라는 도선사의 지혜로운 음성 같기만 하다’는 결구 표현이 멋진 오길순의 <한 그루 청향나무>, 한편으로 강찬종의 <난석을 사며>는 생활 속의 반성적 성찰이 잘 드러난 작품로 ‘수필은 인간학이다’라는 명제에 답하는 수필이다. 백필기의 <장날>은 시골 장날에 쑥을 팔러 나온 할머니를 걱정하는 작가의 작은 배려가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수필이다. 시장에 나온 할머니가 이런 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불러내고, 다시 이상적인 이미지로 구축하는 결말부가 멋스럽다. 박종숙의 <호수지기>는 토속적 서정이 물결치는 향토수필이다. 호수를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 속에서 호수가 주는 미덕을 발견하여 자신의 삶에 반추하며, 호수를 통해서 생의 향기를 더듬고 있는 모습에서 작가의 체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어 수필의 맛을 우려낸다. 이들 작품은 이미지 구축을 통해 형상미학이 빛나는 좋은 수필들로 타인과의 소통을 추구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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